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으로 얻게 되는 것들
학창 시절 나는 만화책에 심취해있었다.
초등학생 무렵, 클램프의 만화 <카드캡터 체리>를 만화잡지에서 보기 시작한 그쯤부터 만화라는 이 광활하고도 상상력으로 넘치는 세계를 알게 되었고 이후 만화방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인기 만화책들을 정복해나갔다.
그러던 중 만난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슬램덩크>는 내 인생 만화 중 하나였다.
슬램덩크를 읽는 동안 농구 풋내기였던 주인공 강백호가 멋진 농구선수로 거듭나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고 정신 차려보니 "왼손은 거들뿐!"을 외치며 눈물과 함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왼손은 거들뿐" 이 명대사를 모르시는 분들은 슬램덩크 보세요 ^^ 시간 순삭 보장합니다.) 당시 농구와 함께하는 강백호와 친구들의 성장기는 사춘기로 불타오르는 내 열정 어딘가를 마구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야 수많은 명작들로 인해 시대의 만화가로 불리는 이노우에 타케히코지만 슬램덩크를 그려낼 당시에는 아직 초보 만화가였을 그의 그림 발전 속도는 엄청난 것이었는데 그는 1권 때만 해도 다소 촌스러웠던 강백호와 친구들을 마지막권쯤 눈에 띄는 훈남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의 뛰어난 그림실력은 감동적인 스토리와 더불어 만화 속 캐릭터에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슬램덩크의 캐릭터들 중 나는 주인공인 강백호보다 정대만이 좋았다.
정대만은 무릎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두고 방황하다 2년 만에 강백호의 농구팀에 합류하면서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온다. 야심 차게 경기에 출전했지만 2년간 운동을 그만두었던 탓에 그의 체력은 경기 후반이 되자 완전히 바닥나게 되고 곧 쓰러질 듯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 이른다.
모두가 정대만의 상태를 걱정하던 그때,
비로소 정대만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래, 나는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정대만은 심각할 정도로 안색이 창백한 자신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상대편 선수를 향해 이 한마디를 던진 후 거침없이 링을 향해 슛을 날린다. 그리고 3점 슛을 성공시킨다. 지칠 대로 지친 극단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눈물 날 정도로 멋졌고 감동적이었다.
심장에 콕 박힌 정대만의 대사를 읊조리며 나도 정대만처럼 포기를 모르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포기를 잘 아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포기를 잘 알다 못해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불꽃남자 정대만에게 감동받은 1인인 만큼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끝까지 밀어붙였던 경험도 있었다. 그때는 ‘포기’라는 단어가 지닌 부정적인 의미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고 나를 지켜보는 타인에게 ‘포기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웠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어린 시절 그렇게나 멋져 보였던 정대만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포기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내 스스로 찍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포기에 대한 두려움이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도 변하지 않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의 아우성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지독한 혼란은 스스로 내려놓지 않는 이상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생애 처음 오랫동안 끌어왔던 나의 경기를 포기했다.
신기하게도 포기하고 나면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벼워졌다. 마음을 짓눌렀던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으니 몸도 마음도 텅 비어버린 느낌이랄까. 처음 느껴본 포기 이후의 감정은 조금 신기하고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심꾸러기인 나는 이내 비어버린 마음속 공간을 새로운 것들로 가득 채워 넣기 시작했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던 분야에 대한 공부와 함께 미래를 다시 설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비어있던 마음은 순식간에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차올랐다. 점점 생기를 되찾아가는 나를 보며 포기한다는 것, 무엇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싶었다.
물론 포기라는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포기를 하게 되면 오랜 노력 끝에 얻어낸 사회적 지위, 금전적인 보상 등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쉽게 포기해버리면 그 일의 진가를 알지 못하므로 때론 힘든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끈기가 필요하다.
반대로 무언가를 포기할 용기가 필요한 때도 있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주변 상황을 돌아봤을 때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에 승산이 없음을 깨닫았을 때.
심지어 그 길이 내가 원해서 걷고 있는 길이 아닌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길 위를 걷고 있을 때.
내 안의 마음의 소리가 현재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할 때.
포기 이후에 펼쳐질 상황들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책임질 각오가 되어있을 때.
그때는 한 번쯤 포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포기라는 것은 비워냄을 의미하고 온전히 비워내야 그 안을 새로운 것들로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 뜯어보면 포기가 마냥 나쁘지만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는 포기에 인색한 편이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는 사람들, 계속해오던 공부나 시험을 포기하는 사람들, 남들과 같은 길을 걷기를 포기하는 사람들.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은 곱지 않다. 이들을 진짜로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이후는 어떻게 할 건데?'라는 걱정 섞인 불안감을 내비친다.
앞서 말했듯 대책 없는 포기는 위험할 수 있지만 충분한 고민 끝에 결정한 용기 있는 포기는 삶으로의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특히나 젊은 20대, 30대의 경우 계속해서 도전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하며 자신에게 가장 맞는 길을 찾아나갈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포기 = 도전 일지도 모른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인 것처럼 나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선택한 용기 있는 포기는 도전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결국 나는 슬램덩크 속 정대만처럼 포기를 모르는 그런 어른은 되지 못했다. 어쩌면 인내심 없는 어른이 돼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나는 나에게 때로는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멋진 어른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포기를 할 줄 아니까 도전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포기와 도전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 지친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