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서 온 전화

10장 에필로그

by 임효진

10장 에필로그

“엄마! 저 이제 가요.”

“어디 보자. 우리 아들. 이제 서울 가면 또 언제 올 거야?

기림이의 인사에 엄마가 달려와 엉덩이를 두들긴다.

”이제 엉덩이는 좀! “

기림이가 정색을 하다 피식 웃는다.

”이번 학기 중에 내려오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학기 중에 영어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할 일 많이 해 놓고, 방학 때는 계속 내려와 지낼게요.“

”군대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요새 우리 아들 얼굴 계속 못 봐서 엄마 병들 것 같아.“

그러면서 쇼핑백 하나를 쥐어 준다.

”이거 가져가서 재원이랑 나눠 먹어. 시꺼먼 남자애들끼리 굶고 살면 못 써.“

”알았어요.“

”참! 윤후 제대는 언제랬지?“

”아직 세 달 남았어요.“

”걔는 여자 친구도 사귀고 군 생활 내내 깨가 쏟아지더니 울 아들은 무슨 능력이 없어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는지 엄마는 알 수가 없네.“

놀리듯 말하는 엄마의 표정에 기림이가 발끈한다.

”좋다는 애들은 많은데 내 눈에 안 차는 거예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

하하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엄마를 뒤로 하고 집에서 나왔다. 손에 든 쇼핑백이 제법 묵직하다. 택시를 잡아 타려는데, 중년의 여자와 젊은 여자가 앞에 선다. 젊은 여자의 뒷모습이 너무 익숙해 짐을 든 손에서 힘이 빠진다. 성큼성큼 다가가 여자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확인한다.

”세진아! “

”고모! “

솜사탕을 먹고 있던 젊은 여자는 놀란 눈을 하더니 같이 서 있던 중년 여자 뒤로 숨는다.

”기림이구나! “

세진이의 고모였다. 기림이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선 채, 세진이를 계속 쳐다봤다.

”세진이 너무 놀라게 하지 말자. 내가 다 이야기 해 줄게. “

그러더니 세진이를 보고 말한다.

”세진아! 너 고모가 택시 태워주면 고모집에 먼저 가 있을 수 있지? “

여전히 토끼 눈을 한 세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성인 여자인데 눈빛은 아이 같다, 고모는 세진이를 보낸 뒤 기림이를 보고는 활짝 웃었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갈까? “

”네. 이 근처에 제가 아는 커피숍이 있어요. “

수 천 개의 질문이 마음속에 쏟아져 내렸지만 말을 아꼈다. 커피숍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나자 고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5년 정도 됐지? “

”네. 그동안 어떻게 된 거예요? “

”연락을 안 했어. 아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이 일이 최대한 조용히 묻히고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야 했거든. “

”세진이는 저를 모르는 것 같았어요. “

”그래. 궁금한 게 많겠지. 내가 다 말해줄게. 세진이는 마녀의 규칙을 위반했어. 하지만 처벌받지는 않았어. “

”어떻게요?“

”마녀의 규칙을 위반하고 그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내가 세진이를 마녀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거든.“

”그게 가능해요?“

기림이의 눈이 커졌다.

”혹시 기억나니? 예전에 예영인가 하는 레드바이올렛이 들고 다니던 펜던트 부적.“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그 때 나는 그 부적을 챙겨서 보관해 뒀었어. 이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 부적은 마녀의 기억을 지우고, 지능을 지우고, 능력을 지워서 마녀를 더 이상 마녀가 아니게 하거든. 마녀 역사상 마녀의 규칙을 위반한 마녀가 이제 더 이상 마녀가 아닌 일은 없었어. 그래서 한동안 시끄러웠지.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게, 그래서 이 일이 가능한 다른 마녀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조용히 묻히길 바랐어. 그래서 숨어 지낸 거고. 처음엔 세진이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마녀들도 어느 순간 조용해지더라고. 왜냐면 세진이도 많은 것을 잃었으니까. 그래서 이 일은 레드바이올렛을 사용한 나만 약간의 징계를 받는 걸로 끝났어. 나야 뭐 위에서 봐주는 마가목들이 많으니 실전 업무에서 제외되어 서류만 보는 퇴출 마녀가 되고 말았지만, 뭐 내 입장에서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니까...“

“그럼 세진이는 지금?”

그때 세진이는 자신이 마녀인 것을 인지하기 전인 일곱 살의 지능과 기억으로 돌아갔었어. 지금은 그럼 보통의 열두 살쯤 되려나? 한 5년 더 키우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지겠지. 그렇게 자라다 버면 서른이나 마흔쯤 되면 다른 어른들과 큰 차이는 없어질 거고.”

“그래도 세진이가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모든 것을 잊고 마녀가 아닌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훨씬 행복한 삶일지도 몰라.”

“고모님도 그러세요?”

“나?”

고모는 살짝 웃었다.

“나도 멈추고 싶을 때가 많았어. 그런데 어떤 일을 멈춘다는 게 참 어렵더라고. 멈추는 과정도 고통스러울 거고, 멈춘 뒤 삶은 지금보다 불확실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멈추지 못하지. 그러고 보면 세진이의 선택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

“대단한 아이예요. 세진이는...”

잠시 생각하던 기림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모님, 저 세진이를 만날 수 있을까요? 다시 친구가 되고 싶어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요.”

기림의 말에 고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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