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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난민 Jul 09. 2019

중국의 하나라는 정말 존재했을까?

4,000년 전 홍수 흔적이 하 왕조의 실체를 밝혀줄 것인가

하 왕조는 전설인가, 실재인가? 그 단서를 밝혀줄 대홍수의 흔적이 황하에서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이 황하강 상류에서 찾아낸 재앙에 가까운 홍수의 증거가 전설로 남아있는 하 왕조의 실체를 밝혀줄 지도 모른다.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를 비롯해 상, 주에 대한 역사기록은 신화적인 면이 있었으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상, 주에 대해서는 그 기록이 모두 사실이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하 왕조에 대해서는 엄청난 홍수가 찾아왔을때 우 임금이 나타나 치수를 통해 대지와 백성을 구했다는 신화적인 기록만 있을 뿐 그 실체 규명은 어려운 상태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 임금의 치세를 정당화하기 위해 홍수라는 재앙에서 백성을 구한 인물로 묘사한 것일뿐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북경대학교의 지질학자 우칭롱이 이끄는 연구진은 황하에서 대홍수가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티벳 고원에서 시작해서 지스(Jishi) 협곡에 이르는 황하강 유역에서 지진과 산사태로 인해 생성된 거대한 댐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측벽을 조사한 결과 댐의 높이는 지금의 황하 수위보다 약 240 m 높았다고 한다. 이 댐에 의해 황하는 약 6~9개월 정도 흐름이 멈춘 상태로 갖혀 있었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이렇게 쌓인 것이 일시에 터져 나오면서 약 1.592e+10 m3 부피의 어마어마한 물이 쏟아져나와 10,000년에 걸쳐 가장 큰 홍수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홍수는 약 2,000 km에 걸쳐 일어났으며 막대한 양의 물이 흘러내려가면서 자연제방이 무너지고 황하의 물줄기가 바뀌기까지 하였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지스 협곡에서 하류로 약 25 km 지점에 있는 라지아 마을에서 지진으로 인한 균열에 바람에 의한 침전이 아닌 홍수에 의한 침전물만이 꽉 채워져 있는 지형이 흔하게 발견되는데, 이것이 대홍수가 일어난 것과 같은 해에 형성되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또 홍수로 사망한 3명의 어린이 유골에 대해 탄소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BC 1,920년의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시기에 하 왕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하상주 단대공정을 말하는 것 같다)는 하 왕조는 BC 2,070년에 시작되었다고 설정하고 있다. 우 임금 통치 초기에 오성취루 현상이 나타났다는 천문기록을 통해 역산해보면 이 천문현상은 BC 1,914년에 나타났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우 임금이 통치를 시작한 곳이 바로 지스라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지스에서 약 2,500 km 하류에 있는 얼리터우(Erlitou)가 하의 수도였다고 비정하는데, 이 유적 역시 BC 1,900년대로 추정되므로 지스의 홍수 연대와 일치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하 왕조의 실제를 확정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 임금의 치수와 홍수에 대한 기록이 이보다 약 1,000년 뒤에 쓰여졌으므로, 이는 실제 사실보다는 신화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홍수에 대한 기록 자체가 재해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기록보다는 모든 것이 물로 덮여 있어 살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는 식이므로 이는 창조설화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어떤 학자는 지스 협곡의 홍수와 얼리터우 문명의 형성 간의 인과관계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출처 :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2016/08/05/science/china-great-flood-xia-emperor-yu.html?_r=0


중국은 하상주단대공정, 동북공정(서북공정 등 전방위), 탐원공정 등을 통해 자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가 한족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동원하여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와 연대 설정 작업을 하고 있다. 필자는 하 왕조는 분명히 실재한다고 생각해 왔고 이렇게 하나 둘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얼리터우 등 하의 수도로 비정되는 몇 군데에서 발굴 작업이 진행되면 더 많은 증거들이 나올 것으로 본다.


그러나 2006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 정부 예산 2,500억원을 쏟아부어 설립했고 매년 200억원이 넘는 세금이 지원되는 동북아역사재단은, 그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인정하는 연구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에 의해 주창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그대로, 2016년 8년간 45억을 쏟아부어 제작한 동북아 역사지도에는 AD 4세기 초까지도 백제, 신라, 가야가 성립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중국이 주장하는 대로 한 무제가 설치한 한사군이 한강 이북, 즉 지금의 북한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독도도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 동북아역사지도는 연세대, 서강대 연구팀이 제작했다. 그리고 이 지도는 2012년 북한이 중국 영토였다고 하는 중국 정부의 주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묻는 미국 의회의 싱크탱크인 의회조사국(CRS)에 답변서로 전달되었고, 미 의회는 이를 토대로 중국의 말이 사실인 것으로 보고서를 작성, 발간하였다. 아래는 출처 링크 중 미디어오늘 기사의 일부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15년 동안 4천억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썼다. 그러나 중국 동북공정논리의 허구성을 깨는 제대로 된 연구논문이나 보고서를 필자가 아는한 단 1편도 내지 않았다. 2012년 중국이 미국 상원에 ‘중국과 북한 사이의 국경 변천에 관하여’라는 보고서를 미 의회조사국(CRS)에 보냈다. 북한강역은 모두 중국의 강역이었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였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의 입장을 미국이 물어왔을 때 외교부와 동북아역사재단 고위층이 함께 워싱턴을 방문해 ‘중국 측의 견해가 대부분 사실’이라는 내용의 자료를 전달했다. 미국과 중국에는 이 자료가 한국의 공식입장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


이쯤되면 왜 시진핑과 트럼프가 북한은 원래 중국 영토라는 대화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한국 내 친일파는 역사학까지 장악하고 있다.


* 출처 :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234335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7/0200000000AKR20160517118500005.HTML?input=1195m

KBS,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08786&ref=A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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