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의 색은 빛을 머금었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을 먹으러 갔던 식당에 큰 패브릭 포스터 하나가 걸려 있었다. 하얀 바탕 위에 쓰윽쓰윽 손을 몇 번 스쳐 만들어낸 것 같은 얼굴은 단순하지만 어딘가 자꾸 뒤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앙리 마티스의 드로잉이었다.
앙리 마티스,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출신의 천재 화가. 나에게 마티스는 아내의 얼굴에 과감하게 초록색을 색칠하고, 화면 전체에 강렬한 빨간 벽지를 바를 수 있는 대담한 색채화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최근 마티스는 다양한 모습으로 눈에 띈다.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미술관 밖에서도 정말 많이 마주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저작권 만료로 높지 않은 가격에 소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어디든 툭 걸어놔도 깔끔하게 어울리는 마티스 특유의 느낌에 매료되었음이 더 클 것이다. 그의 간결한 표현과 독특한 구성, 그리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색채는 시선을 붙잡아두는 맛이 있다.
한국에서 마티스에 관한 전시는 주로 야수파나 20세기 화가들과 함께 그룹전으로 진행되었다. 세기의 라이벌이었던 피카소와 묶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조명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빌딩이 우쑥 솟아있는 강남 한복판, 어느 지하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어쩐지 흥미롭다.
<마티스 특별전 : 재즈와 연극>은 마티스 탄생 150주년을 맞아 국내 최초로 열리는 마티스 단독전이기 때문이다.
마티스의 유화 작품을 기대했던 관람객들은 아마 이번 전시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은 마티스의 후기 컷아웃(Cut-Out) 작품을 중심으로, 물감을 벗어나서도 다양한 색을 향유했던 종합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조명한다는 의미가 크다. 그가 사랑하는 주제였던 오달리스크 드로잉을 시작으로 석판화, 컷아웃, 발레 의상, 성당 건축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의 메인이 되는 컷아웃은 두 번째 섹션부터 만나볼 수 있다. 컷아웃이란 말 그대로 종이를 오려 붙여 작품을 만드는 방법인데, 마티스의 말을 빌리자면 색채를 '조각'하는 작업이다.
"가위는 연필이나 차콜로 선을 그리는 것보다 더 감각적이다. 색채를 곧장 잘라나가는 것은 조각가가 석재를 가지고 하는 일을 연상시킨다."
마티스가 자신의 화가 인생 끝자락에 컷아웃 작업을 시작한 이유는 병으로 인해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손에 붓을 묶거나 서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마저 어려워졌다. 그림을 놓을 수 없던 그는 종이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 같은 작업을 생각해낸다. 침대에 앉아 종이를 자르면 조수가 지시에 따라 종이조각을 붙일 위치를 세심히 조정해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업은 마티스가 평생 몰두하던 드로잉과 색채에 대한 고민을 해소시켰다. 색을 먼저 칠한 후에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 후 색을 칠하던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른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는 형태로, 느끼는 색채로 그리고 싶었던 마티스에게 이는 색채를 다룰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와도 같았을 것이다.
이번에 전시된 컷아웃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푸른 누드 II>다. '푸른 누드'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연작 중 한 점인데, 처음 이 작품을 딱 봤을 때 기분 좋은 해방감이 몰려왔다. 파란색으로 물결치는 여성의 유연한 몸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컷아웃 작품에서 조형의 형태는 이전의 작품들보다 더 간략해졌다. 굽이치는 덩어리들이 모여 몸이라고 느낄 수 있는 형상을 그릴뿐이다. 눈코입도 표정도 없지만 나른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관객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파란색의 부피감 때문일까? 그 느낌이 꽤 생생하다. 단순히 면적을 채우는 색감만으로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니, 마티스가 사랑했던 색채의 매력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재즈> 시리즈는 마티스의 대표적인 컷아웃 작품이다. 서커스, 연극, 여행 등을 그린 그림들을 엮어 판화 북으로 제작했다.
음악의 장르로서 재즈는 어떤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인 연주 스타일 그 자체를 의미한다. 마티스는 자신의 작품 역시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며, 다변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재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티스는 글을 먼저 쓰고 그림을 그렸다. 다양한 리듬을 담고 있는 그림들이 주는 느낌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배경음처럼 글이 보호할 수 있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재즈> 시리즈를 이어서 볼 수 있게 구성한 덕분에 그림을 따라 쭉 감상하는 동안 마티스가 말한 작품의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의 의미를 상상하다 위트 있는 요소에 웃음이 나오는 것은 덤이다. 나는 <코도마 The codomas>에서 스폰지밥의 집을 발견하고 웃었다.
전시장 입구부터 팸플릿, 포스터까지 전시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이 작품은 <재즈>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이카루스>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이카루스 신화에 대한 내용이다. 크레타를 탈출하기 위해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이카루스.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자유로움에 빠져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욕심을 내며 태양 가까이 높이 날아간다. 그러나 태양의 열로 밀랍은 녹아버린다. 날개를 잃은 이카루스는 추락할 수 밖에 없었다.
마티스는 <이카루스>에 청명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추락하는 사람을 담아냈다. 그가 가지고 있었을 욕망, 동경, 혹은 생명력과도 같을 빨간 색이 점점 소멸하며 그 미약한 온기로 요동치는 것 같다. 날개는 뚝뚝 녹아내리는 밀랍의 색이 묻어나는지 온통 노란 빛이다. 당시 작품이 제작되었던 시기를 고려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공군 비행사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략되고 평면적인 색의 형태만 남아있기 때문인지 나에게는 마침내 태양을 도달해 기뻐하는 이카루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카루스는 태양에 닿았다. 빨간 태양은 이카루스의 전리품으로 그의 심장에 깊게 박혀있다. 노란 별들은 즐거워하고, 이카루스는 춤을 춘다. 빨강, 노랑, 파랑이라는 세상의 기본이 되는 색들은 그렇게 반짝이고 율동하며 재즈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이 이카루스를 마티스로 바라본다. 평생에 걸쳐 색채라는 태양을 탐닉했던 사람. 그리고 결국 컷아웃이라는 기법으로 자신만의 정복을 이루어낸 사람.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임에도 색을 놓고 싶지 않았던 예술가로서의 욕망. 태양에 닿은 색채의 이카루스로서 마티스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종이로 오려 붙인 날개는 태양에 녹지 않을 것이다.
마티스는 생애 마지막으로 로사리오 성당을 작업했다. 건축 설계부터 장식, 사제복까지 각별히 신경 쓴 그곳에서 인상 깊게 보고 싶은 것은 스테인드글라스다. 유리로 구현된 컷아웃이라고 바라보아도 좋지 않을까.
밤의 장막이 거두어지고 태양이 눈을 뜬다. 성당에도 빛이 내린다. 내리는 빛에 마티스가 남기고 간 색채는 찬란한 빛을 머금는다. 그렇게 그의 작품은 영원히 남아 색채의 은하수를 여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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