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제4장

by 임효진

김 씨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를 산에 묻고 돌아온 장희는 밥을 가득 지어 연희와 나눠 먹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주변 이들의 수군거림으로 어린 소녀는 원치 않게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죽음까지 모두 알아버린 듯했다. 하지만 연희는 원래의 자기 모습처럼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그다음부터는 장희의 손을 꼭 잡고 장희의 눈치를 보며 장희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장희는 그런 연희가 안쓰러웠다. 언니인 자신마저 절 놓고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연희의 마음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연희야.”

“응?”

“언니는 연희랑 평생 같이 살 거야. 너가 다시 학교에 가는 것도 보고,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도 볼 거여. 그리고 멋진 사람 만나 연애도 하고 결혼하는 것도 보고... 우리 연희 이런 힘든 일 다시는 겪지 않게 언니가 끝까지 옆에서 지켜 줄랑께, 아무 걱정 말어.”

“언니는? 언니는 뭐 시집도 안 가고 나랑 살 텐가?”

연희의 말에 장희는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내가 또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수 있을까? 이성에 대해 눈을 뜬 뒤로 장희는 ‘최도운’이라는 사람만을 마음에 담았었다. 집안에서 정해진 혼사라서 그런 것 만은 아니었다. 선해 보이는 서글서글한 눈, 그 눈에 담긴 눈동자는 항상 반짝였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있었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그 슬픔에 괜스레 장희는 마음이 아려왔다. 조용하고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는 강단이 있었다. 그 목소리에 장희는 수천 번 설레고, 수백 번 웃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그는 죽었다. 장희가 꿈꾸던 미래 또한 없어졌다. 그가 아니면 장희에게 따뜻한 미래를 줄 사람은 없다. 이제 장희의 미래는 오직 동생 연희뿐이었다. 장희는 연희를 위해, 연희의 인생을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내기 위해 스스로 거름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남지 않은 쌀은 볶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서 북한군들이 모두 떠났고 국군이 장악했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장희는 옛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마을 최고의 부잣집인 장희의 집을 북한군이 철수하며 불을 질러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만이 그 이유가 아니었다.

아버지 아래 소작 짓던 마을 사람들이 난리 통에 주인이 모호해진 그 땅들을 다 차지하고 앉아, 지금 장희 자매가 돌아가면 자기네 땅을 도로 빼앗길까 싶어 사납게 굴 것이라는 김씨의 충고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마을 사람들의 돌팔매질로 비참하게 죽은 그곳 근처에는 발을 디디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자식을 잃은 고통이 크다 해도 어머니는 그렇게 가시면 안 되는 거라 생각했다. 남은 장희와 연희를 끝까지 지켜주셔야 했다. 그렇게 간 어머니의 나약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이모가 떠 올랐다. 어린 시절, 이모는 장희의 또 다른 어머니였다. 항상 오라버니밖에 몰랐던 어머니보다 장희는 이모를 더 따랐었다. 그 미소와 따뜻함이 마음속에 차오르자 장희는 원래 계획대로 어머니의 고향이자, 이모가 계신 나주에 가 새로이 터를 잡고 지내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도 나주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나주 이외에는 아는 이도 갈 곳도 장희 자매에게는 없었다. 아직 어린 연희를 데리고 며칠을 걸어가야 될지 모르는 먼 길이었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반겨줄 이도 있고, 살 길이 열릴 거라는 희망이 장희 마음속에 있었다. 이제 가을이지만 밤은 제법 추웠다. 잘 곳을 못 찾으면 찬 이슬을 맞고 밖에서 노숙을 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장희는 연희의 옷을 단단히 입혔다. 볶은 쌀을 봇짐에 조금씩 나누고 어머니의 패물도 몽땅 챙겨 나눴다. 무겁겠지만, 연희도 짐을 메도록 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연희라도 도망을 쳐야 하고 연희가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가족을 잃어 슬픔에 빠진 골짜기 어른들께 이제 떠난다고 인사를 했다. 북한군이 떠났다는 소식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 몇 남지 않았다.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부잣집서 떵떵거리고 살던 철없는 어린 계집아이 둘이 떠난다니 골짜기 식구들은 모두 걱정이 돼,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중에는 자신이 나눠 받은 쌀을 도로 돌려주며 눈물짓는 할머니도 있었다. 한사코 거절하고 돌아서는데, 김 씨가 절뚝거리는 다리로 따라나섰다.

“괜찮소. 물어물어 가면 우리 둘이서 실컷 갈 수 있당께. 아재는 아즉도 내가 애기 같은가?”

“나 같은 몰짱한 남자가 걸어도 이틀은 꼬박 걸어야 하는 먼 길을 어린 아가씨 둘이 가게 할 수 없당께요.”

김 씨는 말을 하면서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아직도 절뚝거리는 자신의 다리에 장희의 눈길이 가 닿는 것을 보며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리와 허리를 곧게 펴고 섰다. 하지만 그 덕에 천으로 아무렇게나 둘러싼 상처 입은 종아리가 더 도드라져 눈에 들어왔다.

“아재, 참말로 괜찮소. 연희랑 놀면서 쉬면서 느긋하게 갈랑께. 아재는 꺽정 말더라고.”

말은 자신 있는 듯 그리 뱉었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전쟁 뒤 폐허가 된 마을이며 길에 어떤 도적 떼가 설칠지, 강도를 만날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신세를 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누구보다 단단하고 강해져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 동생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한 장희였다.

김 씨 말에 의하면 일단 광주 송정리역까지만 가면 거기서 나주까지는 금방이라고 했다. 김 씨가 대강 불러준 대로 종이에 거쳐 갈 길과 마을을 적어 확인하며 산을 걸어 내려갔다. 잠시 머물렀던 조용한 산골짜기만큼 마을도 조용했다. 다만,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기다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언니, 저기 저 짝 집서 밥을 지어먹는 모양이네. 앗, 저 짝에서도, 저 짝도”

밥 짓는 연기가 아니었다. 지나는 동네마다 가득 찬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배고픈 연희 눈에는 밥 짓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를 잃었구나. 전쟁의 잔혹함에 장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고, 김 씨가 알려준 길은 정확했다. 마을 이름들과 큰 나무, 장승의 위치까지 다 알고 있는 김 씨가 장희의 집과 외가댁 사이를 얼마나 오다닌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큰길에서는 태극기를 단 군용차가 군인들을 가득 싣고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희 외조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엄마의 동생인 이모가 한 분 남아 나주에 살고 계셨다. 이모 역시 나주에서 남부럽지 않은 집에 시집 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고, 다만 자식이 없는 것이 마음이 쓰인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었다. 장희도 어린 시절에는 종종 이모를 만났었다. 나귀진이라는 이름 끝자를 따 장희는 ‘진이 이모’라 부르며 꽤 잘 따랐고 자식이 없어 정철이나 장희를 자신의 아이처럼 아끼고 예뻐해, 틈만 나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장성까지 조카들을 보러 왔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 횟수가 줄어들더니 연희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그 발길을 딱 끊어 이모를 볼 일이 잘 없었다.

“저는 저대로 지 식구덜 잘 간수하고 살아 여지...”

어쩌다 이모가 궁금해 그 안부를 물을 때면 한숨을 쉬며 말을 아끼는 어머니였다.

한동안 보지 못한 이모지만 자신을 얼마나 예뻐했는지 너무나 잘 기억하는 탓에 장희는 이모댁으로 가는 길이 고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 달 사이 장희에게 벌어진 이 기가 막힌 일들을 이모에게 모두 털어놓아야겠다. 그러면 이모는 어머니처럼 나를 꼭 품에 안고 같이 슬퍼해주리라. 그러면 여태껏 제대로 울지 못했던 장희도 시원하게 펑펑 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슴 가득 진 무거운 짐들을 모두 다 풀어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장희의 발길은 점점 빨라졌다. 그 발길에 죽어나는 것은 연희였다. 고작 열한 살 된 어린 여자 아이가 성인인 장희의 빠른 발걸음을 맞춰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를 꼭 물고 뛰듯이 언니와 속도를 맞췄지만 반나절만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고 길 가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피난 기간 동안 그새 발이 자란 모양이었다. 발에 안 맞는 작은 신발을 신고 장시간 걷자니 왼발 엄지발톱이 깨어져 나갔다. 절뚝거리는 동생을 업었다 걸렸다 하며 천천히라도 앞으로 나아갔다. 여정이 길어지면 큰일이었다. 볶은 쌀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길이라도 잃던지, 만일, 나주에서 이모를 못 만나면 이것으로 버티며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볶은 쌀을 아껴 먹였더니, 항상 배고픈 연희는 몇 발 걷지도 않고, 이제 밥 먹을 시간이 아닌지 물어왔다. 연희보다 적게 먹은 장희는 더 배가 고팠다. 배에서 천둥소리가 날라치면 연희가 들을까 싶어 괜히 큰소리로 예전 이야기도 하고, 나주서 손꼽히는 부잣집이라는 이모 댁에 가면 갈비찜에 잡채에 연희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둘의 배를 더 요동치게 했다.

북한군들이 철수하며 남아있는 식량이나 가축들을 모조리 먹고, 끌고 갔기에 마을마다 거지들이 들끓었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 까맣게 된 얼굴에 흰 눈알만 굴리며 다친 몸으로 구걸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장희는 보따리 속 패물과 볶은 쌀을 더 깊이, 깊이 감추었다.

“언니, 저 아줌씨가 안고 있는 아그는 금세 죽을 것 같은디 우리 쌀 좀 나눠주면 안 되는가?”

불쌍한 모자를 보고 연희가 말간 얼굴로 물었을 때, 장희는 버럭 화를 냈다.

“우리도 언제 저 꼴이 될지 모른당께. 지금 우리가 생판 남 걱정할 땐가?”

그러면 연희는 입을 꼭 다물고 장희 손을 더욱 꼭 잡고 몇 번이나 불쌍한 그 아기를 돌아보며 장희의 걸음을 종종 거리며 맞춰 따라왔다. 장희도 마음이 아프다. 어쩔 수 없다. 장희가 이 쌀을 나눠 주던지 나눠 주지 않던지 간에 너무 오래 굶은 저 여자와 아기는 죽을 것이다. 장희가 만약 쌀을 준다면 그 수명이 그 한 끼만큼 늘어날 뿐, 결국 저들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장희 자매는 다르다. 이 쌀을 어떻게든 아껴먹으며 나주까지 무사히 걸어가야 한다. 게다가 도중에 보따리에서 쌀을 꺼내는 것을 저 거지들이나 고아들이 본다면 장희 자매가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중간중간 아직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빈 집이 있어 밤에는 그곳에서 여독을 풀 수 있었다. 아마 여태 빈 집인 것을 보면 이 집 가족도 화를 겪었으리라. 하루 종일 걸었던 탓에 밤에는 아무 생각 없이 곯아떨어질 수 있어 좋았다. 발톱이 빠졌는데도 계속 걸으니 어린 동생의 발가락은 제대로 아물지 못하고 계속 피가 났다. 어린 나이에 이런 고통을 참으며 칭얼대지도 않고 용케 여까지 걸어왔구나 싶어 장희는 천으로 동여 멘 작은 동생의 발을 몇 번이나 어루만졌다. 마음이 아프지만 얼마 안 남았다. 견뎌내야 한다. 조금만 더 참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든 여정이었다. 건장한 사내들은 하루면 걸어간다는 광주 송정리까지 꼬박 사흘을 걸려 도착했다. 오늘만 여기서 자면 내일은 나주다. 이모가 사는 노안면은 다행히도 광주와 붙어 있어 금방이다. 오늘 밤은 다행히도 역 근처 빈 집을 찾아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지금 꼴이 너무 엉망이라 내일 깨끗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이모를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인 없이 오래 방치된 집에서는 쥐와 바퀴벌레가 드글거렸다. 그래도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파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볶은 쌀을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고 목이 메어 컥컥거리는 연희에게 물을 떠주려고 집 앞 우물가에 나갔다. 칠흑같이 깜깜한 밤이다. 날씨가 흐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더듬거리며 우물 뚜껑을 열어 바가지를 내리는데 ‘철렁’하는 물소리는 나지 않고 턱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우물 속에서 울려온다. ‘물이 마른 것일까?’ 궁금해 우물 안을 들여다본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어둠에 눈이 익어 희미하게 우물 안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장희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는 기다시피 집으로 돌아갔다. 우물 안에는 처참하게 죽은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역한 냄새와 함께 썩어가고 있었다.

온몸을 후들거리며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돌아온 장희를 연희는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물은 어딨냐는지 왜 그리 떠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저 그냥 불안한 듯 장희의 손을 꼭 붙잡고 품속으로 안겨 파고 들뿐이었다. 그대로 연희를 안아 토닥거리며 재운 장희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 돌아가신 것도 봤고, 여기까지 오는 길에 이곳저곳 죽어가는 사람들과 널브러진 시체는 수없이 봤다. 하지만 저렇게 떼죽음을 당해 우물에 처참하게 구겨져 방치된 시체를 보니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계속 생각났다. 누군가가 정리해 주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와 오라버니도 우물 속의 저들처럼 비참하게 누워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나주에서 이모를 만나는 즉시 사람을 보내리라.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시신을 거두고 어머니 옆에 작은 봉분도 만들고 때가 되면 제사까지 지내리라 다짐하며 잠든 연희의 손이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얘지도록 꼭 잡는 장희였다.

아침이 왔다. 길을 나선 이후 날씨가 맑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엔 이렇게 비가 왔다. 하지만 볶은 쌀도 얼마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장희는 시체로 가득 찬 우물가 바로 앞에 있는 이 집에서 조금도 더 머물고 싶지가 않았다. 비료 포대 같은 것을 대충 머리와 어깨에 둘러 쓰고 몇 번이나 연희의 옷매무새를 살펴봤다. 이 정도면 두 어 시간 비에 젖지는 않으리라 생각이 든 장희는 연희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곧 수확철인지 황금빛 벼의 물결이 눈앞에 가득하다. 전쟁의 상처 따윈 모르는 듯 자란 저 벼들이 부러우면서도 대견하다. 거진 다 왔다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점심시간 즈음에는 이모부의 성함인 ‘송하일’이라는 문패가 걸린 집 앞에 설 수 있었다. 김 씨에게 듣던 대로 근방에서 보기 드문 큰 기와집이었다. 나름 단광리 최고 부잣집이라던 장희네 집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규모였다.



“이보시오.”

장희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 사람을 불렀다.

안쪽에서 기척이 없자 이번에는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이보시오.”

연희가 마음이 급했는지 더 큰 소리로 문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리더니 우산을 든 어떤 아낙네가 문을 열었다. 온 나라에 난리가 난 것 치고는 집 안 사람들 행색이 깨끗한 걸로 보아 이모 댁은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구나 싶어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누구신지..?”

묻는 여자의 뒤로 집안일을 보는 듯한 남자 하나가 더 섰다.

혹시나 아닐까 불안해하며 장희가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가 송하일 씨 댁 아니여라?”

“여기가 송하일 씨 댁이 맞지라. 우리 주인 양반 찾아오셨소?”

위아래로 훑는 그리 곱지만은 않은 여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귀진 씨가 우리 이모요. 우리 이모 뵈러 왔는디.”

“뭣이라고 라? 아이고...”

말을 못 잇는 여자의 표정에서 이상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나귀진 씨 댁은 맞소. 우짠다요.”

여자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장희의 팔을 반가운 듯 잡더니 울기 시작한다.

“나 귀진씨는 이제 없소. 죽었지라.”

우는 여자 대신 뒤에 선 남자가 말을 한다.

남자의 말에 장희는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이 난리통에 이모가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을 다 잃고 집도 없이 떠도는 지금 이모는 장희 자매에게 남은 하나의 생명줄 같은 존재였다.

‘이제 나는, 연희는 어쩌고 산댜?’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은 것을 간신히 버티고 서 있자니 여자가 눈물을 훔치더니 장희의 옷깃을 잡아 안으로 당긴다.

“일단 안으로 드시오. 이 댁 어른이 지금 외출 중이신디 만나면 아가씨들 만나면 반가워하시지 싶소.”

“이모부는 무사하시오?”

“무사하지라, 이 집 식구들은 운이 좋았소.”

장희는 여자를 따라 별실 같은 곳으로 들어섰다.

“송실이가 이리 허망하게 갈 줄 누가 알았겄소?”

“송실이?”

“아가씨 이모 말이요. 송 씨 집안에 시집을 왔응께 송실이제.”

“아...”

대답을 하며 장희는 옆에 앉아 허겁지겁 떡이랑 과일을 집어 먹는 연희를 침을 꼴딱 삼키며 바라보았다.

‘얼마 만에 보는 떡과 과일인가?’

음식을 보니 마음이 변한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이모의 죽음보다 당장 앞에 놓인 저 음식들이 연희와 장희에겐 더 절실했다.

“아가씨도 드시랑께요. 송실이가 그리 갔어도, 아니 그리 갔으니 더 이 집주인 양반이 아가씨를 내 몰라라 할 수 없제. 암 그렇고 말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던 여자는 자신을 강실네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원래 이모는 송실네고 자기는 강실네고 그렇게 성을 붙여 자매같이, 가족같이 의지하던 사이라고.. 이모는 자신을 한 번도 일하는 사람으로 대하고 함부로 한 적이 없는 정말 참하고 순한 사람이었다고도 했다. 말이 자꾸 다른 곳으로 새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탁자 위에 놓은 떡을 집어 꼭꼭 씹어 먹으며 장희는 끈기 있게 강실네의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에 식구 모두 짐을 싸서 저 뒷산 동굴로 숨었지라우. 근디 알고 보니 우리 동네에 들어온 북한군 소위라는 자가 이 집주인 양반이랑 동문수학하던 절친이란 말이 시. 그래서 주인 양반이 북한군 음석도 좀 내어주고, 이런저런 편의를 봐줘 가며 이 집은 여기서 무사했단 말이여. 근디 그 와중에 송실이가 자꾸 장성으로 소식을 넣어 봐야 한다 안허요? 언니랑 조카들 어찌 됐는지 알아야 한다고. 이 난리에 그곳까지 다녀올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다들 말리고 말도 말랑께요. 이 집주인 양반이 처음에는 좋게 말렸제. 때를 봐서 자기가 뭣이라도 해 보겠다고. 그라고 달래다가 나중에는 소리를 지르고 성질을 다 냈당께. 그래서 그랬능가 밤에 아무도 모르게 짐을 싸서 나가버린 거제... 허기사, 에휴... 송실이 그 사람이 진작에 이 집에 정나미라고는 떨어졌지 싶소. 서방이라는 작자가 저리 기집을 대놓고 데려와 같이 사는디 뭣이 좋다고 서방하고 붙어살고 싶겄소?”

“뭣이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송실이가 아그를 못 낳았잖소. 저리 점잖고 다정한 양반이... 아! 둘이서 사이도 좋았단 말이시. 근데 3년 전부턴가? 주둥이에 삐이런 칠을 한 못돼 처먹게 생긴 여자를 하나 끼고 다니기 시작하더니 옆 동네에 살림도 차려주더라고. 꿀이라도 발라 논 것처럼 그 년 집에 허벌나게 드나들더니 종장에는 집에도 아예 안 들어오고 그랬잖소. 그러니 송실이가 그 예뻐하는 조카들 보러 장성도 못 가고 어쨌든 서방 맘을 잡아 볼 거라 이리 애쓰고 저리 애쓰고... 썩어 우라질 것들. 그리 좋은 사람을...”

여기까지 말하다 강실네는 소리를 내어 끅끅 울었다.

“나도 자식을 못 낳고 쫓겨 났당께. 자식이란 것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건디 우리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아이고 썩을 것들, 우라질 것들. 다음 세상에 니 것들이 자식 못 낳는 여자로 태어나 이 벌을 다 받고 살 것이어...”

자기감정에 격하게 취해 한참을 우는 강실네의 한탄을 끊어야 이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희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모는 워찌...”

“아고, 암튼 간에 그렇게 밤에 짐을 싸서 도망치듯 혼자 뛰쳐나가다 북한 것들 총을 맞았제. 처음에 그 시신이 뉘 집에서 나온 건지도 몰라 저기 다리 너머 논두렁에 박혀 있는 것을 이 집주인이 그래도 마누라라고 며칠 밤낮을 뒤져 찾았잖소.”

이모가 그리 허망하게 갔다니... 장희는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의 인생도 기가 차고 슬프지만 이모 또한 그 못지않은 슬픈 삶을 살다 갔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했다. 하기사 이 전쟁통에 편하게 사는 사람이 몇 있으라고...

“기가 찬 것은 송실이가 그리 가고, 보름 만엔가 곡성댁 고년이 안방을 차지하고 들어온 것이제. 이 집주인은 뭣하는 작자인지, 아무리 기집에 미쳤어도 그렇지 그리 잉꼬같이 잘 지내던 마누라를 하루아침에 못 본 척하더니 죽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그새 주둥이만 삐이런 여우 같은 그런 년을 안방으로 들여? 모르는 것들이야 이 집주인 사람 좋다 말허지, 저것이 사람 좋은 것이여? 속이 없는 것이제. 의리도 없고. 몇 년을 그리 발정 난 개 마냥 딱 붙어 지냈는디도 저 짝에서도 여태 소식이 없는 걸로 보면 아그는 송실이가 못 낳는 것이 아니지 싶소. 이 집 양반 문제지.”

욕이 섞인 강실네의 한탄을 들으며 장희는 이모 죽음의 슬픔보다는 이제 ‘나는 어찌해야 되나?’를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장희에게 강실네는 한 줄기 희망 같은 말을 했다.

“아무리 기집에 미쳤대도 이 집주인 양반이 조카들 모른 척은 못할 거요. 송실이랑 그동안 산 정도 있고, 뭣보다 송실이가 남기고 간 것이 얼만디... 일단 집주인 양반 올 때까지 여서 기다려 보소. 아무리 마누라가 죽었어도 처조카도 자식이제, 암 그렇고 말고.”

강실네가 뒤를 돌아보자 아까부터 같이 와 서 있던 남자도 “암, 그라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짝은 이 집서 대대로 집안일을 봐주는 박씨요. 주인 양반 만나러 왔다 이리 기다리고 있소. 하루가 멀다 허고 여기 드나드니 식구나 다름없소.”

강실네의 소개에 박 씨라는 그 남자도 아는 척 인사를 했다.

“내가 이 집 아씨한테 고마운 것이 많은 사람이라. 아씨가 그리 갔다는 소식을 못 전해 가슴이 답답했는데 자식같이 여기던 조카들이 여까지 찾아왔다 하니 맘이 좀 낫소. 나중에 아씨 무덤에도 같이 가 보장께. ”

박 씨가 거기까지 말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에고, 이 집 양반 돌아오셨나 보네.”

벌떡 일어서는 강실네를 보고 장희는 얼른 입가에 떡가루가 묻은 연희의 입을 닦고 일으켜 세워 옷을 털었다. 이모부를 만나면 공손히 인사하라는 말도 단단히 해 두었다.

밖으로 나가자 마당으로 들어서는 하얀 양복에 하얀 구두를 신은 남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학교 시절 몇 번 본 적 있는 이모부였다. 어린 눈에도 이모와 다정한 모습이 참 보기 좋은 부부로 보였었다. 이제 그때의 젊은 남자는 없고 이제 적당히 얼굴에 주름도 지고 흰머리도 희끗희끗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강실네 말대로 입술에 빨간 칠을 하고 이모부의 팔짱을 끼고 선 장희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젊은 여자가 화려한 꽃무늬 옷을 입고 이모부 송하일의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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