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

by 올빗ORBIT

본다. 응시한다. 시선을 둔다. 그리고 마침내 읽는다. 언어 이 전에 본다라는 행위가 있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을 초월할 수가 없다. 우리는 4차원에 속해 3차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 그래서 쓴다. 지금을 잃지 않으려면 혹은 잊지 않으려면 써야 한다. 모호하고 각진 언어 속에 시간과 공간과 존재를 녹여야 한다.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처럼 남길 수 없는 무형의 언어로 떠내려가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고 의도하고 의지를 가져야만 이 생을 오롯이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

와인은 원샷하기 아까운 술이다. 한 잔이라도 오랜 시간 코를 박고 향을 맡고 흔들고 입안에 머금으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맛을 발견하게 된다. 생을 쪼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짧고 덧없음이야 누구에게나 같지만 삶을 탐하고 미식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이제 길은 정해졌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 어떤 날보다 어두울 달의 뒤편을 기술하는 일. 태양의 붉은 북극을 상상하는 일. 심해의 마른자리를 찾는 일. 물안개에 농익은 금목서의 향을 풀어내는 일. 일상이 매혹이 되려면 써야 한다. 날카로운 농담을 던져도 좋다. 설익은 고백도 낯익은 치부도.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순간들 비로소 아깝고도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