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제 8장

by 임효진

“누가 왔다냐?”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안채에서 시어머니가 나왔다. 어리둥절해 있는 그녀를 향해 함평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안녕하셨으라우?”


“아니. 고것이. 고것이 누구다냐?”


시어머니는 대청마루에서 내려오며 아기에게서 눈을 못 떼며 멍한 표정으로 묻는다. 내려 딛는 발이 신발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꾸 다른 곳을 딛는다.


“어머니 손주지라우, 아즉까정 이름도 못 지었어라우.”


“뭣이? 손주라고? 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냐?”


“금숙 애비가 말씀을 안 드렸나 보지라.”


“니가 아들을 낳았단 말이냐?”


“얼마 전에 낳았구마니라우. 혹시나 또 잘못될까 싶어 미리 말씀 못 드렸어라.”


“아이고, 아들이라고? 이런 경사가 어딨 다냐?”


“아버님 그리 되신 소식은 들었지만, 지가 몸을 푸느라 오지도 못했으라.”


“아이고, 아니다, 아니여.”


그러고는 맨발로 마당으로 내려서며 아기에게 다가서 또 묻는다.


“야가 참말로 아들이란 말이여?”


“예, 엄니,”


“참말로. 잘되었다. 잘되었어. 이 양반이 죽으면서 그리 아끼던 며느리한테 복을 주고 갔구먼. 아이고 잘되었다. 추운디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두 여인은 놀라서 멀뚱히 서 있는 장희를 두고 안채로 들어갔다. 장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황당함과 불안함에 한참 동안을 밖에 그대로 서 있었다. 금숙은 눈치를 보다 엄마를 따라 안채로 들어가고, 연희는 장희 곁에 기가 찬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임현택의 전처이자 금숙의 엄마인 함평댁이 돌아왔다. 그것도 사내아이를 안고. 사실 전처라 말할 상황도 아니었다. 애초부터 이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평댁과 임현택은 여전히 부부였다. 자신이 혼인신고가 되지 않아 현택의 호적에 조차 올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장희는 함평댁이 돌아오고서야 알았다. 장희와 혼인하고도 이혼이니, 재혼이니 하는 절차를 미루며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원래 부인의 거처를 마련해 준 임현택은 대부분의 날들을 본가로 돌아오지 않고 함평댁과 지냈던 것이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의당 노름판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장희와 다른 가족들은 모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사내아이라니...


임현택이 돌아오고, 저녁이 되어서야 시어머니는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며 장희를 찾아와 기가 찬 통보를 했다. 안채는 임현택과 함평댁이 쓰기로 했다는 말을 하며 그들이 정식부부이니 당연한 것이라고 장희를 납득시키려 했다.


“누가 뭐래도 금숙이 애비,에미는 정식부부니께”


마치 장희에게 무슨 다짐이라도 받듯 몇 번이나 그 말을 했다. 장희는 그 말이 기가 차게 우스웠다. 자신이 부부 사이를 갈라놓은 곡성댁과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기들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 때려치우고 채훈을 둘러업고 집을 나가고 싶었다. 허나, 당장은 그럴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고 아팠다.


“너 이제부터 금숙이 방을 써야겠다. 부부가 한 방을 쓰는 것이 맞으니. 어쩌다 금숙이가 내려오면 나랑 있으면 될 테니까. 너 동생이랑은 이제부터 같이 지내면 쓰겄다. 자매끼리 좋겄다.”


마치 대단한 인심이라도 쓰듯 말하는 그 주름 가득한 눈이 그렇게 비열해 보일 수가 없었다.


“엄니, 지가 이 집에 후처로 들어온 것이요?”


“우리라고 일이 이리될 줄 알았겄냐? 아이까지 낳고 살면서 이리된 것을 어찌하냐? 여자 팔자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여.”


“그래도 이것은 아니지라우.”


“아니면 니가 어쩔 것이냐? 지금이라도 싫으면 물러 줄 테니 나가고 싶으면 나가버리랑께. 단지 채훈이는 안된다. 채훈이는 우리 씨여. 임 씨 집안 장남.”


도로 화를 내며 큰소리를 치는 시어머니를 보며 장희는 눈물을 흘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이 기가 막힌 상황에 엉겁결에 다시 같은 방을 쓰게 된 장희와 연희 자매는 서로 말을 섞을 엄두도 나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하루아침에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같은 집에서 사는 처지가 되었다. 출생신고를 했다던 채훈이도 임현택과 함평댁 사이에서 난 아들로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안 장희는 며칠을 방에 들어앉아 눈물만 흘리며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 장희를 연희가 챙겼다.


“언니, 이거 들어.”


“...”


“이거라도 먹어야지 살제. 이러다간 죽소. 그러면 나는 어쩌고, 채훈이는 어쩔 것이여? 언니가 기운을 내어 일어나서 뭣이라도 하믄 나는 언니가 하잔대로 할랑께 제발 좀 일어나 이거라도 먹으소.”


연희의 눈물 섞인 애원에도 장희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임현택에게 큰 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까짓 집 나가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채훈이는, 채훈이는 이제 장희 인생의 전부였다. 그토록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내 자식이 아니라니.


‘내가 채훈이와 나간다고 하면 채훈이를 보내줄까?’


아무리 온갖 방법을 생각해도 이 집에서 채훈이를 데리고 나갈 방법이 없었다. 장희는 그저 기가 막히고 답답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틀을 꼬박 굶고 울다 지쳐 시체처럼 방에 누워 있는데 함평댁이 찾아왔다.


“내가 들어가도 되겠소?”


장희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앉아 이불을 한 구석으로 밀었다. 선하고 차분하지만 야무진 인상. 이제 삼십 대 후반이나 됐으려나? 그 와중에도 함평댁이 임현택과 나이도 생김새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자신이 스스로도 기가 차 장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함평댁과는 눈도 맞추지 않은 채 옆을 향해 돌아앉은 장희를 보더니 함평댁은 곱게 쑨 죽을 쟁반에 담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리 와서 미안허요.”


“...”


채훈이 엄마가 어떤 심경일지 내 모르지 않으니.”


말을 하며 눈물짓는 그녀의 얼굴에서 고운 심성이 느껴졌다.


“금숙 엄니 잘못은 아니지라우.”


장희도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라제, 내 잘못도 아니제. 따지자면 이 집안사람들이 나쁜 것이지 우리들이 뭔 죄가 있소?”


“흑”


함평댁의 말에 장희는 또 눈물이 쏟아진다.


“채훈이 엄마도 나도 자식 때문이 아닌가? 나도 내 딸, 아들을 어떻게든 품에서 키워야 했고, 채훈이 엄마도 그럴 틴디...”


장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잘할 테니 일단은 우리 같이 여기서 지내봅시다. 그 뒷 일은 내가 이 집 양반하고 얘기해 보고 어떻게든 채훈이 엄마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 나를 믿고 우리 같이 힘을 합치면 일이 어떻게든 안 되겠소?”


“정말 도와주실라요?”


함평댁의 말에 장희는 작은 희망의 끈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얼른 함평댁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그녀에게 약속을 받아 내려했다.


“나를 이 집서 내 보내주시오. 채훈이도 보내 주시오. 채훈이만 보내 준다면 어딜 가서 빌어먹고 살더래도 다시는 이 근처에 나타나지도 않을 테니 제발 부탁이오.”


장희의 말에 함평댁은 부드럽게 장희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빌어먹고 살게야 두겄소? 나가서 잘 살아야제.”


장희가 고개를 들어 함평댁을 바라보았다. 함평댁은 그 손만큼이나 따뜻한 말을 이어나갔다.


“당장이라고 약속은 못하지만 내 꼭 애쓰겠소. 이리 젊고 앞날이 창창한 사람을... 벌을 받지, 벌을 받을 것이여...”


“흑흑흑”


“내가 금숙 아버지 새 장가갔다는 소리를 듣고도 그 사람을 집에 들이면서 채훈이 엄마한테도 죄를 많이 지었소.


”아니여라“


”나도 내 새끼들하고 어쨌든 간에 살아 볼라고 그란 것이제. 너무 미워마소.“


”안당 께요. 그건 괜찮소. “


“채훈이랑 같이 살려면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겄소? 그만 울고, 이거 잡숫고 일어나시오. 우리 둘이서 힘을 합치면 이 집 하나 휘두르는 것은 일도 아니니께.”


“네. 흑흑”


장희는 함평댁이 쥐어 주는 숟가락을 잡고 눈물로 뒤 범벅된 죽을 맛도 못 느낀 채 꼭꼭 씹어 먹었다.


그렇게 그들은 한 계절을 함께 보냈다. 함평댁은 현명하고 속 깊은 사람이었다. 장희를 동생처럼 챙겨 주었고, 진심을 대해 장희의 상황에 안타까워했다. 장희도 그런 함평댁을 어느 순간부터는 ‘성님’이라고 부르며 의지하게 되었다. 고된 집안 일도 요령 있는 함평댁과 나눠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봄이 되어 금숙과 연희는 다시 광주 학교로 떠났다. 둘이 사이가 좋고 의지가 되어 정말로 다행이었다.


장희는 마음 아픈 시간을 보냈다. 밖에 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디 후실을 들이고 산디야?’


하는 말은 장희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팠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맞았다. 누가 뭐래도 장희는 후실이었다. ‘내가 첩이라니!’ 장희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채훈이마저 후실의 자식 소리를 들을까 싶어 장희는 자다가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런 장희의 마음을 제일 잘 이해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함평댁이었다. 그녀는 임현택의 기분이 좋다 싶으면 술상을 차리고 가 앉아 술 시중을 들며 임현택을 계속 설득했다. 채훈이 모자를 분가시키자고. 임현택도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자신의 어머니를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노인네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후실의 몸에서 나긴 했지만 엄연히 이 집 장손은 채훈이라는 꽉 막힌 고집에 임현택도 몇 번 더 말해보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 안되는가 싶어 장희는 두려웠다. 이대로 이 집서 첩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채훈이가 자라 자신을 작은 어머니라 부를 거라 상상하면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고만 싶었다. 그런데 일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해결되었다. 큰길 정자 밑으로 마실을 나갔던 시어머니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내 고년들 입을 다 찢어 놓을랑께.”


“아이고, 어머니, 뭔 일이요?”


누구와 머리라도 쥐어뜯고 싸운 것인지 산발을 하고 들어오는 시어머니를, 놀란 함평댁이 뛰어나가 부축했다.


“아 글씨, 그 썩을 것들이 우리 채훈이를 첩실의 자식이라고 안 한다냐? 누가 첩실의 자식이여? 누가? 우리가 이리 살긴 혀도 채훈이가 그런 소리 들을 일은 아니제.”


“...”


시어머니를 부축해 같이 마루에 오르던 함평댁도, 멀리 앉아 듣고 있던 장희도 입을 다물었다. 생각 없이 말을 내뱉은 시어머니조차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꿍하니 입을 다물고 아주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양 혀를 끌끌 차고앉아 있었다.


그날 밤 함평댁이 장희를 찾아왔다.


“자네, 이제 나가게 되었네.”


“성님, 그게 참말이요?”


“금숙아버지가 어머니를 설득했제. 자네가 이 집서 이리 같이 사는 이상 채훈이가 남들 손가락질 받는 것은 정해진 일이라고...”


“그라지요, 그라지요.”


“그랬더니, 채훈이는 두고 자네만 내 보내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려서 내가 말씀드렸으야, 젖먹이 아그를 어찌 애미랑 떼어놓냐고, 금숙이 아버지도 같이 한참을 설득했당게.”


“그려서 어머니는 뭐라시던가요?”다더라고


“멀리는 못보내고, 저그 저 방죽 너머에 집이 하나 있단 말이시. 원래 거기가 모두 이 집 땅이었응께. 일하는 사람들 식사도 내어주고 간혹 쉬기도 하는 집인디, 이제 그 앞 땅을 모두 팔아버렸으니 쓸 일이 없는 집이라 팔까 했었던 집이랴. 조금 작아도 자네랑 채훈이 지내기에는 넉넉할 것이여. 거기다 살림을 따로 차려 주기로 했지야.”


“어휴, 성님, 감사하요, 참말로 감사하요.”


장희는 너무 좋아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이 집에서 나가게 되었다. 숨겨놓은 돈도 있겠다, 이 집과 연을 끊고 야반도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연희도 이 집 아래서 공부하고 있고, 무엇보다 채훈을 호적도 없이 학교도 못 가는 아이로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이렇게 따로 떨어져 살다가 점차 왕래도 끊고 남처럼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희의 분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집으로 돌아오는 연희는 언니의 분가를 좋아하며 반겼다.


“근디, 언니. 이제 나가면 어쩌고 살 것이여? 형부가 생활비는 주겠지?”


“글쎄. 줄 거라 기대도 안 허고, 받고 싶은 생각도 없으야. 이제부터는 내가 벌어서 채훈이랑 먹고살 것이여. 너 학비도 시방부터는 내가 벌어서 줄 것인 게.”


“아, 이제야 우리 언니 같네.”


활짝 웃으며 말하는 연희를 장희가 본다.


“무슨 소리여? 여태 나가 니 언니가 아니었어?”


“언니”


연희가 가만히 장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전쟁 나고 여기 나주로 오면서 언니가 너무 변해서 나는 속상했어.”


“변해? 내가?”


웃으며 답했지만 연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짐작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언니를 잃어버린 사람 같았어. 언니 인생은 없고...”


“나를 잃어버린 사람?”


“응. 언니는 없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해 사는 사람 말이여. 처음에는 나, 나중에는 채훈이.”


어린 동생이 어느 순간 저리 자라 언니의 인생을 얘기한다는 게 대견하고 애틋해 마음이 저려 왔다.


“니들이 행복해야 내가 잘 사는 것 같아서 그려.”


“언니, 근데 나는 언니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잘 돼도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내 성공의 거름이 언니의 불행이라고 생각하면 말이야. 그러니 언니, 꼭 행복해져야 해. 그래야 내가 진짜 행복할 수 있고. 그건 아마 채훈이도 마찬가지일걸.”


“알았어. 꼭 행복할게.”


말은 그리 했지만, 장희는 이제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언니,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것이여?”


“떡이라도 만들어 팔아야제.”


“떡장사? 그건 아무나 한디야?”


연희는 장희가 하는 말이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장희는 진심이었다. 임현택은 아직도 노름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더 이상 팔 논도, 소도 집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문방구 하나 남은 것으로 어찌어찌 집안 식구들 건사는 하고 있지만, 이리 분가하고 나면 장희나채훈을 챙길 여유는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받고 싶지도 않았다. 장희는 틈틈이 장에 가 찜통이며 베주머니, 시루, 떡 틀 등을 사 이사 갈 집으로 날랐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남겨 주신 돈이 유용하게 쓰였다. 채훈이 공부시키려고 절대 쓰지 않고 아껴두겠다 생각한 돈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여름이 들어설 때쯤 장희는 채훈과 함께 그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채훈과 장희의 보금자리 역시 넓은 농지로 둘러싸여 있다. 나주에 가면 그렇게 논이 많다더니 이 동네는 모조리 푸른 논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 밖을 나서면 하늘도 땅도 다 푸르다. 그렇게 푸른 하늘과 논이 모두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 고랑 사이로 열심히 울어대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기가 막히게 멈추는 개구리울음소리가 신기하고 즐겁다. 집 주변이 온통 희망찬 색이고 희망찬 소리이다. 이제 행복할 수도 있다. 그렇게 희망을 가지는 장희였다.


채훈과 둘이 지내는 이 작은 집은 장희에게 천국과도 같았다. 좁은 안방 하나와 창고로 쓰는 작은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종이를 사다 풀을 쑤어 직접 도배를 했다. 안방에는 작은 장롱과 경대를 사 넣었다. 작은 방에는 책장과 작은 소반을 넣어 공부방을 만들었다 연희가 와도 언제든 지낼 수 있고, 차차 채훈이 자라면 이 방을 쓰며 공부할 거라 생각하니 이 작은 방이 채훈, 연희, 그리고 장희 스스로를 더 멋진 세상으로 안내하는 꿈의 공간 같았다. 장희는 그렇게 잠시 작은 방에 누워 이 행복을 만끽했다.


다음은 부엌이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이 공간은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했다. 거미줄을 치우고 먼지를 털어내는 장희는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선반을 새로 박아 만들고 더러워진 찬장도 몇 번이나 문질러 닦았다. 아궁이 속 먼지를 긁어내니 제법 부엌 꼴이 갖춰졌다. 큰 솥을 들어 아궁이 위에 올렸다. 힘들게 한참 동안 닦은 솥은 반들반들 윤이 났다. 부엌 한쪽에는 큰 탁자를 넣어 떡을 만드는 공간을 마련했다. 시루며 베 보자기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며칠 동안 그렇게 집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니 장희의 몸은 녹초가 되었다.


“오늘 밤은 이대로 자고 내일은 엄니랑 장에 가자. 그래서 떡을 만들어 보장께. 시루떡도 만들어보고, 설기도 만들어보고, 절편도 만드는 것이야. 이 엄니가 만드는 떡이 얼마나 맛있냐면은...”


장희가 신이 나 노래하듯 흥얼거리며 채훈을 보자 채훈도 신이 나 ‘웅’,‘웅’ 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두 모자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시장에서 장을 봐 돌아왔다. 콩도 사고, 팥도 사고, 쌀도 샀다. 채훈을 업고 양손에 잔뜩 들고 오려니 무겁고 힘이 들었다. 그래도 입가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채훈을 내려놓고 물을 떠다가 부엌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쌀을 씻는데 밖에서 누군가 불렀다. 함평댁이었다.


“자네 집에 있는가?”


“예, 성님, 저 여기 있어라우.”


반가운 마음에 일어서는데 하늘이 핑그르르 돌았다. 장희는 벽을 잡고 지탱해 섰다. 아래쪽이 뭔가 물컹하며 따뜻해진다. 치마 한쪽이 붉은 피로 물들기 시작한다.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하늘이 노래졌다.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부엌으로 들어오는 함평댁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는가?”


병원이었다. 옆에 걸린 병에서 똑똑 떨어지는 노란 액체가 줄을 타고 장희의 손목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함평댁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장희를 보고 있었다.


“채훈이는 어디있어라우?”


“이 상황에서도. 에고... 걱정 말게 자기 아버지랑 집에 있어야.”


장희가 이 무슨 일인가 싶어 눈빛으로 묻자 함평댁은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한숨을 짓는다. 그러더니 다시 입술을 한번 꼭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애가 들어섰다는디 자네는 모르고 있었시야? 벌써 다섯 달은 족히 되었다는디.”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달거리 날짜도 일정치 않았을뿐더러 그거 세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조금 늦네, 건너뛰는가 생각했던 것이 벌써 몇 달이나 지난 것이다.


장희는 기가 차기도 하고 함평댁에게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 마음을 알아챈 듯 함평댁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야. 자네가 뭔 죄인가? 아이고 그나저나 이것을 어쩌면 좋다냐?”


함평댁의 한숨 섞인 말에 숨은 여러 가지 뜻을 장희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토록 끊고 싶었던 임현택 집안과의 연이 다시 한번 동아줄로 꽁꽁 묶이듯 되감아지는 듯했다.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라는 멍에가 장희의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아기 가진 사람이 무거운 것도 들고 너무 무리하게 일을 혀서 하혈을 했다고 하는구먼. 이대로 쉬면 괜찮아질 것이랑께 암 생각도 말고 그저 누워 쉬랑께. 이제는 알았으니 새로 찾아온 생명을 소중히 생각해야지.”


함평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성님, 지송하요.”


장희가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하자 함평댁이 따뜻한 손으로 그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것이 자네가 죄송할 일이당가?, 그저 세상천지 사람 일이 참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싶어 내가 기가 찬당께.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불쌍한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젤로 불쌍한 여자라 생각하고 살았으야. 아들 못 낳아 소박맞고 서방은 젊은 여자랑 결혼하고... 근디 생각해 보니 나보다 더 아프게 사는 사람이 자네더만. 나한테 미안타 생각은 조금도 말고 몸 잘 추스르소. 하늘이 있다면 자네 이리 살게 내버려 두지는 않지 싶소.”


함평댁의 진심 어린 위로에도 장희는 위로받지 못했다. 발목의 끈을 끊고 이만큼 도망쳤다 싶었는데 다른 쪽 발목에 묶인 족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채훈 아버지도 아는 것이오?”


“내가 사람을 시켜 불렀네. 사람은 쓰러졌는데 아기도 있지. 나는 채훈이 데려다 놓으러 본가로 가고 자네는 금숙이 아버지가 병원으로 업고 온 것이여. 자네 임신 소식을 나는 여기 와서 금숙이 아버지한테 들었네.”


‘쯧’ 장희는 혼자 혀를 찼다.


겨울바람이 시작될 무렵 장희는 또 아이를 낳았다. 이번에도 사내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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