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의 이름은 채현. 임채현이었다.
채현이가 태어나자 시어머니와 임현택은 장희의 작은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놓은 듯 자주 드나들었다. 채현이는 서글서글한 눈꼬리가 축 쳐진 것이 유난히 임현택을 닮았다. 시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빼다 박은 채현을 품에 안고 내려놓을 줄 몰랐다.
“아이고, 어찌 이리 지 아비를 쏙 빼다 박은 것인지. 요놈 눈 서글서글한 것 좀 보소. 코도 큼직한 것이 아이고 참말로 잘 생겼다. 아가~ 내가 니 할미다. 할머니 해보아. 응? 내가 늘그막에 무슨 복이 들어서 못 볼 거라 생각했던 손주를 이리 줄줄이 보는 것이다냐. 아가, 참말로 수고 많았다.”
기껏 도망쳐 나왔는데 매일같이 드나드는 두 모자가 장희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싫은 내색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힘들게 꾸린 공간이 다시 호랑이 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장희는 입을 꾹 다물고 귀찮은 두 모자를 최대한 무시하려고 애썼다. 시어머니는 장희의 그런 태도가 불만인 듯 이런저런 잔소리와 지적질을 퍼붓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귀찮은 두 사람의 방문도 채현이 태어난 지 100일이 넘어가자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장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임현택은 아마도 또 노름질에 빠져있을 것이다. 함평댁의 말을 듣자면 시어머니는 다행히도 장희의 무뚝뚝함에 혀를 내두르고 나가떨어진 것 같았다.
“그 년이 그리 꽁하니 있으니 정이 붙을 리가 있나?”
시어머니가 장희의 집을 다녀와서 함평댁에게 한 푸념이라고 했다. 장희가 살갑게 굴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시어머니가 집에 드나드는 것은 장희에게 끔찍한 일이었다. 사람 된 도리로 어른 대접은 했지만, 처음부터 속아서 혼인했고, 지금 장희 신세를 이리 만든 노인에게 장희가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이나마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던 임현택 집의 지원도 어느 순간 완전히 끊겼다. 연희의 학비는 다행히도 함평댁이 금숙의 학비와 함께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했다. 당장 쌀을 살 돈이 없어 장희는 시아버지가 주신 돈을 조금씩 꺼내 쓰고 있었다. 하지만 장희는 그들 모자가 없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채현이가 조금만 더 크면 돈이야 얼마든지 다시 벌어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채훈이가 제법 잘 걸어 다니고 채현이도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자, 장희는 다시 떡을 만들기로 했다. 오랜만에 하는 일이어서 맛을 낼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몇 번을 연습해 보니 옛 솜씨가 그대로 나왔다. 처음으로 만든 팥 시루떡을 머리에 이고 채현이는 업고 채훈이는 살살 걸려서 장터에 나갔다. 집이 읍내랑 가까운 것이 다행이었다. 밤낮으로 줄기차게 개구리가 울어대는 논두렁 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 강을 하나 지나면 읍내였다. 극장 옆 모퉁이 빈자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을 내려놓고 팔았다. 첫날에는 절반도 팔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점차 손맛을 기억하는 손님이 늘어 목이 내려앉도록 무겁게 머리에 지고 간 떡은 반나절만에 다 팔리곤 했다. 정해진 자리 없이 아무 곳에나 자리를 펴고 앉다 보니 쫓겨나기 십상이었지만 그래도 식구들 쌀값은 그럭저럭 벌 수 있었다.
그렇게 떡을 팔러 다닌 지 한 달쯤 됐을 때 길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예전 이모부댁에서 일하던 박 씨였다.
“이게 누구다냐? 장희 아니여? 아유, 반갑구먼, 참말로 반가워.”
“안녕하세요? 아저씨. 잘 지내셨지라우?”
“나야, 똑같지야. 이 애기들이 장희 애기다냐?”
“네. 아저씨.”
“야야, 아그야 니 이름이 뭐다냐? 이거 갖고 가서 사탕 하나 사 먹어. 아이고, 예쁘다. 엄마를 꼭 빼닮았네.”
“아니여라. 아저씨 그러지 마시랑께요.”
장희를 보는 박 씨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굳이 사양하는데도 박 씨는 채훈이에게 사탕 값 치고는 꽤 큰돈을 쥐어 주었다.
“이모부랑은 건강하시죠?”
모진 말을 하고 결혼해 떠나 온 뒤로 그 집과 연을 끊었지만, 돌아보니 마음이 아파 가끔은 후회도 했던 장희였다.
“말도 말랑께. 자네 그렇게 보내고 어르신도 맴이 많이 안 좋았던 모양이여.”
“...”
“그 집 형편이 많이 기운 것을 알고 자네 시부 되는 어른을 따로 만나 돈도 제법 챙겨드린 것 같더구먼. 자네 잘 부탁한다고... 자네가 만나 주지도 않을 것 같으니 그런 모양이여.”
“아...”
장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시아버지가 주신 돈 봉투가 이모부가 맡기신 돈이구나 싶었다.
“혼인까지 치르고 안 보내면 어쩔 것이여. 어르신도 자네 그리 보내고 후회도 하고 또 곡성댁 땜시롱 병도 들었제”
“곡성댁이요?”
박 씨가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그러더니 장희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귀속말을 한다.
“이것은 자네가 그 집 식구나 다름없으니 하는 말인디...”
“...”
“훈성이가 송 씨 집안 핏줄이 아니었제.”
장희는 깜짝 놀랐다. 곡성댁의 그 음흉하고 간교한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그게 무슨 말이다요?”
“애가 어찌나 별난지 클수록 생김새며 하는 행동이 누굴 닮아 저러나 싶었는디, 몇 달 전에 글씨 훈성이가 담장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크게 다쳤지 뭐여. 피를 하도 흘린께 수혈을 한다, 수술을 한다 난리였는디. 그때 알았제. 수술을 해 주신 의사 선상님이 혈액형인가 뭣이 당가가 어르신 한테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피라 그랬당께.”
“아... ”
“피 가지고 자식이 자기 핏줄인지도 알아내고 참말로 이제는 씨도둑질같은 것을 하고는 못 사는 세상이 되었제.”
“그래서 지금 이모부는 어쩌고 계신다요?”
“지금은 암씨랑도 안혀.”
“충격이실 틴디...”
“처음에는 곡기도 끊고 방에 드러누워 암것도 못하셨제. 세상에 전쟁이 나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던 양반이 자리보전하고 누워 그리 눈물만 흘리시더군. 나는 그 어른이 그리 돌아가시는 줄 알았당께. 참말로. 근디 며칠 뒤에 나를 부르시더란 말이시. 불러서 부탁을 하시더군. 이 일을 모르는 것으로 하자고. 곡성댁한테도 모른 체 하라고...”
“휴...그러셨군요.”
“아무리 남의 핏줄이라고 해도 키운 정이 얼만디. 얼마나 예뻐하며 길렀는디 이제 와 훈성이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우째 내치겄냐고? ‘아버지’하고 부르는 놈을 어찌 내쳐. 그냥 이대로 모든 걸 덮기로 하신 것 같어.”
“...”
“어르신이 그러시더군.”
“...”
“자식 생겼다고 눈이 멀어 자네 자매 그렇게 서운하게 내보낸 거 자네 이모가 하늘에서 보고 벌 준 거라고...”
“다 지난 일을... 이모부 잘못이 아니지라우. 곡성댁이 나쁜 사람이지.”
“글치. 고년이 나쁜 년이제.. 시상 천지 어찌 그런 벼락 맞을 짓을 하는지... 고것은 벌 받을 거이여. 암만. 벌 받제. 멀쩡히 잘 사는 부부 사이 갈라놓고 남의 집에 기어 들어와서 멀쩡한 가족은 내쫓고, 어디서 딴 놈 자식을 데려다가... 어휴. 뻐꾸기도 아니고 말여...”
박 씨는 그러고 한탄을 하다 아차 싶은 듯 장희를 보고 말했다.
“자네, 그라지 말고 한 번은 어르신 찾아뵙게. 아마도 한 번은 보고 싶을 듯하네. 맺힌 게 있더래도 풀고. 어르신 건강도 많이 안 좋아지셨어.”
“제가 좀 더 여유가 생기면 한번 찾아뵐 것이니, 너무 걱정 마셔라우.”
“그러고 보니 자네는 어찌 사는가? 그 집 형편이 많이 기울었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이리 나와서 이 꼴이 다 뭐 당가?”
“아니여라... 내가 그 집서 지내기 싫어 나왔당께요. 이렇게도 사는 것이 훨씬 더 재미지고 마음도 편하요. 이모부께는 담에 내가 찾아뵙고 인사 드릴랑께 아저씨는 암말 마소.”
“쯧쯧. 자네가 이리 험하게 살 사람이 아닌디... 어르신 찾아뵈면 어떻게라도 살 길을 열어 주시지 싶은디.”
“참말로 암씨랑도 안혀라. 자꾸 누구한테 신세 지고 살 수 있겄소? 지도 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살아야지라.”
당장이라도 이모부를 찾아뵙고 한 재산 얻어내어 편히 살라는 박 씨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장희는 이것이 어쩌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을 꿈꿀 때마다 그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장희에게서 멀어졌다. 도운도, 부모님과 오라버니도, 이모도, 이모부도... 자신이 여기서 다른 무언가를 욕심내면 연희나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장희의 가슴속 깊이 꿈틀꿈틀 자라나고 있었다. 다행히 나름대로 장희의 떡장사도 자리를 잡고 있고,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이대로라면 연희까지 포함한 네 식구 입에 풀칠은 하고 살겠다 싶었다. 이모부가 주신 돈인지 모르고 받긴 했지만, 시아버지가 주신 돈이 제법 남아 있고 어머니가 남기신 패물도 있으니 연희와 두 아이 공부는 원하는 만큼 시킬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장희에게는 도운의 집에서 받은 패물도 있었다. 그것들은 받은 그대로 비단 보자기에 둘러 싸져 다시 빛바랜 베 보자기에 꽁꽁 묶어 장롱 깊숙이 숨겨두었다. 사실 전쟁이 터지고 백양산 골짜기로 피난 갈 때 열어본 뒤로 장희는 그 패물들을 열어보지 못했다. 도운의 기억에 가슴 아픈 것도 있지만, 그 패물들은 자꾸 열어 볼 수도, 그렇다고 팔아 치울 수도 없는 장희의 심장과도 같은 물건들이었다.
가을의 어느 날, 장에서 떡을 팔고 한결 가벼워진 소쿠리를 한 손에 들고 채현이를 업고 채훈이가 앞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논둑길을 걷고 있던 장희는 황금빛으로 빛나며 바람에 흔들리는 벼이삭들이 길 가 양쪽 논 가득 찬 광경을 보았다.
“채훈아, 넘어진당께. 뛰지 말어.”
장희는 채운이가 넘어질까 염려하면서도 깡충거리며 뛰는 아들의 모습이 예뻐 웃었다.
도운과도 이런 길을 걸었었다. 하늘은 푸르고 길 양쪽으로 벼이삭은 잔뜩 익어 황금물결은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만난 지 몇 차례 되지 않았을 때라 도운은 서먹서먹하게 걷다가도 움푹 파이거나 큰 돌부리가 있는 길에서는 장희를 한쪽으로 당기며 곱고 반듯한 길로만 걷도록 장희를 당겼었다.
지금 장희가 걷는 길은 얼마 전 내린 비로 온통 파여 있고, 돌부리가 올라와 울퉁불퉁했다. 하지만 장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길을 걷는다. 파여 있는 길도, 솟아올라 있는 길도 장희는 아무렇지 않게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이제 도운을 생각해도 가슴이 조금 먹먹할 뿐 그리 슬프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시리도록 그리웠던 도운의 죽음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나 싶었다. 집에 돌아와 자고 있는 두 아들을 건넌방에 눕혀 두고, 장희는 안방으로 들어와 장롱 깊숙이 숨겨놓은 도운에게 받았던 패물들을 꺼내 보았다. 노오란 금으로 된 반지와 목걸이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옥으로 된 쌍가락지는 상처 하나 없이 푸른빛이 영롱했다. 이렇게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이 도운과 자신에게 있었지 생각하며 장희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지나간 시간이다.
“이것들까지 팔아 보태면 여기를 뜰 수 있을 텐디.”
장희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머니의 패물과 도운의 패물들을 몽땅 모아 팔면 장희는 다른 지역으로 가 시장통에 작은 가게가 딸린 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멀리까지 떡을 팔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생활비랑 연희의 학비는 물론이고 두 아들까지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장희는 옥으로 된 쌍가락지를 손가락에 끼워보았다. 예전의 곱고 희던 손에는 썩 어울리던 반지였는데 이제 장희의 손은 거칠고 투박해져 가락지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 아무 느낌도 없다 생각했건만 코 끝이 찡하게 시렸다. 장희는 괜스레 코를 킁킁거리고는 반지를 손에서 빼어 보자기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만지작 거렸다.
“아직은. 조금만 더.”
장희가 조용히 혼잣말을 하며 보자기를 덮어 패물을 꽁꽁 싸서 장롱에 깊숙이 숨겨 넣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린다. 임현택이었다.
“뭔 일이래요?”
혹시라도 패물을 숨기는 걸 봤나 싶어 장희의 심장이 두근거린다.
“뭔 일이라니? 내 집에 오는 게 내 맘이지.”
현택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고 방 한가운데에 털썩 앉았다. 장희는 얼른 장롱 문을 닫고 문을 등지고 그 앞에 버티고 섰다.
“채훈 엄마”
갑자기 부르는 목소리가 다정하다 싶어 장희는 현택을 똑바로 바라본다.
“돈 좀 있어?”
“돈이요?”
“그랴. 돈”
“내가 돈이 어딨 대요? 겨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디.”
현택이 벌떡 일어난다. 벽에 걸려있는 앞치마 주머니를 뒤진다.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과 동전을 보더니 ‘칫’ 소리를 내고 장희를 째려본다.
“그거 아이들 밥 해 먹일 돈이요.”
장희는 그리 말하면서도 그 돈을 주머니에 넣는 현택을 말리지 않았다. 지금 장롱 문 앞에서 움직이면 현택이 장롱을 뒤져 숨겨놓은 물건들을 볼까 봐 겁이 났다. 그냥 얼마 안 되는 저 돈이라도 가지고 빨리 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현택은 그대로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장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밖으로 나가 현택이 집 주변에서 완전히 멀어져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에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것들을 더 잘 감춰야 해.’
현택이 또 언제 돈을 가지러 이 집에 올지 모른다. 장롱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장희를 보며 이곳에 뭔가 있을 거라고 알아챘을 것만 같았다. 패물들을 작은 주머니에 담아서는 부엌으로 갔다. 찬장을 열고 차곡차곡 개어져 있는 베 보자기를 일부 꺼내 그 사이에 패물이 잠긴 주머니를 잘 숨기고 다시 그 위에 베 보자기들을 개어 올려놓았다. 찬장 문을 닫고 한숨을 쉬며 부뚜막에 걸터앉았는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채훈 엄마”
함평댁이었다.
“성님 왔으라우?”
얼른 나가 반긴다.
“금숙 아버지 여기 왔었지야?”
급히 묻는 함평댁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방금 왔다 갔소.”
“돈은? 돈 달라고 안 혀?”
“오늘 장에 가서 벌어온 돈 몽땅 가져갔소.”
함평댁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정말 집에 돈이 없다고... 금숙이도 공부를 그만두고 불러내려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집에 있는 땅과 가축은 모두 팔아치우고 문방구 하나 남은 것은 시어머니와 의논해 함평댁 앞으로 명의를 바꿨다고 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함평댁은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미안해서 어쩐디야? 연희도 힘들 것 같아.”
“아니여라, 형님 탓이 아니지라우.”
“이제 곧 졸업인디 애들 불쌍해서 우짠디야.”
“형님, 그라지 말고 잠시만 있어보소.”
장희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장 아래서 예전에 시아버지에게 받았던 돈봉투룰 꺼냈다. 아직까지 제법 두툼하게 남아있는 봉투를 그대로 들고 가 함평댁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슨 돈이디야?”
“예전에 아버님 임종하시기 전에 받았어라우. 첨엔 이 걸로 멀리 도망가 집을 얻고 살랬는디. 이리 나와 살게 됐응께. 이건 성님이 쓰시오.”
“그럴 수야 있나? 자네 돈인디.”
“여태 성님이 돌봐주셔서 우리 연희, 금숙이랑 함께 여즉까지 학교 다닌 거 잘 알고 있소. 이걸로 우리 연희랑 금숙이 공부마저 시킵시다. 갸들은 우리같이 살면 안 되잖소.”
장희의 말에 함평댁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암, 그라제. 우리같이 살면 안 되제.”
두 여자는 그리 손을 잡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성님이 이 돈 잘 넣어뒀다가 아이들 고등학교까지 공부 잘 시켜주소. 그동안에 나는 열심히 벌어 모아 혹여나 우리 아이들 대학이라도 간다면 거기까지도 공부시켜 버릴랑께.”
장희가 옷소매로 눈물을 쓱 닦으며 웃으며 말한다.
“대학? 대학도 가면 좋지야. 나도 문방구서 돈 열심히 벌어야겠네.”
“그랍시다. 성님. 성님은 연필하고 공책 팔고, 나는 떡 팔아서 연희랑 금숙이랑 박사 만들어 보장 께요.”
“박사? 박사 좋지...”
두 여인은 그러고도 한참을 마주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장희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함평댁이 언니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해 참 좋았다.
며칠 뒤에는 박 씨가 트럭 한 대를 끌고 집으로 찾아왔다.
“여기까지 어떻게?”
“내가 어르신한테 자네 만난 얘기를 했으야. 장에서 떡을 팔더라고...”
“아, 네... 그런데 집은 어떻게 아시고?”
“채훈이 할머니댁까지 가서 물어보고 왔지야.”
박 씨는 장희가 떠 준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트럭에서 이것저것 내렸다. 대부분 이모부댁에서 장희가 떡을 만들 때 쓰던 물건들이었다. 아니, 원래 강실네의 물건들이었다.
“어르신께서 이제 안 쓴다고 자네 갖다 주라더군. 강실네도 자네가 갖는 것을 좋아할 것 같다고.”
“아...”
장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실네라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절편을 찍는 도구들도, 여러 가지 크기의 시루들도, 계속 관리를 한 것인지 대나무 광주리며 절구까지도 장희와 강실네가 쓰던 그대로였다. 박 씨는 마지막으로 트럭에서 쌀을 두 가마니나 내렸다.
“이게 다 뭣이래요?”
“쌀도 어르신이 보낸 것이제. 이제 집도 알았으니 철마다 보내시지 싶어. 자네가 안 받더라도 꼭 넣어주고 오라셨어.”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디...”
“나도 이리 와서 자네 사는 것 보니 참 좋네. 어르신께서도 언젠가 한번 아기들 데리고 오라셨어.”
박 씨는 그러고는 또 채훈이에게 돈을 쥐어 주고 훌쩍 가 버렸다.
사실 장희는 어느 순간부터 이모부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너무 고되고 바빠서 그런 것을 곱씹으며 생각하고 살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듯하다. 이모부 역시 곡성댁에게 속아 남의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키우고 산다는 걸 안 순간 그 인생도 편치만은 않겠다는 연민도 들었다. 장희에겐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그런 자식을 낳지 못해 평생을 전전긍긍하고 살았을 그 인생도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다 지난 일인께. 이렇게 채훈이랑 채현이를 봤으니 이제 나는 암씨랑도 않구먼.”
이리 혼자서 중얼거리며 만족하는 장희였다.
오늘따라 떡이 잘 팔렸다. 점심도 되기 전에 떡 바구니는 텅텅 비고, 내일은 같은 동네 잔치집에서 떡 주문을 미리 받아 시장까지 나가지 않아도 되었기에 장희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섰다. 꼬맹이들 손에는 사탕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고 장희의 앞치마 주머니는 제법 두둑했다. 집으로 들어서는데 뭔가 허전했다. 항상 싸리문 안쪽으로 손을 넣어 문을 걸어 잠가 놓고 나오는데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누가 왔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목 뒤가 서늘해졌다. 급히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부엌에서 현택이 나오고 있었다. 손에 작은 주머니를 들고.
“안돼!”
현택의 손에 든 익숙한 주머니를 확인한 순간 장희는 바구니를 내팽개치고 현택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현택은 그런 그녀를 단번에 뿌리쳤다. 장희는 마당 한구석으로 넘어지며 나뒹굴었다. 채훈이, 채현이가 장희에게 달려들어 안긴다. 아이들이 악을 쓰고 울기 시작한다.
“그것은 안 된당께요.”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는지 아픈 것도 잊고 장희는 벌떡 일어나 바람처럼 현택에게 다시 매달렸다. 하지만 또다시 밀려 넘어진다.
“이 년이... 헉헉.. 이리 갖고 있으면서도 여태 안 내놓고. 독한 년이.”
몇 번이고 달려드는 장희의 뺨을 쳐 넘어뜨리면서 현택도 힘이 부친 듯 숨을 헐떡거렸다. 아이들 우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진다.
“그것은 안 된다 말이오. 그것만은... 그것만은...”
장희가 마당에 쓰러져 울부짖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곁으로 와 같이 울어댄다. 큰 소란에 담벼락 너머로 사람들이 모여 힐끗힐끗 쳐다본다.
“내가 나중에 다 다시 돌려 줄랑께”
현택은 다시 기어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쥐는 장희의 팔을 뿌리치고, 동네 사람들에게 이런 꼴을 보인 것이 난감한 듯 지키지도 못할 말을 내뱉고 대문을 열어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장희는 그대로 쓰러져 울었다. 아이들이 그런 장희에게 매달려 같이 울고 있다.
“그건 안돼, 안된단 말이오.”
그렇게 한참을 흐느껴 울다 체념하듯 일어나 앉아 아이들을 다독이며 옷을 털어 주었다. 맞은 뺨의 고통이 이제야 느껴진다. 온몸이 욱신거린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웠다. 크게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든 장희는 사람들이 다 가버린 대문 앞에 장승처럼 굳어서 서 있는 남자 둘을 발견했다. 한 사람은 이모부네 박 씨 아저씨였다. 그리고 한 사람은... 거짓이다. 그럴 리 없다. 도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