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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바람 11시간전

두 분의 아버님(1)

feat.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의 길에서 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짧은 12일의 일정 이후에 긴 무력감에 빠져 지냈었는데 오늘 머릿속에서 한명한명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바욘에서 처음 만났던 한국인 순례자분들부터 발이 아플 때 끝까지 곁에서 함께 걸어주었던 친구까지.


모두 다 담아두고 싶은데.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그길을 걸었던 분들이 속속 마지막 종착점인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들어왔음을 확인한 것도 벌써 한달이나 지나갔다. 시간은 무심히도 빨리 지나간다.


순례자의 길에서 매일 일기를 썼어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든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면 뭐하냐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는거 같다.








오늘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는 순례자의 길에서 만난 두 분의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첫 번째 아버님과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작년에 히말라야 솔루쿰부 지역으로 트레킹을 떠났을 때 루클라로 가는 비행기부터 남체까지의 일정을 함께 하며 나를 챙겨주셨던 어르신을 우연히 순례자의 길에서 만난 이야기이다.


솔루쿰부에서 나의 우여곡절은 현지 포터겸가이드를 고용하면서부터였는데, 어르신이 포함된 그룹에서 남체까지도 계속 챙겨주었고 마지막에는 자기들과 함께 가자는 제안까지 해 주셨었더랬다.


포근함과 따뜻함과 든든함을 느꼈었던거 같다.


우연히 그분을 순례자의 길 레스토랑 앞에서 만났을 때 그 놀라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처음엔 순례자의 길에서 인사를 나눴던 분인가 생각했다. 그래서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순례자의 길에서 본 적이 없다는 것과 짧은 순간이 지나고 "히말라야!"가 떠올랐다.


어떻게 떠 올랐는지 나도 모르겠다. 1년 반이나 지난 시점이었는데 어떻게 거의 보자마자 나도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분이 날 먼저 알아보시곤, 혹시나 하고 날 바라보고 계셨던거였다.



내 인생 가장 놀라운 순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바로 달려가 껴안았다.


그 때의 반가움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이 분을 만나기 위해서 순례자의 길에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의 순례자의 길은 여기서 끝나도 만족스러울거 같다 생각했다.



함께 있던 일행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였다.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행복했던 거 같다.


그 순간을 축하하고 싶었다.







저녁자리에서 우리는 근황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뒤 나의 최애가 된 스페인 요리(Entrogot)에 대한 주문 방법을 깨달은 순간도 있었다.


어쩌다 자녀 이야기가 나왔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남는건 그 분이 날 son, 난 그분을 father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뿐.


내가 한국에 돌아온 뒤, 순례자의 길 첫번째 만났던 아버님께서 벨기에로 돌아간 뒤에 몇 번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그리고 감사했다.


지금쯤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계실 듯 하다. 올해도 가신다고 했었다. 몸 건강히 무사히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돌아오시길 기도드려본다.







순례자의 길에서 두번째로 내가 아버님이라고 불렀던 그 분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하신 분이셨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마치고서 내게 선물이라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순례자의 길을 종주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서의 영상을 보내주셨다.


처음 아버님을 봰 건 수리비에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심지어 같은 숙소였다.


그날 이후 길을 걷다 들렸던 까페에서 우리는 처음 대화를 깊게 나누었다.


내가 왜 순례자의 길에 오고자 했는지, 나의 현재 고민은 무엇인지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술술 나왔다.


나는 그분과의 대화가 좋았다.


마치 처음 추천서를 받으려고 교수님께 갔을 때 느낌이었다. 질문은 매섭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이 가득 담겨있는 느낌이었나보다. 그래서 나는 그분과의 대화가 좋았다. 나중에는 질문도 따뜻해졌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돌아가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을 쓰면 또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말라 이야기할 친구가 떠오른다.



아무튼, 어디서였을까. 지명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광장은 기억에 남는다. 그 광장에 있던 식당에서 아버님과 저녁식사 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12일간의 여정을 함께 해 준 일행들도 함께 있었다.




아버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더랬다.


나는 인생에 모든 걸 이뤘는데 아들이 없다라고.


왜였을까.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제가 아들이 되겠다고 했다. 아버님이 되어달라고 말씀드렸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함께 했던 친구들이 콤포스텔라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아버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아버님께서 내게 따뜻한 말씀과 따끔한 조언과 선물을 하나 보내주셨다.


그 선물을 이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의 순례자의 길 완주자들을 위한 미사





감사합니다.


안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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