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기관의 손

천하제일단타대회

by LUY 루이

점심이 끝난 전광장은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400개의 자리, 400개의 체결음.
사람들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공기 전체가 진동했다.
천장의 스크린들이 동시에 켜지며 대형 전광판 중앙에 문구가 떠올랐다.
<예선 A-4 : 기관의 손〉


이번 라운드는 ‘프로그램 매매 구간 실시간 반영’.
즉, 인간과 기계의 주문이 같은 시간 축 위에서 충돌하는 경기였다.
사람들은 이 라운드를 ‘기계의 전역(戰役)’이라 불렀다.

심판석이 조용히 말했다.
“이번 라운드는 평균 체결 속도 0.01초 단위로 측정됩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구간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전광장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수백 대의 쿨링팬이 회전하며 공기를 베었다.
냉기와 전류의 냄새가 섞였다.
마우스를 쥔 손끝이 싸늘했다.


“프로그램이랑 붙는다니 재밌네.”
곽도영이 옆에서 웃었지만, 웃음은 금세 말라붙었다.
누구도 이번 라운드의 승부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계의 손은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다.
그게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이다.


라운드가 시작되자 전광장이 포화처럼 터졌다.
체결음이 단발총처럼 퍼지고, 스크린 위의 그래프들이 파도처럼 일었다.
프로그램 매매¹의 체결은 인간의 박자와 달랐다.
클릭음이 아니라, 연속적인 진동.
그것은 소리라기보다 금속이 움직이는 마찰음에 가까웠다.


가격이 0.5% 상승하자마자 대량의 매도 주문이 쏟아졌다.
한 번에 수천 주.
그리고 그 매도가 끝나기도 전에 반대 방향으로 같은 양의 매수가 들어왔다.
호가창의 심장은 미친 듯이 수축했다가 팽창했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곽도영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모니터엔 수급선²이 전쟁 깃발처럼 출렁였다.


곽도영이 포문을 열었다.
“따라붙는다!”
그의 클릭이 번개처럼 떨어졌다.
시장가 매수, 즉시 분할 청산, 다시 재진입.
그래프가 솟았다가 곧 낙하했다.
점수창에는 슬리피지가 쌓였다.
총탄은 맞았지만, 점수는 오르지 않았다.


윤보현이 중얼거렸다.
“기관은 미리 다 알고 있잖아. 뉴스보다 빨라.”
곽도영이 대꾸했다.
“그래도 싸워야지. 시장이 우릴 이겨도, 지는 건 나 자신이잖아.”
말끝에 허공을 향한 체결음이 또 한 번 터졌다.


그때, 마석준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시장의 반응 속도는 평균 0.06초. 분산은 0.014.
이건 인간이 아니라 시스템의 리듬이야.”
그의 화면엔 캔들이 아니라 수학식이 빽빽했다.
“기계가 시장을 만들고, 인간은 그걸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해석은 항상 늦는다.”
윤보현이 손목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걸 알면서 왜 해석해요?”
마석준은 미소를 지었다.
“해석은 희망이니까.”


전광장의 스크린이 번쩍였다.
그 순간, #31과 #11의 체결 로그가 동시에 점멸했다.
0.03초 간격의 서명이 이번엔 훨씬 더 촘촘해졌다.
0.01초.
기계가 기계를 흉내 내고 있었다.
가격이 3% 치솟았다가, 1초도 안 돼 -1%로 꺾였다.
호가창은 진동하며 미세한 균열음을 냈다.
기관 프로그램의 자동 재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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