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이라는 이상한 회전이 중요한 이유

스핀이라는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by 무이무이

스핀이야기 첫번째 <<< 눌러서 보기

- 스핀 이야기 두번째 -


우리는 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들여다보려 하는가
우리는 아직도 눈앞에 놓인 물체 하나의 움직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왜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떨어졌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천체의 궤적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왜 우주가 이런 배치를 선택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런데도 인류는 묻는다. 아니, 집요하게 파고든다.

왜 더 작게 쪼개는가?
왜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이해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세계를 이루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호기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는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줄곧 하나의 관점을 주장해 왔다.
《천지창조는 흑암의 깊은 수면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
그리고 《2차원의 정보막이 3차원의 세계를 투사한다》는 가설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3차원 세계는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 어떤 결과값에 가깝다.》

투사된 결과에는 언제나 최소 단위가 존재한다.
점처럼 보이는 그 최소 단위,
나는 그것을 《정보의 상태》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사실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LED TV의 화면은 매끄러운 색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그 근원에는 RGB라는 세 개의 점이 있다.
인쇄물의 이미지는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확대하면 CMYK의 점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다.

컴퓨터의 세계는 더 노골적이다.
모든 데이터는 결국 0을 채울 것인가, 1을 채울 것인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연속처럼 보이는 세계는
사실 《이산적인 결정들의 집합》이다.

만약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디스플레이라면,
3차원 공간은 화면이고, 2차원 정보막은 그 패널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물질이라 부르는 것들은
그 위에 점등된 픽셀들이다.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 픽셀은
어떤 기준으로 켜지고 꺼지는가?
앞면과 뒷면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리고 왜 어떤 정보는
끝내 하나로 확정되지 못한 채
흔들리는 상태로 남아 있는가?

이 질문의 중심에
하나의 이상한 성질이 놓여 있다.

회전처럼 보이지만 회전이 아닌 것,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결정의 방식에 더 가까운 것.

우리는 그것을
《스핀(spin)》이라 부른다.





페르미온


스핀은 회전이 아니다
그리고 왜 어떤 존재들은 서로 겹칠 수 없는가

지난 화에서 우리는
동전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정확히 한 바퀴”를 돌리려다 번번이 실패했다.
동전은 돌지 못하고 쓰러졌고, 대신 손가락으로 튕겼을 때만
앞인지 뒤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그 자리를 유지했다.

그 비유를 통해 우리는 스핀이라는 성질이 단순한 회전이 아니라 《앞과 뒤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임을 살짝 엿보았다.

이제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정확한 언어로 정리해 보자.

우리는 흔히 입자를 아주 작은 공처럼 상상한다.
그러다 보니 “스핀”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얘가 빙글빙글 도는 거야?”

아니다. 적어도 전자는 그렇지 않다.

전자는 돌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돌 수가 없다.》

전자의 크기를 계산해 보면,
만약 그것이 실제로 회전하고 있다면
그 표면은 빛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물리학은 이 지점에서 단호해진다.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는 분명히 《스핀 1/2》라는 값을 가진다. 회전하지 않는데 회전값을 가진다.
360도를 돌아도 제자리로 오지 않고,
720도를 돌아야 비로소 원래 상태로 복귀한다.

이 이상한 성질 앞에서 현대 물리학은 하나의 범주를 만들어낸다.

《페르미온(Fermion).》

페르미온이란 간단히 말하면 이런 존재들이다.

1. 서로 《같은 상태를 차지할 수 없다》
2. 겹칠 수 없다
3. 한 자리에 두 개가 동시에 있을 수 없다

전자, 쿼크, 중성자, 양성자.
우리를 이루는 모든 ‘물질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 페르미온에 속한다.

이 성질을 우리는 《배타성》이라 부른다.
조금 더 정확한 이름은 파울리 배타 원리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 왜?》

왜 어떤 존재들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서로를 밀어내야 할까?
왜 정보는 중복을 싫어하는가?

이 질문은
“물질이 왜 자리를 차지하는가”라는
아주 근원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2D 정보막의 관점에서 보자.

2차원 정보막은
앞면이냐, 뒷면이냐
투사될 것이냐, 말 것이냐가
항상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 불확정성은 결함이 아니라
정보막의 기본 성질이다.

그리고 이 정보가 빛과 상호작용하며
3차원으로 투사되는 순간,
그 불확정성은 ‘결정되어야만 하는 압력’을 받는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만약 두 개의 정보가 완전히 동일한 상태로
같은 자리에 투사된다면?
앞과 뒤, 있음과 없음, 0과 1의 구분이 무너진다.

정보로서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정보는 중복을 거부한다.
존재는 자리를 요구한다.
페르미온은 겹치지 않는다.

이것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논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스핀 1/2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결정”의 흔적이다.

앞면과 뒷면이 완전히 하나로 고정되지 않았다는 표시,
360도로는 부족하고 720도를 요구하는 이유.

스핀은 회전이 아니다.
스핀은 《우주 정보가 앞과 뒤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스핀 1/2란
그 결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다.

천지창조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안식은 영원한 정지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요동을 준비하는 잠깐의 균형일 뿐이다.

이제 배타성과 스핀이 어떻게 원자 구조를 만들고,
공간을 세우고, 세계에 《딱딱함》을 부여하는지—
그리고 왜 중첩과 중복은 전혀 다른 개념인지
조금 더 깊이 내려가 보려 한다.





중복과 중첩은 전혀 다른 말이다

《정보는 동시에 있을 수는 있어도, 같은 자리에 머물 수는 없다》

우리는 종종
중첩(superposition)과 중복(duplication)을
비슷한 말처럼 사용한다.
둘 다 “겹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학에서,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정보의 세계에서 이 둘은 《정반대의 개념》이다.

《중복》이란 무엇인가?

완전히 같은 정보가 같은 좌표, 같은 상태, 같은 의미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복사된 파일 두 개, 완전히 동일한 문장,
1과 1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

정보의 입장에서 보면
중복은 사실상 《의미의 붕괴》다.
구별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은
중복을 극도로 싫어한다.

페르미온이
같은 상태를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재는 중복되는 순간
정보로서의 자격을 잃는다.

반면 《중첩》은 전혀 다르다.

중첩은
여러 상태가 《동시에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상태》다.
아직 선택되지 않았을 뿐, 하나로 합쳐진 것이 아니다.

동전이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인 것이 아니라,
앞면일 수도 있고 뒷면일 수도 있는 상태.

0과 1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0이 될 수도 있고 1이 될 수도 있는 열린 질문.

중첩은 결정 이전의 풍부함이고,
중복은 결정 이후의 무의미함이다.

이제 이 관점을 2D 정보막으로 옮겨보자.

2차원 정보 막은 본질적으로 《중첩의 세계》다.
앞과 뒤, 안과 밖, 있음과 없음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채
얇은 막 위에 겹겹이 놓여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이 중첩은 《중복되지 않는다.

정보막 위의 각 정보는 서로 다른 좌표를 가진다.
같은 의미라도 같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마치 악보 위의 음표들처럼, 같은 도라도
서로 다른 박자에 놓이면 전혀 다른 음악이 된다.

2D 정보막은 중첩된 가능성들의 장이지만,
중복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좌표계를 가진다.


그렇다면 이 2D 중첩은 3D 세계에서 어떻게 보일까?

바로 여기서 《스핀》이 등장한다.

2차원 정보막 위에서는 앞과 뒤가 동시에 열려 있지만,
3차원으로 투사되는 순간 세계는 묻는다.

“그래서, 어느 쪽이냐?”

이때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정보는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상태로 투사된다.

그 흔적이 바로 스핀이다.

스핀은 중첩이 남긴 그림자다.
2D 정보막에서 허용된 중첩이 3D 세계에서
‘회전값’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스핀 1/2》이 사실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한 번의 회전으로는 상태가 확정되지 않는다.
두 번을 돌아야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복귀한다.

이것은 회전의 기이함이 아니라 정보의 미결정성이다.

2D에서는 하나였던 정보가
3D에서는 앞과 뒤를 오가며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

정리해 보자.

《중복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페르미온은 겹치지 않는다
《중첩은 허용된다
그래서 양자 세계는 풍부하다
《2D 정보막은
중첩을 품되, 중복은 허락하지 않는 좌표계다
《스핀은
그 중첩이 3D로 투사되며 남긴 흔적이다

그래서 스핀은 회전이 아니다.

스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결정
천지창조가 계속 진행 중이라는
우주의 메모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메모는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물질이라 부르는 모든 것 안에
조용히 남아 있으니까.


스핀은 회전이 아니고,
페르미온은 단단한 입자가 아니다.

그들은
세계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증거에 가깝다.

창조는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라
중첩과 선택이 반복되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일지도 모른다.

스핀과 페르미온의 양자적 성질을 통해
우리는
창조론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창조와 진화를 서로 적대적인 개념으로 오해해 왔다.
하나는 믿음의 영역으로,
다른 하나는 과학의 영역으로 밀어 넣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스핀과 불확정성,
그리고 겹칠 수 없는 존재들의 질서를 따라가다 보면
이 오래된 오해는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한다.




《다음 화에 계속....》

이전 05화스핀이라는 이상한 회전: 불확정성의 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