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났다.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호들갑을 떠는 양천댁의 말이 귓가에 멍하니 들린다. 장희는 이게 꿈인가 싶어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돌려 자기 방을 돌아본다. 방 저 켠에 혼수로 나갈 이불이 비단 보에 곱게 싸여 있다. 혼례복도 다 지어져 구겨질 새라 예쁘게 다려져 걸려있다. 밖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디디고 서며 한발 한발 문 밖으로 나간다. 어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며 나지막이 양천댁을 부른다.
“양천댁”
“아가씨, 우짠디요?”
“아버지께 말씀드려 영천리에 사람 좀 보내게. 소식이 있는지.”
“어르신께서 벌써 보내셨지라우. 좀 기다려 보십시다.”
영천댁이 한숨을 쉬며 대청마루에 철썩 주저앉았다.
라디오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북측 괴뢰군이 남침을 했으며 우리 국군이 잘 막아내고 있다는 방송만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별일 없을 거라 몇 번을 되뇌며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흥분된 마음과 불안한 머리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면 한 시간이면 다녀 올 영천리까지 심부름을 간 김 씨는 해가 다 지고 저녁 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영천댁이 상을 차려 왔지만 장희는 한 숟가락도 뜰 수 없었다. 그것은 장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식구들이 불안한 마음에 밥도 못 먹고 지금 상황을 불안해하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김 씨가 돌아온 건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영천리 최도운의 집에도 여태 아들의 소식이 없어 무작정 기다리는 중이라 김 씨도 여태 함께 기다리다 왔다고 한다. 최도운 집은 벌써 초상이나 난 듯 다들 울고 있고 도운의 어머니는 자리에 드러누웠다고 했다.
“아직 모르는 일인께 우리 좀 기다려 봅시다.”
“그깟 북한군쯤이야 우리 국군이 잘 막아 주겠지라우.”
“당연허제. 그리고 우리 최서방이야 전장에 직접 나가는 군인이라기보단 교육을 하러 간 사람이니 직접 전쟁에 참가야 하겠소? 지금 난리가 나 바쁘니께 연락이 안 되는 것이제, 내려오기로 했응께 틀림없이 올 것이라.”
부모님이 주고받는 말에 위안을 얻으며 장희는 닷새를 더 기다렸다. 도운은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 사이에 서울이 인민군에게 장악되었다고 했다. 장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 도운이 소식도 없이 어딘가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고 따라 죽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계속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한 뒤 파죽지세로 남하하고 있었고 언제 이곳 장성 땅까지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 중 몇몇은 더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장희의 아버지 조한철은 이곳을 버리고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조상 대대로 먹고살던 땅이며 선산도, 조상의 무덤도 여기 다 있다고 했다. 그런 한철을 정철이 설득했다. 괴뢰군의 주적이 양반이나 지주라고. 공무원인 정철 역시 무사하기는 힘들 것이니 여기 남아있다가 우리 가족은 몰살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참의 의논 끝에 마을 사람 몇몇이 백암산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었다고 하는데 그곳에 가 한동안 지내기로 결정했다. 집에서 일을 봐주던 식구들은 모두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었다. 영천댁은 부산에 사촌 동생이 있어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여러 문서들은 안방 구들장 아래 숨겨두고 금붙이며 어머니의 패물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조금씩 나눠 각자 옷 깊숙이 넣어두었다. 도운의 집에서 온 장희의 패물은 모두 장희가 챙겼다. 모든 재물이나 식량을 가져갈 수 없어 외양간 아래 땅을 파 깊숙이 묻어두었다. 키우던 소는 이리저리 떠나는 식구들에게 나눠 주고, 제일 튼튼하고 힘센 놈 한 마리만 골라 수레에 메었다. 수레에는 장희 가족이 당분간 먹을 음식과 여분의 옷, 이불, 불안한 표정의 연희가 올라앉아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달구지 소리가 조용한 산 길에서 제법 시끄럽다.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처음에는 힘차게 수레를 끌던 소도 힘든지 도중에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오라버니가 힘주어 끌면 마지못해 몇 발을 내딛었다가 나중에는 아예 주저앉기까지 했다. 북한군이 쫓아올까 두려워 소를 재촉하는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모습을 보며 장희는 지금이 꿈인지, 불과 몇 달 전 행복해하던 자신의 모습이 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운이 떠날 때 불안해하던 그 마음은 어쩌면 여자의 직감과도 같은 예지력이고, 그걸 느꼈을 때 그를 잡고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 적어도 이 피난길에 그와 나는 손을 잡고 함께 했을 텐데 생각했다. 연락이 끊긴 도운도, 전쟁이 난 지금의 이 난리도 장희에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넋을 놓은 사람처럼 조용히 달구지에 앉아 손에 든 인형을 불안한 듯 꼭 안고 있는 동생 연희를 눈으로 좇으며 침울한 표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뿐이었다.
새벽에 출발해 해가 질 때까지 걸어 도착한 깊은 산 골짜기에는 움막 한 채가 덩그러니 가족을 반기고 있었다. 미리 와 있는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 장희네가 온다는 연통을 받고 대강 지어놓은 집인듯했다. 좁지만 단단한 움막은 아쉬운 대로 비바람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북한군이 여기까지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풀과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꺾어다가 움막을 덮었다. 날씨가 어두워져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가족은 가져온 식량으로 대강 허기만 면하고 움막에 들어가 이리저리 뒤엉켜 누웠다. 장희는 누군가 듣을세라 큰 한숨을 조금씩 천천히 입 밖으로 불어냈다. 가슴속에 무언가 가득 차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누워 어둠에 익숙해지자 서로의 하얀 눈만 빛나 보였다. 처참함과 피곤함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쏟아지던 잠도 이리 누워 있으니 어딘가로 달아나 버렸다. 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와 부엉이 소리가 섞여 자장가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 깊은 산속은 지금의 난리를 꿈에도 모르는 양 평화로웠다. 약혼자를 잃은 장희도, 집과 재산을 버리고 나온 다른 이들도 지금의 이런 평화에 감사해야 했다.
아무리 산골이라 해도 대충 만들어 놓은 움막집의 여름은 낮은 덥고 밤은 서늘했다. 불이나 연기가 북한군의 눈에 띌까 봐 음식도 제대로 해 먹을 수 없었다. 모기도 기승이었다. 연희는 모기에게 물린 팔다리를 퉁퉁 붓고 피가 나도록 긁어댔다. 사람들끼리 돌아가면서 망을 봤으나 북한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불안에 떨면서 두려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가져온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고, 나무껍질을 벗겨 질근질근 씹어먹었다. 장희 가족은 모두 웃음을 잃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내다 보니 두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 버티는 사이에 골짜기에 머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모두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고 믿을만한 이들이었다. 집에서 이곳으로 떠나 올 때 헤어진 김 씨도 이 골짜기로 찾아 들어왔다. 전라도는 남쪽 끝까지 북한군에게 점령을 당했다고 했다. 발이 빠른 김 씨는 간혹 산 아래로 내려가 마을에 남은 사람들에게서부터 여러 가지 소식을 듣고 장희네 가족에게 전달해 주었다. 김 씨는 최도운네 소식도 전해 주었다. 도운과 함께 서울에 가 있던 박서방을 만났다고 했다. 전쟁이 터지고 박서방은 가족들을 찾아 피난민들과 함께 바로 남쪽으로 내려왔고, 최도운과 그의 부대는 끝까지 남아 서울을 방어한다고 했다. 서울이 점령되었으니 그들은 모두 죽었을 거라 했다. 최도운의 부모님은 끝까지 마을에 남아 최도운이 올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기다리던 중 북한군에 총살당하고, 최도운의 어린 동생만 작은 아버지와 함께 겨우 몸을 피했다고 했다. 최도운이 죽었다는 말에 가족들은 모두 장희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장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장희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이상했다. 울고 불고 해야 정상인데 마음이 지쳐서 울기도 힘들었다. 지금 닥친 현실이 진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그냥 오늘 하루를 살아서 버텨내는 것이 장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김 씨가 전해 준 소식 중에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유엔군이 참전했고, 낙동강에 방어선이 구축되어 우리 군의 반격도 시작되었다는 얘기였다. 유엔군이 인천으로 들어가 서울도 거의 되찾았다는 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 장성의 북한군도 모두 철수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골짜기 식구들에게는 그 얼마를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가져온 식량이 동이 난 지 오래였다. 장희네가 넉넉히 들고 오긴 했지만 골짜기에 사람이 늘면서 굶어 죽어가는 이들을 그냥 볼 수가 없어 조금씩 나누어 주던 것이 지금 장희네를 굶주리게 했다. 삐쩍 말라 먹을 것도 없는 누렁소 녀석을 잡은 것도 열흘 전의 일이었다. 연희는 그 소에게 황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정을 가득 줬었다. 황금이를 살려내라며 울며불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괴뢰군이 듣는다며 겁을 줘 그 입을 막았었다. 9월, 지천에 널린 게 열매라고는 하지만 주변의 것들은 다 따 먹고, 파 먹은 지 오래였고, 북한군에게 들킬까 두려워 나가 돌아다니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모두들 오랜 기간 굶주려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어보는 게 꿈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들이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는 것을 보다 못한 정철이 아버지 조한철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제가 김 씨와 같이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으흠...”
조한철의 눈썹이 꿈틀 했다. 정철은 말을 이었다.
“저도 김 씨 못지않게 발도 빠르고, 젊은 사람 몇이 밤에 가서 숨겨 놓은 식량을 마저 가지고 오면 여기 식구들 또 한동안은 버틸 수 있지 않겄스라우? 그 사이에 국군이 북한군들을 다 몰아내길 바래야지라.”
“흠... 꼭 너까지 가야쓰겄냐?”
“제가 안 가면 집 어디에 곡식을 숨겼는지 다른 이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 식구들 먹을 음식이고, 우리 집에 가는 일인디 지가 빠질 수는 없지라.”
“갔다가 북한군이라도 마주치면 어쩐다냐?”
“밤늦게 사람들 눈을 피해 다녀오겠습니다.”
“으흠... 여기 있다가 다 굶어 죽게 생겼으니 방법이 없구나.”
“제가 최대한 조심히 조용히 다녀오겠습니다.”
“일단 알겠으니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자.”
움막 앞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생각하던 정철은 잠시 뒤 아들을 다시 불렀다.
“준비를 해라. 나도 같이 갈 것인께.”
“아버지 무슨 말씀이시오? 안 될 말씀이오.”
“우리 집에서 누군가 가야 헌다면 내가 가는 것이 맞다.”
“제가 갈 것이랑께요.”
“너는 우리 집안 장손이여. 안 된당께.”
“안됩니다. 아버지는 무리랑께요.”
“너를 혼자 보낼 수는 없다. 같이 가는 대신 산 입구까지만 가서 너는 거기서 기다리면 될 것 아니냐. 마을에는 사람들과 함께 내가 갈 것이고, 짐을 가져오면 산에서부터는 네가 받아지고 오면 될 텐께.”
“아버지는 안된당께요. 아버지는 계시오. 제가 후딱 다녀올 테니.”
“내가 가야 한다니께.. 좀 있음 추석이고 묘도 돌아보고 올 것 인께.”
이 난리통에 명절이 무엇이고 조상은 또 뭐냐고, 이러다 죽으면 그 조상 따라갈 거냐고 어머니가 펄쩍 뛰었다. 하지만 조한철은 완고했다. 조상 묘는 핑계일 뿐이었다. 온 가족이 뜯어말렸지만 아들은 산 입구에 숨겨두고 자신이 집으로 가 다른 젊은 사람들과 짐을 지고 오겠다는 아버지의 완고한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 조한철과 조정철은 옛집을 향해 다른 이들과 함께 떠났다.
그 밤은 장희 인생에 있어 가장 불안하고 긴 밤이었다. 마음이 아리던 도운의 죽음도 며칠 배를 곯으니 머리에서 잊힌 지 오래이고, 지금은 단지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무사히 돌아오길 달을 보며 빌고 또 빌었다. 달에게 빌면서도 오늘따라 더 밝아 보이는 저 달이 무심해 원망도 했다. 그 원망이 화를 불렀던 것일까? 그날 밤 그 골짜기에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일 년 같은 하루가 세 번이나 지났다. 그날 야행에 골짜기 젊은 남자들이 모두 함께 했기에 소식을 알아올 사람도 없었다. 그저 초조해하며 기다릴 뿐이었다.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도 머리에 띠를 두르고 드러누웠다. 철없는 연희만이 밥 언제 오냐고 가끔씩 보챌 뿐이었다. 사흘 뒤 오후, 김 씨가 다리에 피가 흥건한 채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총알이 박힌 자루 하나를 등에 맨 채로. 골짜기 여자들은 모두 김 씨의 주변에 몰려 울부짖으며 각자의 남편과 아들을 찾았다.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된 김 씨가 꺽꺽 거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소리 때문의 김 씨의 말들은 정확하지 않았으나, 산골 모두의 귀에는 그의 울음 섞인 그 말소리들이 너무나도 정확히 귀 속에 들어가 박혀왔다.
마을로 내려가는 산 입구에서 정철은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짐을 같이 옮기기로 하고, 조한철과 나머지 일행들은 조한철의 집으로 무사히 들어갔다고 했다. 창고 안쪽을 파서 숨겨놓은 쌀이며 여러 곡식들을 지게에 지고 나서는데 마침 집으로 들어서는 북한군과 마주쳤다고... 그들은 조한철의 집을 본거지로 삼고 주변을 도륙하는 자들이었는데 전쟁상황이 여의치 않아 철수하기 위해 짐을 챙기러 왔다가 마침 집주인인 조한철과 마주치니 옳다구나 하고 그들을 잡아 가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바로, 남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중간에 조한철을 묶어둔 채 인민재판이라는 것을 했다고 한다. 멀리서 아버지가 꽁꽁 묶인 채 총에 쫓겨 끌려가는 것을 본 정철 역시 달려들다 같이 잡혀 묶였다고 했다. 북한군들은 읍사무소 공무원인 조정철과 그 일대 지주인 조한철 부자의 악독한 짓을 서로 고발하게 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구타와 총으로 협박해, 오죽하면 ‘지난 설에 가족들끼리만 고기를 넣은 떡국을 끓여 먹더라.’라는 당연한 일상까지 고발이라는 이름을 통해 여러 거짓과 함께 버무려져 큰 죄가 되었다고. 그리하여 두 부자가 북한군의 낄낄거리는 비웃음 속에 그토록 존경받던 마을 사람들의 돌에 맞아가며 피범벅이 된 채 밤새도록 묶여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듣던 중, 장희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까무라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 뒤 북한군이 쏜 총에 두 사람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사실까지 김 씨가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북한군들은 김 씨가 조한철네 집에서 머슴처럼 일을 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회유하려 들었고 김 씨는 마지못해 그들을 따르는 척하다 같이 붙잡힌 사람들과 함께 곡식을 들고 몰래 탈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들켜 모두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아 죽고 다행히 다리에 총알이 스친 김 씨만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여자들 모두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울고불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기도 했다.
장희는... 장희는 스스로가 무서울 정도로 담담해졌다. ‘아직도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지금 쓰러진 어머니와 아직 어린 동생을 돌볼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고불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은 모두가 안전해진 다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그리 비참하게 죽게 한 북한군들에게 이가 갈렸다. 그들이 자신의 정혼자도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분노는 생존의 위협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장희를 슬퍼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장희는 김 씨가 지고 온 곡식을 조금씩 나눴다. 그리고 한 묶음을 빼고 모두 김 씨에게 주었다.
“이것들을 아재가 알아서 모두에게 나눠 주시오.”
놀라 고개를 드는 김 씨에게 장희는 말을 이었다.
“골짜기 식구들 모두 가족이 죽었고, 그 목숨 값이라기엔 택도 없이 적은 양이지만 다들 이거라도 먹고살아야 안 하겄소? 아재도 꼭 드시오. 나는... 나는 아재라도 살아 돌아와 주어 참말로 고맙소.”
자신보다 열 살은 많은 김 씨가 죄책감으로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장희는 돌아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힘을 꼭 주어 버티고 섰다.
움막으로 돌아와 쌀을 한주먹 꺼내 박박 씻었다. 물을 잔뜩 넣고 한참을 끓여 미음을 만들어 탈진해 누운 어머니 곁에 앉았다.
“엄니, 이거 드시오.”
“...”
장희의 모친은 눈을 감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제대로 소리 내지도 못하고 끅끅 거리는 기괴한 소리만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장희는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숨을 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얼마 안 남았소. 이거라도 드시고 힘을 내야 우리가 떠날 수 있단 말이요.”
그제야 어머니가 눈을 뜬다. 장희가 계속 말했다.
“여기 있다간 우리 모두 굶어 죽소. 집으로 가도 북한군이 다 태워버려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니 살 곳을 찾아 떠나야 우리라도 살지라우.”
“살아 뭣허냐? 나는 너 아부지 따라가련다. 내 아들 따라가련다.”
말을 하는 모친의 목소리에 슬픔이 가닥가닥 갈라져 묻어 나온다.
“그럼 나는 어쩌란 말이오? 나도 따라 죽을까? 그랍시다. 같이 죽읍시다. 그란디 저 어린 연희는 우짠디요? 엄니가 여기서 이러고 있음 우리 남은 세 목숨 다 같이 끝나는 것이오. 그리 아시오.”
같이 대거리라도 하고 앉아 있다가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그렇게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오히려 모질게 말을 내뱉고 돌아서 거적때기로 대충 씌워놓은 문을 걷어차고 나왔다. 저 앞에서 아직도 철없이 또래들과 놀다 들어오는 연희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연희가 충격을 받을까 싶어 장희는 연희에게로 걸어갔다. 성큼성큼 걷는 발바닥이 구름에 닿는 듯 몸이 붕붕 뜬 기분이다.
‘또 이런다.’
장희는 혼자 중얼거렸다. 요즘 충격을 받는 큰 일을 많이 겪어서 인지 장희는 자꾸 현실이 꿈같이 느껴졌다. 몽롱해지기도 했고, 구름 위를 걷는 듯 붕 뜬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몽환적인 느낌들은 충격을 받았을 때 장희 마음에서 완충제 역할을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들이 장희가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일종의 회복 과정이라 생각하고 난 뒤로 이상하게도 장희는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치료받는 느낌이 들어 도로 기운이 났다.
연희의 손을 잡고 쪽샘까지 올라갔다.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연희에게 올라가면 실컷 먹어 배 부르게 해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샘물에 다다르자 장희는 연희에게 물을 받아주었다.
“이거 마시랑게”
“밥은 어디 있당가?”
“밥은 없어.”
“밥 준다고 혔잖여.”
“밥은 없어. 그냥 이 물 마시랑께. 배불리 먹게 해 준댔잖어.”
“이게 뭐여. 으으. 언니는 거짓부렁쟁이여”
화가 나 팔을 마구 휘두르는 연희를 꼭 품에 안았다.
“놔! 이거. 숨막히잖여.”
연희가 답답한지 소리를 질렀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배신감에 눈물을 흘리는 연희를 보니 슬픔의 고통이 어느 정도 덜어졌다. 내가 내 품 안에 품은 이 아이는 꼭 살리리라. 배곯는 일 없게 하리라. 삶의 목적이 생긴다.
“연희야.”
“...”
화가 나서 입이 오리주둥이처럼 댓 발이나 튀어나온 채, 연희는 말이 없었다. 안았던 팔을 풀며 동생과 눈을 맞춰 몸을 숙인 채 장희가 말을 이었다.
“물 마셔. 지금은... ”
“...”
“내려가면 밥 있어. 하얀 쌀밥. 쌀 불려놓고 왔당께. 제대로 불 때까지 조금만 놀다 가자. 가면 진짜 맛난 흰쌀밥 지어 줄게.”
“정말이지? 흰쌀밥이라고 그랬지? 아버지랑 오라버니가 온 것이여?”
“아니, 김 씨 아재만. 아버지랑 오라버니는 좀 더 있어야 혀.”
“아재가 쌀을 가지고 온 것이여?”
“응”
“우리 집서?”
“응”
신나서 묻는 연희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샘물 옆 너럭바위에 앉아 맑은 물을 향해 연희가 조약돌을 던지며 노래를 불렀다. 장희는 조약돌에 튕겨 나온 물방울이 튀어 옆 바위에 짙은 색의 그림이 그려져 가는 것을 보았다. 그 그림은 도운의 얼굴 같기도 했고 피를 흘리며 죽어간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얼굴 같기도 했다. 그렇게 연희가 던진 조약돌이 그린 그림을 보며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가슴은 찢어지도록 아픈데 다행히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환영들을 계속 보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파 장희는 괜히 물로 얼룩이 진 바위에 물을 더 끼얹어 바위를 완전히 까맣게 적시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거기서 장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연희에게 아버지와 오빠는 먹을 것을 구하러 더 멀리 가셨고, 좀 더 지나야 볼 수 있다는 곧 들킬 거짓말을 했다. 연희와 있는 이 시간만큼은 장희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다행히도 연희는 움막으로 내려가면 먹을 하얀 쌀밥에 들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물고기를 잡는다고 하얀 허벅다리가 다 드러나도록 바짓가랑이를 접어 올리며 물속에 들어가 첨벙거리는 연희를 보며 장희는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도, 오빠도 없는 다 불 타 없어진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저렇게 쓰러진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데리고 뭐라도 해서 먹고살려면 누구라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모, 귀진이 이모.”
장희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모댁으로 가자. 이모라면 저렇게 실의에 빠진 어머니를 다시 웃게 만들 것이다. 이모가 있는 나주에서라면 우리 세 가족 의지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모는 무사하실까?’ 걱정도 했지만 이모부는 수완 좋은 사업가라고 들었다. 그런 분이라면 어떻게든 가족들 살 길은 마련했을 것이다.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몸에 다시 힘이 실린다. 희망이 생겼다.
해가 서쪽 산으로 기울어 가니 바람이 서늘해졌다. 옷이 홀딱 젖은 연희를 챙겨 서둘러 내려와야 했다. 돌부리가 가득한 비탈길을 날 듯이 뛰어 내려온다. 산 저쪽 편으로 지는 해의 노을이 처절하게 아름답다. 멀리서 까마귀가 노래라도 하는 양 까악 까악 울어댄다. 움막에 가까워지자 장희는 누워계신 어머니가 걱정됐다. ‘미음은 좀 드셨을까?’ 생각하며 혼자 혀를 ‘쯧’ 찼다. 그 심정이 오죽할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하자 마음 아프다. 직접 떠먹여도 드리며, 조금은 좋게 말할 걸,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고 나온 것이 후회되었다. 움막에 드리워진 거적때기가 오늘따라 더 묵직해 보인다.
“엄니, 죽은 좀 드셨소?”
괜스레 아무렇지 않은 듯 큰 소리로 물으며 움막의 거적때기를 들춘 장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얼른 돌아서 연희를 품에 안아 어린 동생이 방 안에서 일어난 처참한 광경을 보지 못하게 했다.
엄니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