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뇌를 깨우는 법 9 지독한 따라쟁이들》

인생에서 우리는 늘 “인디아”를 향해 떠난다.

by 무이무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지독한 따라쟁이들


“창조란 무엇인가?”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별거 없다.
없는 걸 ‘뚝딱’ 만드는 건 신의 영역이고 도깨비의 영역이다. 인간은 그저 이미 있는 것들을 보고, 베끼고, 섞고, 살짝 비틀어서 새로운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능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천재를 이야기할 때 늘 이렇게 말한다.

“와, 저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냈어!”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완전히 새로운 것’의 뿌리는 대부분 지독한 모방에서 시작된다.

심지어 성경에서도 여섯째 날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


즉, 신조차도 ‘모방’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작 자체가 모방이었는데, 창조가 모방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을 리가 없다.



1. 지독한 따라쟁이의 탄생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 처음부터 스스로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는 아기는 없다.

옆에서 수없이 들려주는 단어를 흉내 내며 따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기만의 억양으로 “엄마”를 부르게 된다. 처음에는 서툴지만, 그 서툴음이 쌓이며 결국 자기만의 목소리가 된다.


창작도 똑같다.

글을 쓰고 싶다면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그대로 베껴 쓰면서 시작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명작을 지독하게 따라 그리는 것밖에 답이 없다. 피카소 역시 처음에는 렘브란트나 고야 같은 거장들의 화풍을 똑같이 따라 했다.

그는 매일같이 남의 그림을 베끼면서 선, 명암, 색채를 자신의 몸에 새기듯 훈련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끝없는 모방의 끝에서 ‘입체파’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피카소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결국 모방은 예술가가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그 지독함의 끝에서만 비로소 창조가 탄생한다.



2. 콜럼버스의 대실수, 그리고 위대한 발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자.

1492년, 한 뱃사람이 미지의 바다로 떠났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발견’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출발은 놀라울 정도로 소박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인도로 가서 후추를 실어오는 것이었다.
후추가 그 당시엔 지금의 명품 가방보다도 귀했다.
원래 루트로 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길목마다 원주민과 경쟁자의 공격을 받을 위험도 컸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생각했다.


“앞으로 가기 힘들면… 뒤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지금으로 치면 고속도로가 막히니까 내비게이션도 없이 골목길로 질러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단순하게 계산했다.
지구가 둥글다면 서쪽으로 쭉 가면 결국 인도의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인도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땅, 오늘날의 아메리카였다.


“아니… 여기가 왜 인도가 아니야?”


그의 속마음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콜럼버스는 선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여긴 인도야. 무조건 그렇게 믿어.”


그리고 스페인에 돌아와서도 “다녀왔습니다! 인도에!”라고 소문내고 다녔다.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끝까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그가 죽은 뒤에야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나서서 선언했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대륙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대륙에 그의 이름을 붙여 아메리카라고 부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콜럼버스의 위대한 발견은 사실 길눈 밝은 한 따라쟁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그의 실수가 오히려 인류의 지도를 새로 그려 버린 것이다.



3. 에디슨, 전구를 ‘발명’하다?


발명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발명가들의 이야기 역시 모방의 반복이다.

예를 들어, 에디슨을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디슨을 전구의 발명가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 전구 자체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에디슨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전구를 무식하게 따라 해 본 것이다.
수천 번의 실패를 반복하고, 수천 가지의 소재를 실험했다.
그 과정은 너무 지루하고 허무해서, 옆에서 보던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에디슨,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할 거야?”


에디슨은 씩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실패한 적이 없네.
단지 전구가 안 만들어지는 방법을 수천 가지나 찾아냈을 뿐이야.”


결국 그는 가장 밝고 오래가는 전구를 완성했다.
다만, 그가 진짜 발명한 것은 전구가 아니라 ‘에디슨이라는 브랜드’였다.
즉, 그도 결국 지독한 따라쟁이였던 셈이다.



4. 따라쟁이의 끝은 창조다


뉴턴은 선배 과학자들의 연구를 발판 삼아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뉴턴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뉴턴의 심성을 엿볼 수 있는 겸손의 표현이면서도, 지식과 창조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뉴턴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내세우지 않았다. 그가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 빛의 성질 등은 그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 시대 수많은 학자와 사상가들이 쌓아 올린 성과 위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의미이다.

즉, 그는 스스로 처음부터 모든 걸 만들어낸 창조자가 아니라, 기존의 생각을 철저히 ‘모방하고 확장’한 자라고 고백한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야 더 멀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듯, 이전 세대가 다져놓은 발판 덕분에 그는 더 큰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늘 “인디아”를 향해 떠난다."


그것이 직업일 수도, 사랑일 수도, 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면,
그곳은 우리가 기대했던 인디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아메리카일 때가 많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콜럼버스처럼 끝까지 우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지구는 생각보다 커서 인디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대륙이 오히려 우리의 진짜 발견이 될 수 있다.

모방하며 헤매던 그 발걸음이 결국 창조의 발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그저 남을 따라 하는 것처럼 보여서 초라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모방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와, 그 사람은 천재야!”

그때 속으로 이렇게 웃으며 말하자.

“응, 사실은 그냥… 지독하게 따라 했을 뿐이야.”

결국 세상은 지독한 따라쟁이들의 땀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 땀방울들이 모여, 우리가 ‘창조’라고 부르는 세상을 만들어 간다.


모방은 단순히 따라 하는 행위가 아니라, 축적된 지혜와 시도를 학습하는 과정이다.
뉴턴이 갈릴레이, 케플러, 코페르니쿠스의 연구를 철저히 파고들지 않았다면,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도 그저 ‘운이 나쁘다’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모방을 무식하게, 집요하게, 그리고 끝까지 해내면 그 끝에서 창조가 탄생한다.
음악으로 치면,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악보를 수십 번 베껴 쓰며 연구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만의 교향곡을 쓴 것과 같다.
기업으로 치면,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연구소에서 마우스와 GUI를 보고는 그 아이디어를 모방해 매킨토시를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사람들은 "도둑질"이라고 비난했지만, 지금 우리는 그것을 ‘혁신’이라고 부른다.




지독한 따라쟁이들이 세상을 바꾼다


창조자가 되고 싶다면,

처음엔 철저히 따라 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그저 흉내만 낸다’고 자책하는 그 순간이,
미래의 자신을 위대한 창조자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그러니 지독한 따라쟁이가 되길 두려워하지 말자.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사실 어설픈 흉내에서 시작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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