월급의 흐름-당신의 돈은 어디로
윤재는 밤마다 책상 위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숫자들을 늘어놓았다. 숫자는 말이 없었지만, 그가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다. 월세, 교통비, 통신요금, 각종 구독료, 보험료, 카드 연회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작은 결제들. 화면에 줄줄이 서 있는 항목을 내려다보며 그는 생각했다.
‘나는 월급으로 사는 게 아니다. 과거의 선택으로 오늘을 갚아 나가고 있다.’
처음 이 집을 구할 때, 그는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십오 분이라는 조건을 “괜찮다”고 생각했다. 월세가 조금 더 싸니까, 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석 달쯤 지나자 “괜찮다”는 말은 “익숙하다”가 되었고, 반 년이 지나자 그것은 “어쩔 수 없다”가 되었다. 아침마다 서두르다가 택시를 잡을 때면, 월세를 아꼈던 그날의 판단이 매번 되돌려 청구되는 것 같았다. 납득하기 위해 만든 논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논리가 아니라 비용이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덫’이라 불러보기로 한 것은 구독 서비스였다. 음악, 드라마, 영화, 전자책, 클라우드 저장공간—처음엔 각각 꼭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첫 달 무료”라는 작은 문장이 그를 손쉽게 통과시켰다. 무료 기간이 끝날 즈음이면 회사 일에 치여 해지 버튼을 찾지 못했고, 바쁘단 이유는 어느새 자동이체의 충실한 변호사가 되었다.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져 한밤중에 구독 목록을 모두 펼쳐 놓고 하나씩 눌러 보았다.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하세요.’ 작은 창이 화면 가운데에 나타났다. 그는 웃음이 나왔다. “끝까지 붙잡는구나.” 비밀번호를 치고, 해지 이유를 묻는 설문을 건너뛰고, 마지막 확인창에 도달할 때까지 다섯 번의 클릭이 필요했다. 끝내 ‘해지 완료’라는 문장이 떴을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는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한 스프링이 푸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다음 날, 회사 탕비실에서 선배 민석이 물었다.
“어제 늦게까지 뭐 했냐? 얼굴이 좀 지쳐 보이는데.”
“자동이체 청소요.”
“오, 드디어 시작했네.”
“왜 이런 것들은 해지할 때만 이렇게 번거롭죠?”
민석은 종이컵에 물을 따르며 어깨를 으쓱했다.
“가입할 때는 네가 손님이지. 해지할 때는 네가 채무자야. 서비스 입장에선 네 월급이 작은 강이고, 그 강에서 물길 하나를 따 놓는 게 구독료지. 막으려면 둑을 다시 쌓아야 하거든.”
점심시간, 동기 현우가 말했다.
“야, 너 헬스장 안 가면서 회비 계속 내냐?”
윤재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헬스장도 덫이었다. ‘이번 달부터는 진짜’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다음 달부터는 꼭’이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일련의 자동이체.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는 돌처럼 무겁고, 쓸 때만 물처럼 흐르는 법이었다. 자동이체 내역에서 ‘헬스장 월회비’를 찾아 들어가 해지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잠깐 흔들리더니 ‘정지’라는 선택지가 먼저 제시되었다. “두 달만 쉬시겠어요?”라는 친절한 문장이 떠 있었다.
“정지는 안 해요.”
“해지하시겠습니까? 지금 해지하면 신규 가입 시 혜택이 사라집니다.”
윤재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국 해지를 눌렀다. 화면이 환하게 바뀌었다. 그는 작은 숨을 내쉬었다.
‘가벼워졌다.’
통신요금도 점검했다. 어느 날부터 추가된 데이터 팩, 가족결합 할인 조건을 맞추기 위해 묶어둔 부가 서비스, 명절 때 잠깐 썼던 해외 데이터 로밍의 자투리 결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묻고 빼고 돌려받았다. 상담원은 친절했지만, 친절 뒤에는 계산이 있었다. 약정기간을 새로 시작하면 요금을 낮출 수 있다는 제안은 달콤했지만,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 약정, 중간에 해지하면 위약금이 얼마죠?”
“남은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몇 만 원에서 몇 십만 원까지—”
“그럼 장기 약정은 당장 월 요금을 낮추지만, 나중에 이동할 자유를 묶는 거네요.”
상담원은 잠시 멈칫했다.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의 머릿속에서 같은 문장이 맴돌았다.
‘싼 건 값이 싼 게 아니라 자유가 비싼 거다.’
밤이 되자 그는 지출표의 항목에 색을 입혔다. 월세, 통신, 보험, 교통 정기권, 고정 구독료—한 달에 변하지 않고 나가는 항목에 붉은 선을 그었다. 카페, 회식, 택시, 선물, 충동구매—날마다 변하는 항목에 푸른 선을 그었다. 화면이 멀리서 보면 파란 강 위에 붉은 다리가 걸린 풍경처럼 보였다. 그는 그 다리에 이름을 붙였다.
‘버티는 다리.’
“고정비는 버티는 비용이다. 내가 한 달을 넘어 다음 달로 건너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다리.”
그가 중얼거리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진지해졌다. 버티는 다리가 두꺼워질수록 파란 강은 좁아졌다. 좁아진 강에서는 배가 속도를 내기 어렵다. 그러다 다리 아래 물살이 빨라지면, 사람은 다리의 높이를 탓한다. 하지만 다리의 높이는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이다.
보험을 살폈다. 사내 단체상해보험이 이미 기본 보장을 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입사 전 가입한 실손보험과 종합보험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약관을 펼쳐 보니 보장 내용이 겹치는 항목이 적지 않았다. 설계사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정중했지만 단단했다. “준비된 보장인데 줄이는 건 나중에 후회하십니다.” 그 말은 어딘가에서 들어본 문장처럼 느껴졌다. 가입 당시에도, 옷을 살 때도, 구독을 늘릴 때도, 같은 말이 자신을 설득했다. ‘나중에 후회한다.’ 윤재는 오늘만큼은 그 문장에 고개를 저었다.
“후회는 제가 하죠. 대신 지금은 제 자유를 늘리겠습니다.”
그는 보장 중복을 정리했고, 납입 방식을 바꿨다. 매달 빠져나가던 금액이 줄어들자, 한 달의 모양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퇴근길, 그는 편의점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집어 들던 캔커피를 내려놓고, 계산대 옆 쿠키도 집지 않았다. ‘작은 사치’라는 말은, 작은 사치가 반복될 때 더 이상 작지 않다는 사실을 감춘다. 그는 집에 돌아와 노트를 펼쳐 썼다.
“고정비는 과거의 내가 낙관적일 때 만든 약속이고, 그 약속의 청구서는 현재의 내가 가장 피곤할 때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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