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1

제 1장

by 임효진

컹컹 컹컹

멀리서 개가 짖는다. 익숙한 소리다. 박서방네 백구 복돌이가 짖는 소리인 것을 알아챈 순간, 나른한 몸에 정신이 확 든다. 장희는 얼른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며 머리를 가다듬었다. 서둘러 옷을 차려입고 일어서는데, 동생 연희가 벌컥 문을 연다.

“언니, 일어났으면 얼른 나와 보랑께. 박서방이 왔단 말이시.”

싱글벙글 웃는 연희의 등 뒤로 2월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장작 태우는 구수한 향이 밀려온다. 장희는 차가운 공기와 마구 섞여 어우러지는 장작 태우는 향이 너무 좋았다. 겨울에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그 향을 맡고 있노라면 몸은 녹아들어 가고, 코에는 시린 공기가 가득한 이 계절이야말로 완벽한 계절이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박서방이 온 게 뭣이 어쩐다고 이 소란인겨?”

벌써 옷까지 다 챙겨 입은 자신의 요란스러움을 열 살이나 어린 동생이 눈치챌까 민망해 괜히 핀잔부터 준다.

“박서방만 온 것이 아니니 그라제...”

능구렁이같이 웃으며 말 끝을 흐리는 연희의 얼굴에 언니 대신 부끄러움이 묻어난다. 장희는 그 속 뜻을 눈치채고, 빨개진 볼을 동생이 눈치챌까 얼른 고개를 돌렸다.

박서방은 장희의 정혼자 최도운의 가택 일을 돌봐 주는 자다. 본래 도운의 아버지 최성중네 마름인 박서방은 머리가 좋고 빠릿빠릿할 뿐만 아니라 1원 한 푼어치 남을 속이는 일이 없어 장희의 시댁 될 최 씨 집안에서 믿으며 곁에 두고 가족처럼 지낸 지 오래된 사람이라고 영천댁이 말했었다. 그리 지낸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장남인 도운은 박서방을 형처럼 믿고 따른다고도 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이 아침에?”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오히려 따져 묻는 듯한 말투에 부끄러움과 설렘이 묻어있다. 동생 연희에게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괜히 뒤돌아 서 있지만, 장희의 뒷모습에서 그 마음을 벌써 읽은 양 연희는 마냥 시시덕 댄다.

“모르제. 바로 아버지 뵈러 들어가버렸응께. 흐흐”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 땀시 여기와 웃어 샀냐? 됐응께 이제 그만 나가봐.”

설레는 마음을 새어나간 것 같아 괜히 어린 동생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큰아가씨, 아가씨 일어나셨지라우?”

밖에서 영천댁이 부른다.

“보랑께. 형부가 언니를 찾는다고.”

수선을 떠는 연희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참지 못하고 나온다.

“형부는 뭣이 벌써 형부여? 너는 내가 시집가 버리는 게 그리 좋다냐? 아까부터 계속 쫓아다니며 실실 웃어 샀냐?”

그리 말을 하는 장희의 입고리도 어느새 자꾸 눈가를 향해 치켜 올라가고 있다.

“가버리긴 뭣을 가버린다고 그런당가. 가면 이제 안 볼 텐가? 바로 옆, 엎어지면 코 닿을 동네로 가면서... 나는 말이 시, 언니 시집가도 하나도 안 서운하네. 매일 보러 갈 텐디. 형부한테 팥빵도 맨날 사 달라고 할 테고. 흐흐”

“목적이 팥빵에 있었구먼 그려. ”

연희의 볼을 꼬집으면서는 참지 못한 웃음이 피식 새어나간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영천댁이 기다리고 있다.

“큰아가씨, 어르신께서 지금 부르신당께요. 싸게 가 보소.”

말을 하는 영천댁의 얼굴에 근심이 묻어있다. 영천댁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미간에 두 개의 줄이 생기는데 지금 딱 그 줄이 두 개다. 무언가 일이 있나 싶어 철렁 내려앉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신을 신고 내려선다.



장성 단광리 최고 부잣집 조한철네 장녀 조장희와 영천리에 사는 유서 깊은 선비 가문인 최성중네 장남 최도운의 결혼 이야기는 몇 해 전부터 있었다. 오래 알고 지낸 집안들일뿐더러 아버지들끼리 죽마고우여서, 태어나는 순간 농담처럼 정해진 혼사였고, 도운이 오라버니 정철과 막역한 사이라 어릴 때부터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사이라 그 인물과 사람 됨됨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장희가 스무 살이 되면 바로 혼인시키리라 약조했던 부모님의 뜻을 처음에 스스로 거부한 까닭은 나름 자유연애라는 걸 해 보았던 주변 동무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집에 들어앉아 연애소설만 허구한 날 읽어댄 장희의 고집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시큰한 설렘, 가슴 아픈 사랑 한 번 없이 이대로 결혼을 하는 것은 왠지 뭔가 억울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그 튕기는 듯한 마음조차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 지난여름에 있었다.

한사코 결혼하기 싫다고,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자유롭게 연애도 해보고 결혼하는 것이 유행이라던데 나도 연애라는 거 해보고 결혼하겠다고 버텨 부모님 뒷목을 잡게 하던 장희를 지난여름 오라버니 정철이 불러내었다, 읍내에 나가 빙수를 사 준다는 핑계였다. 기를 쓰고 따라간다는 연희를 말리는 오라버니를 보며 장희는 그날의 외출이 다른 의미가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모르는 척 발그레 물든 자신의 볼을 누가 볼까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오라버니의 그림자만 보고 졸레졸레 그 뒤를 쫓았다.

이런 촌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하늘거리는 하얀 블라우스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진한 감색 스커트를 곱게 차려입은 그녀를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주변 100리를 다 돌아도 애기씨보다 고운 사람은 본 적이 없당께요.”

영천댁의 그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라는 걸 장희는 스스로도 잘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라버니의 벗이라고 하는 자들이 그녀의 얼굴 한번 보겠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문지방이 닳도록 집에 드나들며 장희가 머무는 별채 쪽으로 목이 빠져라 고개를 돌려대며 기웃거리는 것을 몇 차례나 무심한 오라비에게 항의한 전적도 있으려니와, 적어도 이곳 단광리에선 양귀비 못잖은 미인으로 소문난 그녀였다. 하지만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노골적인 시선에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른 어디든 들어가 이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오라버니라는 작자가 빙수 가게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빙수 가게 앞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

“오라버니, 나 다리가 아프요. 이제 들어가서 빙수 먹읍시다.”

몇 번을 투덜거리자 정철은 “휴”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그럼 먼저 들어가 먹고 있을 테냐? 나는 누구를 만나기로 혀서...”

말하며 먼저 들여보내 주었다.

그 누구가 최도운이라는 걸 장희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 오라비의 무딤에 기가 차서 웃음부터 나왔다. 하지만 이런 자리를 만들며 저런 고지식한 오라버니가 얼마나 고심했을까 생각하니 섣불리 아는 체를 하기도 미안해 장희는 모른 척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 그런데 웬걸 가게 안에 벌써 도운이 와 앉아 있었다. 초록빛이 도는 군복을 입은 채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멀끔한 모습이었다. 처음이었다. 군 장교인 것을 알았지만 저리 군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것을 본 순간 장희는 움찔했다. 심장이 사정없이 쿵쾅댔다. 저이가 저리 훤히 생겼었지 생각하며 발을 더듬거리며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그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몇 번이나 주위를 돌며 서성거린 것인지, 오라버니의 행동이 장희는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장희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도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를 했다. 장희는 그 눈을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나름 외모에 자신도 있던 장희이고, 이 만남을 미리 눈치챈 까닭에 온갖 수선을 떨며 단장하고 나섰기에 분명 그런 자신을 보면 최도운이 가슴이 떨려 어쩔 줄 몰라할 거라 스스로 자신에 넘치는 마음으로 나온 자리건만, 정작 가슴이 너무 요동쳐서 그 소리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은 자신이었다.

“이렇게 만나자고 해서 미안하게 됐소.”

담담한 목소리로 하는 도운의 말도 장희의 귀에는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서울에서 유학 생활에 군 장교 생활까지 오래 했다더니 오라버니와는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가 부드럽고 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잉?”

자신도 모르게 상황에도 맞지 않은 어눌하게 얼빠진 듯한 대답을 하고 나서 장희는 고개를 숙여 훽 돌렸다.

‘이게 뭣이당가? 시상 이리 바보 천치 같은 대답을 하다니. 말귀도 못 알아먹는 반푼이로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

귀까지 빨개진 부끄러운 얼굴을 돌릴 수도 들 수도 없어 못 먹을 것을 먹은 수탉처럼 고개를 비스듬히 아래로 처박고 눈만 끔뻑이는 장희였다.

“화난 것도 당연하지. 여염집 아가씨를 백주대낮에 이리 불러냈으니... 허나 꼭 할 말이 있어 정철에게 부탁한 것이니 이해해주시오.”

자신이 화난 줄 알고 도로 어쩔 줄 몰라하며 달래듯 말하는 최도운의 목소리에 장희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하실 말씀이 있어 그러셨겠지라우. 다만, 다른 이들 보는 눈이 있으니 용건만 간단히 해 주시면 좋겄소.”

이제야 정신을 차려 제대로 답을 했다는 생각에 자신이 조금 생긴 장희는 고개를 살짝 들어 도운을 봤다. 아니, 보려 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밖에서도 들릴 듯 빠르고 크게 뛰는 심장 소리에 장희는 얼른 다시 고개를 숙여 그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보다 더 먼저 도운의 눈이 떨리며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으흠. 헛. 일단 앉았으니 주문부터 하겠소. 으흠, 여기 빙수 두 그릇 주시오.”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빙수를 주문하는 도운의 목소리에 장희는 고개 숙인 채 웃음이 났다. 저이도 나처럼 떨고 있구나, 나처럼 자기 귀에 제 심장 소리가 들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숙인 고개를 들 용기는 없었다.

빙수가 나올 때까지 장희는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마구 날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꿎은 손톱만 꾹꾹 눌러내고 있었다. 도운은 도운 대로 빙수 가게 주인 쪽을 바라보며 장희 쪽으로는 고개도 못 돌리며 계속 ‘으흠’, ‘헛’하는 헛기침을 하며 저러다 목이 쉬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애먼 성대만 괴롭히고 있었다.

생각보다 빙수는 빨리 나왔다.

“드시오. 이 집 빙수가 맛이 제법 좋다고 하더군. 참! 아주머니 여기 팥빵도 두 개 더 주시오.”

숟가락을 자신 앞에 놔주는 도운의 손을 장희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귀한 댁 도련님 아니랄까 봐 자신의 것처럼 못지않게 길고 하얀 손가락이 부지런히 눈앞을 다녀간다.

“네.”

수줍게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장희의 얼굴을 도로 붉어지게 했다.

‘내가 너무 부끄러운 척하는 건가?, 이런 간드러진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너무 여시같은디...’ 이런 마음을 들켰을까 싶어 다시 고개를 들어 잠시 도운의 얼굴을 보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시’가 실패하고 말았다. 빤히 자신을 보는 도운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얼른 눈길을 돌렸다가 도운이 눈을 돌리지 않았음을 깨달은 장희는 마음을 가다듬고 도운을 다시 빤히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심장이 쿵쾅 거리지조차 않는다. 그저 멈춘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헉 들이쉰다. 도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더운 날씨에 여까지 나오게 해 미안하오. 우리 결혼 문제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이리 보자고 정철에게 부탁했소.”

장희는 입을 꼭 다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와 결혼을 거부한다고 들었소.”

“...”

“우리 부모님은 그쪽이 거부하는 것까지는 모르시오. 오라버니가 동생 걱정을 참 많이 하더군. 내가 이유를 알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나가 싫다고 하면 결혼을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이오?”

갑자기 화난 듯한 말투의 말이 훅 튀어나왔다.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을 얼버무리며 빤히 바라보는 도운의 눈을 계속 바라볼 수가 없어 장희는 괜히 고개를 돌리며 말을 시작했다.

“이 가게 앞쪽은 얼마 전까지 뒷골 안씨네가 소작질하던 논이었지라우. 지금은 가게가 이리 많이 생기고 차가 다니는 길이 되었단 말이시.”

갑자기 황당한 말을 늘어놓는 정혼자를 도운은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장희는 그 눈을 의식하면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요. 우리 부모님 혼인하던 시대랑은 요. 왜 그 짝은 서울서 긴 시간 공부도 했다 하지 않았소? 그럼 요즘 세상에 부모님이 정해주신다고 홀랑 결혼하는 젊은 사람이 드물다는 것도 알 것이고...”

아차. 말이 너무 길다 싶어 장희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하다가는 그놈의 연애라는 걸 못해 안달이 나 성질 급하게 부뚜막을 뛰어오르는 괭이 꼴로 보일까 싶어 뒤에 나올 말을 삼켰다.

“그럼 혹 마음에 둔 다른 이가 있다는 말이오?”

표시가 나도록 침을 꿀꺽 삼키면서 도운이 물었다.

‘이런 머저리 같은... ’

오라비가 눈치 없는 곰 새끼 같은 줄 진작에 알고 있었건만 그 친우라는 작자들은 다 이 모양인가 싶어 눈이 훽 돌아가려는 걸 억지로 눌러 감았다.

“나가 그쪽 도련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단 말이지라우. 오라비 따라 몇 번 집에 와 지나가며 고개나 까딱 인사한 것이 다인디, 어떤 사람인 줄 믿고 앞으로 내 팔자를 홀딱 맡길 수 있겄소?”

장희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 듯 도운의 입꼬리에 웃음이 살짝 내려앉는다.

‘저이 웃는 게 저렇게 따뜻하구나’ 싶어 장희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따라 올라가려는 것을 이를 꼭 물고 참았다.

“그리 오래 알았는데도 말이오? 허 참, 나에 대해 어떤 설명이 필요하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오늘 다 말해 주겠소.”

자세를 고쳐 앉으며 도운이 말했다.

‘이런 곰 껍데기 같은 인물이 다 있나?’ 그전부터 마음에 둔 사람이 아니었다면 진작 속이 터져 삿대질을 하며 평소에 그리 자신 있던 욕부터 튀어나왔을 것이라고 장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오라비가 그러하듯 눈치 없고 곰 같은 행동 안에 저이 또한 진중하고 몇 번이나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둘이 친구가 아니겠냐는 생각 또한 들었다. 이 자 역시 자신의 오라비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일러줘야 상황을 제대로 알겠구나 싶어 장희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한숨부터 쉬었다. 그리고는 앞에 놓은 물 잔의 물을 아버지가 탁주 사발 들이키듯 꿀꺽꿀꺽 비웠다.

“물어서 하루 만에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랑께요. 속이 터지니 이 짝에서 먼저 말하겠소. 우리 결혼하기 전에 연애라는 거 좀 해 봅시다. 그 연애라는 것을 해 봐야 그 짝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텐게.”

냅다 말은 뱉었지만, 낯 뜨겁기도 하고 도운이 자신을 어찌 볼지 몰라 차마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새침하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장희에게 도운의 따뜻한 시선이 쏟아졌다.

“장희야.”

갑자기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장희는 깜짝 놀라 도운을 바라봤다.

예전에 도운은 장희를 그렇게 불렀었다. 오라버니와 함께 동네 개울가에서 멱 감고 놀던 시절, 크게 내외할 것도 없었고, 오라버니 정철과 그 벗 도운은 서로의 집을 자기 집처럼 오 다니며 가족들마저도 서로 공유하며 스스럼없이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도운이 국민학교 졸업 후,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을 서울로 공부를 하러 간 탓에 어느 정도 머리가 자란 다음에는 제대로 본 적도 없으려니와 무엇보다 이제는 장성해 혼담이 오가는 사이이다. 그런데 남의 집 귀한 아가씨 이름을 저리 함부로 부르다니... 놀란 장희가 고개를 들어 도운의 눈을 마주친 순간 도운이 한 말은 장희의 그 모든 생각과 행동을 멈추게 했다.

“나는 한 번도 너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 뒤로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이미 머릿속이 하얘진 장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다시 존대를 하며 빙수를 먹으라는 도운의 말에 그저 곱게 “예”라고 답하게 귀까지 빨갛게 익어버린 자신의 볼을 누가 볼 새라 고개는 탁자에 쳐 박고 그저 꾸역꾸역 입에 빙수를 떠 넣는 그녀를 도운은 그저 10년 전 개울가에서 치맛자락을 다 걷어 올리고 물장구를 치던 누이를 보는 오라버니처럼 희미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를 빙수 그릇이 비워질 즈음 오라버니 정철이 데리러 들어왔다. 필시 가게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두 친구는 서로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장희도 오라버니 정철을 따라 읍내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 내내 정철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오라버니.”

장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나 물어볼 것이 있는디...”

“뭔디?”

“그렇게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디 안 들어가고 왜 밖에서 뺑뺑이를 돈 것이여?”

정철은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집 앞에 다 와서야 대문을 열며 입을 연다.

“나야 아즉까지 안 온 것인 줄 알았제.”

거짓말이다. 도운이 약속에 늦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테고 가게 안을 들여다본 것도 아닌데, 오라버니 성미에 그리 단정 지었을 리가 없다. 궁금해하는 장희의 눈빛을 눈치챈 것인지, 정철은 더 이상 장희가 말을 못 걸게 집에 들어서자마자 연희를 부른다. 토라져 입이 댓 발은 나온 막내가, 그래도 어디 숨어 기다리고 있었던 듯, 잽싸게 나온다. 정철은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연희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게 뭣이여? 따끈한디.”

“찐빵이여, 어머니하고 먹어.”

“쳇, 이 더위에 오라버니랑 언니는 빙수를 먹고, 우리는 이 뜨거운 빵이나 먹으라고?”

찐빵을 둘도 없이 좋아하는 걸 잘 아는 언니, 오빠 앞에서 괜히 투정을 부리는 막내였다.

“왔냐?”

안채에서 어머니가 나온다. 사정을 다 아는 듯이 장희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눈이 아들 정철에게로 향하자 더없이 부드러워진다.

“예, 어머니. 다녀왔어라.”

두 모자는 얼굴 한가득 웃음을 품고, 눈빛으로 무슨 말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함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엄마는 저리 오라버니가 좋을까?”

어느새 찐빵 하나를 손에 들고 연희가 옆에 와 섰다.

“울 엄니는 참말로 오라버니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실 걸. 그러니 여태 장가도 안 보내고 며느리 고른다는 핑계로 품에 안고 있는 것이제.”

연희에게 쏘듯이 말하고 별채로 향한다. 뭔가 씁쓸하다. 어머니의 오라버니에 대한 편애가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지금 유달리 마음에 서운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제 자신은 이 집에서 떠날 것인데, ‘그렇게 둘이 평생 부둥켜안고 살라지 뭐.’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장희는 다시 도운 생각에 빠져든다. 생각하기 시작하니 그 마음은 장희의 작은 방에서 넘실넘실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장희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혼자 발그레진 볼을 두 손으로 감싸 보기도 하고, 곱게 펼쳐진 이불 위에 누워 발로 천정을 향해 휘두르며 펑펑 차보기도 하며 부끄럽고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날의 만남 이후 장희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몰라도 도운은 쉬는 날마다 장희의 집을 찾아왔다. 고지식한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모르지만 도운이 찾아올 때마다 장희는 도운과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읍내에 나가 떡이나 국밥을 사 먹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을 뒤 방죽 주변을 이야기하며 걷는 단순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장희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손꼽아 기다려졌다.

장희가 재잘재잘 떠들면 도운은 가만히 들으며 웃었다. 장희가 화가 났던 일을 이야기하며 흥분해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할 때도 도운은 그런 장희의 모습마저 웃으며 쳐다봤다. 그런 따뜻하고 여유 있는 눈빛이 장희는 좋았다.

“연희 고년이 아직 그렇게 철이 없당께요. 영천댁이 얼마나 놀랬던지 아직도 부엌간에 들어설 때면 작대기로 문부터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며 들어가지라우”

얼마 전 날씨가 춥다고 밖에서 떠돌던 새끼고양이 일가족을 아궁이 부엌에 숨겨놔서 귀신소동을 일으킨 연희의 만행을 신나게 일러주던 참이었다. 딱 다섯 번째 만남에서였다.

“그런가요?”

아직은 낮 햇살이 따뜻한 초겨울 햇살 아래, 살짝 미소 지으며 자기의 발끝을 내려다보며 걷는 도운의 긴 눈썹, 서글서글한 눈, 그리고 그 눈과 이어진 콧대가 참 잘 어우러진다고 느낀 그 순간, 장희는 그동안 천 번은 더 참았던, 절대로 먼저 하지는 말아야지 했던 말을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뱉고 말았다.

“근디 우리 혼인은 대체 언제 하지라우?”

큰일 났다. 깜짝 놀라 자신을 바라보는 도운의 눈빛에 장희는 스스로가 얼마나 가볍고 쉬운 여자가 된 건지 자책하며 마음속으로 자기 허벅지를 열 번도 더 꼬집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무슨 말을 해야 이 상황을 무마할지, 어떡하면 이 말들을 다 주워 담을 수 있을지 순간 고민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 말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아오.”

민망해하는 장희의 마음을 이 곰 사내가 처음으로 여우같이 눈치채고 말을 끊어줬다. 어차피 별 변명거리도 없었거니와 몇 차례의 만남 동안 도운이 자신을 너무 가벼운 여인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 지 의아해하던 차에 장희는 가만히 서서 이어질 도운의 말을 기다렸다.

“한동안 혼인 날짜를 잡자고 보채던 인사가 갑자기 그 말은 뒤로하고 이리 찾아와 시간만 뺏고 가니 무슨 일인지 걱정했으리라 짐작되오. 장희 양과 빙수집에서 만난 뒤, 내가 부모님을 설득했소. 평생을 살아갈 반려자인데 혼인을 약속하는 것도 서로 만나본 뒤에 결정하고 싶다고...”

말없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희를 보며 도운은 말을 이었다.

“물론 장희 양 부모님은 그것이 그대의 생각임을 눈치채셨겠지만, 양가 어른 모두 이해를 해 주셨소. 혼인은 그대가 원할 때까지 미루기로 하였소.”

“미룬다고요?”

자신의 객기로 원하는 이와의 결혼이 무기한 미뤄진 것을 알자 장희는 자기도 모르게 입이 댓발이나 나와버렸다. 또 무엇이 문제이지 싶어 어리둥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운에게 장희는 속에 있는 말을 다 퍼붓고 말았다.

“이런 곰 같은 인사를 봤나? 그러자고 혼인을 무작정 미루기만 허면 어쩐디요? 나는 인제 자나 깨나 그 짝이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디.”

“하! 하핫!”

도운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가만히 장희를 쳐다본다. 그 따뜻한 눈길은 장희가 고개 돌리자 더 아래, 장희의 손으로 향한다. 도운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장희의 한 손을 조심스레 두 손으로 잡았다.

“나는 군 장교요. 지금은 여기서 근무하고 있지만, 신청을 해 두었으니 곧 서울로 전출이 될 것이오. 사실 나는 그전에 혼인을 하고 장희 씨를 서울로 데리고 가고 싶었소.”

“서울이요?”

“얼마 전에 통보받았소. 그래서 어르신들과 장희 씨에게 말하려던 참이었소.”

“그럼 이제 서울에 가서 살아야 되는 것이오?”

“계속은 아니고, 한두 해 정도는 그리되지 싶소. 빨치산들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무엇보다 지금 북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남쪽 병력들을 조금씩 불러 올리고 있는 모양이더군.”

“서울...”

도운은 혼자서 읊조리는 장희를 흘끗 쳐다봤다. 장희가 이곳을 떠나 서울에 살림을 차리는 것을 거부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장희가 고개를 들고 도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좋구마니라우, 서울. 한번 살아보고 싶었어라.”

기대에 찬 밝은 목소리와 눈빛이었다.

“나는 이 길로 어르신을 뵙고 날짜를 잡아달라고 하겠소.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혼인 준비를 할 것이오.”

입 가에 미소를 가득 품고 도운이 말했다. 그 뒤로도 도운은 몇 마디 말을 더 했지만, 이미 설렘과 기쁨이 섞여 머릿속이 아수라장이 된 장희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온 집안이 기다리던 혼사이니만큼 날짜는 금세 잡혔다. 음력 5월 17일, 계룡산까지 찾아가 용하다는 스님에게 부탁해 잡은 길일이었다. 온 동네가 모두 스물 하나, 스물 다섯 된 선남선녀의 경사를 즐겁게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