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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난민 Jul 09. 2019

원더우먼 리뷰 (2)

패티 젠킨스 감독의 위용

DC의 명운이 걸린 이번 영화, 원더우먼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영화만큼은 성공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 영화 제작의 핵심이 되는 두 여성, 패티 젠킨스 감독과 주연을 맡은 갤 가돗 때문이다. 감독이 교체되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빠른 대응으로 수작을 탄생시킨 DC의 집념이 느껴졌다. 이 두 여성의 기용은 그야말로 "신의 두 수"라고 평가된다.

15년만의 스크린 귀환, 패티 젠킨스(Patty Jenkins) 감독

원래 원더우먼의 감독은 X파일, 데드맨워킹, 왕좌의 게임 등 굵직한 TV 시리즈 연출로 유명한 미셸 맥라렌(Michelle MacLaren)이었다. 미셸이 감독으로 기용되자 많은 언론과 팬들은 DC가 드디어 제대로 된 감독을 맞이했다고 하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미셸은 2015년 4월 돌연 제작관점의 차이(creative differences)를 이유로 사표를 던졌다. 이때 DC의 대응이 빛났는데, 거의 1주일만에 빛의 속도로 후임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이렇게 선정된 감독이 바로 패티 젠킨스 감독이다.

2003년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샤를리즈 테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몬스터 이후 무려 1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패티 젠킨스(Patty Jenkins)는 많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그동안 갈아온 칼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며 DC에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번 원더우먼은 이 여성감독 패티 젠킨스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이번 영화의 연출은 드라마적 요소와 잔잔함, 스펙터클이 한 영화 안에 모두 녹아 있는 점이 돋보였고, 갤 가돗이라는 여배우의 매력을 200% 발휘하게 한 점이 눈부셨다. 필자는 원더우먼을 계기로 패티 젠킨스의 내공과 실력에 놀랐고, 앞으로 그녀가 연출할 영화들에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2003년 그녀가 연출한 몬스터는 연쇄살인마 에일린 월모스(Aileen Wuornos)의 이야기인데, 여기서 샤를리즈 테론은 체중을 14kg 불리고 눈썹을 밀고 틀니를 끼워가며 정신적으로 피폐한 창녀이자 학대하는 고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 에일린을 연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이 영화와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에 비평가들의 찬사가 쏟아졌고, 패티 젠킨슨 감독은 일약 가장 주목받는 여성 감독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최근 분노의 질주 : 더 익스트림을 보면서 샤를리즈 테론의 지적이면서 편집적인 연기와 방부제 외모에 감탄했었는데, 근래 출연했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의 연기변신까지만 봐도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 이후 패티는 어떠한 영화도 연출하지 않았고 몇 개의 TV 시리즈 연출에만 참여했다.

특이한 것은 2003년 몬스터 전에 연출한 영화도 이보다 8년 전인 1995년의 모던어페어라는 점이다. 이 감독은 어쩌면 제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거나 자신이 제작하고 싶은 작품만을 선별해 연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작년 한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자.

"몬스터를 제작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다음 작품으로 무엇을 하고 싶었냐고 물었죠. 그때 저는 주저하지 않고 원더우먼이라고 말했어요."


몬스터 발표 2년 후 그녀는 원더우먼 대본을 손에 넣지만, 아들의 출산으로 연출은 무산되고 말았다. "저는 영화를 연출할때 집중하기 때문에 출산, 육아와 연출을 병행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은 가능할 수 있지만 저는 그게 안되요."


그녀는 마블의 토르2의 감독으로 내정되었었으나 곧 제작 관점의 차이(creative differences)를 이유로 사표를 던졌다. 같은 이유로 미셸 맥라렌 역시 6개월 만에 원더우먼을 중도하차했다. 뭔가 미묘하다. 그녀가 마블에서 겪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여성인 나를 토르의 감독으로 선발한 그들(마블)에게 감사한다. 왜냐하면 굳이 그들이 여성감독을 기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가 토르2에서 하차한 후 왕좌의 게임 시즌 1을 연출한 앨런 테일러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근육질의 크리스 헴스워즈와 비정한 남동생 톰 히들스턴을 생각하면, 어쩌면 마블은 당시 웅장하고 남성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남자 연출가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왕좌의 게임 시즌 1의 연출자는 마블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택지로 보였을 수 있다.


그럼 원더우먼은 단지 주인공이 여성이라 무려 15년 동안 영화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던 (그동안 유명 TV 시리즈는 몇 개 연출해 왔지만) 이 감독이 적절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일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제작자와 감독의 비젼이 아주 많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이럴때 제작사는 자신들의 비젼에 맞는 감독을 선임해야 합니다. (원더우먼의 경우) 결과적으로 우리는 비젼을 공유할 수 있었죠. 난 복잡한건 싫어요. 내 관점에서는 이번 영화가 그들에게 9년에 걸쳐 이야기해왔던 그 영화였던거죠. 나는 그동안 워너브로스에서 서로 다른 10명을 만나 왔고 드디어 이번에 결론이 난거죠. 이 영화는 내가 평생 원했던 거에요. 내가 이번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


DC가 미셸이 6개월만에 하차한 후 단 1주일만에 후임으로 패티 젠킨스를 기용한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무려 10여년간 그들 사이에는 대화와 교섭이 있었고 결국 이번에 그녀가 그녀의 말대로 비젼을 공유하며 메가폰을 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작에 들어가서도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영화는 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의 4번째 영화이자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작이었고, 최초의 여성 히어로물이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어렵다고 털어놓은 것은 이 영화가 하나의 시작이며 앞으로 지속될 DC 세계관 속에서 한 번도 영화화된 적이 없었던 원더우먼의 첫 작품이라는, 즉 단편이 아닌 속편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와 톤앤매너, 연출, 캐릭터 이미지 등을 최초로 셋팅하고 이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출발점에 서 있음에도 긴 시간동안 이를 끌고나갈 비젼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설정도 없는 상태에서 기나긴 속편을 끌고나갈 수 있는 관점을 갖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비젼을 설정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매일매일 이 비젼을 둘러싼 100만개의 요소들이 변하는 가운데 이를 변하지 않게 갖고 있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스토리와 설정이 조금만 변해도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비젼을 끝까지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나 역시 이 장르를 좋아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이번 영화는 원더우먼을 스크린에 최초로 등장시키는 단 한 번의, 저로서는 일생의 기회입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끌어내서 이를 성공시킬 것입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책임감이 따릅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날때마다 내가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최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다짐합니다. 이 일은 너무나 마음에 들고 나의 캐스팅, 나의 스토리텔링을 사랑하며 현장에서 하루 종일 웃을 때도 있지만, 막대한 책임감으로 매일을 대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영화 전반에 녹아 있는 디테일과 미장센,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연출, 매끄러운 이야기의 흐름 등을 통해 감독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원더우먼의 탄생배경과 무기 소개를 스토리 안에 녹이고 그 탄생지에 전쟁 중인 인간이 떠내려오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쟁이라는 현실과 원더우먼을 접목시킨다. 현실에 뛰어든 원더우먼은 그냥 강인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아니라 너무나 우아하고 격식을 갖춘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장면마다 등장하는 의상과 음악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 영화는 패티 젠킨스 감독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DC의 이미지를 바꿔놓을 정도의 수작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외신들도 호평 일색이다. 드디어 DC가 일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평범한 DC 영화와 다르다는 것이 외신의 중론이다. 한 외신은 다크나이트 3부작 이후 최고의 DC 영화임을 의심하지 않으며, 여주인공역의 갤 가돗이 DC에서 배트맨 역을 맡고 있는 벤 에플렉 만큼 무게감 있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다이애나 공주의 힘, 긍정적이고 도덕적인 인격, 정의로움 뿐만 아니라 우아함까지 소화해냈다고 극찬하고 있다. 이는 배우의 힘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설정과 연출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여성히어로물이라는 도전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여성 히어로물을 보러가지 않을거라고 말해 왔습니다. 여자는 액션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하죠. 어울리지도 않고요. 저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히어로물에서 여성은, 최고의 성공을 거둔 마블 영화들만 봐도 남성 히어로의 여친이자 비서, 과학자지만 사랑에 빠지는 여성상이 그나마 최대 조연이었고 나머지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스칼렛 요한슨은 예외지만, 히어로물에서 명성을 쌓아온 스칼렛이 혼자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의 공각기동대도 스칼렛의 힘을 빌려 흥행을 노렸지만 연출과 스토리텔링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단, 스칼렛이 마블에서 쌓아온 이미지와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등 다른 히어로들이 같이 등장한다면 조금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번 영화가 원더우먼의 첫 번째 영화화라는 점, 갤 가돗이라는 배우를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써야 하는 감독으로서는 부담이 당연히 컸을 것이다. 더군다나 흥행 보증수표였던 배트맨 등도 많은 비난을 받아온 DC의 여성히어로물이지 않은가.

영화는 이제 막 개봉했지만, 디즈니랜드의 정글크루즈를 영화화하려고 하는 드웨인 존슨이 얼마 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패티 젠킨스 감독의 팬이며, 그녀가 아주 멋진 감성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어 정글크루즈 연출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명 배우나 제작자들도 이번 영화를 통해 패티 젠킨스 감독의 면모를 알아보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수많은 원작 중 어떤 것이 이번 영화의 모델이었냐는 한 외신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원작 만화와 TV 시리즈의 린다 카터를 기초로 했죠. 단, 저는 제가 믿는 룰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원더우먼은 재미로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녀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폭력을 휘두르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원더우먼이라는 여성히어로가 거칠고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죠. 물론 그녀도 거친 면이 있겠죠. 그러나 저는 거칠다는 것이 그녀가 사랑을 하고, 재미있으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패티 젠킨스는 여성으로서의 정의로움과 따스함을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에 녹여넣는 것에 완전히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감독이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소개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우리는 모두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당신 자신이 영웅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누구나 매일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거죠. 그것이 당신이 영웅인 이유입니다.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하는 것,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을 스스로 하는 영웅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세상은 원더우먼(같이 위대하고 따듯한)같은 영웅을 필요로 합니다."



[출처]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film/2015/apr/16/monster-director-patty-jenkins-wonder-woman-movie

Cinema Blend, http://www.cinemablend.com/new/Monster-Director-Patty-Jenkins-Helm-Black-List-Script-Sweetheart-42928.html

Hollywood Reporter, http://www.hollywoodreporter.com/heat-vision/wonder-woman-movie-finds-a-789099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onster_(2003_fil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Patty_Jenkins

Metro, http://www.metro.us/entertainment/movies/Charlize-Theron-annoying-kill-Fate-Furious

Cinema Blend, http://www.cinemablend.com/new/Fast-Furious-8-Finally-Finds-Perfect-Villain-123277.html

Movie Web, http://movieweb.com/wonder-woman-movie-origin-director-patty-jenkins-thor/

Business Insider, http://www.businessinsider.com/wonder-woman-director-patty-jenkins-biggest-challenge-faced-pressure-2017-5

Birth Movies Death, http://birthmoviesdeath.com/2017/05/29/wonder-woman-review-dc-finally-gets-it-right

CBS, http://www.cbsnews.com/news/wonder-woman-director-patty-jenkins/

Digital Spy, http://www.digitalspy.com/movies/wonder-woman/news/a827077/dwayne-johnson-wonder-woman-patty-jenkins-direct-jungle-cruise/

Glamour, http://www.glamour.com/story/wonder-woman-director-patty-jenkins-on-the-feminist-superhero

Mirror, http://www.mirror.co.uk/lifestyle/going-out/film/wonder-woman-review-roundup-patty-10531411

The Wrap, http://www.thewrap.com/wonder-woman-director-patty-jenkins-i-wasnt-the-right-director-for-thor-2/

South China Morning Post, http://www.scmp.com/culture/film-tv/article/2094961/wonder-woman-not-feminist-hero-says-groundbreaking-movies-female

LA Times, http://www.latimes.com/entertainment/herocomplex/la-et-hc-wonder-woman-patty-jenkins-20170530-st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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