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롭게 흔들리는 마음을 보았다. 끝이었다.그는 늘상 고통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뼈가 아프다 못해 시린 것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나를 사랑했다. 한동안 그의 뼈는 한참 겨울을 나고 있었으리라.
-도흔 작가님의 1과 4/9 사이의 장-
밖으로 눈이 흩날렸다. 돔 안에서 생성된 수증기가 얼어 흩날리는 날카로운 인공눈이었다. 화성의 대안학교로 이주해 온지 3년. 지구에서의 생활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생활이었다. 지구는 낡았고 화성은 고루했다. 오직 재미있는 것은 나를 보면 온통 흔들리는 선생님의 눈동자였다. 선생님의 잿빛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만 폼페이 최후의 날을 맞은 어린 연인과도 같이 그를 껴안고 영원히 화성의 언덕 아래로 사라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야 마는 것이었다.
맨 처음 화성에 왔을 때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해질녘 노을의 빛깔이었다. 붉은 땅이 푸르게 물드는 시간. 그것은 비애와 우울, 청춘, 첫사랑과 같은 온갖 설익은 단어들의 프리즘이었다. 지구의 새벽을 생각나게도 했고 골반께의 은밀한 멍과도 같이 관능적이기도 했다. 해부학 수업 시간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 화성의 노을과 비슷한 기시감을 느꼈다. 선생님한테서는 은은하지만 확실한 포르말린 냄새가 났는데 어쩌면 그는 만고에 나이를 먹지 않고 내게서 소년과 청년 사이 어디쯤 박제될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왼쪽 눈이 조금 더 작았다. 작은 왼쪽 눈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컸는데 그의 왼쪽 눈 아래에는 작은 눈물점이 있었다. 그는 그 눈물점 때문에 항상 우는 듯 보였다. 그와 억지로라도 눈을 마주치면 그의 동공은 무저갱과도 같은 어둠으로 확장되었고 나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대부분의 모두에게 친절하고 적절히 냉소적이었다. 소년과 어른 사이 어딘가의 미묘한 미소와 나른한 태도가 나를 매료시키고 때때로 좌절과 슬픔으로 내몰았다. 안달이 났다. 그를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돔 밖으로 유배 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타인에게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처음이기에 미숙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나의 엄지 손톱은 늘 엉망이었다. 미성년의 내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메스를 헐겁게 잡고 있다가 내 손을 긋는다거나 터무니없는 질문으로 다른 애들의 비웃음을 산다거나 하는 초라한 광대짓이 전부였다. 지독한 첫사랑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