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성공에 대한 진부하지만 진보한 생각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믿음을 팔아 노동을 착취하던 시대적 슬로건은 힘을 잃었다. “열심히 일” 하는 것과 “부자”의 약한 상관관계를 깨달아 버려서일까, 잘 모르겠고 그냥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차라리 덜 일하고 덜 부자가 되는 방향을 선택했다.
트렌드에 맞춰가기 위해 나도 덜 일하고 나의 시간을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PT를 받게 됐다. 이전에도 운동은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필라테스, 춤 학원 그리고 유산소운동. 그래도, 비루한 몸 덩이에 힘을 주지 않고 하는 운동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에는 부족했다. 누군가의 시간을 빌리는 비용은 생각보다 비쌌다. 의지가 지갑을 앞서가 60회를 일시불로 결제했다. 그렇게, 60회의 개인수업을 지나, 피트니스는 취미에서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2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365일 중 330일을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날이 2일 이상 지속되면 괴로움을 느끼는 심리적 병적 증상까지 얻게 되었다.
모델 한혜진은 다이어트를 자극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 벗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본인 몸에 만족하세요? 근데, 바꿀 수 있잖아요. 세상에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는데 근데 몸은 바꿀 수 있더라고요. “
그렇다고 내가 근육맨이 되었는가? 음, 글쎄. 2년이 지난 나의 몸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해서 헬스장을 옮겨보았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진작에 옮길 걸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욕심이 생겼고, 인터넷으로 갖가지 자세들을 찾아보고 따라 했다. 그러다, 결국 무리를 해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 강박으로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바뀐 헬스장에서 4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또 다른 변화를 시작했다. 유산소가 부족한 것 같아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고, 유산소 기구의 끝판왕이라는 아크트레이너(*1시간에 800Kcal을 태운다)와 함께 이제는 바뀐 방법으로 운동했다. 2월 이후 멀리했던 인바디를 다시 측정해 보고 싶었다. 눈바디는 변화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지난 2월 이후 측정하지 않았던 인바디를 측정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나.
결과는 “변. 함. 없. 음”.
왜 나는 배신당한 건가. 하루 종일 화가 나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6개월간 평균 주 6회 운동에 유산소가 부족해서 시작한 수영, 수많은 닭가슴살들은 어디로 간 것이며 내 시간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당황과 황당을 둘 다 마주했을 때는 도무지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행지에서도 헬스장을 찾아갔다. 슬픔의 5단계(*부정, 분노, 타협, 우울 및 수용)를 여러 번 오가는 하루를 보냈다.
학창 시절에 이런 친구들은 이해가 안 갔다. 누구보다 오랜 시간 공부하는데 성적은 그저 그런 친구. 그들은 잘못된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왜 모르는 거지? 과거의 나의 냉소적인 태도에 반성한다. 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 내년엔 생활스포츠 지도 사 자격증을 따려고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바디를 측정한 날, 서점에 가서 해부학 책을 샀다. 다시 찾아야지, 배에 왕자 정도는 만들어봐야지. 이렇게 끝낼 수는 없지.
유튜브를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체부터, 처음 등장한 레그 프레스 (*기구에 ㄴ자로 누워 사선으로 기울어진 발판을 밀어내는 운동)부터 다시 시작했다. 영상을 찾아보고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상체에 무리하게 힘을 줄 필요가 없다(*김명섭의 헬스클럽을 참고하였습니다). 잘못된 자세의 예로 내 자세가 나왔다. 하체에 힘을 줘야 하는 상태에서 상체가 너무 긴장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허리 부상 이후에 힘이 빠질까 봐, 무리하게 상체에 힘을 주고 했다. 틀린 동작이었다.
매년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이유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계획이라도 세우라는 뜻이겠지. 3월 6월 9월 12월 모의고사를 보는 이유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잘못된 방법이면 방법을 바꾸라는 뜻이겠지. 나는 절기를 나누듯 목표를 나누지 않고, 측정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고 내 방법이 맞는다고 믿었다. 그대로만 밀어붙였다. 겸손하지 못하고 아는척하면서 배우려 하지 않았다. 오만하게 타인에게 이렇다 저렇다 운동 훈수를 두었다. 내가 얼마나 알고 있다고…
운동에 대해 찾아볼수록 힘을 주는 부위만큼 힘을 빼야 하는 부위도 많이 나온다. 힘이 들어가야 하는 자극점을 정확히 알고, 그 이외에 부분에는 무리하게 힘을 줄 필요는 없다. 나는 힘을 주는데 집중하여 운동을 하고 있었다. 힘을 주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한다.
수영을 할 때도 이런 지적을 많이 받았다.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고 긴장을 풀라고. 물이 무섭지 않고 편안한 날에는 수영이 너무 잘 됐다. 빠르게 앞으로 가려는 생각이 앞선 날에는 허우적 되고 비효율적인 동작이 많아졌다. 수영을 잘하는 회사 동료는 이런 말을 했다. “수영은 2년 정도 해야 해. 영법이야 금방 익히지만, 물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그래서 2년 정도는 해야지”
배신당한 노력에 대해 말하려다, 힘 빼기의 미학까지 와버렸다. 어쩌면 노력이라는 시간은 일차함수로 비례해서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 처음에 들어가는 시간들은 아주 더디게 힘을 빼는데 익숙 익숙해지는 들어가는 것 같다. 직장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이제 다 안다고, 내가 뭘 하는지 알 거 같다고 생각하는데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인생은 그렇게 더디게 흘러가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견디고 나서야 필요한 곳에 힘을 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노력과 관련된 두 개의 슬로건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슬로건은 보내주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은 조금 더 품어보려 한다. 오늘은 유튜브로 따라 한 새로운 방법으로 운동을 해 다리에 무척이나 근육통이 느껴진다. 나쁜 근육통이 아니라, 더 좋아질 내 모습이 기대되는 근육통이다. 이런 힘 빼기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 나의 2년 4개월은 배신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