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제7장

by 임효진

장희가 임원택의 형 임현택과 혼례를 치르고 그의 집에 들어온 지도 3개월이 지났다. 임현택의 집은 끝도 없이 펼쳐진 넓은 평야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황량한 평야를 돌며 얼어붙은 듯한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세차게 휘감는 계절이 되었다. 추수를 끝내고 밑동만 남은 볏단이 질퍽질퍽한 땅 위로 삐죽삐죽 솟아올라 있다. 여름과 가을, 그 찬란한 계절에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하던 풍경은 사라지고 앙상하게 남은 논바닥은 차갑고 외롭다.

임현택의 상황은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아이를 낳지 못해 쫓겨났다고 하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임현택은 열세 살 딸이 있었다. 연희와 동갑이다. 전처는 딸을 하나 낳은 뒤로는 줄줄이 들어선 아기마다 역아로 사산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아들을 보지 못하자, 반대하는 임현택을 무시하고 시어머니는 일방적으로 그녀를 내쫓았다. 임현택은 몰래 전처를 찾아가는 눈치였다. 시어머니는 장희에게 빨리 임신해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면 다 해결될 거라며 모르는 척 덮으라고 했다.

“사내한티는 자기 아들을 낳아준 여자야말로 최고의 조강지처인겨”

시어머니의 말에 장희는 돌아서서 피식 웃었다. 일주일에 나흘은 노름질하느라 밤을 새우고, 틈만 나면 전처 집을 찾는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쉽게 생길 리가 없었다. 장희는 이 집에서 쫓겨난 임현택의 전처처럼 자신도 차라리 쫓겨나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연희의 사정 역시 좋지 않았다. 연희는 동갑내기인 임현택의 첫째 딸 금숙과 같은 방을 써야 했다. 눈치가 빤한 사춘기 여자아이가 친엄마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새엄마는 물론이요, 이모라고 불러야 하는 동갑내기 그 여동생이 좋을 리가 없었다. 서릿대 같은 할머니의 등쌀에 어른들 앞에서는 연희에게 이모, 장희에게는 새엄마라 부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으나, 할머니가 안 계실 때면 연희에게 이년, 저년 욕지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몸에 손을 대는 일도 허다했다.

임현택은 그야말로 한량이었다. 송하일의 말대로 분명 재산 꽤나 있는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물려받은 재산을 몰래몰래 빼 돌려 거의 다 노름하는데 썼다. 얼마 남지 않은 논밭도 곧 그를 통해 노름판으로 흘러들어 갈 것이 분명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임현택과 곡성댁은 노름판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었고 그 노름판에서 이런 혼담도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셈’

장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장희 자매에게 있어 임현택은 든든한 가족이 아니었다. 장희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대가족의 살림을 꾸려 나가야 했다. 설거지를 끝내놓으면 또 식사를 준비해내야 했고, 한겨울에도 매일매일 산더미같이 쌓인 빨래를 들고 개울가로 나가야 했다. 쫓아낸 며느리 대신 일을 할 일꾼으로 이 집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희와 선을 봤던 임원택이 장희가 본가로 들어오자 바로 혼인해 나가 마주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장희는 하루종일 녹초가 되도록 일하고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지금은 농한기라 바쁜 편이 아니라고 하니 봄이 오면 얼마나 고된 생활을 해야 하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괴롭고 슬펐다. 그런 장희를 보며 연희는 마음 아파했다. 어느새 훌쩍 큰 열세 살의 어린 동생은 마음이 아파 철이 들었다. 틈만 나면 나와 장희의 일을 하나라도 거들려고 했다.

“추워, 얼른 들어가서 공부하랑께.”

“나는 여기가 더 좋은디, 금숙이 저 년 하고 같은 방을 쓰는 일이 월매나 기가 찬 일인지 언니는 모른당께. 그냥 여기서 언니랑 같이 빨래하는 것이 나는 백배로 즐겁네.”

같이 개울가에 앉아 빨래를 치대다 빨갛게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 녹이는 동생이 마음 아프다.

“금숙이가 많이 그란다냐?”

“그런 건 아니고 것이 쪼매 사나워. 그냥 안 보면 암씨랑도 않은께 마음 쓰지 마소.”

“언니가 미안허다.”

“아니여, 언니가 뭣이 미안하당가? 나는 참말로 괜찮어.”

장희는 앞이 막막했다. 정말로 아들을 낳으면 내가 이 집 가족이 되고 우리 자매의 처지도 조금 나아질까 싶다가도 이런 집에서 그래봤자지 하는 생각도 들어 답답했다.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문 밖으로 나가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대지를 봤다. 시린 바람을 품고 있는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 속의 시린 바람도 계절이 다해가듯 끝날 것이다 희망을 품곤 했다.

다행히 시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장희에게 미안해하는 눈치도 있었고, 간식거리라도 들어오면 손녀 금순의 몫보다 사돈처녀인 연희 것을 먼저 챙겼다.

그러던 장희에게 소식이 왔다. 얼마 전부터 졸음이 쏟아지고, 속이 얹힌 듯 갑갑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시어른들 조반 상을 치우면서 헛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라는 사람은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 미소를 얼굴 가득 지었다. 그러더니 생전 나오지 않던 부엌까지 쪼르르 쫓아와 달거리는 언제 했는지, 언제부터 속은 그랬는지, 먹고 싶은 건 없는지 신나서 캐물어댔다.

그날 장희는 시어머니 뒤를 따라 읍내 의원까지 다녀왔다. 아기가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는 말에 시어머니는 춤이라도 출 듯 기뻐했다.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초반에는 몸 간수를 잘해야 한다는 둥 오는 내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아기를 가진 후로 장희는 조금 편안해졌다. 시어머니는 장희가 아기를 가진 것을 안 순간 장희의 일을 반으로 줄였다. 원래 일하던 사람도 다시 부르고, 음식도 직접 했다. 덩달아 연희의 삶도 조금 편해졌다. 게다가 시어머니가 금숙이를 어찌 볶아 놓은 것인지 금숙이는 연희를 모른 척은 해도 특별히 욕을 하거나 괴롭히지는 않았다. 나 몰라라 밖으로만 돌던 임현택도 조금은 다정하게 굴었다. 남편이 든든하다거나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 속에 아기가 있고 그 아기와 함께 가족이 될 사람이라 생각하니 그런대로 정이 붙어가는 것 같았다.

연희와 금숙은 나란히 중학교에 입학했다. 둘 다 성적이 좋아 학교장 추천으로 광주에 있는 기숙사가 있는 여자 중학교로 갈 수 있었다. 광주로 떠나는 날 연희는 장희의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언니만 여기 놔두고 가려니 내가 발이 안 떨어지네.”

“나는 괜찮은께, 가서 딴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혀.”

“아기 낳을 때 꼭 연락혀. 내가 다 내팽개치고 달려올 테니께.”

세상에 둘만 남은 자매인 만큼 둘 사이는 정이 넘쳤다. 사랑하는 동생을 이제 매일 볼 수 없다 생각하니 장희는 세상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었다.

‘요즘 세상에는 여자도 저리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제. 암만. 그래야 연희는 나 같이 안 살 것이여.’

그렇게 몇 번이나 되뇌는 장희였다.

눈물의 봄이 지나 여름의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장희는 아들을 낳았다. 허리가 끊어질듯한 산통을 겪으며 장희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이리 고통 속에서 낳은 장남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해서 아들을 따라가셨나 싶었다. 그래도 이렇게 내가 아플 때 살아서 내 옆에서 손도 좀 잡아주고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아기를 낳는 고통이 딱 죽을 맛이라더니, 마음의 고통과 더해지니 숨도 쉴 수 없게 아팠다. 그렇게 몇 번을 까무러쳐가며 장희는 아기를 낳았다. 엄마를 빼닮은 잘 생긴 사내아이였다.

종손 집안의 대를 이었다며 시어머니는 입이 찢어져라 좋아했다. 덩실덩실 춤을 추듯 걸어 다녔다. 장희 손을 잡고는

‘니가 이 집안의 대를 이었다. 내가 이제는 조상을 뵙고도 죄인이 아니다.’

며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했다.

아들의 이름은 ‘임채훈’. 시아버지가 항렬을 따져 고르고 골라 지은 이름이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전쟁도 끝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남과 북의 대표가 휴전 선언을 한 것이다. 무려 3년간의 전쟁이었다. 지금이야 이 시골에 박혀 저 윗지방에서는 전쟁을 하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전쟁의 시작으로 장희는 가족과 함께 자신의 꿈과 미래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장희에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처음은 동생 연희였고, 이제 그 꿈은 아들인 채훈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보면 볼수록 장희의 오라버니인 정철과 꼭 닮아 장희는 채훈을 볼 때마다 오라버니 생각이 났다. 곰 같다 답답해하며 놀리던 오라버니였지만 그 인물이나 성품, 머리를 닮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었다.

“당연히 오라버니를 닮았겄제. 언니랑 오라버니가 꼭 닮았고, 채훈이는 언니를 꼭 빼다 박았으니께.”

방학이라 집에 온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채훈이가 태어난 뒤로 금숙과 연희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둘 다 예뻐하는 동생과 조카가 생긴 탓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밤에 둘의 방문 앞에서는 재잘재잘 수다 떠는 이야기와 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금숙은 이제 장희에게도 살갑게 굴었다. 원래 장희가 곰살맞게 누군가에게 사분 사분히 구는 성격이 아닌 탓에 시간은 걸렸지만, 금순도 새로 들어온 엄마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었는지 연희를 통해 듣고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장희에게 연민을 느끼는 듯했다. 장희와 연희, 그리고 금숙 사이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이해라는 이름의 실이 생기기 시작했다.

8월, 한여름에 태어난 채훈이는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자 옹알이를 시작했다. 그 옹알거리는 소리는 온 집안 식구들의 눈가에,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잡아두었다. 데면데면하던 장희 부부 사이도 ‘채훈 아부지’, ‘채훈 엄마’ 소리와 함께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장희도 마음으로 이제 진짜 가족이 생겼구나 싶어 안정을 찾아갔다.

단지, 걱정은, 임현택의 노름질이었다. 연희와 금숙이 다니던 국민학교 앞에 차려놓은 현택의 작은 문방구는 주인이 자리를 비워 문이 잠겨있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일하는 사람을 써서 관리를 하긴 했지만 수입과는 비교도 안 되는 훨씬 큰돈이 노름판으로 흘러 들어갔다. 불행하게도 임현택이 건드린 것은 문방구 수입만이 아니었다. 장남이 늙은 부모님 몰래 대부분의 땅을 처분해 그리도 자랑스러워하던 선산 아래 저 비옥한 땅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안 시아버지는 몸져누워 일주일가량 일어나지 못했었다. 그 와중에도 시어머니는 노름판에서 밤을 새우며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하는 아들의 건강 걱정뿐이었다. 가끔은 ‘여편네가 고분고분 다정한 맛이 없으니 저리 남자가 밖으로만 나돌지. 금숙 애미 있을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로 장희의 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래도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등짝을 내려치며 ‘이제 자식이 둘인데 이제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냐?’ 며 자신의 남편이 알게 될까 불안해했다. 채훈이를 낳고는 한 달 정도는 뜸하다 싶어 정신을 좀 차렸나 싶더니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임현택은 다시 황씨네 가게 뒷방 꾼들만 모인다는 그곳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술도 많이 마셨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노름을 하다 돈을 좀 딴 날이면 기분 좋아 취해오고, 잃은 날이면 잃었다고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마셨다. 시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도 소용없었다. 시어머니는 귀한 장남이 아버지 눈 밖에 날까 두려워 벌벌 떨었다.

날씨가 제법 차가워진 어느 날, 임현택은 축사에서 소를 한 마리 끌고 나가 사흘째 들어오지 않았다. 채훈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방으로 찾아왔다.

“너는 서방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걱정도 안 된다냐? 니 새끼 입에 젖이 저래 들어가는데 서방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걱정도 안 돼야? 아이고 내 팔자야.”

“소를 끌고 나갔으니 또 노름판에 가 앉아있겠지요.”

시어머니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젖을 먹는 채훈과 눈을 맞추며 장희가 대답했다. 저렇게 나가서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늘따라 왜 저리 유난인지 싶었다.

“니가 그러니께 채훈 아범이 집에 정을 못 붙이는 것이여. 시상 천지 저리 정 없는 년이 어딨다고 저것도 마누라라고 우리 아들만 불쌍허지. 한 번을 찾으러 가는 꼴을 못 봤시야, 내가...”

생트집을 잡고 한탄하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장희는 임현택을 찾아 채훈을 업고 황씨네 가게까지 갔다. 하지만 차마 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채훈을 어르고 달래며 두 시간을 그리 멀뚱멀뚱 서 있으니 주인 황 씨가 보고 임현택을 불러다 주었다. 술에 취해 노름을 하러 간 것인지, 노름을 하다 술을 마신 것인지 모를 그는 채훈까지 업고 자신을 찾아온 장희를 보자 불같이 성을 냈다.

“여기가 어디라고 애까지 업고 온댜. 썩을 것이.”

뭣이 분한지 씩씩거리며 욕까지 퍼부었다.

“채훈 아부지, 그라지 발고, 이제 집에 가장 께요. 어머님 걱정하시오.”

“이 년이 실성을 했구먼. 남자가 할 일이 있다는디 어디 와서 지랄이여, 지랄이.”

목소리가 커지자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보았다. 장희는 가만히 현택의 팔을 잡아끌었다.

“술도 제법 자신 거 같은디 이제 고만...”

“뭣이 누가 술을 먹어?”

짝!

장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택에게 뺨을 맞고 넘어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현택을 말리며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현택은 무엇이 그리 분한지 사람들에게 밀려 들어가면서도 장희를 향해 욕을 퍼붓는다. 장희의 등에서는 놀란 채훈이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얼굴도 모르는 아낙네가 장희를 부축해 일으키며 치맛자락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이번에 임 씨가 조금 많이 잃은 모양이요. 돈이 없으니 더 끼워주지도 않고, 옆에서 속이 상해 한참 동안 술을 먹은 것 같소. 새댁이 이해 하랑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 가는 장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귀한 집에서 곱게 자라 이런 손찌검은 처음이었다. 정신없이 맞은 탓인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현택에게 서운함이나 배신감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흘렀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맞은 탓에 자존심이 상한 탓도 있지만, 장희의 눈물의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 사람과는 앞으로 어찌 살아낼까 하는 생각이 장희의 마음속에 불안하게 자리 잡았다. 뒤에 업힌 채훈이가 아직도 불안한 듯 칭얼거렸다.

“아이고, 너를 우짠디야.”

장희는 채훈을 업은 상태로 흔들어 어르며 나지막이 탄식했다. 가을의 들판은 황금빛 물결의 춤을 추고 있었고 바람은 이리저리 불어대며 금빛 노래를 지휘하고 있었지만 그 연주는 더 이상 장희에게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었다. 장희는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 저수지로 향했다. 둑 위에 앉아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을 가만히 보았다. 발 끝으로 돌을 차 물에 떨어뜨리며 한참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저 물결처럼 잔잔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수지 주변을 둘러싼 갈대같이 조용히 살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꼬치꼬치 캐묻는 시어머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장희의 볼이 빨갛게 부어있고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깨달은 그녀는 방까지 쫓아 들어오지는 않았다. 마침 연희가 집에 없어 이 꼴을 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장희는 채훈을 눕히고 그 옆에 앉았다. 채훈은 그새 잠이 들었다. ‘오라버니도 아기 때 이리 곱게 생겼겠지’ 하며 가만히 채훈의 손가락을 만져본다. 잠결에도 채훈은 장희의 손가락 하나를 꼭 잡는다. 마치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자기 옆에 있으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왔다. 오빠같이 생긴 가지런한 눈썹, 오빠같이 생긴 동그란 코, 오빠같이 생긴 저 야무진 입. 그 생각 끝에 또 도운이 떠오른다. ‘지금 내 옆에 도운이 있다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겠지, 그는 자기 아내를 때릴 사람이 절대로 아니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미친 듯이 도운이 그리웠다. 혼인을 앞두고도 손 한 번 잡을 때면 몇 번이나 떨리는 눈길로 장희의 손을 바라보던 그 따뜻한 눈길이 너무나도 그립고 서러워서 장희는 한참 동안이나 끅끅 이를 깨물고 울었다.

밖이 시끄러웠다. 동네 누군가가 찾아와 오늘 노름방 앞에서 있었던 일을 시부모님께 이야기 한 모양이었다. 채훈이가 깰까 싶어 문을 꼭 닫아 놓고 밖으로 나가보니 나무 작대기를 들고 현택을 찾아가 패 죽이겠다는 시아버지를 시어머니가 말리고 있었다.

“이 거 놓으랑께. 내 그놈의 자식을 오늘 사달을 내고 말 것이여.”

“아이고, 사람들 다 듣소, 돌아오면 좋게 말로 하잔께요.”

“허구한 날 노름질로 집안 재산을 그리 날려 먹고, 이제는 마누라 손찌검까지 한다냐? 내 그놈을 오늘 호적에서 파 버릴 것인께.”

“오죽하면 그랬겄소? 기집이 거기까지 찾아가 패악을 떠는데 참을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겄소? 맞을 만한 짓을 했으니 때렸겄제.”

거기까지 말하고는 시어머니는 고개를 돌리다 멀찌감치 서 있는 장희를 보았다, 그러고는 장희를 향해 한바탕 퍼부어 댔다.

“너는 뭣하러 거기까지 쫓아가서 이 사달을 낸다냐? 어디 기집이 할 일이 없어 거기가 어디라고 거기에 쪼르르 쫓아갔다냐? 저런 생각이라고 없는 년을 봤나. 기집이 잘 들어와야 집이 편한 것이라더니 우리 집은 이제 우짠디야.”

시어머니가 더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자 시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장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냥 방으로 돌아왔다. 채훈이가 잠에서 깨어 울고 있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기가 찬다. 채훈을 안아 가슴을 토닥거렸다.

현택은 그날 밤에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해 돌아왔다. 장희는 현택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싫었다. 그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동시에 장희의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코를 골며 자는 그 태연함과 무지함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다행히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것인지 임현택은 장희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장희도 임현택을 되도록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 다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이 돼서도 장희 부부는 서로 아무런 대화 없이 지냈다. 이리 지내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장희는 그냥 이렇게 계속 남처럼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부부 사이처럼 겨울은 빠르게 다가왔다. 이번 겨울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시아버지의 기침이 심해졌다. 병원에서는 워낙에 담배를 많이 태운 탓에 폐에 안 좋은 혹 덩어리가 있다고 했다. 원래 겨울만 되면 숨 쉬기 어려워 위독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었는데 올 겨울은 그것도 마지막이지 싶었다. 시아버지는 방에 누워 며칠째 숨을 헐 떡 헐 떡 내어 쉬며 일어나지 못했다. 의원이 찾아오고 이제 준비를 하라고 얘기하고 돌아간 날, 시아버지가 금숙을 시켜 장희를 살짝 방으로 불렀다.

“흡.아가”

숨 쉬기도 어려운 상황에 어렵게 말을 잇는 시아버지를 보자 장희는 가슴이 먹먹했다. 이 집에서 유일한 자기편이며,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던 분이었는데.

“네, 아버님.”

“흡, 내가... 흡. 미안하다..”

“아니여라, 아버님, 얼른 일어나시오.”

“흡. 이거. 흡”

그는 옷소매 안쪽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제법 두툼해 보였다. 받아 들어보니 돈이었다.

“아니, 아버님 이게 웬..”

눈을 찌푸리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준다. 장희는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으로 장롱 옆 선반을 가리킨다.

“아버님, 이 것이요?”

장희가 선반 위의 베개를 내린다. 베개를 받아 든 시아버지가 자리에 누운 채 베개를 이리저리 뒤적이는데 힘없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베갯속에서 봉투가 하나 더 나온다.

“아버님, 이게 다 무엇이요?”

“흡, 이것들은 흡, 니 것이랑께, 흡, 암말도 말고...”

몰아쉬는 숨이 위태위태하다. 콜록거리는 기침소리도 불안하다.

“아버님.”

옆에 놓인 물을 그릇에 따른다. 차갑게 식어 있다. 머리를 일으켜 물을 먹인다. 목을 축이는 것만으로도 숨소리가 한결 좋아진다.

“물이 차요, 아버님. 나가서 다시 데워올께라우.”

“흡, 아가.”

“네,”

“흡, 절대로 아무 한티도 말하면 안 된다. 이 것은 니 것인께.”

“네. 아버님,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께, 얼른 일어나시랑께요.”

대답하는 장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조끼 안쪽에 깊숙이 봉투 두 개를 숨기고 물 쟁반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문 앞에는 방금 외출에서 돌아온 듯한 시어머니가 약재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왜 거기서 나온데?”

“아. 물이 차가운 것 같아서.”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둘러댄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시어머니를 뒤로 하고 부엌으로 가서 물을 데운다. 시어머니가 따라 들어왔다.

“저 양반이 너 불러서 뭐라디야?”

금숙에게 들은 것 같다.

“아... 채훈이 감기 안 걸리게 잘 키우라셨어라.”

“그러냐?”

대답이 떨떠름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데운 물을 다시 안방에 갖다 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채훈이가 아직도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두 개의 봉투 중 좀 더 두툼한 것을 열어 보고는 장희는 놀라서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누렇게 바래져 꼬깃꼬깃 하게 구겨진 봉투에는 작은 집 한 채는 족히 얻을 만한 큰 돈이 들어있었다. 나머지 하나의 봉투에도 연희를 대학까지 충분히 보내겠다 싶은 큰 돈이 들어있었다. 병상에 누워 몸도 잘 못 가누는 시아버지가 언제부터 그 돈을 깊이 간직한 채 자신에게 전해 줄 날을 기다렸나 싶어 마음이 저릿해 왔다. 장희는 그 돈을 채훈의 배냇저고리 함에 함께 넣어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다.

시아버지는 그러고는 열흘을 못 버티고 세상을 떴다.

한겨울의 장례식은 가슴 시리도록 헛헛했다. 나름 이 동네에서 힘 좀 썼던 어른의 죽음이라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장례식이었다. 그 많던 손님들은 한 밤이 되면 거의 다 돌아갔다. 방 한 칸에서는 늦게 온 손님들이 망자에 대한 슬픔은 잊고, 그저 오랜만에 만난 것이 마냥 즐거운 양 부어라 마셔라 술잔을 들이켰다. 흰 천막이 드리워진 마당에는 장작 태우는 연기만 가득했다. 장성 살 적 장희가 좋아하던 한겨울 장작 태우는 향이었다. 그 장작 태우는 냄새만이 장희의 그 헛헛한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나무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대청마루 구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장작 타는 냄새는 장희를 과거로 데려다주었다. 다정한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아침 해가 중천에 뜨도록 뜨뜻한 아랫목에 누워 손톱 아래가 노랗게 변하도록 귤을 까먹던 그때, 가슴 설레어가며 정혼자 도운의 방문을 기다리던 그때는 겨울이 이토록 추운 계절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그녀에게 겨울은 그 이름에 걸맞은 차갑고도 잔혹한 계절이 되었다.

추위 속에서 하루종일 음식을 장만하고, 자리를 정리하고, 손님을 맞고 곡을 하고 울고. 그 일을 백번도 더 반복한 뒤 슬픈 예식은 끝이 났다. 장례를 치르며 장희는 남편과 자연스레 다시 대화를 하게 됐다. 진심 어린 사과는 한마디도 없이 임현택은 장희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걸어왔다. 장희는 우스웠다. 그를 증오하면서도 그 말에 대꾸를 하고 있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하찮게 느껴졌다. 용서조차 구하지 않는 그의 뻔뻔함이,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 그를 용서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그렇게 한 사람이 가고 장희는 이 집에서 자신의 가치를 슬퍼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이 흘렀다. 빨리 오려는 봄을 시샘이나 하듯 며칠 동안 그리 춥더니 햇살이 제법 따뜻한 날도 왔다. 장희는 채훈을 업고 잘 마른빨래를 걷고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집으로 돌아온 연희와 금숙은 부엌 아궁이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느라 신나 새까매진 얼굴과 손으로 종종거리며 마당과 부엌을 오가고 있었다. 이제 제법 아가씨 티가 난다 싶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 여자 아이 둘의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그때였다. 어떤 여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품 안에는 이제 한 달이나 지났을까 싶은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다. 선하고 참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누구시오?”

물으면서도 익숙한 눈매나 입매에 장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뒤에서 금숙이 큰 소리로 그 여자를 부르며 뛰어가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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