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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yGoes Mar 09. 2017

'행복'이란 - 따뜻한 메로나

속닥속닥


 얼마전 내 자신도 잘 모르고 있던 습관을 알게 되었다. 그 습관은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일이다. 단순히 메로나가 입에 맞아서 자주 사먹는 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술자리에서 저학번 학우들이 한다는 ‘올 때 메로나!’ 때문도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그 이유를 깨닫게 된건 작년 2학기 였다. 프로젝트 위주로 하는 동아리 활동, 21학점, 봉사활동까지 주중의 스케쥴은 정말 잘나가는 연예인에 버금간다는 생각이 들곤 할 정도로 빡빡했고 힘이 들었지만 무던히 견디면서 하고 있었고 잘 해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밤 늦은 시간에 기숙사 통금을 맞춰 들어오기 위해 서둘러 도서관에서 과제와 동아리 관련 과제 또한 마무리를 짓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우리학교 기숙사의 언덕은 왜 이렇게 언덕이 가파른지 불만을 속으로 되뇌며 올라온 몹시도 추운 날이였지만 편의점에서 달달한 메로나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은 2학기의 마무리가 다가오는 기말고사 기간의 직전이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중간고사 즈음에도 분명 같은 생각을 무심코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메로나를 사서 나와 한입 물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어릴적 추억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명절에 할아버지댁을 가면 어린 손자가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할만한 것을 해주시고 싶은 마음이셨는지 부모님이 왠만해서 잘사주지 않는 군것질거리들을 사주셨다. 그때면 항상 ‘메로나’는 빼놓지 않고 사주셨다. 그때 빼놓지 않고 하셨던 그 말씀이 아직도 생생히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우유가 들어간 하드’를 먹으라며..  매번 명절에 뵈러갈 때면 항상 그렇게 사주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철없이 명절 중에 그 순간이 가장 좋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 구멍가게에 가는 일은 관례와 같은 일이 되었다. 그저 ‘하드’는 옛날 말이고 이제 쓰지 않는 말이라 생각했던 ‘하드’가 국어사전에 올라가 있다라는 것과 그 배경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커졌을 때는 그 목소리를 들을 방법은 이 세상에는 없었다.  한밤중에 불현듯 그 추억을 떠올리면서 담배도 태우지 않는데 흡연장 의자에 앉아 추운줄도 모르고 오래동안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뒤에 되돌이켜보니 군대에 있을 때도 우리부대 PX에 팔지도 않는 메로나를 찾아서 운이 좋게 다른 부대 PX를 방문하게 되면 찾았고 역시 다른 부대에도 없었지만 갈때마다 찾았고 휴가를 나오면 나도 모르게 ‘우유가 들어간 그 하드’를 찾았다. 브라질에서는 메로나가 인기라서 빙그레의 대표 수출 효자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메로나는 인기를 끌만한 맛보다는 그 추운 겨울에도 그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추억이 희미해져 있혀졌었지만 내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종합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이런 스토리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행복했다’고 느꼈던 순간을 묘사하려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내용을 듣거나 읽었을 때 공감을 할 수 있을지, 이 이야기가 행복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지는 의문이 든다. 행복을 정의하려고 보니 행복에 대한 명쾌한 정의가 어려워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을 한 것인지 자기 반성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행복에 대해 정리를 나름대로 하자면 행복이 쾌락일까? 행복은 기분일까? 행복은 타인을 이롭게 할때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행복은 고통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스스로 내린 결론은 적어도 이 4가지 중 어느 것도 행복이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물질적인 풍요가 과연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봤을 때 행복이라는 것이 정신적인 것으로 부터 오는 것이라고 보면 그것은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또 우리의 판단이 이성적, 감성적, 본능적(욕망) 이라는 대체로 3가지로 분류되는 이것들로 인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본다면 내가 어디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성과 감성과 본능의 조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어느 것에도 집착하거나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마음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행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했을 때  ‘메로나’를 사먹을 때면 신체적인 피로에서 오는 본능적인 당을 채워야 겠다는 욕구와 어릴적 추억이 담긴 감성과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해주셨던 어린 나를 향한 배려가 이성을 만족시켜줄 수 있다고 보았다. 


 행복이라는 것이 그릇되게 정의가 된다면 우리가 도달할 수 있고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릴 수도 있게 할 수 있다. 물론 정의를 내려본 ‘행복’의 정의가 정말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숙고를 해야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헌법에서는 행복추구권을 꽤 상위권의 순위인 헌법 제 10조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본적도 대화를 나누어 본적도 배워 본적도 없다. 그저 우리가 지향해야할 가치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법에서 말하는 행복 또한 애매모호한 단어로 사용되고 포괄적인 뉘양스가 진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 권리보다는 소극적 권리에 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인생의 목표인 ‘행복’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우리 스스로가 그 행복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 또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굉장히 단호한 어조로 적어 내려간 것 같아 그 이유를 보충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을 잘못 이해하거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은 아주 거리가 먼, 우리가 현재는 도달할 수 없는 별과 같이 아무런 나와 연관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겠지만 우리가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정리를 해나가다 보면 지금보다는 가까이 보이는 행복이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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