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2

제 2장

by 임효진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면에 장희의 부모님과, 그 맞은편에 먼저 와 앉아 있는 도운의 등이 보였다. 군복을 입은 채였다. 넓은 어깨를 따라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그 등은 오늘따라 더 듬직해 보였다.

“왔냐? 이리 와 앉아 보거라.”


한 번도 욕쟁이에 왈가닥인 적 없었던 요조숙녀처럼 사뿐히 앉은 그녀에게 도운이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연유가 전해졌다.


전쟁이 난다, 날 것이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아직 북에서 특별한 낌새는 없다고 했다. 북에서 군대를 준비한다, 곧 쳐들어올 것이다 등의 이야기들이 북녘에서 탈출해 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려오긴 했지만 북이니, 전쟁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북과는 먼 이곳 장성에서는 적어도 먼 세상 이야기였다. 하지만 도운의 경우는 달랐다. 육군사관학교 장교로 졸업했고, 유사시에는 언제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한 벗들과 동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귀한 집 장남이라 혼인도 하고 대를 이어 효도를 해야 한다는 가족과 동료들의 만류로 장성 근교 부대로 들어와 지냈던 것이다. 그렇게 평생의 반려자로 여겼던 장희와의 혼인을 앞둔 도운에게 갑작스러운 나라의 부름이 있었다.


“결혼 후, 여름은 여기서 나고 서울로 간다지 않았소?”


놀라 묻는 장희에게 도운이 답했다.


“내 전임자가 얼마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소. 당장 신병 교육이며 급한 업무가 많아 급히 전출명령이 떨어진 것이오. 그래서 이리 허락을 구하고 서울로 가려 하오.”


“허락은 무슨 허락이여? 다 준비해서 올라가는 길에 들른 것이면 통보하러 온 것이제.”


못마땅한 듯 장희의 어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마치 큰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도운의 모습에 장희는 마음이 찡하게 시렸다.


“그럼 우리는 어찌?”


“걱정 마시오, 내 종종 내려올 계획이오. 그리고 결혼 일주일 정도 전에 휴가를 받고 내려올 것이니 결혼은 문제없이 진행될 거요. 단지, 우리 신혼집은 처음부터 서울에 장만해야겠소.”


도훈의 말을 차분히 듣던 장희가 낮지만 단단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다녀오시오. 건강히...”


“장희야!”


차분히 말을 뱉는 장희에게 정작 놀란 것은 장희의 부모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희는 평소 그저 애지중지 자란 천상 철딱서니 없는 공주마마였기 때문이다. 도운의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무슨 결혼 준비를 하냐’며 길길이 뛰며 성질을 낼 거라 생각하고 미리 장희가 보란 듯 화를 낸 조한철도 막상 장희가 저리 쉽게 허락하니 이게 뭔 일인가 싶고 저것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 저러나 싶어 장희의 눈치를 보았다.


“혼인 전에는 맞춰 돌아온다 했잖소. 결혼 준비에 신랑이 할 것이 별 것 뭐 있다고 그러시오? 근께 좋게 보내드립시다.”


이제는 도로 장희가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는 꼴이었다.


“그려도 되겄냐? ” 조한철이 장녀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라제, 장부가 나라를 위해 할 일이 있어 가겠다는디 누가 그 뜻을 꺾어? 그라니 자네는 제발 건강하게 몸성히 잘 다녀오게.”


“네. 어르신. 죄송합니다.”


“어르신, 이리 이해해 주시니 참말로 감사합니다. 제가 도련님 따라가서 손 끝하나, 털 끝하나 다치는 일 없이 해서 모시고 올랑께 걱정은 쪼깐도 하지 말랑께요”


박서방도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했다.


“일을 하면서 서울에 집을 알아보려면 많이 바쁠 것인디...”


곁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걱정스레 말한다.


“그라니 지가 따라가는 것 아니겄소?”


“그라제, 박서방이 따라간다니 우리는 암 꺽정 없소? 안그라냐?”


박서방과 아버지는 미리 말을 맞춰놓은 사람들 마냥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가 우리 아가씨랑 도련님 편히 지내실 좋은 집으로 알아보고 연통 드릴랑께 너무 걱정 마시라우,”


입을 꾹 다문 도운과 장희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운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장희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장희도 고개를 들어 도운을 슬쩍 보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는 먼저 방에서 나왔다. 도운과의 혼인만이 장희의 유일한 미래며 꿈이었건만 도운에게는 다른 꿈이 있다는 것이 무언가 허전하고 서운했다. 장희는 자신의 그 서운함의 이유를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잠시 못보다 3개월 뒤 혼인하면 매일 볼 도운의 얼굴인데도 이제 가버리면 다시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장희는 자꾸 속에서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 울컥 치솟아 올랐다. 그대로 별당으로 가 가만히 고개 숙여 마당을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어느새 도운이 따라 나와 옆에 섰다.


“서운하오?”


“...”


“미안하게 됐소.”


장희는 고개를 들어 도운을 빤히 봤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 앞에서 죄인처럼 기죽어 있는 그의 모습이 싫어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도운이 장희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장희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장희는 그 손을 빼 내고는 터벅터벅 대청마루로 가 걸터앉았다. 도운은 아무 말없이 따라와 장희 옆에 조용히 앉았다.


하고픈 말이 많았으나 장희는 말을 아꼈다. 지금의 불안함과 서운함을 입 밖에 내면 그 생각들이 모두 현실로 닥쳐올까 두려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도운이 불안한 듯 두 손을 꼭 쥐고는 자신의 무릎 올려놓았다. 장희는 그 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손의 다정함과 따뜻함이 눈으로 보였다. 손을 처음 잡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남아 있다. 장희는 먼저 손을 뻗어 그 손을 잡았다.


도운이 부드러운 눈으로 장희를 쳐다봤다. 장희는 한숨을 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살짝 웃었다.


“내가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것 같소.”


장희의 말에 도운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장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희미하게 웃었지만 자신의 눈이 슬퍼지는 것이 느껴져 입술을 꽉 깨물고는 눈을 과장되게 끔뻑거렸다.


“애타는 연애 한 번 못해보고 결혼하는 게 억울하다고 했던 거 말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자신의 말을 이해 못 해 잔뜩 긴장한 표정의 도운을 본 장희는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이렇게 잠시 떨어지는 것도 이리 마음이 아린데 내 주제에 무슨 애타는 연애 소리나 했었는지. 몇 달 전 내 모습이 가당 찮아 해 보는 말이오.”


“하!”


도운이 따뜻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햇살을 잔뜩 내려받은 그의 얼굴이 벌써부터 그리워 장희는 가만히 도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도운은 한 손으로는 장희의 손을 단단히 잡고 다른 한 팔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고는 다시 장희의 어깨를 안았다. 장희의 목이, 볼이, 귀까지 빨갛게 물든다. 부끄럽지만 그의 품에 안겨 그에게 기댄 게 좋아 그대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나도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소.”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던 도운이 입을 열자 장희는 가만히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고는 도운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나는 내가 언제부터 그대에게 마음이 아리고 애가 탔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소. 따지고 보면 연애는 내가 선배 아니겠소? 마음이 힘들 때는 언제라도 내게 조언을 구해보시오. 보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가라앉히는지, 불안한 마음은 어찌 잡을 수 있는지, 이리 눈을 마주치고 싶고, 만지고 싶은 마음은 어찌 참는지 내가 그대보다 백배는 더 잘 알 것이오.”


장희는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두면 터질 것 같았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더 내보이면 너무 가벼운 여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괜히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사람이 정혼자를 내버려 두고 홀랑 가 버린단 말이오?”


도운이 가만히 웃으며 답했다.


“내가 그대를 이렇게 마음껏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것도 나라가 안정된 덕분 아니겠소? 누군가는 나라의 평화를 지켜야 할 것이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하오. 내가 지키는 사람 중 그대가 있다는 것은 더.”


“오늘따라 다정한 말이 많으시오. 내 입을 막으려고 그러는가.”


장희는 이리 대답하며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도는 흉흉한 시국에 굳이 혼인을 앞두고 굳이 서울로 발령받아 가는 정혼자의 마음이 서운하면서도 그가 그런 남자라는 것이 듬직하고 좋았다.


“으흠”


박서방이 뒤에서 기척을 냈다. 도운은 잡았던 장희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장희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인사를 했다.


“도착하면 연락하겠소.”


장희는 따라 일어섰다. 도운이 가볍게 친 어깨부터 시작된 아련한 아쉬움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도운은 장희에게 가볍게 한번 웃음 짓고 그대로 돌아서서 박서방과 가 버렸다. 뒤도 보지 않고 그렇게 가 버렸다.


도운이 그렇게 가고 열흘이 지나자 장희의 집에 그의 편지가 왔다. 도착하자마자 쓴 듯했다. 언니에게 형부가 쓴 편지가 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연희를 뒤로 하고 장희는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아걸었다. 연희는 한참을 문 앞에서 덜컹거리며 자기도 같이 읽으면 안 되냐고 졸라대다 영천댁이 와서 어머니가 부르신다고 하자 문에서 떨어졌다. 장희는 내용이 너무 궁금했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집중해서 읽고 싶어 연희가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깔끔한 하얀 편지봉투를 내려다봤다. 단정한 봉투마저도 도운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봉투를 한번 쓰다듬어 내린다. 그를 만날 때, 그의 손을 잡을 때의 설렘이 그대로 온몸으로 전해진다. 조심스레 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꺼냈다. 투박한 편지지 안에 반듯하고 깔끔하게 쓰인 글씨체가 마치 그의 얼굴 같다.


편지 내용 속에 보고 싶다던가 그립다고 하는 강한 애정의 표현은 없었다. 그저 서울은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하며, 생각보다 숙소가 넓고 좋다는 것이었다. 다만 장희가 자신을 걱정하며 바라보던 마지막 눈빛이 기억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는데 장희는 그런 그의 담담한 글이 어떠한 애정의 표현보다 설레고 좋았다. 이리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어쩌면 그리 소망하던 연애를 하는 건가 싶어 한편으로는 즐거운 마음까지 드는 철없는 그녀였다. 설레는 마음에, 편지를 받은 날 바로 연희를 꼬드겨 읍내에 나가 편지를 쓸 종이를 서둘러 샀다. 그녀가 좋아하는 동백꽃무늬가 들어간 향이 나는 종이였다. 향이 좋아 종이를 들이마실 듯 코에 대고 킁킁거리다 장희는 혼자서 ‘아’하고 탄성을 지르며 혼자 설레었다. 연희가 옆에서 혀를 쯧쯧 찼다. 막상 편지지를 샀지만 뭐라 써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다 편지를 썼다. 여기도 아무 일이 없으며 모두들 편안하다고. 걱정일랑 일절 말고 하시는 일 무사히 잘하시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뭔가 허전해 한마디 덧붙였다. 동생 연희가 형부 언제 오냐고 보챈다고, 형부를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연희가 장희의 혼인은 물론이거니와 형부 될 도운을 반긴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자신의 숨은 뜻도 있음을 도운이 알아챌지 그래서 그 말에 답을 어찌해줄지 내심 기대하며 편지를 쓰는 장희였다.


두 번째 도운의 편지는 장희가 읍내에 나가 편지를 보낸 사흘 뒤에 도착했다. 자신의 편지가 도착도 하기 전에 두 번째 편지를 쓴 거라 생각하니 이리 금세 안부를 전해오는 도훈의 마음과 배려가 느껴져 장희는 기분이 좋았다. 두 번째 편지의 내용은 첫 번째의 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은 잘 지내니 걱정 말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지금은 인수인계로 바쁘지만 어느 정도 적응하면 장성에도 곧 내려 갈 거라는 말도 있었다. 장희는 두 번째 편지도 첫 편지와 같이 곱게 접어 자신의 경대 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도운의 세 번째 편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두 번째 편지와 거의 스무날 정도 차이가 났다. 연희 말에 의하면 그 시간 동안 장희는 마치 비 오는 날 미친 여자 같다고 했다. 기운 빠져 축 늘어져 있다가 불 같이 화를 내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장희도


“그깟 편지 바빠서 못 쓸 수도 있겠지.”


생각하다가도 자신이 쓴 내용을 곱씹으며


“뭣이 바뻐? 내가 설마 지깐 놈 보고싶다고 했을까봐 부담스러워 피하는 것이제?”


하며 화를 내는 자신이 미친년 같고 이해가 안 됐다. 서울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여시같이 예쁜, 도깨비 같이 분칠 한 서울 여자랑 눈이 맞아 연애나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어느 기생집에서 매일같이 늘어져라 마시고 논다고 나 같은 건 잊어버린 건지 생각을 할수록 불안하고 속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편지는 왔다. 연희가 편지를 들고 방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순간 장희는 배시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연희가 뭐라고 놀리는 것 같은데 귀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따라 들어오려는 연희를 밀어내고 문을 닫아걸고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옷을 단정하게 폈다. 편지를 뜯는 순간 자신의 모습을 도운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희는 귀에 걸린 입을 내리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벌어진 입가 끝으로 웃음이 피죽피죽 새어 나왔다. 조금이라도 찢어져 너덜거리는 부분이 없도록 조심하며 하얀 봉투를 뜯었다.


내용은 그 전과 비슷했다. 잘 지내고 있고, 일은 완전히 적응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제일 마지막에


‘설마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연희처제뿐이오?, 그렇다면 마음이 아프오. 나는 여기로 떠나올 때 오로지 그대만이 걸렸오.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얼마나 힘들게 견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조심스러워 못하고 몇 번이나 이 편지를 쓰다 지웠을지, 술을 한 잔 하고 글을 쓴 양 평소에는 반듯한 그의 글씨체는 유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도운의 모습이 장희의 머리 속에 그려졌다. 그의 고민과 같은 고백에 장희는 가슴이 찌릿하게 아프면서도 행복했다. ‘보고싶다, 보고 싶다.’ 몇 번을 입 끝에 담아 되뇌었다. 도운의 고백 속의 그 고민이 이번엔 장희의 차례였다. 도운이 애절하게 전한 그 마음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절제된 표현으로 쓴다는 것은 장희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보고 싶으니 빨랑 와서 혼인이나 하자고 막 써 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편지를 쓰고 지우고 하다 보니 일주일이 지나 버렸다 ‘아차, 도운의 편지도 이러다 늦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운은 자신처럼 미친 이가 되어 기다리진 않겠지 싶다가도 조금은 애달프게 기다려보라지 하는 맘도 들어 혼자 큭 웃기도 하는 장희를 연희가 고개를 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열흘이나 걸리긴 했지만 편지는 완성되었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완곡하고 절제된 표현은 장희에겐 너무 어려웠다. 그저 건강히, 무사히 돌아오라는 말 뒤에 나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붙인 것이 장희가 머리에서 짜 낼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장희는 스스로가 한 그 말에도 너무 설레고 좋았다. 도운도 알 거라 믿었다. 어쩌면 도운이 멀리 가 있는 것이 서로 이렇게 그리워할 시간을 주는 거라 생각하니 그리움의 이 시간도 행복하고 기뻤다.


그렇게 편지를 읍내 우체국에 들러 부치고, 점포에서 거짓말을 보태 얼굴만 한 막대 사탕을 연희와 하나씩 들고 졸졸 핥아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대문 앞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서 있었다. 도운이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장희는 자기 손이 든 커다란 사탕은 잊은 채 그대로 달려가 도훈에게 안겼다. 동생 연희가 뒤에서 ‘헉’ 하며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잊었다. 갑자기 달려와 안기는 장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 안은 도운은 한참이나 장희를 그렇게 꼭 안아주었다.


“보고 싶었어요.”


꼭 안았던 팔을 풀고 도운의 어깨를 밀며 장희가 말했다. 스스로도 그 말을 내뱉는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그건 내 쪽이 더 했을 것 같은데...”


도운이 장희의 허리를 놓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서울 가더니 어쩌면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해보랑께. 딴 여자들한테도 그러고 다닌 거 아니여라?”


눈을 흘기며 새침하게 묻는 장희의 말에 도운의 눈빛이 진지해진다. 그러고는 장희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던 손을 풀고 한발 뒤로 물러나 선다. 그러더니 그제서야 장희 손에 든 얼굴만한 막대사탕을 본 듯 하하 웃는다. 장희는 ‘아차’ 싶어 사탕을 등 뒤로 감춘다. 그런 자신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꼭 현실 같지 않아서, 꿈 같아서 장희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보고 싶다는 말은 자기가 먼저 해 놓고.”


도운의 말에 장희는 새삼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형부, 언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당께요. 누가 보면 어쩐대요? 싸게싸게 들어가잔께요.”


능글능글한 예비처제의 말에 도운이 빙그레 웃었다.


“어른들게 인사 드리고 나오는 길이야. 처제랑 같이 읍내 나갔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지.”


“여기서 얼마나 기다린 것이오?”


“음... 한 시간이나 됐나?”


손목의 시계를 보며 도운이 말한다.


“에고, 그렇게 보고 싶었소? 이 처제가?”


“당연하지, 우리 하나밖에 없는 처제 주려고 내가 선물도 사 왔는걸?”


“꺅! 어디? 어디여라?”


“처제 방에 갖다 놓으라고 영천댁한테 맡겼어.”


연희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영천댁을 부르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 공기를 울린다. 두 연인은 마주 보고 웃었다.


도운과 장희는 나란히 서서 방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4월의 햇살은 딱 적당히 따뜻했고, 온통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한 호수 주변 풀들은 간혹 부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 좋게 서걱서걱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많이 자란 풀로 덮인, 물도 푸르고 땅도 푸른 방죽 위 둑으로 올라서서 둘은 가만히 바람에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들을 바라봤다. 도운이 조심스레 장희의 손을 잡았다. 장희도 도운의 손을 꼭 잡았다. 손가락으로 그의 손등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손이다. 하지만 손 끝에 예전과는 다른 불룩한 무엇인가 만져졌다. 장희는 도운의 손을 들어 그 것이 제법 굵은 상처라는 것을 확인했다.


“조금 다쳤소.”


놀라서 자신을 쳐다보는 장희를 보고도 도운은 여전히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조금이 아닌디...”


“군인이 이 정도 다치는 일이야 흔한 일이오. 조금 긁혔소.”


“이렇게 꿰멘 자국이 있는데 긁힌 것이여라?”


“이제 실밥도 뽑았고 아무렇지도 않소.”


장희는 도운의 상처 있는 손등을 자신의 볼에 가만히 댔다.


“이제 새신랑이 될 것인디 이리 다쳐 오면 어쩐다요?”


장희의 투덜거림에 도운은 남은 다른 한 손을 장희 볼에 가만히 댔다. 장희의 볼이 또 발그레 붉어진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의 소리를 들킬까 싶었던 장희는 잡았던 그의 손을 놓고 다시 호수를 바라봤다.


“편지를 써 보내긴 했는데 내가 직접 얘기하고 싶어 이리 왔소.”


“무슨 얘기를?”


“우리 집을 구했소. 부대랑 가까운 작고 예쁜 신식집이오.”


“참말이오? 신식집이라면 벽돌로 지은 집? 나도 얼른 보고 싶소.”


보고 싶다는 말에 둘 사이엔 갑자기 어색함이 돌았다.


“으흠”


도운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나도 보여주고는 싶은데 그림 말고는 방법이 없었소.”


도운은 가슴 쪽 주머니에서 작게 접은 종이들을 꺼냈다. 종이를 펼치자 서툴게 그린 그림들이 나왔다. 자신에게 보여주려고 하나하나 책상 앞에 앉아 저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도운을 상상하자 장희의 가슴 안쪽에서는 뭔가 모를 따뜻함이 올라왔다.


‘이 사람은 분명 좋은 남편이 될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가 그린 그림 속에 들어가 살 자신과 도운, 그들의 아이들을 생각하자 장희는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생각했다.


“이 것은 밖에서 본 집 모양이오, 이것은 방 구조를 대강 그린 것이오.”


“여기가 안방이여라?”


“안방은 여기.”


도운이 장희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옮긴다.


“거기는 일단은 서재로 쓸 생각이오.”


“서재? 집에서도 일을 하시오?”


“일이라긴 보다 책을 읽는다던가...”


“굳이 책을 딴 방에 가서 읽어야 되는가 보네.”


괜시리 투덜거리는 장희의 의중을 몰라 도운이 장희의 눈치를 흘끔 본다.


“일단은 서재로 쓴다는 것이오. 그대도 언제든지 쓰시오. 나중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아이들 방이 되겠지.”


아이들. 그 말에 장희는 괜히 부끄러워진다. 별 생각없이 말을 뱉은 도운도 괜히 ‘으흠’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이 작은 방은 무엇이오?”


“그 방은 너무 작아 창고로 쓰면 될 것 같소.”


“대문은 무슨 색이오?”


장희는 괜시리 말을 돌리며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다, 그 그림들이 마치 보물이나 되는 듯 한참을 쓰다듬으며 소중히 품에 안았다. 도운은 그런 장희를 또 보물을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도운의 팔이 장희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장희는 도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날씨가 참 따뜻하고 좋소.”


“며칠 전까지 비가 오더니 오라버니 오실 줄 알고 날씨가 이리 따뜻해졌나 보네”


자신도 모르게 오라버니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도운의 눈길이 느껴진다.


“오라버니 소리도 오랜만에 들으니 좋네. 장희 니가 부르니까.”


도운의 목소리도 다정하다.


“이리 애가 탈 걸 알았으면 결혼을 미루는 것이 아니었는디...”


장희의 말에 도운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좋아요.”


“뭐가?”


“이리 애타는 마음이 있고 그리운 마음이 있어야 연애를 하는 것 같고 상대가 더 귀하게도 느껴지지라우. 우리가 그 때 부모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냥 결혼을 혔다면 이리 서로 좋은 걸 알았겠으라우?”


“때로는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진행되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장희 너는 모를 거야.”


도운이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냥 이루어지면 재미가 없지라우. 춘향이도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이몽룡을 다시 만났은께 더 귀하고 행복한 것을 아는 것이고 이수일과 심순애도 그렇게 가슴 아프게 헤어졌응께 그 사랑이 더 아쉽고 애절한 것이 아니겄소?”


“내 전임자로 있다가 이번에 먼저 간 그 친구에게도 혼약자가 있었어.”


도운의 말에 장희가 놀라 말을 멈췄다.


“그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내가 이리 건강히 살아 있는 것에 또 이렇게 네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지 몰라. 나는 우리가 이제부터 아무 일없이 평범하게 오랫동안 서로에게 기대 행복했으면 좋겠어.”


도운의 말을 들으며 장희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가슴 아프고 애절한 사랑들이 그들의 시련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머리 위에 주황빛으로 노을이 내려앉을 때까지 방죽에서 한참을 함께 있었다.


그 다음 날도 도운은 장희에게 와 한참을 같이 지내다 저녁에 서울로 올라가고, 둘은 그 뒤로도 몇 차례 편지를 더 주고 받았다.


드디어 결혼이 일주일 남았다. 도운은 오늘, 함께 간 박서방과 함께 아침 기차를 타고 내려온다고 했다. 결혼 준비는 그 사이 양가 모친들을 필두로 차곡차곡 진행되어있었고, 이제 신랑 될 인사만 돌아오면 내일이라도 혼인이 가능하다고 양천댁이 싱글벙글 말했었다. 장희는 결혼 날짜보다 도운이 내려오는 날이 더 기대되었다. 오라버니를 졸라 시간 맞춰 기차역까지 마중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나가서 자신을 보고 반가워하며 놀라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 역시 자신처럼 하루라도 일찍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기다림의 날은 너무나 늦게 흘러갔다. 조선 최고 기생이라는 황진이가 동짓날 밤이 너무 길어 그 밤을 고이고이 접어 넣어뒀다 님 오신 날 풀어놓고 싶다더니, 여름 밤도 그 못잖게 길다는 걸 모르고 그런 시를 쓴 걸 거라고 남이 다 듣는 한숨을 쉬어대며 장희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설레는 마음에 뜬 눈으로 밤을 세다 시피 한 장희는 첫닭이 울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도운에게 받은 편지를 차례대로 정리해 읽고 있었다.


“나처럼 이리 신랑 될 사람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받은 여자가 또 있을까? 겉으로 무심한 듯해도 이리 다정한 사람이 어딨을까? 복받은 거지. 흐흐. 나중에 아들이든 딸이든 태어나면 내가 이 편지들 다 꺼내놓고 보여줄거여. 아버지가 얼매나 다정한 사람인지. 우리도 연애라는 것을 하고 혼인했다고...”


“아가씨, 큰 아가씨!”


혼자 흥얼흥얼 중얼중얼 거리며 편지를 차곡차곡 포개어 넣는 장희의 귀에 급히 부르는 양천댁의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여?”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양천댁이 문을 벌컥 열어 재꼈다.


“애기씨, 워쩐다요? 전쟁이 났으라우.”


“무슨 소리여? 그게”


“글씨 오늘 새벽에 북쪽 괴뢰군이 남침을 했다잖소. 그런 썩어 널부러질 놈들. 우리 도련님 인제 내려오셔야 되는디 우째야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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