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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pode Mar 04. 2023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West]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그곳은 파도가 치지 않았다. 바다가 아니라 호수가 아닐까. 주위를 둘러봐도 짙은 안개의 축축함만 더해질 뿐 아무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잘못 왔다. 여긴 어디지. 나는 정말로 드넓은 바다가 보고 싶었고, 그 가운데로 들어가 가만히 눕고 싶었는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원래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에 떠다니던 작은 부유물이었던 것처럼.


눈을 뜨자 아주 익숙하고 낯익은 방의 침대 위였다. 십 년 전 즈음, 처음 갖는 내 방이라 떼를 쓰며 얻어낸 하얀 책장과 책상은 멀리서도 거뭇한 얼룩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이제 낡아있었다. 새하얀 책장과 책상과 함께, 새 집으로 이사 오던 날의 몽글하던 기분이 되살아났다. 그래서인지 어제의 일은 긴 낮잠 중 첫 번째 꿈의 일부인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방문 너머 희미하게 들려오는 TV소리에 문을 열었을 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이 거실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멸치 대가리를 다듬고 있었는데, 그 비릿한 냄새와 어우러진 보일러의 온기가 너무도 편안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일어났어?”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발견한 아버지가 웃었다. 모든 게 낮잠 속 꿈이기를, 앞으로 마주할 문제까지 모두 숱한 망상 중 하나이기를 바랐던 기대가 아버지의 미소에 예쁘게 바스라졌다. 가족들에게 다가가는 한 걸음마다 왼쪽 손목의 오래된 상처들이 쓰려왔고, 꼴깍 삼키는 침 한 모금에 어제의 취기가 돌았다.

 “삼십 분 뒤에 출발해야 해. 씻어.”

담담하게 씻으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눈을 마주 보았을 때, 내가 기억하는 모든 일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 어느 해 삼월 오일.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한강의 다리 난간 위에 서서 엉엉 울었다.


-왜 그랬니?


물어본 사람이 많았다. 그러게, 정말 왜 그랬을까. 그때마다 가장 적당한 답을 찾으려 했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무엇도 적당하지 못했다. 종종 마주했던 삶의 굴곡은 꽤나 유용한 변명이 되어 그들의 눈과 입을 가렸다. 날씨가 좋고 풍경도 좋고 사람마저 좋은데도, 조용하게 멍울져 마음을 부수던 우울의 이유를 끝내 골라내지 못했다. 물밀듯 들어오는, 하강하는 마음의 흐름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당시 속해있던 곳의 처분을 기다려야 했다. 어딘가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있기에.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원형 테이블에 앉아 내가 망가뜨린 것들, 앞으로 복원해야 하는 것들을 세어보았다. 일찍이 불안정함을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던 이들의 믿음은 그중 하나였다. 믿음을 잃은 그들이 겪었을 허무와 상실감을 헤아렸다. 나의 소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무거운 마음으로 공적이고 동시에 사적인 문서를 작성해 나갔다. 다른 이가 대신할 수 없는, 오직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으므로 밤을 새워 여덟 페이지 가량의 문서를 완성했다.


그리 길지 않았던 삶에 대한 회고와 자기반성, 자괴감과 연민이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줄을 타며 종이 위에 기록되었다. 속해있던 곳의 최종결정권자에게 한 줄, 한 줄, 모든 문장을 전했다. 제 딴의 재발방지계획까지 발표하고 돌아 나오며 복도에 한참 서 있었다. 이럴 거면서 왜 죽으려고 했지? 왜 죽어야만 했지? 진짜로 죽을 생각은 있었나? 그렇다면, 앞으로 살 생각은 있는가.


- 정말 왜 그랬니?


그날의 일이 삶의 궤도에 큰 생채기를 내지 않고 지나간 데에는 그때 내가 머무르는 곳이 변하지 않는 덕이 컸다. 나의 거취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의 끝에, 최종결정권자는 날 거두기로 했는데 그건 내 노력을 가상하게 여겼다기보다 그분의 독실한 신앙 덕분이었다. 내게 신앙이 있었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이어지지 않았으리라 판단한 그분과 꾸준히 신앙수업을 가지는 조건으로 자리를 보존했다.


하지만 전혀 후폭풍이 없던 건 아니었다. 누군가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지난 세월과 행동, 특질, 말투와 눈빛 같은 것들과 결부되어 몇 가지 소문을 자아냈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는 진실의 일부를 들여다봤을 수도 있다. 수도 없이 파생되는 이야기 대부분 그럴만하다고 여기며 받아들였지만, 상처를 입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소중한 몇몇을 잃었다.


그럼에도 말없이 내 곁에 남아준 고마운 이들이 더 많았는데, 아주 가끔은 그들 모두 속은 척 해준 거짓과 넘어가준 진실이 있지 않을까 묻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을 지켜내고 싶어서, 마음 깊이 자라난 우울과 불안이 잦아질 때까지 버텨서 언젠가 ‘살아봄직하다’ 싶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묻어둔다.


-그래서, 정말 왜 그랬는데?


내가 저지른 행동이지만, 나조차 짐작만 가능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어째서 그 밤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언젠가는 설명할 수 있을까.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만하고, 살아내야 한다는 걸 아는 것과 별개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 있었을 뿐이다. 유달리 밝은 아침에 눈물이 났고, 매캐한 친구의 담배냄새가 서러웠고, 따뜻한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친구의 그림자를 볼 때면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온몸을 다 내려 누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홈플러스에 가러 길을 나선 적이 있다. 도로 하나만 건너면 되는 일이었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죽으려고 마음먹은 사람도 신호는 잘만 지키더라’는 인터넷 글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초록불은 이상할 정도로 나오지 않았고, 반대편 차선에서 봉달트럭이 유턴을 했다. 먼지바람이 일었다. 건너편에서 엄마아빠의 손을 마치 그네를 타듯 잡고 신나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에선가 차 안 라디오에서는 패널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울음이 터졌고 심장이 바닥쳤다. 신호가 바뀌어도 일어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는 나를 아이가 비켜갔다. 혼자서 몇 번이고 연습한 다짐도, 왔던 걸음만 돌아가면 나를 반겨줄 친구들도, 분에 넘치는 사랑과 그 가치를 아는데, 정말로 아는데, 도저히 모르겠고, 몰랐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너는 왜 그렇게 되었니?’

  ‘너는 언제부터 그랬니?’

어디로 돌아가야 괜찮을 수 있을까. 결국은 땅 속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떠니.


삼월 오일 이후, 한강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기 어렵다. 2호선 열차가 당산을 지나 합정으로 갈 때면 엄지손가락을 말아 쥔다. 종종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의 시선 끝이 어디에 닿아 있을지 생각한다. 무엇이 살지 모르는 밤섬의 우거진 나무숲을 보고 있을까, 햇빛이 잘게 부서지고 있는 원경의 수면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다리 아래 흐르는 갈녹색 물을 보고 있을까.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한강물을 보다 보면, 어느 정도 회복을 이룬 시점에 다시 찾은 한강에서의 피크닉 풍경이 겹쳐 보인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쏘아올린 폭죽이 하늘에 불꽃을 만들고, 그것이 강물에 비치고, 그 강물이 흘러 부딪힌 어떤 교각에서 또 다른 종류의 불빛을 쏘고 있던 보트와 구급차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던 밤이.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여전히 삶은 지독하게 커다랗다. 너무도 삶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감당하기 벅차 슬프다. 가끔은 오래전 바라던 내 모습이 무엇인지도 헷갈리고, 그럴 때면 무력감에 압도된다. 오랜 우울의 기질을, 자꾸만 발을 축축이 적시는 우울의 늪을 벗어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무사히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여태 미지의 것으로 남은,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완결된 내용은 하나도 없지만 이 이야기를 꼭 한번 하고 싶었던 이유는, 한 번쯤은 그해 삼월 오일을 내 힘으로 끄집어내어 ‘미안하다고, 이런 사람일지라도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늘 묵묵히 곁에서 내일을 내어주는 존재들에게, 비록 지금은 곁에 없지만 조금이라도 삶을 기대할 이유를 남기고 떠난 이들에게 아주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오로지 내게만 의미 있는, 별다른 쓰임 없는 마음의 열거에 불과할지라도. 이 마음을 무탈히 다스려 나의 오십에 오롯이 세상에 서 있을 수 있기를.



Fin.

From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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