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제 5장

by 임효진

연희와 같이 곱게 절을 하고 송하일 앞에 앉았다. 워낙 어릴 때 본 지라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얼굴이었으나 자신과 연희를 보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주름 잡힌 그 얼굴을 보고 장희는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이모 소식을 듣고 왔는가? 둘이만? 다들 무사한가?”


“다들 전쟁 중에 고인이 되셨으라우.”


“뭣이? 쯧, 어쩌다가?”


장희는 그 간 있었던 일을 담담히 송하일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이모가 이모부의 계집질에 맘 편히 살지 못했고, 이모의 죽음에 이모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여기 눈앞에 앉아있는 저 어른에게 두 자매의 앞날이 달렸다 생각하니 이모의 인생이나 죽음은 굳이 되씹고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송하일은 장희의 이야기를 중간중간 놀라기도 하고 한숨도 쉬며 끝까지 들었다.


“아무리 전쟁 통에 사람 목숨이 아무것도 아닌 거라 혀도. 쯧쯧. 나이 든 우리야 사실 살만큼 살았겠다마는 자네 오라비 정철은 정말 아깝네. 아까워. 어릴 때 봤지만 그 인물에, 인품에... 차기 군수감이라고 다들 그랬었는디...”


“...”


장희는 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혼인을 한다 허지 않았냐? 장희조카 시집간다고 너 이모가 옷도 맞추고 한참을 좋아했었는디.”


도운의 이야기가 나오자 장희는 입술을 하얘지도록 꽉 물었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도 전쟁이 나고 소식이 끊겼어요. 죽었을 겁니다.”


“아. 참! 군인이라고 했지야.”


대강 상황을 짐작한 듯 혀를 쯧쯧 차더니 송하일은 말을 이었다.


“안사람이 자네를 참 예뻐했지. 이모가 없어도 여기는 이모 집일세. 여기서 지내게. 아무 꺽정일랑 말드라고.”


기다리던 대답이 떨어졌다. 장희는 조용히 보따리를 풀어 깊숙이 숨겨져 있던 가락지를 비롯한 금붙이들을 꺼내 쌓여있던 손수건을 열어 벌린 채 이모부 쪽으로 밀었다. 어머니의 패물이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송하일의 시선이 느껴지자 장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모부, 부탁이 있어라우. 제가 연희를 데리고 도망치듯 여까지 온다고 아버지와 오라버니 시신을 아직 그대로 놔두고 왔어라우. 어쩌야 할지도 모르겄고. 어머니도 급히 산골짜기에 묻어드리기는 했는데... 세 분 모두 제대로 모시고 싶어요. 이걸로 되겄소?”


“그건 처형의 유품이 아닌가? 넣어두게. 장인, 장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부부는 자네 부모님을 반은 부모처럼, 반은 형님처럼 의지했네. 그 일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넣어두게.”


“허지만...”


“어허, 암말 말게. 넣어두래도.”


“그러면 이모부.”


“그래, 할 말이 있으면 하게나.”


“이 것들로 이 근처에 집을 좀 얻을 수 있겄으라? 일자리도 찾아야 하는디...”


“무슨 소리를? 어린 여자들끼리만 밖에서 집을 얻어 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여기가 집이라 생각하고 지내게. 안 그래도 자네 이모 그리 가고 내 마음이 많이 그렇네.”


“그래도...”


“어허. 이럴 때는 어른 말을 듣는 것이제. 이제 내가 조카들 아버지랑께. 집을 놔두고 어디를 간다는 것이여? 참말로 말 안 들을 것이여?”


단호한 송하일의 말에 장희는 더 이상 나가 산다는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연희를 위해 그게 더 잘 된 일이기도 했다.


“그러면 이모부, 지가 여기서 그냥 지낼 수는 없어라. 할 만한 일을 찾아주시면 뭣이라도 혀서 즤들 밥값은 하며 살고 싶어요.”


송하일이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장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송하일이 조카가 나가서 돈을 번다면 이 일대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욕할 것이네. 게다가 혼기가 꽉 찬 처자가 밖으로 돌다 보면 나쁜 소문에 혼사 길이 막히는 법이여. 내 자네들을 내 자식처럼 거두고, 자네는 물론이거니와 저 작은 조카까정 좋은데 시집보내 줄 것이니 아무 꺽정 말고 자기 집이다 생각허고 그리 지내게. 강실네, 이리 좀 와 보소”


뭐라 거절할 여지도 없이 단호한 송하일의 말에 장희는 일단 시간을 두고 다시 말씀드리지 싶어 입을 다물었다. 강실네는 밖에서 다 듣고 있었던 양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아이들을 부탁하네. 저기 별당을 정리하고 거기서 지내게 하면 되겄지.”


“그라지라, 아이고, 그라지라.”


송하일에 말에 강실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모친이 돌아가시고 안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자네 이모가 쓰던 방이네. 강실네가 말은 좀 많지만 손끝이 야무지고 속도 깊은 사람이네. 깨끗하게 관리하던 곳이니 바로 들어가도 될 것이야.”


“이모부, 참말로 고맙고 죄송하요.”


장희의 말에 송하일은 장희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다.


“아니여. 내가 자네 이모에게 못할 일을 많이 했네. 곧 알게 되겠지만, 내 입장을 자네도 이해해 주시게. 내 소개해줄 사람도 하나 있고...”


곡성댁인가 하는 젊은 여자 이야기지 싶어 장희는 그냥 ‘네’ 대답하고 방에서 나왔다.


별당으로 안내하며 강실네는 자기 말고도 집에서 같이 지내며 일을 하는 이가 다섯이나 더 있다고 알려주었다. 청소도 하고, 음식도 해 줄 것이니 아무 걱정 말고 놀고먹고 지내면 된다고. 저기 곡성댁이라는 낯판때기 두꺼운 저 여자는 잘만 그러고 있는데 이 집 조카인 장희가 그리 못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장희는 그저 ‘예’ 대답하며 조용히 뒤를 따랐다.


“우와”


별당은 원래 장희의 방보다 훨씬 넓었다. 깨끗하고 안채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모부의 그늘 아래 호의호식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모부 말씀대로 곱게 있다 시집이나 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운이 아니라면 연희 뒷바라지나 하며 그냥 홀로 늙어 죽어도 상관없다고 장희는 생각했다.


배불리 먹고 깨끗하게 씻은 다음 푹신한 이불 위에 누우니 자꾸 옛 집과 가족, 도운이 생각났다. 하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냥 그건 꿈같은 옛일이고 이제부터 장희는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연희도 학교를 찾아 보내야 한다. 옛 일을 생각하며 울고 앉아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동안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두 자매는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곤히 잠들었다. 전쟁이 난 후 처음으로 발을 뻗고 편히 잘 수 있었다. “


다음 날, 강실네가 정성껏 차린 아침을 먹고 상을 물리는데 어제 만났던 박 씨가 찾아왔다. 이모의 무덤을 안내해 준다고 했다. 집 뒤로 난 길을 따라 선산에 있는 무덤까지 그를 따라 걸었다. 나주평야가 그리 넓다더니 주변이 온통 논밭이었다. 황금빛 물결은 바람에 출렁이며 쏴쏴 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아름다운 풍경에 잘 어울리는 한 편의 연주곡 같았다. 송가네 문중 묘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모의 묘는 허망했던 그녀의 삶과는 달리 단정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무덤은 슬퍼 보이지 않았다. 가져간 술을 잔에 따라 무덤가에 부어주고 한참을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저렇게 선산에 제대로 자리 잡고 앉은 이모의 무덤을 보자 부모님과 오라버니가 더 마음 아팠다. 자리가 정해지면 찾아가 인사를 드리리라. 그 전에 자신도 얼른 자리를 잡고 바로 서야겠다고 다짐하는 장희였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는 곡성댁이라는 여자와 안면을 텄다. 정확히 따지자면 그녀가 장희의 별당으로 찾아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너가 장희구나.”


“...”


별당으로 통하는 작은 문에 삐딱하게 기대 서서 다짜고짜 말을 놓는 당돌함에 장희는 입이 붙어버렸다.


“나는 말이제, 이 집 작은 마님이여. 아니제, 성님이 돌아가셨응께 이제 작은 마님이 아니라 그냥 마님이제. 안 그렇소?”


따라 들어와 어쩔 줄 몰라하는 강실네의 얼굴을 여유 있게 한번 돌아보고는 곡성댁이라는 그 여자는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찌 됐든가. 성님 조카면 내 조카나 마찬가지고. 기왕 여기서 지내기로 한 거, 나갈 곳 생길 때까지 한번 잘 지내 보장께.”


잘 지내자는 말을 싸울 기세로 하는 그녀를 어쩔 줄 몰라하는 강실네가 달래며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는 잠시 뒤 다시 돌아와 장희를 안심시켰다.


“저 잡것 말 신경 쓰지 마시오. 주인 양반 앞세워서 이 집 안방 겨우 차지하고 앉았는디, 자네들이 찾아오고 하니 속이 뒤집어진 모양일세.”


“괜찮아라우, 근디 저 여자가 우리 이모를 성님이라 불렀소?”


“내 살면서 저리 뻔뻔한 년은 처음 본다닌께. 송실이 살아있을 적에도 허벌나게 이 집에 찾아와 ‘성님, 우리가 같은 서방 모신지도 몇 년인디 이제 나도 여기 방 한 칸 내 주소.’ 그랬당께. 말 같잖은 소리를 얼마나 씨부려샀는지... 자네 이모가 보살이지 보살이여. 인상 한 번을 안 쓰고 다독이고 보내더라고.”


“그랬으라우?”


“나 같으면 저 년을 잡던지, 서방을 잡던지 둘 중 하나는 병신을 만들었을 텐디.”


이모가 어떤 맘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가 장희는 마음이 아팠다. 이모도 안 계신 이모댁에 어찌 오래 머무를까 싶었는데 저런 여자까지 도끼눈을 뜨고 장희 자매를 쳐다보겠다 싶으니 맘이 편하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쉬라며 돌아서는 강실네를 장희가 불러 세웠다.


“저기 아주머니”


“무슨 일이여? 뭐든 편히 얘기하랑께.”


“제가 여기서 할 일이 참말로 하나도 없어라우? 지가 맴이 안 편혀 그러지라우.”


“에고... 주인 양반 아시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손님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여.”


“제가 손님으로는 여기 오래 있기가 불편혀서 그러지라우, 지가 뭐라도 혀야 여기서 지낼 낯짝이 되지 싶어 안그라요?”


“에구...”


강실네가 퍽 난감한 표정을 짓자 장희는 공격 방향을 바꾸었다.


“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 집안 살림이며 음식이며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라우. 뭐라도 할 줄 알아야 이모부 말씀대로 시집도 가고 안 하겠소? 조카라 생각하고 뭐든지 좀 가르쳐 주시오.”


‘조카’라는 말에 강실네의 눈빛이 한결 따뜻해졌다.


“살림을 배운다고 허면 주인 양반도 좋아하시지 싶네. 그라믄 자네가 가끔 나와 음석도 같이 만들고 그래 보장께.”


다행이었다. 저 곡성댁이라는 여자가 들어앉은 이 집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장 갈 곳도 없는 지금 무작정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나가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희는 당분간 이 집 일을 도우며 여기서 지내고, 그러면서 뭐라도 돈을 벌 만한 일을 찾으면 연희와 함께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편히 지내라는 이모부의 호의가 고맙지만, 그리 가 버린 이모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기 위한 호의라는 생각이 들어 장희는 그 마음을 곱게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라도 주변 상황을 살피며 이 집을 나갈 기회를 만들어 볼 것이라 마음먹었다. 그다음 날부터 바로 장희는 강실네와 함께 집안일을 돌보기 시작했다.


송하일의 말대로 강실네는 손이 야무진 사람이었다. 특히 음식 솜씨가 좋아 배울 것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떡은. 송하일 본인도 떡을 좋아하지만, 사업 상 집에 들르는 손님이 많았는데 항상 그 손님들 다과상에는 강실네가 만든 떡과 식혜가 올라갔다. 강실네의 떡을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그 솜씨에 깜짝 놀라곤 했다. 장희도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 강실네의 재주들을 하나하나 배워갔다. 힘들지 않았다. 모양을 예쁘게 낸 색색깔의 절편이며 알록달록한 색의 무지개 설기, 각종 시루떡을 만들어내는 강실네는 조선 시대로 돌아가 수라간 궁녀로 일해도 손색없는 솜씨의 사람이었다. 장희는 강실네에게 떡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일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잡다한 생각도 없어지고, 강실네도 어느 순간 장희를 딸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대했다. 장희는 이 집에서 나간다면 강실네와 함께 떡을 만들어 파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행히 곡성댁이라는 그 여자와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다. 장희가 주로 별당에서 지내기도 했지만, 곡성댁이 워낙 밖으로 돌아다니길 좋아해서 이모부가 없는 시간에는 곡성댁도 집에서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보나 마나 어디서 판이나 벌리고 있겠지.”


강실네가 말했다. 그 말대로 집 앞에는 종종 노름빚을 갚으라며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면 송하일은 조용히 일하는 사람을 시켜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내주고는 했다. 사업가로서 수완도 좋고 이재에 밝은 송하일이 그렇게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강실네는 말하곤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그 사이에도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동안 집안에서도 난리가 났었다. 송하일이 북한군 부역자로 낙인찍혀 재판까지 갔었던 것이다. 미래를 읽었던 것인지 돕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송하일이 사실은 그 사이에 국군 측에 비밀리에 여러 물자를 지원하고 있음이 밝혀져 무사히 풀려났다.


장희는 예전 집에서 귀한 아가씨로 자랄 때보다 적당히 바쁘고 즐거웠다. 강실네에게 정혼자인 도운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가족들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기까지 할 정도로 모녀와 같은 정이 들었다. 강실네는 장희에게 꼭 엄마같이 굴었다. 아니, 오라버니밖에 모르고 오라버니만 정답게 바라보던 어머니보다 더 다정했다. 그런 강실네를 볼 때마다 장희는 기억 속에 떠오르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오라버니만 세상의 전부인 듯 어린 딸 둘을 버려두고 그리 쉽게 세상을 등진 그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신다면 따져 묻고 싶었다.


‘연희와 나는 자식이 아니냐고, 우리도 오라버니 못지않게 잘할 수 있는데 어찌 이리 버리고 가신 거냐고...’


그런 생각 끝에 장희는 스스로 고개를 크게 저었다. 어차피 돌아올 수 없는 분이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자신의 마음을 지옥으로 집어넣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자꾸만 장희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럴 때마다 강실네는 장희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장희의 그런 속을 다 아는 듯 쉴 새 없이 정을 쏟고 감싸주었다. 그만 고집부리고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라고, 그래서 예쁜 아기 낳으면 친정 엄마처럼 몸조리도 해 주겠다고 큰소리치는 강실네를 보며 장희는 잠시 자신도 여느 집 처자처럼 그리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장희는 그렇게 자식이 없는 강실네에게 서로 어머니처럼, 딸처럼 의지해 가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처음 이 집에 올 때는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별당 앞과 뒤뜰 단풍나무에 울긋불긋 붉고 예쁜 아기 손들이 잔뜩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서 학교에 다니는 연희는 떨어진 잎들 중 모양이 온전하고 색이 고운 것만 모아 책 사이에 한 장 한 장 끼워두었다.


“이렇게 말려 동무들 하나씩 줄 것이제. 우리 집 단풍이 세상에서 젤로 예쁘대도 아무도 안 믿으니께.”


연희의 말에 장희는 가슴이 뜨끔했다. 말로는 ‘우리 집’이지만 동무들을 부를 수 없는 ‘남의 집’이라는 것을 연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제 이 집에서 나가 진짜 ‘우리 집’을 만들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이런저런 패물이며 금붙이가 있으니 이걸로 작은 집이라도 하나 얻고, 강실네와 같이 떡을 만들어 판다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강실네가 같이 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혼자라도 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장희였다. 하지만 강실네에게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장희를 딸같이 예쁘게 보던 강실네라고 해도 평생을 지내왔고, 남은 일생을 지내리라 마음먹고 있는 이 집을 떠나기는 쉽지 않으리라.


“아주머니!”


“...”


“방에 안 계신다요? 아주머니!”


말이라도 해 보자 싶어 며칠을 고민하다 강실네 방 문 앞에 섰다. 방은 조용했다.


‘이상하다. 방에서 쉬신다 그랬는데...’


아까 분명히 같이 부엌에 있다 잠깐 쉬어야겠다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주무시는가 보네.“


돌아서려는데 안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넘어진 듯하다. 그와 함께 거칠게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문을 확 밀어 열었다. 안에서는 강실네가 땀범벅이 되어 노란 얼굴로 배를 감싸고 몸을 둥그렇게 만 채로 쓰러져 끙끙 앓고 있었다. 물을 마시려다 그랬는지 물컵이 엎어져 뒹굴고 있다. 장희는 용수철처럼 튕겨 강실네에게로 넘어지듯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상체를 부축해 자신의 다리에 기대게 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손을 잡고 흔들지만 팔에는 아무 힘이 없다. 놓은 팔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눈동자는 이미 의식을 잃은 듯 힘없이 돌아가 있다.


“아저씨, 박 씨 아저씨”


장희가 울며 소리 지른다.


“무슨 일이여?”


박 씨보다 송하일이 먼저 듣고 달려왔다.


“얼마나 사람이 미련하면 그렇게까지 아픈 것을 참는디야?”


침통한 표정으로 송하일이 말했다.


맹장염이라고 했다.


얼른 병원에 와 수술을 했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계속 참은 모양이었다. 복막염으로 진행되어 급히 개복을 했으나 너무 늦어 살릴 수가 없다고 했다. 강실네의 참을성이 도로 강실네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무안에서 오빠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 시신을 수습해 갔다. 송하일이 그에게 장례비며 퇴직금이라는 명목으로 제법 챙겨 준 모양인지, 강실네의 오빠는 동생의 죽음보다 그 돈에 즐거운 눈치였다.


장희는 기가 막혔다. 친척인 이모부 송하일보다 오히려 강실네가 장희가 이 집에 머무는 이유였다. 온 가족이 그리 떠난 뒤 다시 마음을 연 부모 같은, 친구 같은 강실네였다. 이틀 전부터 소화가 안되고 배가 자꾸 아프다고 식은땀을 흘리며 뒷간에 들락거리는 것을 ‘이제 떡 좀 그만 드시라고.’ 웃으며 타박 같은 농담을 한 일도 너무 후회되고 마음 아팠다. 싫다고 해도 손을 잡아끌고 같이 병원이라도 가 봤더라면 강실네가 이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후회하며 가슴을 치고 또 쳤다. 그렇게 강실네도 허망하게 장희 곁을 떠나버렸다.


이제 이 집을 떠나야 하는데 장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모부에게 말을 꺼낼 여유도 없이 바빴다. 강실네가 하던 일들은 장희에게 너무 익숙한 일들이고 어느새 장희는 강실네가 하던 일들을 몽땅 도맡아 하고 있었다. 나가 살 집도 알아보고 이모부께 이야기도 해야 되는데 ‘나 없으면 이 일들을 누가 다 하나?’하고 고양이 쥐 생각하듯 집 걱정을 하는 장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송하일이 장희를 불렀다.


“내가 너한테 이런 일들이나 시키려고 여기 있으라고 한 게 아닌디 참말로 어째야 쓰까나?”


“아니여라, 그냥 놀고먹을 수도 없는 일이고, 강실네 하던 일들은 다 익숙하니 일을 하는 것은 암씨랑도 안허요.”


대답을 하는 장희를 보는 송하일의 눈이 따뜻하다.


“장희야.”


“예, 이모부.”


“마침 잘 되었다.”


“예?”


“너에게 미안하지만 부탁을 해야겄다. 강실네가 하던 일이 모두 죽은 늬 이모가 하던 것이었제. 이제 니가 조금 힘들겄지만 안살림을 맡아 꾸려볼 테냐?”


“예? 지가 무슨. 말도 안 되어라”


“실은 강실네가 죽기 얼마 전에 나를 찾아왔쓰야. 자기는 늙었고 인자는 좀 쉬고 잡다고, 니가 손 끝도 야무지고 살림도 잘한께 다 맡겨도 쓰겄다고. 사람이 자기 죽을 날은 느낌으로 안다더니 참말로...그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겼제. 여기서 이리 지내다 좋은 자리 나면 혼인시켜 보내야 된다고 생각했응께.”


“혼인 생각은 없어라우.”


“그 야그도 강실네가 했었지야. 그래서 말인디, 너도 알겄지만 내가 아들이 있냐, 딸이 있냐? 니가 이 집 살림 잘 꾸려 주면 나는 너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이 살림 모두 장희 너랑 연희한테 모두 물려주고 죽을란다. 어쩌냐?”


뜻밖의 제안이었다. 자나 깨나 이 집에서 나갈 생각만 했었는데 이모부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니 그동안 품은 생각들이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아니여라. 즤들은 이만큼 베풀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있어라우, 자리 잡히면 나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라우.”


“장희야, 너도 그렇지만 연희는 어쩔 것이냐? 조것도 곧 자라서 시집갈틴디 세상천지 고아보다야 이모부 밑에서 공부하다가 좋은 자리 찾아 혼인하는 것이 옳지 않겄냐?”


“아...”


이모부 말씀이 옳았다. 장희야 스스로 남자고 혼인이고 생각이 없었지만은 연희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연희는 장희의 꿈이며 장희 자신이었다. 연희만은 곱게 키워 좋은 자리, 훌륭한 사람으로 골라 시집보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만이 장희의 인생이 헛되지 않게 성공하는 길이라고 장희는 믿었다.


“안살림 꾸려 나가며 차차 너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겄냐? 내가 너 좋은 신랑감도 구해줄랑께 그 사람이랑 여기 이 집서 터를 잡고 내 사업도 물려받고... 인자 여가 참말로 너 집이다 생각하고 살아보랑께. 나는 늘그막에 장희 너한테 의지하고 살아볼란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송하일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장희는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송하일의 방을 나왔다.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지만, 이 집이 두 자매에게 진짜 집이 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당장 문 앞에서 모든 대화를 엿듣고, 팔짱을 끼고 도끼눈을 한 채, 장희를 째려보는 곡성댁을 보니 안 될 일이라는 생각만 더 들었다.


그 뒤로 곡성댁의 횡포는 심해졌다. 장희 자매에게는 별 말을 못 하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밥상을 엎고 욕지거리를 하며 술주사를 부리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사업가인 송하일도 만만치 않았다. 아직 장희가 그리 마음을 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집 생활비 및 일하는 자들의 급여 관리를 몽땅 장희에게 맡기고 처리하게 했다. 장희는 더 바빠졌다. 집 안 살림 전체를 관리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었다. 가끔씩은 송하일의 회사에 불려 나가 이런저런 의논을 하기도 했다. 곡성댁은 시한폭탄 같았다. 그래도 ‘지가 뭘 하겠어?’ 생각하면 무섭지는 않았다. 저리 제멋대로 구는 곡성댁만 아니라면 이대로 사는 것도 즐겁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지낸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곡성댁이 갑자기 별당에 찾아왔다.


“나가 얼마 전부터 속이 안 좋았단 말이시.”


“그랬으라?”


중간 문에 기대어 서 다짜고짜 속이 안 좋다는 말부터 내뱉는 곡성댁을 보며 대청마루에 앉아 장부를 쓰던 장희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든다. 눈을 동그랗게 뜬 장희와 눈이 마주치자 곡성댁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 없이 웃었다.


“달거리도 지난달에는 건너뛰었고...”


“...”


놀라서 자기를 쳐다보는 장희의 눈을 보며 얼굴 가득 야비한 미소를 띠며 곡성댁은 말을 이었다.


“내가 아무래도 애가 들어선 게 아닌가 싶더라고.”


“확실한 것이오?”


“방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제.”


“...”


“애가 선 것이 맞다더니만.”


장희는 당황했지만 다시 장부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라요? 잘되었어라. 이모부가 좋아하시겄네요.”


연필을 쥐고 성의 없이 대답을 뱉었다.


“그라제? 자식도 없는 양반이 얼매나 좋아할까?”


큰 소리로 웃으며 곡성댁은 별당 문을 꽝 닫고 나가 버렸다. 장희는 다시 고개를 들어 곡성댁이 나간 자리를 한숨을 쉬며 바라보았다. 다시 장부를 보며 아무 내색 없이 하던 일을 하면서도 장희는 마음이 심란했다. 거짓말이다 싶다가도 아무리 뻔뻔하고 욕심 많은 여자래도 아기를 가지고 농지거리나 거짓부렁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장희는 계산하던 장부를 소리 나게 탁 덮었다.


‘만약 이모부에게 자식이 생긴다면?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원래 하려던 대로 연희와 나가 둘이 살 것이다. 곧 연희도 국민학교를 졸업할 것이고 이제 어린아이도 아니고 서로 의지하고 충분히 살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이리되든 저리 되든 상관없다. 자신들을 이만큼 거둬준 이모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새 생명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자.’


그렇게 마음먹는 장희였다.


“언니”


별당문이 다시 열리고 연희가 뛰어들어왔다. 학교를 마친 것인지 돌이라도 든 양 무거운 가방이 땅이라도 쓰는 것처럼 연희의 손에 질질 끌린다.


“왔다냐?”


내려가 동생의 가방을 받는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 한편이 갑갑하다.


곡성댁의 임신은 사실이었다. 믿지 못하는 송하일과 함께 읍내 병원에 가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훨씬 더 송하일의 반응은 엄청났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가지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핏줄이 생긴다는 사실은 송하일에게 있어 엄청난 경사며 축복이었다. 곡성댁이 갖고 싶다는 옷이며 신발, 처음 보는 희귀한 물건들을 송하일은 매일같이 사 들였다. 입덧에 좋은 보약을 짓기 위해 읍내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산모 뒤태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아들 같다.’는 말을 한 모르는 노인에게 신이 나서 손목에 찬 시계까지 풀어서 쥐어주더라는 얘기를 박 씨에게 들었다. 송하일은 곡성댁 수발 들 사람을 따로 구했다. 그것도 둘이나. 집 안 가득 잉어를 달이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근방에서 아이를 가장 잘 받는다는 산파를 수소문해 아예 집에서 지내게 했다. 그렇게 이 집에서 곡성댁은 점점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 해 여름에 아들을 낳았다, 그녀를 꼭 닮은, 제법 곱상한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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