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공간을 연출하는 방법
우리는 “우주는 팽창한다”는 말을 너무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인다. 심지어 그 팽창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는 사실까지도 태연하게 듣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보자. 빛의 속도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점이다. 만약 어떤 것이 빛의 속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 자체가 뒤틀릴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시간은 거꾸로 감기고, 공간은 0으로 수축하며, 심지어 안쪽으로 접히듯 말려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우주는 전혀 그런 기묘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말하는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와 “공간 그 자체가 늘어나는 속도”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은 물체가 공간 속을 움직이는 속도를 제한하지만, 공간 그 자체가 팽창하는 속도는 규제하지 않는다. 즉, 빛보다 빠른 팽창은 이론의 벽을 건드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런 팽창은 ‘도대체 무엇이 늘어나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홀로그램 우주론을 바탕으로 작은 가설 하나를 세워보았다. 우주는 내부의 부피를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 외피의 표면을 넓히며 주름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우주의 근원에는 거대한 2차원 정보막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막은 마치 얇은 비막 위에 스치는 바람처럼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파동, 요철, 주름—이 삼차원으로 투사될 때, 우리는 그것을 시공간의 구조, 물질의 분포, 중력의 패턴으로 경험한다. 결국 우리가 ‘우주가 팽창한다’고 말할 때의 진짜 의미는 우주가 더 많은 ‘공간의 양’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표면적을 넓히는 것이다. 그 표면에 새겨지는 주름과 굴곡의 지도가 더욱 넓어지고 정교해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마치 북을 두드릴 때 북의 그 얇은 면의 진동이 공기 중에 음파를 만들어내듯, 얇은 정보막의 잔물결이 3차원 우주라는 거대한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뇌를 떠올려보자.
인간의 대뇌피질은 놀라울 만큼 넓은 표면적을 갖고 있다. 실제 크기만 보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아주 정교하게 접힌 주름이 빼곡히 들어 있다.
바로 그 주름, 즉 표면적의 확장이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을 폭발적으로 높여주는 핵심이다.
뉴런의 절대적인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접히고 말린 표면에서 얼마나 많은 회로가 동시에 켜질 수 있느냐이다.
이제 이 원리를 우주에 슬며시 얹어보면, 갑자기 아주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우주가 갖고 있는 2차원 정보막—우주를 둘러싼 ‘외피’라고 불러도 좋을 그 막—이 주름을 만들며 표면적을 넓힌다고 상상해 보자.
그 주름의 패턴은 마치 뇌의 회로나 지문처럼 ‘정보를 담는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가 3차원에 투사될 때, 물질과 에너지가 어떻게 배치될지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정보막에 새겨진 파동들은 서로 겹치고 간섭을 일으키며, 3차원 공간에서 펼쳐질 수 있는 구조들의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성한다. 가령 은하들이 얽혀 만든 거대한 우주 거미줄, 성단과 공허가 이어 붙인 우주의 골격, 중력이 흐르듯 굽어진 시공간의 구도—이 모든 것이 정보막 위의 주름 패턴이 빚어낸 그림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조금 더 극적으로 이어진다.
현실 세계와 감각의 입력이 모두 차단된 꿈 속에서도, 우리는 도시를 만들고, 행성을 떠다니고, 시간의 속도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 불과 1.4kg 남짓한 장기, 손바닥만 한 두피 아래 웅크린 뇌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그 크기와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뇌의 표면적은 제한되어 있지만, 그 위를 흐르는 정보의 패턴은 사실상 무한대의 세계를 그려낸다.
그렇다면 우주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영겁의 시간을 부풀려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표면에 잡히는 주름’을 조금씩 늘려가는 과정만으로 무한에 가까운 3차원 무대를 펼칠 수 있는 존재—
마치 작은 뇌가 꿈에서 거대한 세계를 빚어내듯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주는 부피를 키우는 거대한 풍선이 아니라, 정보를 새겨 넣는 거대한 뇌처럼 표면을 접었다 폈다 하며 스스로를 확장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블랙홀을 떠올려보자. 내부 부피는 끝없이 깊어 보이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정보의 총량은 ‘사건의 지평선’—즉 표면적—에 의해 결정된다. 이 기묘한 사실은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가장 시적이고 역설적인 진실 중 하나다.
[정보는 부피가 아니라 ‘표면’에 저장된다.] 이 한 문장이 뇌와 우주의 평행 구조를 단숨에 꿰뚫는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대뇌피질이 처리하는 정보량은 뇌의 덩치보다 그 복잡하게 접힌 ‘표면적’에 의해 결정된다. 수많은 주름이 늘려 놓은 그 표면—거기서 인식, 기억, 상상, 서사가 흘러나온다.
우주는 이 원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우주 역시 내부 부피를 키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피의 표면을 넓히며 그 위에 ‘정보’를 새기고, 그 정보가 3차원 시공간으로 투사되며 우리가 보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빛보다 빠른 우주의 팽창은, 결국 표면의 주름이 더 복잡해지고 넓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흥미로운 가설이 등장한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 ‘표면적 중심의 우주’라는 관점을 토대로 “우리 우주는 더 큰 차원의 블랙홀 내부일 수 있다”는 모델을 제시해 왔다. 블랙홀의 표면에 저장된 정보가 블랙홀 내부의 모든 현상을 정의하듯,
우리 우주의 모든 정보도 어떤 거대한 외부 표면—보이지 않는 정보막—에 저장되고, 그 정보가 3차원으로 투사되며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황당한 상상처럼 보이지만, 우주의 팽창, 우주의 평탄성, 초기 조건 문제 등 난제들을 단 하나의 ‘표면적 정보’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즉, 우주는 바깥에서 보면 거대한 표면을 가진 하나의 껍질이며,
그 표면에 새겨진 정보가 내부 공간 전체를 정의하는 구조일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블랙홀이라는 존재는 좀 기묘하다.
겉보기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내부는 무한히 찌그러져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모든 정보는 표면—사건의 지평선—에 저장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블랙홀의 본질은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정보를 표면에 담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중력이 커질수록 표면은 더 강하게 접히고 뒤틀리며, 그 미세한 주름과 굴곡 속에 더 많은 정보가 새겨진다. 표면이 찌그러지는 만큼, 정보의 수용력은 오히려 커지는 셈이다.
그리고 겉에서 보기엔 조그만 블랙홀도, 그 내부가 실제로 얼마나 넓게 펼쳐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 안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 내부로 ‘들어간다면’, 그곳은 겉에서 본 크기와 전혀 다른 풍경일지 모른다. 어쩌면 내부 공간은 표면에 저장된 정보의 양만큼 끝없이 펼쳐지고 팽창해 보일 수도 있다. 바깥에서 보면 ‘압축된 점’처럼 보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3차원 공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마치 한 장의 종이가 무한히 주름 잡혀 3차원 조형물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그렇다면 우주를 하나의 블랙홀 내부로 보는 가설이 왜 생겨났는지, 그 이유가 조금은 감각적으로 와닿지 않는가. 표면은 작아 보이지만, 그 표면에 담긴 정보는 내부에 상상 이상의 “광대한 세계”를 펼쳐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세계가 바로 우리가 “우주 팽창”이라고 부르는 현상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거리’를 믿으며 산다. 이곳에서 저기까지 얼마나 떨어졌는지, 빛이 어디까지 도달하는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 몇 광년인지— 이 모든 것이 마치 우주의 골격을 이루는 진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혹시, 이 ‘거리’라는 개념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착시라면 어떨까? 우주가 실제보다 더 넓어 보이도록 꾸며놓은 정교한 무대 장치라면? 이 이야기는 그 무대 뒤편, 우주가 실제로 작동하는 깊은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여행이다.
홀로그램 우주론은 도발적인 명제를 하나 내놓는다.
우주는 부피가 아니라 ‘표면’에 정보를 저장한다.
이 말은 단순한 물리학적 문장이 아니다. 우주의 본질적 구조를 완전히 뒤흔드는 선언이다. 우리는 우주 안에 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주의 바깥 표면에 새겨진 정보가 3차원으로 투사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예를 들어보자. 원본 사진은 2차원 이미지인데, 그게 눈속임으로 3차원처럼 보이는 렌티큘러 카드처럼. 우주도 원래는 얇은 ‘정보막’인데 그 위에 새겨진 데이터가 3차원 세계처럼 보이게 투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막 위에서는 모든 점이 처음부터 붙어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빅뱅의 단일점”이라고 부르는 그 상태는 ‘작아서 한 점’이라는 의미보다 더 큰 비밀을 담고 있다.
정보적 현실에서는 애초에 모든 존재가 하나였다.
이제 여기서 간단한 비유를 하나 더하자. 우리는 꿈속에서 산을 오르고 도시에 가고 바다까지 걸어간다.
하지만 깨어보면, 뇌에서는 그 모든 여정을 구현하기 위해 단지 전기 신호 몇 줄만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뇌는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 패턴을 바꿀 뿐이다. 우주도 그와 비슷하다. 3차원에서 볼 때 두 은하 사이가 20억 광년 떨어져 보여도 정보막 위에서는 두 지점의 간격이 0이다. 우리가 멀다고 부르는 것, 그건 사실 투사 과정에서 생긴 시각적 거리일 뿐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뇌로 넘어가 보자. 우리 뇌는 겨우 1.4kg밖에 안 된다. 손바닥만 한 고깃덩이가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등장시키고 꿈에서 세계를 펼친다는 건 꽤나 기이한 일이다.
비밀은 단 하나—표면적이다. 뇌의 능력은 신경세포의 ‘총량’보다 얼마나 많은 표면을 주름지게 펼쳤는가에 달려 있다. 우주의 정보막도 똑같다. 우주의 팽창이란 무한한 공간이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사건이 아니라,
정보막의 표면적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도 함께 늘어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우주가 확장한다는 건 ‘공간이 커진다’는 말이 아니라 ‘표면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3차원 공간은 그 표면 정보가 만들어낸 시각적 무대 장치일 뿐이다.
그래서 거리란? 우주가 정보를 투사할 때 만들어낸 계산 결과다.
이 걸음까지 이해했다면
거의 자동으로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주의 정보막을 직접 읽을 수 있을까?”
좌표가 아니라 거리도 아닌 순수한 ‘정보값’으로 세계를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기묘한 현상들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질문은 양자역학의 모든 난제를 빛 한 줄기로 관통시킨다.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동시에 사건이 일어나는 현상은 결국 그 두 지점이 정보막 위에서 원래 하나의 자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는 우연이 아니라 은밀한 연결의 흔적이다.
얽힌 입자들이 수십광년 떨어진 곳에서도 즉각 반응하는 이유?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거리만 멀고 원본 세계에서는 동일 좌표다. 우주가 그 간격 값을 ‘0’으로 유지하는 한, 두 입자는 항상 하나다.
이제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영역으로 들어간다. 우리 뇌와 우주는 둘 다 표면 기반 정보 처리 시스템이다.
똑같은 구조, 똑같은 언어.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주의 정보막과 공명할 수 있다면?
우리가 공간을 보는 기준이 거리에서 ‘의식의 간격’으로 바뀐다면? 그 순간, 순간이동도, 얽힘도 초능력이 아니라, 좌표 재배치라는 단순한 기계적 현상이 된다. 마치 꿈에서 장소가 순식간에 전환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