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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지아빠 Mar 04. 2021

책 읽는 거실 만들기

내 방을 비우기

빈 공간이 있어야 채울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먼저 비우고 채워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듯하다. 뭔가를 갖고 싶은 욕망이 항상 먼저였다. 갖기 위해 어쩔수 없이 비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갖고 싶은 욕망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보다 클 때 버리고 비울 수 있었다. 순서는 항상 그랬다. 내 방을 비우고자 생각한 것도 거실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욕망이 작았다. 내 방에 대한 애착은 더 컸다. 거실 티비를 없애자고 내 방을 티비 방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 걸까?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방을 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거실 티비는 아이와 나를 항상 유혹했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면 아내는 화를 냈다. 꼬마한테 티비만 보여주는 아빠로 낙인 찍혀 버린 것이다. 티비를 떼어 내 방 구석에 갔다놨다가 다시 거실에 설치하기를 몇 번 반복했다. 티비를 없애기보다는 거실을 책읽는 공간으로 바꿨으면 좋겠고, 그래서 티비방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방을 비우는 것은 내 결정만 남았었다.    


가진 걸 포기하는 건 어려웠다. 그러나 계속 방을 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이 때 쯤 나는 '싯다르타', '그리스인 조르바', '월든' 같은 책들을 읽고 있었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덜 가져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에 빠져 있었다. 얼마나 가져야 만족할 수 있을까? 날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반복하다 결국 결정을 내렸다. 내 방을 비우기로 했다. 그래서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하려면 먼저 버릴 것을 구별해야 한다. 방을 정리하다 보니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을 아직도 갖고 있나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충분히 버렸다고 생각하고 둘러보면 짐이 별로 줄지 않았다. 좀 더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그러게 버리고 또 버리다 보니 책장과 책, 서랍장 하나만 남았다. 책장과 책은 티비가 있던 자리로 이동할 것이고, 서랍장 하나만 방에 남게 되었다. 나중에 이 서랍장마저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게 방 하나를 비우자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었다. 


내 방을 비워서 우리 가족은 거실을 책 읽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아이 책을 책장 아래 쪽에 가득 꽂아 놓았다. 아이가 티비 리모콘 대신에 책을 꺼내서 읽을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방을 비웠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티비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생활 공간이 거실이었기에 굳이 티비 방에 가지 않았다. 거실에 있을 때는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공간에 무엇을 채우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나는 내가 가진 정리하는 능력을 집안 곳곳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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