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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니바 Aug 04. 2020

꿈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하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기억의 조각모음


기억의 시작, 슈퍼 그랑죠

나는 어릴 때 기억이 유난히 선명한 편이다.

그런 내 기억의 시작에는 애니메이션 ‘슈퍼 그랑죠’가 있다. 그랑죠를 처음 접한 건 다섯 살 무렵쯤이었는데 그 당시 변신로봇에 푹 빠진 나와 오빠는 매일같이 그랑죠 방영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장면은 단연 주인공과 친구들이 그랑죠, 포세이돈, 피닉스를 소환하는 장면이었다. 마법의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마법진을 그려내는 주인공 소년의 박력 있는 모습, 중독성 있는 배경음악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꼬맹이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그랑죠는 텔레비전 방영뿐 아니라 비디오로도 발매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명절이나 친척모임이 있는 날이면 또래의 친척들과 함께 부모님을 졸라 슈퍼 그랑죠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했고 우리들은 비디오를 여러 번 돌려보며 마법으로 빛나는 그랑죠와 변신 주문인 '도막사라무'를 연신 외쳐댔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무엇인가에 푹 빠져서 좋아했던 기억이다. 그 당시 작은 나의 머릿속에는 그랑죠의 변신 장면과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환상으로 가득했다.


30대라면 슈퍼 그랑죠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92년 당시 슈퍼그랑죠 시청율은 29%에 달했다.[사진출처- 슈퍼그랑죠]


애니메이션의 영향인지 이후 나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로 넘어갔다. 비교적 손재주가 좋은 편이 었던 나는 그림으로 유치원과 학교에서 종종 칭찬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김영만 선생님의 ‘만들어볼까요’를 애청하며 종이컵 인형, 플라스틱 통으로 만드는 어항, 수수깡으로 만든 집 등 각종 만들기를 섭렵해나갔다.


하교 후 집에 돌아와  '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나는 나는 친구를 만들죠~ ‘  만들어 볼까요 오프닝이 들리면 가위와 풀, 색종이 따위의 만들기 재료를 재빨리 들고 와 티비 앞에 앉았다. 나를 코딱지라고 부르는 선생님의 다정한 말투가 좋았고 만들기를 하는 내내 옆에서 칭얼대는 뚝딱이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비록 김영만 선생님만큼 예쁜 작품들은 아니었지만 자신감을 실어주는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무언가를 만들 내는 것에 몰두하는 순간이 마냥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 하늘 같은 선배가 돼버린 뚝딱이가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며 펭수에게 설교하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뚝딱이 우리 때는 그런 이미지 아니었는데 ㅠㅠ)  

몇년 전 오랜만에 만난 예능프로그램 속 김영만 선생님. 다정한 말투는 여전했다. [사진출처 - 신세경 SNS,MBC'마리텔'캡쳐]


꿈의 시작, 그로부터 10년 뒤

사춘기가 한참이던 어느 날, 운명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극장에서 보았다.  당시 극장에는 어린아이부터 젊은 커플, 손주들과 함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그들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어 주인공 센과 하쿠의 행동 하나하나에 함께 울고 웃었다. 운 좋게 꼭대기 좌석에 앉은 나는 스크린에서 시작된 감정의 파도가 관객들을 덮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어린 소녀의 눈에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쏟아지는 사람들의 박수갈채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환상적인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것은 이렇게 멋진 일이구나'

처음으로 꿈과 목표가 생긴 순간이었다.


주먹밥을 입속에 우겨넣으며 서럽게 울어대는 센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역시 집떠나면 개고생이다. [사진출처-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환상을 만들어 내는 일이 하고 싶어 졌다.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평생 나의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했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과제 쓰나미와 취업 지옥을 지나 결국엔 어린 시절에 꿈꾸던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에 입사했다. 꿈을 꾸기 시작한 이래 정확히 10년 뒤였다. 나의 지독한 꿈의 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진심을 담아 축하해주었고 나 역시 꿈꾸던 일을 하면 마냥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행복하지가 않았다.
분명 나는 구름 위를 걷고 있었고 일은 어렵지만 재미와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가슴 한편으로 이름을 유바바에게 빼앗긴 센처럼 내가 사라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투명했던 열정 위로 혼탁함이 덮였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진짜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만 해야 하나'

'이것이 직장인의 한계인가.’

'나다운 선택은 무엇일까.’


각종 혼란과 고민을 떠안고 몇 번의 이직을 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났고 일을 하면서 힘든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네가 꿈꾸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흔들리는 멘탈을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30대에 접어들자 나의 모습은 직장인으로 딱딱하게 굳어갔다. 온전히 나답게 활짝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희미해져 갔다.


그러다 문득 흔들리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슈퍼 그랑죠의 배경음악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랜만에 그랑죠를 다시 찾아보았다. 훌쩍 자라 겁이 많아져버린 나와 달리 빛나는 마법과 함께 화면 속을 누비는 용감한 그랑죠의 모습은 30년이 지났어도 변함이 없었다.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배경음악을 들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때는 과자 한 봉지에 들떴고, 문방구 뽑기를 할 수 있는 동전 하나가 소중했다. 해 질 녘 저녁 먹자며 놀이터의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정겨웠고, 친구들과 얼음 땡 놀이를 하며 땀을 쭉 빼고 나면 저녁에 잠이 솔솔 왔다.


어쩌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나를 온전한 나로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꿈이나 용기, 신념과 같은 대단한 것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작지만 따뜻한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것은 아닐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일본의 콘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년여우’에서 주인공 치요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소녀시절의 첫사랑이었던 남자의 행적을 쫓으나 결국 그 남자와 이뤄지지 못한 체 할머니가 된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인터뷰에서 첫사랑을 만나고 싶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사진출처-천연여우]

그를 못 만나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난..그 사람을 쫓는 내가 좋거든요.


어른이 되고 나니 그녀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꿈을 이루면 비로소 나다운 모습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욕심과 압박으로 이뤄진 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반면 꿈을 좇는 과정에서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던 나는 분명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시간 속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모여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어 낸 것이리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꿈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꿈을 좇는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
 
이제 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한다.

무언가를 이뤄내야 하는 압박감에 더 이상 스스로를 내던지고 싶지 않다. 대신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상 속 행복한 순간들로 이루어진 작은 꿈의 지도를 그려나가고 싶다. 지옥철을 잊게 만들어 주는 내 취향의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맛있는 식사, 솔직한 마음을 담은 지금의 이 글처럼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비밀 창구를 많이 만들어갈 계획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그러다 보면 적어도 몇 십년 뒤 할머니가 되어 지금을 회상했을 때 입가에 작은 미소 정도는 떠오르지 않을까.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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