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by 올빗ORBIT


어젯밤 꿈에 너랑 여행을 갔어. 여행 갈 때마다 집 한 채를 이고 다니는 내가 글쎄 괴나리봇짐 마냥 가벼운 배낭을 달랑 매고 너와 함께 파리에 가 있는 거야. 거긴 여름이었고 우리는 어린 소녀들처럼 신이 나 있었지. 그런데 불어는 하나도 안 들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 동양인이었어. 그땐 나도 내 무의식에 질문이 없었어. 꿈의 세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꿈은 나를 인식해. 그렇게 빠르게 붕괴되는 세계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니? 꿈이 시작되는 지점을 떠올리지 않을 것. 그것이 개연성이라고는 밥 말아먹은 이 이상한 나라의 규칙이야. 깨고 나면 논리라고는 1도 없는 세계.


아무튼 우린 거리를 끝없이 걷고 때문에 무척 더워서 분수대로 뛰어들었지. 내 가방에는 필름 카메라와 디카 이런 것들만 들어있었는데 여벌의 옷은 하나도 없었어. 아무렴 어때. 깔깔대며 햇빛과 물빛을 만끽해. 멀리 유화로 그린 산맥이 펼쳐져 있어. 색감이 너무 강렬해서 타고 있는 것 같은 산에는 붓 자국이 진하지. 남자아이들이 말을 걸어. 너와 나는 유의미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나눈다. 누군가 건네는 납작 복숭아를 베어 물고 너의 뺨과 같은 색의 로제 와인을 마셔. 아마도 나는 많이 웃었던 거 같아.


샤워장에는 온천처럼 물안개가 자욱해. 그건 꿈의 본성일까. 몽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화면에 온통 부어지는 습도는 꿈의 입자처럼 느껴져. 잔꽃무늬 속옷을 입은 금발의 소녀들과 속옷을 챙기지 못해서 젖은 옷을 말리느라 깨벗고 있는 내가 있어. 부끄럽지 않아. 꿈에서는 수치와 죄책감과 울분과 오욕의 자리가 뒤 바뀌어있거나 혹은 과장되기도 해. 뭉크의 그림처럼 괴롭다가도 모네의 시야처럼 흐려지는 느낌이야. 그리고 너는 아직 처녀의 미소를 짓는다. 나에게 너는 항상 고등학교 때의 그 모습으로 남아있나 봐. 혹은 네가 결혼 하기 직전에 함께 방콕으로 훌쩍 떠났던 그 기억이 영혼을 알맞게 그을려 놓았는지도 모르지. 그 시절을 포르말린 병 속에 곱게 담아 꿈에 박제한다.


꿈에서 단 것을 먹고 깨면 입 안에 단 맛이 남아있곤 해. 뇌의 반칙이거나 시스템의 오류. 우리는 오감의 착각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구나. 일장춘몽의 시간들이 나의 밤을 속였지만 어젯밤 꿈은 행복했어. 다시 그런 시간들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을까. 달디 단 꿈이 저 멀리 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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