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by 올빗ORBIT

내가 사는 오래된 아파트의 승강기는 각 층 각 호의 사람들을 실어 나르느라 자주 고장이 난다. 시설이 낡고 늙으면 우리는 ‘노후’라는 단어를 쓴다. 늙은 것의 소리, 노후한 시설이 주는 공간감, 낡은 것의 거친 촉감과 냄새. 무심할 수 있으나 누구도 무관할 수 없는 변화다.


가벼운 안면인식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는 승강기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안부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혹은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신문배달원이나 전단지 알바, 세탁소 사장님에게도 인사를 한다. 아파트 입주민인가 아닌가 가 중요하다기보다 같은 공간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의무감이 있다. 혹여나 내 무심과 사소한 병증이 이웃의 다정한 관심을 해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직업병이라고 생각한다. 특이한 옷차림이나 인사에 화답하는 목소리, 체향, 사람마다 다른 걸음걸이에 집중한다. 그래야만 기억할 수 있다.



오늘은 가을답지 않은 습윤한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704호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중절모에 쓰리피스 양복을 즐겨 입던 멋쟁이 할아버지. 아빠의 스킨 냄새처럼 강렬하던 머스크 향수. 무심한 나도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이웃이 그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오늘의 그는 그 모든 것이 누락되어 있다. 후줄근한 파자마 차림과 습도만큼이나 눅눅한 쇠락의 내음. 태풍전야의 날씨처럼 탁한 회청색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그 눈은 태어난 지 3주도 안된 어린 길고양이의 미숙한 시력과 맞닿아 있다. 약하고 희박하다. 노약자에서 노와 약 모두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데칼코마니처럼 노인과 아이의 유약한 부분은 닮은 데가 있다. 인사에 화답하는 손짓인 줄 알았는데 1층까지 내용물 미상의 비닐봉지를 쥔 그의 손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바스락거리는 강박적 떨림에 관하여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모두는 늙는다는 것에 관하여 비밀로 부친다.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랑의 이동 목욕차라는 것을 확인하고야 마는 그 순간에도. 마주치기 싫은 진실과 대면할 때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여태 늙는다는 것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인 것이다. 죽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늙는다는 사실이다.


오늘 병원 진료가 있어요. 목욕용품을 챙겼는데. 아무것도 안 챙기셔도 돼요. 친절하고 상냥한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을 엿듣는 와중에 주책맞게도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내 벗은 몸을 씻을 수 없는 폭력적인 노화에 관하여 상상하는 지금. 그 오지랖과 무지가 부끄럽다. 수치는 익숙해지면 사라지는 어떤 것일까. 내 뻔뻔함의 임계점은 어느 정도일까.


비척비척 걸어 나와 아파트 입구 유치원으로 향한다. 마주치는 어린 얼굴들은 분별할 수 없지만 하나같이 갓 깎은 잔디의 풋냄새가 어려있다. 산발적이고 활기찬 열기. 작고 어린 아름다움. 타자의 도움 없이 해결되지 않을 혼란들.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하는 순간은 생의 단면이 아니라 대비의 척점을 경험할 때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번뇌는 삶의 콘트라스트가 가장 강한 그때 발병하는 게 아닐까. 704호 할아버지의 쇠락과 유치원 아이들의 얼굴은 동시대의 소소한 충격이다. 후유증이 오늘 밤만큼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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