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제6장

by 임효진

온 들판에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반짝이는 촉촉한 어린잎이 싱그럽게 일렁이며 춤을 춘다. 송하일의 집에도 싱그러운 아기 울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건강한 아기의 울음소리는 집 분위기를 여름과 같은 진한 초록빛으로 밝아지게 했다. 송하일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나이 50에 늦게 본 아들이 귀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안채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곡성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장희 자매였지만 훈성이라 이름 지어진 그 아기는 예뻤다. 조그만 손가락을 꼭 쥐고 입을 오물거리는 아기의 얼굴을 볼 때면 자기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고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장희였다. 연희는 더욱 표 나게 훈성이를 예뻐했다. 마치 제 동생인양 틈만 나면 가서 얼굴을 보고 ‘까꿍’ 거리며 안아 보고 싶어 손이 아기 근처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곡성댁은 절대 연희가 훈성이를 안도록 넘겨주지 않았다. 마루에 나와 섰다가도 연희가 가까이 가면 약이라도 올리듯 문을 쾅 닫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아기를 보지 못해 연희는 도로 더 안달을 냈다.

“그리도 훈성이가 예쁘다냐?”


장희가 물었을 때 연희가 대답했다.


“아그가 얼마나 이쁜디, 눈은 까맣게 반짝거리고, 입은 조막만 한 게 오물거리고, 그 쬐깨난 코로 어찌 숨을 쉬는지 암만 봐도 신기하당께.”


“그라냐? 아직은 훈성이가 어려서 너가 만지면 어디 다칠까 싶어 곡성댁이 피하는 것이제, 너무 서운타 생각지는 말어.”


“나는 하나도 안 서운하다니까. 그냥 나는 언니가 시집가서 아그를 낳으면 얼마나 예쁠까 싶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제. 언니가 시집가서 저런 조카 하나 낳으면 내가 맨날 업어주고 안아줄틴디..”


“나는 시집 안 가. 너나 얼른 커서 시집가서 저런 예쁜 아기 하나 낳아. 그라믄 내가 예쁘게 키워줄테니께.”


“나는 시집가려믄 10년은 있어야하는디?”


“나는 너 가고 나면 시집갈 것인께.”


“그려도 이제 안 간단 소리는 안한당께.”


두 자매는 그러고 웃었다.


그러고는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장희는 안채 쪽으로 뛰어갔다. 대청마루에 연희가 앉아 어쩔 줄 몰라하며 훈성이를 안고 어르고 있었다.


“이게 갑자기 뭔 일이여?”


놀라서 아기를 받아 안으며 장희가 물었다. 훈성이는 여전히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내가 여기 마당을 지나는디 곡성댁이 뒷간 간다고 잠시만 훈성이를 봐 달라는 겨. 그래서 받아 안았는디 금방 이리 울잖여. 훈성아, 아가, 왜 그란디야? 응?”


“유모는 어디 가고?”


“그것은 나도 모르지야.”


연희는 울상이 되었다. 둘이서 아기를 보며 달래고 있는데 곡성댁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뛰쳐 들어왔다.


“이 년이 뭔 짓을 했길래 훈성이가 이리 우는 것이여?”


훈성이를 낚아채듯 뺏아 안고 도끼눈으로 따지는 곡성댁의 모습에 장희는 어이가 없었다.


“아기가 어매가 없어 우는 것을 가지고 우리를 탓하면 어찌 하요?”


장희의 말에 곡성댁은 도끼눈을 하고 자매를 째려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기를 눕히더니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저고리까지 벗겨냈다.


“이게 뭐 당가? 이런 우라질 년들이!”


곡성댁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더니 대성통곡을 했다. 장희 자매는 뒤에 송하일이 와 서 있는 것은 알아채지도 못한 채 아기의 알몸에 이리저리 할퀸 상처와 멍든 자국을 보며 경악했다.


“니들이 이런 것 이제?”


터무니없는 곡성댁의 모함에 장희는 기가 막혔다. 연희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라고라”


“쩌번에도 그랬지아. 니 년들이 훈성이 옆에 왔다가만 가면 훈성이가 이리 울었으야. 이 어린것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리 만들어 놓는다냐? 이 천벌을 받을 년들아.”


말을 뱉는 곡성댁의 눈 끝에 송하일이 있음을 알아챈 장희는 아직도 아니라고 억울하게 울고 있는 연희을 돌려 안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진작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면 오늘은 어찌 우리에게 훈성이를 맡기고 뒷간에 간 것이오? 있지도 않은 일로 괜한 사람 모함 마소.”


“뭣이라고? 이 독한 년들. 니 년들이 이 집 씨를 말리려고 작정을 한 것이제. 니 년들이 사람이여? 인두껍을 쓰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제. 훈성이가 이 집서 어찌 얻은 아들인데 이 귀한 아들을... 거두어 준 은혜를 이리 갚다니 저런 육시럴 년들이...”


장희의 말에 곡성댁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패악질을 했다.


연희에게 저 욕을 고스란히 더 듣게 할 수가 없어 장희가 뭐라 입을 떼려는 순간 뒤에서 송하일이 소리쳤다.


“고만하랑께. 장희 너는 연희 데리고 방으로 가. 얼른.”


“이모부, 우리는 억울하요.”


“일단 알겠으니 가 있그라. 나중에 이야기하자.”


심각하고 단호한 송하일의 표정에 장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우는 연희를 데려와 방에 앉혀놓고 달랠 뿐이었다.


‘이 집서 나갈 때가 된 것이제.’


장희는 혼자서 조용히 되뇌었다. 내일이면 이모부를 뵙고 나간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었다. 그날 밤, 송하일이 장희를 불렀다.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구먼. 내가 장희 너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곡성댁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니...”


“아신다면 저는 됐어라. 훈성이가 걱정이지라우.”


장희의 대답에 송하일이 한숨을 내쉬며 장희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내가 미안쿠먼. 아무래도 저 사람이 자네들이 신경쓰이는 갑소. 얼마 전부터 그리 자네 시집보낸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다니더니...”


“예? 이모부, 근디 저는요.”


장희가 이제 이 집을 나가겠다 말을 하려는데 송하일이 말을 끊었다,


“조카 생각은 대강 알고 있네. 미안한 말이지만 실은 나도 자네를 독립시킬까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당께. 근디 조카, 혹시 선 한 번 안 볼까? 자네에게 딱 맞는 집이 있어 진작에 이어주고 싶었는데, 내 또 조카 생각을 알고 있어 말을 못 꺼냈네.”


“이모부, 저는 혼인 생각이 없어라우. 그냥 연희랑 나갈랑께 보내주시오. 여태 이모부 덕에 여기서 호강하며 잘 살았지라우. 내가 일하믄 우리 둘, 나가서 설마 못 먹고 살겄소?”


“쩌번에도 내가 이야기 했지야. 처녀 둘이서 나가 살다가 무슨 험한 꼴을 보게 될지... 장희 자네가 그려도 멀쩡하게 혼인해서 동생 거두면서 산다믄야 연희도 또 좋은 이 만나게 될 터이고. 그 집서 연희 공부도 다 시켜 준다니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겄냐?”


“연희까지 거둬주는 집이 있다고라?”


장희는 귀가 솔깃했다. 혼인하면 연희까지 돌봐 준다니 이런 제안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라제. 재산도 그 동네에선 알아줄 만큼 있는 집이고, 그 집 아들 성품도 좋다 하니 내 얼굴 봐서 선이라도 한번 볼 텐가?”


“...”


장희는 무작정 거절할 수 없었다. 이모부 말대로 언니랑 둘만 사는 고아가 될 연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사실 어느 순간부터 장희는 훈성이같이 예쁜 아기 낳고 다정하게 오순도순 함께 살 사람이 나타나서 도운을 잊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도운을 잊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고 죄짓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를 잊어야 자신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장희는 망설였다.


“장희 조카가 시집가서 잘 살아야 연희 조카도 그리 되는 것이지. 암만. 그러니 고집 그만 부리고 이제 내 말도 좀 들어주랑께. 내가 자네를 자식같이 생각 허는데 자네도 내 말을 좀 들어야 하지 않겄나?”


“참말로 연희도 거둬준다고 했단 말이지요?”


“그라제. 그라니 자네는 꺽정말고 한번 만나보소. 내가 사람을 보내 만날 날을 잡아볼랑께.”


인사를 하고 별당으로 돌아와 누운 장희는 밤늦게까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면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선을 본 남자에 대한 궁금함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얼굴은 어찌 생겼을까? 키는? 목소리는 도운과 비슷할까?’


아무리 선 볼 남자에 대해 생각해도 그 끝은 도운과 연결되었다. ‘아마 도운보다 멀끔하지는 못하리라. 도운처럼 다정한 말투, 목소리일리는 없으리라... ’


남자라면 오로지 도운뿐이었던 자신을 도운에게서 완전히 꺼내 줄 사람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장희는 그날 밤 꿈에라도 한 번 나타나지 않는 도운을 처음으로 원망했다.


초록 잎사귀가 무성한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 난 길을 송하일의 차를 타고 덜컹덜컹 지나갔다. 여기와 지낸 지 2년 정도 됐지만 처음 타 보는 이모부의 차였다. 곱게 빗어 뒤로 묶은 머리 아래 종아리에서 찰랑거리는 흰색 원피스가 장희와 잘 어울렸다. 문득 지난 여름날 오빠와 함께 빙수 가게에 도운을 만나러 가던 길이 떠올랐다. 그때의 설렘과 터질 듯한 가슴의 쿵쾅거림을 장희는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지금은 그때처럼 떨리지 않았다. 선을 볼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신과 연희의 지붕이 되어줄 성실한 남자라면 얼굴이 곰보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일부러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맞선 장소는 나름 번화가였던 역 근처 다방이었다. 다방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보는 장희는 자신이 서울 사람들만 간다는 다방이라는 곳에 가게 되어 설레는 건지, 맞선 자리에 가게 되어 설레는 건지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잘 알 수 없었다.


다방에 들어서자 진하게 화장을 한 여자가 송하일에게 아는 척을 했다. ‘마담’이라고 불리는 그 여자는 송하일과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자연스럽게 ‘사장님’이라 부르며 팔짱을 끼더니 일행을 안쪽 조용한 자리로 안내했다. 송하일은 민망한지 ‘으흠’ 헛기침을 하더니 마담이라는 그 여자의 손을 살짝 잡아 빼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늘 맞선 상대인 듯싶은 한 남자와 그의 어머니인 듯한 한복을 곱게 입고 머리에 비녀를 꽂은, 환갑은 지났을 듯싶은 매서운 눈을 한 늙은 여인이 함께 나와 앉아 있었다. ‘임원택’이라고 하는 그 남자는 하얀 셔츠에 곤색 바지를 입은 깔끔한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농사를 짓는 탓인지 약간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살짝 마른 체형이었다.


그 어머니라는 중년의 여인은 호들갑을 떨며 송하일을 반겼다. 웃고는 있지만 그 눈매가 매서운 것이 아들과 사뭇 다른 인상이었다.


임원택과 장희는 처음에는 말을 나눌 시간도 서로를 쳐다볼 여유도 갖지 못했다. 그저 그의 어머니와 송하일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장희는 단지, 임원택이 곰보는 아니구나, 그 눈이 순하고 선해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임원택의 어머니는 장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처녀가 듣던 대로 조신허니 인물도 꽤 좋소.”


“제 조카라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난리통에 집이 그리 되지 않았다면 집안도, 인물도 어디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지요. 게다가 손끝은 어찌나 야문지 여태 저희 살림을 장희 조카가 다 꾸리고 있었다니께요.”


여자의 말에 송하일은 신이 난 듯 떠들어댔다.


“그런 딸 같은 조카를 보내려면 송사장도 속이 꽤나 쓰리겄소.”


“허허. 그러지라우. 그래도 어짠디요, 이리 좋은 신붓감을 나 좋자고 계속 잡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좋은 디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일가를 이뤄 오순도순 살도록 보내 줘야지요. 내가 부모나 마찬가진디.”


“그라지라우, 조카도 자석이나 마찬가지 아니요. 그랑께 우리 송사장이 이리 챙겨 보내려는 것이고...”


임원택의 어머니라고하는 저 늙은 여자의 욕심 섞인 말에서 이 혼사에 송하일이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조건까지 내 걸었음을 장희는 짐작했다. 아마 ‘혼수라는 명목으로 적당히 한몫 챙겨 내 보낼 계획인가보다.’ 그래서 그 미끼를 저들은 좋다고 덜컥 물었을 테고... 시골 구석에서 적당히 땅 좀 있다고 떵떵거리는 집안에서 고아나 다름없는, 동생까지 딸린 장희를 받아들일 때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차마 못했었다. 자신의 재산까지 축내어 가며 장희를 출가시키려고 하는 이모부에게 원망과 미안함, 고마움이 마구 뒤엉킨 감정에 장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탐욕 가득한 눈빛의 어머니와는 달리 임원택이라고 하는 사람은 순수해 보였다. 장희와 띠 동갑이라는 이제 서른 다섯 된 노총각인 그는 장희와 눈 한 번 맞추지 않고 그저 어머니와 송하일의 대화를 고개를 끄덕여가며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십시다.”


어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자 임원택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도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혹시 말을 못 하는 사람인가 싶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니다 싶었다. 둘은 별 말없이 역 근처를 벗어나 아까 장희가 이모부의 차를 타고 왔던 메타쉐콰이어 길로 접어들었다. 초록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를 걷고 있으니 상쾌한 나무 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약간 앞에서 걷고 있는 임원택의 등을 보고 걷자니 도운의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은 항상 나와 나란히 발을 맞춰 걸었었는데.’


혼자 앞서 가는 임원택이 아마도 연애라는 것을 해 보지는 않은 사람인듯했다. 그래도 가끔은 장희가 얼마만큼 왔는지 헛기침을 하며 돌아보는 모습이 나름대로 그의 배려라고 느껴져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혼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곡성댁은 마치 자신이 시집가는 양 들떠서 혼례복이니 이불을 맞추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댔다. 장희는 시간이 갈수록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이리 지내는 것보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자신의 살림을 꾸리고 사는 것이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 다행히 시부모님 될 분들은 형이 모시고 산다고 하고, 장희가 자식 낳고 아들과 잘 살아주면 연희 공부든 뭣이든 실컷 시키고 시집갈 때까지 돌봐 준다는 말도 거짓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실 다 그만큼 이모부한티서 뭐라도 받은 것이제.’


생각하면서도 장희는 임원택의 조용한 성품과 그 순수해 보이는 눈빛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직 형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연희는 자꾸 형부 될 사람이 어찌 생겼는지 말해달라고 졸라댔다.


“그저 눈이 두 개가 얼굴에 딱 달라붙었고, 코는 한 개 있어야.”


장희가 그리 말하면 연희는


‘흥!’하고 토라져 투덜거릴 뿐이었다.


생각보다 혼례식 날짜는 빨리 다가왔다. 장희는 혼례식 자체에는 별 감흥이 없는 자신이 슬펐다, 그저 이 집에서 나갈 날만 세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떠날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스스로가 마치 싫다 좋다 감정 없이 그저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꽃병의 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애 고아 신부를 배려한 까닭인지 알 수 없지만, 다행히도 신랑 될 집안에서 혼례식은 조촐히 치르자고 제안했다. 함도 생략하고, 하객도 최소한으로 하자고 했다. 그저 가족만 모인 간단한 혼례식을 이모부댁에서 치르고 나면 신랑 될 사람이 마련해 둔 집으로 떠나면 되는 것이었다.


드디어 혼인날이 되었다. 긴 머리를 쪽 지어 올리고, 혼례복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한 장희를 보며 사람들은 다들 선녀가 따로 없다는 둥 입에 발린 소리를 해 댔다. 연희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실쭉 실쭉 웃어댔다. 그러다 신랑이 올 시간이 다 되어서는 형부 얼굴 한번 보겠다며 별당과 안채 마당 사이를 스무 번도 더 오고 갔다. 그러다 신랑이 왔다는 소식을 갖고 연희가 심각한 얼굴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언니, 그런데 말이시, 형부 될 사람이 원래 저리 늙었는가? 이모부랑 별반 차이도 없던디?”


연희의 말에 장희는 웃음이 나왔다. 삼십 대 중반이면 연희 눈에는 늙어 보이기도 하겠다 싶었다.


“나도 이제 늙었거든. 너는 좋겠다. 아직 어린 아가라서...”


“그게 아니란 말이여. 우리 언니가 저런 늙은 사람한테 시집간다니 말도 안 되어서 그라제. 언니, 지금이라도 그만 두장께. 나는 저런 형부 싫당께. 옛날에 도운이 형부는 멋졌는데.”


도운 얘기를 꺼내며 울음을 터뜨리려는 연희 탓에 장희는 난감했다. 아니 울고 싶었다. 그리 잊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원래라면 이 혼례복을 입고 그에게 갔어야 하는데... 장희는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눈물이 나려는 눈을 괜스레 끔뻑이며 연희를 달랬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 아저씨재. 다 저리 늙는 것이여. 언니가 괜찮다 싶어 하는 혼례니께 이렇게 울면서 초를 치지 말어. 괜히 첫날부터 형부 헌 티 밉보였다간 너도 나도 편히 살기는 힘들 테니...”


“그려도...”


“괜찮다니께. 언니가 다 보고 정한 것인께.”


그리 두 자매가 끌어안고 있는데 밖에서 곡성댁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시작이여. 나올 준비 하고 있어.”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혼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더 적었다. 신부 측이야 가족이 없어 이모부의 친척 및 집에서 일해주는 사람 몇 명이 다라 쳐도, 희한하게도 신랑 측 사람은 더 적었다. 그 부모 되는 사람과 형제인 듯 보이는 네댓 명이 전부였다. 조촐하다 해도 이리 조촐한 혼례를 장희는 처음 봤다. 자기가 이런 혼례를 치를 줄이야... 이런 것이 고아의 혼례구나 싶었다. 마음이 씁쓸한 하편, 장희는 자신이 가족을 만들어 동생 연희는 이리 쓸쓸한 혼례를 시키지 않을 것이라 마음 깊이 다짐했다.


절을 몇 번이나 한 건지, 머리에 얹은 장식이 무거워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간단한 예식이 끝나고 밤이 되었다. 목이 뻐근하도록 고개 숙여 절만 한 탓에 얼굴도 보지 못한 신랑을 신방에서 기다렸다. 이리 앉아 있으니 자신이 혼인을 치렀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금 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가 도운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밀려왔다. 코끝이 찡해오는 것을 훌쩍거리며 애써 참았다. 자기 앞에 놓인 주안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술병도 있고 전 몇 가지가 예쁘게 놓여 있다. 눈앞이 눈물로 흐려졌다. 상 위에 다소곳하게 놓인 음식들이 흐릿하게 흐려지더니 빙수로 보인다. 도운과 함께 먹었던 빙수.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죽도록 애를 썼는데 하필 오늘, 그가 미치도록 그립다. 한때 행복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고달프고 무겁다. 마음을 아무리 다잡으려고 해도 다른 이와 혼례를 치른 오늘 밤만은 그 마음이 잡히지가 않는다.


그리 앉아 혼자 훌쩍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임원택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문에 몸을 부딪힌다. 아니, 임원택이 아니다. 그와는 닮은 듯했으나 훨씬 늙었다. 취해서 몸도 못 가누고 방에 대자로 드러누운 늙은 남자를 보고 장희는 헉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방 밖에는 곡성댁이 서 있었다. 장희가 왜 그러는지 다 아는 듯한 눈빛과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곡성댁을 보고 장희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저 사람은 내가 결혼한 사람이 아니오”


“실컷 혼인을 다 치러놓고 이제 와 그게 무슨 소리래?”


따지는 듯한 그녀의 말속에 비웃음이 묻어있다.


“아, 글씨. 저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랑께요.”


소리치는 장희의 별당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들 혼례에 참가했다 술이라도 한잔씩 한 듯 적당히 취해있다. 그 속에는 난감한 표정의 송하일도 있었다.


“일단 방으로 들어가 얘기하세.”


송하일이 장희의 팔을 잡아 끈다. 둘은 안채로 들어갔다. 그 뒤를 곡성댁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따라 들어간다.


“나도 오늘 신랑 얼굴을 보고 알았네.”


침통한 표정으로 송하일이 말했다. 안채에 송하일과 마주 앉은 장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 그 자리서 혼례를 멈춰야 했지라우. 이리 해 버리면 나는 이제 우짠다요?”


장희의 분노를 감추지 못해 고함을 질렀다.


“그게 뭔 큰일이라고 그란디야? 어차피 같은 집안사람이고, 아무래도 동생보다야 장남이 물려받을 재산이 있어도 더 있을틴디. 더 좋은 자리 아닌가?”


몸을 반쯤은 돌려 삐딱하게 앉은 곡성댁이 장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혼잣말 하듯 말했다.


“허. 허허”


장희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아무리 그려도 자네가 잘못했네. 나이도 많고 총각도 아닌 사람을.”


송하일이 곡성댁을 탓하듯이 나무란다.


“뭣이요? 총각도 아니라요? 그게 무슨 소리요? 이건 사기 결혼아니요?”


깜짝 놀란 장희가 소리 지른다. 생각보다 큰 목소리에 송하일이 놀라서 안절부절이다. ‘아마 밖에 있는 손님들 들을까 신경 쓰여서이겠지. 그깟 손님들이 다 뭐야?’ 생각하면서도 장희 스스로도 아차 싶어 침을 꿀꺽 삼킨다.


“뭣이 사기당가? 집안끼리 인사도 다 혔고, 전처가 애를 못 낳아 쫓겨났는디. 그러믄 총각이나 다름없제.”


장희의 한탄에 혼잣말하듯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곡성댁을 송하일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쓰며 그만하라는 눈치를 주었다.


“나도 일이 이리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야. 하지만은 장희 조카, 생각해 보게. 저 짝 집서 이런 이유가 있으니 고아인 자네 자매를 거두어 준다고 한 것이 아니겠나. 너무 서운타 생각 말고, 이왕지사 이리 혼례도 치른 것, 가서 자식 낳고 살다 보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별 다를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잉께. 암 그렇고 말고.”


송하일이 장희를 달래듯이 말했다. 하지만 장희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뭣이 다를 게 없다요. 벌써 혼인도 한 사람한티 첩살이하러 가란 말이요?”


참다못한 장희가 다시 소리 지르자 곡성댁이 벌떡 일어났다.


“자기는 무슨 처녀인 줄 아나? 혼사 날 며칠 안 남기고 서방 될 사람이 죽었다면 과부나 다름없제, 그런 과부한테 장가 들 총각이 세상천지 어디 있다고, 뻔뻔하기도 하제. 지가 총각한테 시집갈 줄 알았나 보네.”


“뭣이라고요?”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지르는 곡성댁의 말에 장희는 말문이 턱 막혔다.


“조카,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실은 사돈댁에서 자네 사정을 듣고서는 혼인 상대로 장남이 더 맞다고...”


뭐라 변명을 늘어놓는 송하일의 말을 끊으며 장희가 일어섰다.


“이제 됐어라우. 하늘에서 우리 부모님이 다 보고 계시당께요. 이 벌을 어찌 다 받으시려고... 저는 이제 이모부 안 볼랍니다.”


문을 열고 나가는 장희를 송하일이 허둥지둥 따라 나가려 하자 곡성댁이 그 팔을 잡아끌며 말린다. 송하일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청마루로 나가니 연희가 불안한 듯 마당에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언니, 뭔 일이여?”


“아니, 암 것도 아니여.”


입을 꼭 물고 웃어 보인다. 하지만 다리는 부들부들 떨린다. 기둥을 꼭 붙들고 신에 발을 넣는다. 마당으로 내려서며 장희는 하늘을 봤다. 별이 밤하늘 가득 무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송하일의 방에서 악다구니를 쓸 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리 나와 연희의 손을 잡고 하늘의 별을 보니 스스로의 눈물이 말랐구나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다.


‘그라제. 내가 임원택하고 꼭 혼인하려 했던 것은 아니니께. 누구라도 상관없어야.’


마음을 그리 먹으니 지금 이 일도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곡성댁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둔 사람과 혼인날까지 잡은 자신이 과부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며 장희는 쓸쓸히 웃었다.


“언니, 참말로 무슨 일이여?”


불안한 듯 자신을 쳐다보는 연희의 눈을 바라보며 장희는 씁쓸하게 웃었다.


“신랑 될 사람이 그 사이에 너무 늙어버려서 그라제.”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할아버지 같더니만.”


“그러게. 그때 봤을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였는디.”


“언니.”


“응?”


“지금이라도 우리 도망갈까? 나는 그런 형부 싫은디.”


연희의 말에 픽 웃음이 났다.


“그런 말 하지 말어. 이제 니 형부여”


“나는 도운이 형부가 좋단 말이여.”


참고 참은 말이 연희의 입에서 나온다. 장희는 입을 꾹 다문다.


‘그려, 나는 최도운 그 사람하고 혼인을 했던 것이제. 그 사람이 내 진짜 신랑이었제.’


그리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이제 최도운은 없다. 그의 신부였던 조장희도 없다. 반짝이던 저수지 물결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그 눈빛과 약속들은 모두 지난 일이다. 이제 저 어린 동생을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이 상황을 나는 잘 견뎌 낼 수 있다. 오로지 자신에게도, 연희에게도 든든한 가족을 만들어 줄, 저 방에 누워있는 저 사람에게 잘해보자 그렇게 마음먹는 장희였다.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 시린 듯 별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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