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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May 15. 2020

Blind test

별의 힘으로 커피를 내린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호박색 액체가 지구의 맨틀을 향해 다이빙한다.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온갖 것의 아로마가 사방을 잠식하고 당신은 잠시 시력을 잃은 사람이 된다. 냄새는 지구에만 있다면서요. 이 모든 향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축복인 거 같아요. 커피 애호가는 오늘의 피실험자가 되기로 한다. 눈이 멀면 다른 감각이 더 발달한다던데. 바리스타는 커피로 모든을 시험하는 사람. 세상에 존재하는 천태만상의 맛을 액체로 조율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커피에서는 그러니까 커피맛만 난다고는 볼 수 없어요.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애호가의 입가에 방금 내린 커피를 내어준다. 각성의 향기를 먼저 음미해 보세요. 자본의 멘트는 참 상냥하기도 하지. 구입한 친절을 당신 입에 털어 넣는다.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검은색의 환각을 일으키고 등급의 세계에서 으스대던 이들이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역시 비싼 원두가 최고 아니겠습니까. 한 번도 커피 열매를 따 보지 않은 손이다. 청사과, 머스캣, 오렌지 필, 구운 커슈넛, 허브. 이국의 맛을 고상하게 읊는다. 토마토 향이 나는 커피를 만난 적이 있어요. 완숙의 맛이었지요. 브런치와 함께 먹고 싶었어요. 이탈리아 남부의 맛이랄까. 햇빛이 내리쬐는 늦여름의 향이랄까. 빛이 들추지 못하는 눈꺼풀 아래 아련한 듯 피실험자는 옛 기억을 소환하고 커피로 축축해진 혀는 과거를 더듬는다. 그때만큼 충격적인 맛은 아니지만 이 커피도 인상적이네요. 커피의 서사는 와인의 구조를 닮은 거 같아요. 포도와 커피콩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를 하니까. 커피 한 잔의 시간만큼 당신은 장님이다. 볼 수 없는 세계에 익술 해질수록 굵직해지는 커피의 골격에 놀라는 얼굴. 보일러의 압력으로 내리는 에스프레소는 뭐랄까 스팀펑크 장르의 느낌일까요. 스피드하고 자극적이에요. 그에 반해 오롯이 중력의 힘으로만 내리는 브루잉 커피는 커피가 가진 스펙트럼과 바리스타의 개성이 천천히 드러나는 것 같아 매력적입니다. 다양성, 스펙트럼, 개성. 좋아하는 단어들이다. 등급과 석차의 별에서 늘 주눅들어 있던 내게 눈 가린 당신의 말은 어쩐지 위안이 된다. 지구 본질의 향기. 떼루아를 품고서 미묘한 각성을 표출하는 커피. 커피는 그러니까 지구에서 가장 유해하고 유용한 음료다. 잠 못 드는 밤은 직업병과도 같았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커피는 뭐였더라. 딸기 우유 맛이 나던 샤키소. 이름 때문에 더욱 오해가 깊은 치명적인 게이샤. 마그마와 화산재가 휘날리던 찬차마요. 적도의 음료를 또 한잔 내린다. 지구는 참 향기로운 별이에요. 그렇죠? 가린 눈을 풀고 애호가는 다시금 입맛을 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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