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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Oct 28. 2023

늦가을 여행

우리나라에서 3이란 숫자는 좋은 이미지일진 모르나, 살아있는 생물(사람 또는 동물)에겐 항상 외톨이가 부여되는 조합이다. 홀수중에 제일 가혹한 숫자가 아마 3일 것이다. 사람은 혼자 생활하지 못하듯 어떠한 일에는 안면과 인연이 다가오고 맺어진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파트너가 누구인가에 따라 여행의 묘미는 하늘과 땅차이다. 그나마 3의 홀수판이 깨지면 2:1로 2 끼리 따로 부활하지만, 2의 짝수판이 깨지면 1:1 여행은 완전 나가리(?)된다. 행은 홀수나 짝수 모두 아슬한 조합이다.


동해를 둘러본 가을여행에 이어 이번 늦가을 여행은 남해였다. 엄밀히 말하면 남도기행이다. 동해 때는 홀로였으나 이번엔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했다. 운전거리가 상당했고 노인을 모시는 여행이라 기진맥진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이 빠진다. 이번 여행은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으나 역시 예상대로 동선은 계획대로 움직여지진 않았다. 경남 함양, 전북 남원, 전남 화순, 나주, 순천, 강진, 해남, 진도까지 샅샅이 문화답사를 하고 왔다. 계획된 동선에서 벗어나지 않을 정도선에서 계획에 없던 동선도 맞이했고 계획에 있던 동선은 일부 사라졌다.


여행은 내비게이션 순간동선과 절충과 협상을 해서 효율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고 여기서 여행 파트너의 공감대로 1:1의 여행은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론 신선한 면이 있다. 가족이 아닌 다른 모든 이의 속성을 판단하기에 여행만한 것이 없다. 특히 1박 이상의 여행을 경험한다면 말이다. 계획된 동선과 선호의 차이, 입맛의 차이, 활동성의 차이 모든 분쟁을 열어두고 떠나는 게 여행인데 최초의 '틀을 지키기 위해 판이 깨지는 경우''판을 지키기 위해 틀을 깨는 경우' 두 가지 모두 정답은 없다. 때론 판을 깰 땐 깨야 되고 틀을 깰 땐 깨야한다.


분쟁의 씨앗은 사소하다. 말이 많다든지, 허세가 많다든지, 입맛이 다르다든지, 취향이 다르다든지 안 맞는 이유가 어디 한두 개뿐이겠는가? 일이 아닌 휴식의 일종의 여행에서 인내력을 발휘할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가족, 친지, 지인, 부부모임 등등 단체복수로 여행을 다닐 땐 무계획이거나 또는 아주 촘촘한 계획을 누군가 주도해야 되는데 이도저도 아닌 경우 판이 깨진다. 판이 깨진 후 알아지는 것으로는 틀을 얼마나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기술적인 교훈이다. 즉 깨달음 자각이다. 판을 깰지 틀을 깰지 말이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판을 지키기 위해 틀을 깨는 것과 틀을 지키기 위해 판을 깨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사소한 시비나 사사건건 부딪힘은 자연발로의 기질적인 본성에 기인된 것인데 만약에 누가 누구의 지시로 일부러 고의로 판을 깬다면 사소한 건에 대해 분개할 필요가 없다. 시키는 놈이나 시킨다고 행하는 놈이나 다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여기서 ''이란 표현은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없는 행위이므로 응당 그렇게 할 인간이 없으므로 함부로 표현한다) 한심한 행위에 대해선 그저 작은 일에 분개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하되 경고는 꼭 필요하다.


경고가 오버되면 판이 깨지고 경고가 전혀 없으면 틀이 굳어진다. 틀은 박혀있는 게 아니라 판이 보전되는 한에서 깨어져야  속성이다. 그러나 판은 지켜져야 한다, 무시하면 작은 일은 알아서 나가떨어진다. 왜냐하면 한심한 행위는 모두가 다 알기 때문이다. 즐기는 방법이 틀을 꼭 같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틀을 깨더라도 판이 살아있으면 다음 판에는 더 흥미 있는 풍경과 신선함이 다가올 가능성이 있기에 틀만 고수해서는 안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다고 용인만이 능사는 아니기에 지혜롭게 잘해야 된다.


당연히 틀은 깨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소한 틀은 틀 안에서 움직이고 퍼즐처럼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지만 틀만 지키고 중요한 판이 깨지면 판은 갈기갈기 너덜너덜 찢어져 회복불가능하게된다. 번 남해여행은 틀은 깨어졌지만 판을 지킨 여행이다. 따지지 않고 잘 전달하거나 잘 침묵하거나 잘 반증해야 한다. 뭐든지 잘하면 잘못해도 용서된다. 그래서 여행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여가이고 여정이고 인생의 축소판이다. 진이 빠져도 다시 그리워지는 이번 여행이다. 그런 여행을 노모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이제 남아있는 서해기행의 파트너는 누구일지 어떤 숫자일지 또 궁금해하며 이번 여행을 글로 마무리해 본다.


-2023년 10월 27일 여독이 풀리기 전 자정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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