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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욱 Apr 29. 2023

구성이란 반복과 변화 사이의 균형

사샤 폴레 개인전 감상



사샤 폴레는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활동해 오던 작가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전시 경력을 쌓아왔다. 그래서인지 이민과 이주는 그의 작업에서 주된 주제로서 다루어진다.

국내 전시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어서인지, 나는 간접적으로 그의 작업들을 본 적이 있었다.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중앙대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에서도 학생으로 보이는 분들이 무리 지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전시 플루이드 그라운드에서는  <Liquid Grounds>, <Regardless of Nationality>, <Passage>, <I PACKED MY BAG>네 가지 프로젝트가 전시되어 있었으며 각각의 프로젝트는 공간구획으로 나뉘어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1층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프로젝트 <I PACKED MY BAG>은 옛 동독에서 사용하던 망사 가방을 사용하여 망사 흔적을 점토에 성형하여 세라믹으로 구운 작업으로, 인천 해안에서 수집했다고 하는 거대한 스티로폼 부표 위에 놓여있었다. 작가는 사물의 내부와 외부가 뒤바뀌는 형식을 다시 실험하면서 비어있던 곳을 채워 넣고 채워 넣은 곳을 다시 비움으로서 작업을 제작한다고 한다. 익숙한 사물들의 내부 내지는 하부, 사물들 사이의 비가시적 공간들을 채워서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물질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 형태는 파편적이고 유령적이며 기능을 부정하고 공간을 딱딱한 덩어리로 만든다.


세라믹은 굉장히 전통성과 공예성이 강한 재료다. 조각이 공간을 물질적으로 점유하고 점유한 공간을 이미지로 치환하여 감상자에게 다가갈 때, 세라믹은 이미지의 ‘상’을 중심으로 자신을 구현한다기보다는, 자신이 노동으로서 구현되는 역사성과 시간과 같은 비물질적인 개념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재료다. 빚는 행위는 쌓거나 붙이거나 떼는 행위와는 달리 물질의 성질성에 국한되지 않고 창작자와 물질 사이의 노동을 표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성질이 있다. 동양에서 도자기를 다루는 태도와 서양에서 세라믹 조각을 다루는 방식에는 그와 같은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세라믹조각은 완전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있으며, 유약을 바른 붓질 또한 그대로 남아있다. 세라믹이라는 물성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점이 매끈한 마감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포인트에서 사샤 폴레라는 작가가 조각의 재료를 선택하는 데에서 공예적 성질 혹은 방향성을 취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이 작업에서 작가는 내부와 외부, 투명한 것(그물)과 막혀있는 것(가방), 채움과 비움등 상반되는 성질에 것들을 교차시키면서 나타나는 언어적 효과에 집중하고 있었다. 


촌스러운 비교일 수도 있겠지만, 도자기 공예에서 비움을 드러내는 공의 개념과는 반대로 추상적으로나마 존재하던 비움의 개념을 단단한 물질로서 치환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넓은 홀 아래 펼쳐진 다양한 모표들이었다. <Passage>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작업 위에 작가가 맨발로 올라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막 퍼포먼스가 끝나고 정리하던 참이었던 것 같다. 지하에 있는 오브제들도 공예적 성질이 강한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리와 모포들…. 특히 모포들은 넓은 홀 안에 다양한 색깔과 모티브를 통해서 각기 다른 크기와 방식으로 접혀서 일종의 구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디자이너라서 일수도 있겠으나, 그의 작업들에서는 디자인적 고민과 사유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구도와 색감, 형태와 시각적 모티브가 다양하고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었으며 이런 부분이 단지 개념적으로 의미를 창출하는 것과 별개로 미감적인 아름다움을 유도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작업들이 예술작품으로서 매끈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미감적(구도와 색상, 형태에 대한) 고민들이 개념적 가치와 연결된다는 게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구도란 반복-확장하려는 성질과, 차이와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성질 사이의 몽글몽글하게 존재하며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힘이다. 사샤 폴레의 유리조각들은 둥근 모티브가 반복되면서도 미묘한 불규칙성을 형성하고 있었고, 모포조각들의 경우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모포의 작은 크기 차이로 인해 어떤 이야기가 일어난다던지, 공간을 점유하는 큰 모포가 너무 큰 힘을 독점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주변부의 모포가 끊임없이 드러난다던지 하는 어떤 균형에 대한 시도가 느껴졌다. 


구도에 대해 정신적인 개념적 접근을 단지 비유와 상징적으로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작가의 사상과 합일을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시도다. 사샤 폴레는 모포작업 <PASSAGE>에서 그는 Flaneuar(플라뇌르)라는 근대적 도시를 배회하는 사람을 주제로 사용하였더, 세계에 다양한 도시들은 같음과 다름을 동시에 지니면서, 익숙함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차이라는 이미지를 창출하고 이미지의 반복이 또다시 하나의 개념적 텍스트가 되는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의 교차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힘의 에너지가 시각적인 구도의 구현으로서 발현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의 암스테르담에서의 배경 때문인 건지, 이러한 (시각적인 것을 통해서 정신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네덜란드의 데스틸 운동을 떠올린다. 몬드리안의 경우 그가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은 피카소와는 달리 어떤 시각성 자체에 대한 실험이라기보다는 미감을 매개로 한 정신적인 것의 실천 혹은 구현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헤겔주의자적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면성이라는 것에서 점점 내면성으로 다가가는 어떤 부정성, 그러니까 사샤 폴레의 경우 망사의 주물이라는 이중부정적 오브제가 정신적인 것 그 자체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물질성 그 자체로 텍스트가 될 수 있는 시도이다. 


이러한 점에서 디자인과 개념사이의 다리 놓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유독 디자인 분야에서 정신적 실현이라는 목적성이 공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대개 실용적 사용성을 목적으로 하거나 (디터람스) 혹은 비유와 상징으로서 사회와 매개하려고 하는데 추상과 물질의 구분 없이 시각이라는 외면성을 정신구현의 재료로서 사용하는 이와 같은 작가들의 실험과 태도가 디자인의 의미를 고찰하는데 길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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