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VI 확장전

천하제일단타대회

by LUY 루이

정오의 열기가 식자, 전광장은 다시 쇳빛으로 굳었다.

심판석 상단의 문구가 바뀌었다. 〈예선 A-5 : VI 확장전〉.
이번 라운드는 단일 종목이 아니라 섹터 단위로 VI¹가 연쇄 발동·해제²되는 구조다.
한 물고기만 쫓던 전투가 끝나고, 이제는 물떼의 방향이 승부를 가른다.
삼국지의 대군이 협곡을 통과하듯, 시장 전체가 동시에 흔들릴 차례다.


첫 사이렌이 울렸다.
바이오, 2차전지, 미디어—세 개 섹터의 상단에 노란 경고등이 동시에 켜졌다.
발동 임박.
호가창이 가늘게 떨리더니, 순식간에 덩어리로 바뀌었다.
수천 개의 주문이 모래처럼 흩어지지 않고, 바위처럼 뭉쳐 움직인다.
전광장은 웅성거림 대신 침묵의 밀도가 늘었다.
사람들은 말보다 호흡으로 합의한다. 지금은 기다릴 때라는 합의.


“이건 종목 싸움이 아니야.”
나는 노트의 여백에 적었다. ‘흐름을 산다.’
내가 살 건 정보가 아니라 질서의 변경이다.
질서가 흔들리면, 기술은 그 뒤를 따라간다.


1차 발동.
바이오 섹터 상위 7개 종목에 VI가 박혔다.
가격이 얼어붙고, 매수·매도는 경매 포맷으로 잠시 숨을 고른다.
곽도영이 셋을 세고, 넷을 세다가 손을 멈췄다.
그의 손끝이 떨렸다. “폭발 구간이야. 붙을까, 버틸까.”
옆자리의 손우석이 낮게 말했다. “붙을 거면 브레이크이븐³을 먼저 생각해.”
곽은 씁쓸하게 웃었다. “브레이크이븐은 뒷생각이야. 앞생각은 자리야.”
자리는 전장(戰場)에서의 고지와 같다.
한 칸 위에서 싸우면, 같은 칼이라도 더 깊이 박힌다.


해제 3초 전.
익명 계정 #31의 로그가 점멸했다.
0.03초—아니, 이번엔 0.02초의 간격.
매수·매도·매수. 양손 검처럼 떨림이 없다.
서명이 더 날카로워졌다.
곧이어 #11이 0.02초 늦게 역방향으로 덮었다.
둘은 서로의 호흡을 베끼면서 반대로 칠 줄 안다.
시장 전체가 두 그림자의 박자에 맞춰 진군하는 것 같았다.

“저건 누군데 저렇게 박자를 맞춰?”
윤보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마석준이 짧게 대답했다. “한쪽은 예측, 한쪽은 응답. 누가 먼저인지는 결과로만 안다.”


해제.
바이오가 백마처럼 뛰었다. +5%, +7%, +9%.
나는 따라붙지 않았다.
수급선⁴이 위로 쏠렸지만, 체결강도가 점점 낮아지는 게 보였다.
속도가 느려지는 상승은 돌진의 마지막이다.
나는 2차전지로 시야를 옮겼다.
거기선 아직 발동 임박만 깜빡이고 있었다.
전선(戰線)이 넓어질 때는 옆 전장으로 가는 병참로가 승부다.
미디어 섹터의 하위 종목에 먼저 작은 지분을 박고,
2차전지 상단 종목을 감시창으로 올렸다.
“고개 드는 고슴도치부터 맞는다.”
노트에 한 줄 더. ‘먼저 달리는 군마 뒤의 먼지에서 화살이 난다.’


2차 발동—2차전지.
해제 전 5초, 상단 3칸이 비어 보였다.
아니, 비어 보이게 만든 허수벽⁵이었다.
#31이 빈칸을 향해 가볍게 찔렀고, #11이 그 뒤를 같은 크기로 베어냈다.
심판석의 경고가 번쩍였다. “허수벽 주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허수벽은 금지어가 아니라 경고어다—규칙은 의도를 잡지 못한다. 패턴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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