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지아빠 Jan 08. 2021

투자자가 되기로 하다

노동자와 투자자



사회초년생 시절이 막 IMF를 벗어나 다시 경제가 좋아지는 시절이었다. 운이 좋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그 시기에, 과장님들은 부동산과 주식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술자리에 가면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고 나도 무척 궁금해서 귀를 많이 기울였었다. 그런 시절에 한 경험많은 과장님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주식투자를 해야할까? 말아야 할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런 고민은 틀린 고민이야. 만원을 투자하더라도 투자를 해야하고, 가장 필수 중에 필수가 주식투자란 말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나?"

그가 나를 바라봤다. 나한테 너 오늘 운 좋은 날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어디가서 이런 얘기 들을 수 없는데 해 준다는 듯 한 눈빛이다. 할까말까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애정어린 듯 하기도 하고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아. 투자는 십원을 투자해도 투자고 백억을 투자해도 투자니깐. 결국 자기가 굴릴 수 있는 자산은 자신이 결정해 나가게 되있어. 그럼 금액이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하냐? 그건 바로 투자자의 자세야. 내가 주식을 보유하게 되면, 진짜 최소한의 최소한의 최소한으로 정보를 수집해도 종합주가지수는 확인하게 되지. 이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아. 시간이 흘러 나한테 민간함 사건이 터질 때, 주가와 연계해서 그 사건을 해석하게 되지. 그 순간 남들은 모르는 너만의 투자방식이 하나 만들어 지게 돼. 너만의 투자전략이란 것이 생기는거야. 남들이 모르는 것이라면 성공확률이 아주 높아지지. 책으로도 배우고 경험으로도 배우면서 투자자가 되어가는 거야.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크면 노동자, 투자로 벌어들이는 돈이 크면 투자자가 되는거야."

그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사뭇 달랐다. 어디에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다는 무용담이 아니었다. '노동자가 될 것이냐, 투자자가 될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었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모두가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술자리 이 후 난 작은 돈이라도  주식투자를 했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내가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금액은 나한테 달려있었다. 투자를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종종 주식투자 금액으로 가늠해 보곤 했다.

학생신분을 벗어나 직장인 된 것을 느낀 건 월급이 들어왔을 때였다. 아르바이트로 받는 급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알바 급여는 임시적이었다. 알바로 받는 급여는 학생의 가벼운 지갑을 채워주고 부모님 도움없이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줬지만 무척 불안정하고 긴 계획은 세울 수 없었다. 하지만 취직을 하고 받은 급여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안정감이 있었다. 이제 월급으로 내 생활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적금도 붙고, 일정금액은 책 사고 학원다닐 돈으로 떼어놓고, 혼자 사는 생활비도 쓰고, 가끔은 부모님 용돈도 드릴 수 있었다. 꾸준히 들어오는 급여가 날 독립적으로 만들었으며, 어른으로 만드는 듯 했다. 급여가 그런 의미였다면 주식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주식은 시작하는 것도 시간이 걸렸다. 주식계좌를 만드는 데도 약간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는 종종 절대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 분들은 주식으로 집이 망하는 걸 봤거나 그런 얘기를 종종 들었던 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 주식은 도박과 같다고 생각하셨고 내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다. 실제로 80년대 주식은 도박처럼 큰 돈을 벌어주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렸다. 막상 주식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회사와 뉴스를 통해 듣는 소식들을 기반으로 주식을 사고팔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주식을 시작할 때는 조심스러워서 보통 전체적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에 주식을 매수하고 대부분 이득을 본다. 나도 평소에 좋게 생각하는 회사 주식을 샀고 10퍼센트 올랐을 때 팔았다. 그 때 기분은 큰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듯 자신감이 넘쳤다. 얼마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이런저런 조사를 하면서 나만의 투자 방법들도 만들어 나갔다. 그 때는 10퍼센트 오르거나 내리면 무조건 파는 것이 내 투자 방법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고 팔면 팔수록 투자금액은 점점 작아졌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점점 흥미를 잃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한참 주식 투자를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종자돈이 만들어지면 결국 다시 주식투자를 고민하게 되었고, 다시 투자를 시작하곤 했다. 우량주 중심으로 투자를 하니 은행이자보다는 약간 나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투자된 종자돈은 집을 사기 전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결혼하고 집을 살 시기에는 큰 돈이 필요했고 주식투자를 멈추는 시기가 있었다. 이 후 약간의 돈이 모여 다시 주식투자를 했다. 어쩌면 신입사원 시절 선배가 말해준 투자자란 개념이 나를 노동자로만 머물지 않게 하는 것 같았다. 크게 벌지도 잃지도 않으면서 투자는 지속되었다. 종종 전체적으로 크게 오르는 타이밍에 올라타 수익을 내기도 하고, 끝없이 떨어지는 암울한 시장 분위기를 묵묵히 견디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내 나름대로 크지 않지만 은행보다는 약간 높은 수익을 내는 투자 방법들을 하나 둘씩 익혔던 것 같다.


소소하게 수익을 내며 투자를 했던 일들을 아내가 처남한테 과장해서 자랑을 한 것 같다. 어느 날 손아래 처남이 해외 근무를 떠나게 되었고, 처남은 중형차 살 돈을 나한테 보내면서 주식투자로 조금 더 불려달라고 했다. 아내가 처남한테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말했다고 했다. 2년 정도 나갈 계획이었기에 그 정도면 무리한 투자가 아니라 생각했고 그의 제안을 손쉽게 받아들였다. 처남은 건설 일을 하고 있었고, 출장도 중동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다시 중동에서 일이 많아지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건설업이 크게 좋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남을 통해 건설업 얘기를 들었고, 나름대로 건설회사 몇 개를 관찰 한 후 주식을 매수했다. 매수 초기에는 주가가 상승했다. 그리고 그렇게 매수 후 종종 가격을 확인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경제가 대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었고, 중동 건설 붐도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때 처남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외근무를 마칠 예정이라는 소식을 아내한테 듣게 됐다. 주식은 생각보다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 처남은 귀국할 때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본의 아니게 주식 투자한 돈이 급하게 반환 시기가 잡힌 것이다. 마음이 바로 초조해졌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만해했으면 했고, 손해를 넘어 수익을 조금이라도 올렸으면 했다. 그래서 급하게 이런 저런 주식들을 알아봤다. 수익을 내려는 조급한 시도들이 진행되었고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만들었다. 결국 처남이 귀국했을 때 모두 손절매를 해야했다. 속이 상했다. 나는 아무말없이 그 손해를 모두 메꿔주었다. 속이 매우 쓰렸다. 그 해 전반적으로 주식은 떨어졌고 많은 손해가 있었다. 주식을 그만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처남 돈으로 한 주식투자는 이 후 나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절대 정해진 기한을 가진 돈으로 투자를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대로 주식투자를 하는 건 뭔가 굉장히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경험에 의존하고 감각에 의존하며, 돌발성 뉴스에 반응하고 투자 결정이 너무 주먹구구식이었다. 투자자를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현명한 투자자가 될 것인가? 난 이 갈림길에 섰었다.


이 때 쯤부터 나는 예전보다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일 년에 10권을 읽을까말까 하는 수준에서 일 년에 100권을 읽을 때도 있었다. 학생 때 읽었던 정말 지독히 재미없던 고전 소설들이 너무 재미있게 읽혀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는 진리를 담은 듯했다. 책들이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왜 고전을 추천하는 지 새삼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투자 관련된 책들도 많이 읽었다. 우선 많이 읽었던 책은 부동산 관련된 책이었다. 부동산은 레버리지를 생각하면 가장 좋은 투자방법이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가진 종자돈으로는 주식투자가 좋은 투자 방법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단기매매를 하는 책에서부터 아주 긴 시간 장기투자를 하는 내용까지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내게 가장 좋았던 책은 피터린치의 책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회사를 선택하는 것과 불황과 호황을 지나 결국 세계경제는 성장하고 주식도 성장한다는 것이었다. 망하는 회사를 선택하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럼 망하지 않는 회사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국가 기반사업들은 국가가 망하지 않으면 문을 닫지 않을 것이고, 사회 변화에 맞춰 성장궤도에 올라선 회사들도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좋은 회사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나한테 우리나라에서 한 회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그 때 내가 고를 바로 그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이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 생각으로 주가가 2배 이상 오를 회사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긴투자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10퍼센트, 20퍼센트 수익은 목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벤트성 뉴스들은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서서히 종자돈 수준이 커져갔다. 이제는 주식투자는 그냥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장기투자를 하기 때문에 일희일비가 일지 않았다. 한 번 주식을 사면 1,2년 내 되파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 가만히 두었던 종목 하나가 눈에 가시처럼 계속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재조정을 조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식시세를 확인할 때마다 그 주식이 눈에 거슬렸고, 언제 정리할 지 고민하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금 종목들은 몇 년 전에 읽었던 미래보고서에서 영감을 얻어서 매수한 종목들이었다. 미래보고서에 다뤄지는 내용들이 미래에 전부 이뤄지지는 않지만, 단기적인 방향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망하지 않는 회사, 사회 변화에 맞춰 발빠르게 대응하는 회사가 내가 주식을 사고 싶은 회사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미래보고서 책을 쭉 훑어본다. 읽다가 문득 나만의 이런 보고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년에 한 번 정도 조금씩 업데이트 하는 수준으로 작성해 나간다면 주식 재조정이 무척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메모장에 나만의 미래보고서를 써보자는 목표를 쓰게 됐고 이렇게 조금씩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척 부족하겠지만 몇 해가 지나면 단단한 보고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해 혼자 흐뭇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씨 경제연구소] 2020 미래보고서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