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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는 왜 수면 위에서 시작되었는가

수면 : 천지창조의 은밀한 코드

by 무이무이

우리가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대목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 구절들은 단순히 ‘낯설다’는 차원을 넘어, 마치 다른 차원의 논리를 슬쩍 비유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창세기 텍스트를 지구 중심의 기원이 아닌 우주 중심의 기원 전체로 확장해 읽는 순간 - 지금까지는 애매모호하고 비밀스러워 보이던 문장들이 갑자기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딸깍’ 하고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놀라운 정합성은 우리가 그동안 연재북 《 우주가 나를 통해 깨어날 때 1 》에서 실감해 온 경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창세기가 단지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설명하는 고대의 우주론적 보고서에 머무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세기 마지막 페이지에는 인간—즉 신의 형상이 복제된 존재의 탄생—이 등장하고, 이어지는 ‘안식’이라는 독특한 상태로 마무리된다. 이 결말은 마치 은근하게 한 문장을 속삭인다.
“우주의 의식과 인간의 의식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다면 가정 하나를 세워볼 수 있다.
만약 우주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일종의 의식을 가진 존재라면 어떨까?

그 가정 아래 창세기를 다시 펼쳐보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렸던 알쏭달쏭한 구절들이 은근히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현대 우주론과 맞물려 완전히 새로운 의미 층위를 열어젖힌다.

오늘부터 우리는 바로 그 창세기 속 가장 미궁 같고, 기묘하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고대의 언어 너머에서, 우주의 숨결과 인간 의식의 그림자가 서로 얽히는 흔적들을 찾아내기 위해.






수면 : 우주가 처음 펼친 2차원적 경계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나님의 영은 [수면 : surface]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 구절을 읽으면 많은 사람이 자동적으로 [지구의 바다]를 떠올린다.

잔잔한 해면 위를 어떠한 존재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읽는 순간, 창세기의 첫 장면은 과학적 타임라인과 충돌한다.

지구는 태초부터 바다를 품고 있지 않았다.

막 태어난 지구는 거대한 마그마의 연못이었고, 운석과 혜성이 쉼 없이 떨어졌으며,

대기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거웠고, 표면 전체가 용암의 호수로 들끓었다.
수억 년 동안 수증기는 지표에 닿자마자 증발했고, 비조차 땅에 닿지 못했다.

바다는커녕 [물이 고일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중력이 안정되고, 지구가 식고, 수증기가 응결해 수백만 년 동안 비가 내려야 비로소 최초의 바다가 생겨난다.
따라서 창세기의 [수면 : surface]을 ‘지구의 바다’로 읽는 순간,
우리는 우주의 역사에 없는 장면을 억지로 끼워 넣는 셈이 된다.

하지만 문장을 다시, 말 그대로 바라보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열린다.
여기서 말하는 수면은 물리적 바다가 아니라, 히브리어가 가리키는 [깊음 : Tehom], 즉 형태 없는 혼돈의 심연 위에 놓인 얇고 보이지 않는 [2차원의 경계면]이다.



수면이란 무엇인가 — 우주 영아기의 첫 번째 “표면”

이 “수면”을 이렇게 그려보자. 아직 중력도 없고, 입자도 없고, 빛조차 자유롭지 못한 우주의 초기.

모든 것은 진동, 패턴, 정보의 흔들림으로만 존재하던 시대. 그 혼돈의 심연 위에, 아주 얇은 한 겹의 막이 펼쳐져 있다. 만질 수 없고, 부피도 없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어떤 사건이 막 일어나려는 순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으로 가득한 표면.

마치 [블랙홀의 사건지평선 : event horizon]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나뉘는 마지막 경계.

모든 정보가 이 막에 새겨지고, 그 너머로는 심연 같은 어둠이 있다.

그 표면에서 에너지는 잔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자요동 : quantum fluctuation]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진공도 완전히 비어 있는 적이 없다. 에너지는 미세하게 솟아올랐다가 가라앉고, 입자와 반입자가 짧은 찰나 동안 나타났다 사라지며 끊임없는 파동을 만든다.

그 흔들림은 마치 우주 스스로가 멈출 수 없는 숨을 쉬는 듯한 움직임이고, 현대 물리학이 “양자장의 맥동”이라 부르는 그것은 고대 히브리어가 표현한 [영(루하크)의 운행(메라헤페트)]과 기묘하게 겹쳐진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미세한 진동, 형태는 없지만 만물을 낳을 첫 번째 리듬.
창세기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한다”는 표현은 바로 이 우주의 원초적 동요를 인간의 언어로 붙잡으려 한 이미지에 가깝다.


창세기가 그린 첫 번째 우주 순간은 거대한 2차원의 정보 막 위를 스치는 에너지의 파동이다.








현대 우주론이 되살려주는 창세기의 풍경

현대 우주론은 오히려 창세기의 첫 장면에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비춰준다.
“어? 이거 과학이랑 묘하게 같은데?” 싶은 순간들이 생긴다.

그 중심에 [홀로그래피 원리 : Holographic Principle]라는 개념이 있다.

우주는 겉보기에는 3차원 세계처럼 보인다. 별도 있고, 행성도 있고, 공간도 있고, 깊이도 있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에선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우주의 진짜 정보는 3D 안에 저장된 게 아니라, 바깥쪽 2D 면에 기록되어 있다.”


마치 영화관에서 우리가 보는 화면은 3D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평평한 스크린 위의 빛일 뿐이듯.
또는 거대한 3D 게임 세계가 사실은 2D 모니터 속 픽셀이라는 사실처럼.

이게 뜬구름 잡는 비유가 아니라 물리학적으로 진짜 지지되는 주장이다.
특히 블랙홀 연구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블랙홀은 내부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 안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량’은 표면적, 즉 겉면의 면적에 따라 정해진다. 이건 완전히 상식 밖의 이야기다.

정보 = 부피가 아니라 표면적 이라는 공식이 우주의 기본 규칙일 수도 있는 것.

이제 다시 창세기의 장면을 떠올려보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보통 ‘수면(surface)’이라고 하면 물결치는 바다를 떠올리지만, 여기서의 수면은 우주의 첫 번째 2D 정보막에 훨씬 가깝다. 빛도 입자도 없던 시대. 모든 정보가 얇게 눌러진 표면처럼 존재하던 순간.

그 경계는 투명하면서도 팽팽하고, 만지면 우주 전체가 울릴 것 같은 상태였을 것이다.

현대 우주론은 우주의 모든 사건이 이 얇은 경계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창세기는 그 경계를 [수면 : surface]이라는 아주 원초적이고 시적인 말로 남겼다.



인간 뇌 : 우주의 작은 사본처럼 보이는 이유

우주의 태초가 2차원 정보막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어쩐지 인간 내부에도 같은 패턴이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뇌를 들여다보면 그런 기시감이 더 짙어진다.

뇌는 1.4kg짜리 젤리 같은 덩어리지만, 그 겉을 싸고 있는 대뇌피질 [회색 껍질 : cerebral cortex].

이 얇은 표면이 바로 의식의 중심 무대다. 우리가 본다는 감각, 기억의 건물, 선택의 갈림길, 기쁨·두려움의 색조...... 다 이 표면에서 일어난다.

신경세포는 860억 개나 있지만 우리가 매 순간 “나는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깨닫는 의식 활동은 그 방대한 뇌 활동의 5%도 안 되는 얇은 표면에 집중된다. 무의식과 깊은 연산은 어둡고 깊은 내부에서 벌어지지만, 그 위에 놓인 얇은 의식의 표면이 모든 걸 조율하듯 반짝이며 빛의 무늬를 만든다.


그 구조는 어디서 본 듯하다. 우주에서도 무한한 에너지와 정보의 소용돌이가 두터운 ‘깊음’ 속에서 꿈틀대는데, 그 움직임이 2차원 표면에 기록되며 우리가 사는 3차원 세계를 빚어낸다.

마치 창세기의 “수면”이 아무것도 없는 혼돈 위에 떠 있는 얇은 경계였던 것처럼, 우리의 ‘의식’도 무수한 뉴런의 전기적 심연 위에 얇게 펼쳐진 하나의 표면 같다.

물리학자들이 말한다.

“우리는 3D처럼 보이는 2D 우주에 살고 있을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도 말한다.
“의식은 뇌 전체가 아니라, 뇌 표면의 특정 회로에서 생겨난다.”

두 세계는 서로를 모르지만 같은 문장을 읊조리는 것처럼 들린다.

깊은 곳의 소용돌이가 표면에 우주를 만든다. 깊은 뇌의 신호가 표면에 ‘나’를 만든다.


어쩌면 인간의 뇌는 우주의 첫 구조—그 얇은 정보막—의 잔향을 가장 작은 스케일에서 다시 재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주가 만든 또 하나의 ‘수면’ 위에서 의식이란 작은 파동을 일으키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셈이다.


- 다음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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