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지구를 위한 맛있는 식사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저기압일때는 고기 앞으로’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는 고기 앞에서 고기 예찬을 펼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축하하거나 위로하는 자리에 고기 메뉴를 찾는 게 당연하고, 손님을 대접할 때 메인 요리로 고기 메뉴를 고민하고, 회식 메뉴로 고깃집이 먼저 떠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
그 날도 삶의 작은 행복을 음미하기 위한 삼겹살 회동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일을 빨리 마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취재 장소인 ‘2019 서울 드링크 & 디저트쇼’로 향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오색의 디저트와 각종 음료들을 눈으로 빠르게 스케치하며 현장을 도는 와중,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식물성 고기 드시고 가세요~!
지구인컴퍼니의 부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발길을 멈췄다. 식물성 고기가 무엇이냐 물으니, 현미나 귀리 같은 곡물류를 가공해 진짜 고기처럼 만든 가짜 고기란다. 제법 소고기처럼 생긴 겉모습을 한참 보노라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고기에 으레 갖는 기대와 함께 한 점 집어먹는데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고기 같지 않으면서
고기 같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과 식감이랄까?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맛인데 씹을수록 뒷맛이 고소하고 담백하다. 뒤를 이어 이 가짜 고기를 이용해 만든 만두를 시식했다. 가짜 고기만 따로 먹었을 때는 입맛을 확 사로잡을 만큼 맛이 있는 건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았는데 만두는 시중에 판매하는 만두와 다를 바 없는 그야말로 맛있는 맛이었다. 속으로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하나 더 집어 들었을 때 지구인컴퍼니의 설명이 이어졌다.
“국내에서 연간 380만톤의 곡물이 생산되는데 소비가 줄면서 각 지역 창고에 쌓인 곡물 재고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 곡물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소비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연구 끝에 이 식물성 고기 ‘언리미트’를 만들게 됐어요. 아까운 곡물들을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데다 가공 과정에서 폐기물이 하나도 발생하지 않아서 아주 친환경적인 식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박람회 취재를 마치고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궁금증은 ‘굳이 왜 식물성 고기를 먹어야 할까?’였다. 재고 곡물류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높이 살 만하지만 이미 우리 식생활에 친숙하게 들어와 있는 진짜 고기를 두고 딱히 가짜 고기를 먹어야 할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물성 고기에 대해 좀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식물성 고기’를 검색하자마자 쏟아지는 결과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다. 식물성고기를 다루는 기사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환경문제’.
햄버거 한 개를 먹으면 자동차 515km 운전하는 것과 같다. 그 말인 즉 근처 햄버거집에 걸어 들어가 햄버거 하나를 먹을 때 발생되는 온실가스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50km의 거리를 자동차로 달릴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보다도 많다는 의미다.
실제로 식생활의 온실가스 배출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육류 섭취다. 산업생태학 저널의 ‘1인 평균 식생활의 온실가스 배출량 원인’을 보면 고기가 47.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유제품이 18.9%로 뒤를 잇는다. 뿐만 아니라 점점 늘어나는 고기 섭취량은 고기 생산량을 부추기는데, 가축을 기르면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 토양오염 등은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기사도 있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 그로 인한 선택이 온실가스를 부추기고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충격을 더욱 뒷받침하는 건 식물성 고기가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2011년 미국에서 등장한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의 식물성 고기는 미국 내 각종 레스토랑에 유통되고 있으며 최근 한국에서도 ‘비욘드 미트(Beyond Meat)’라는 식물성 고기가 큰 주목을 받고 있고, 얼마 전 식물성 대체육류 브랜드까지 등장했다는 소식은 식물성 고기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증거였다.
애초부터 몰랐으면 그려려니 했겠지만 리얼 고기의 이면에 대해 알게 된 이후 메뉴 선정이 쉽지 만은 않았다. 점심 메뉴로 즐겨 먹던 ‘뚝불’ 대신 새싹 비빔밥을 고르게 되고, ‘오늘 저녁 삼겹살 콜?’을 묻는 친구의 메시지에 예전처럼 파이팅 넘치는 답장을 보내기가 망설여졌다. 아예 먹지 않을 수도 없었다. 회식 등 고기가 있는 자리에서는 평소처럼 맛있게 먹으면서도 속으로 밀려드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냥 모르는 척하고 먹을까’라는 마음이 피어오를 때 현답을 제시하는 지구인컴퍼니의 민금채 대표의 한 인터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저는 예전에 고기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을 만큼 알아주는 육식주의자였어요. 그러다가 서른 중반이 지나면서 점점 건강을 챙기게 되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샐러드를 먹는다던가 커피 대신 디톡스 주스를 마시면서 조금씩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줬어요. 언리미트(식물성고기)는 저처럼 몸을 챙겨야 하는데 작정하고 운동을 하거나 식단 자체를 채식으로 바꾸기는 어려운, 일주일에 몇 끼 정도는 몸 속 독소를 배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육식주의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실제로 리얼 고기만 먹던 제가 한번씩 식물성 고기를 먹으면서 맛의 새로운 경험이 하나 더 늘었다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거든요.
그 어떤 식물성 고기도 완벽하게 진짜 고기를 대신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만 식물성 고기가 우리의 식문화를 좀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예를 들어 3일 동안 된장찌개, 제육볶음, 불고기를 먹었다면 그 다음날에는 식물성 고기를 먹는 것처럼요.”
정글 같은 현대 사회에서 미식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요리란 더 없는 행복 아닌가! 게다가 세상에 없던 고기 메뉴가 하나 더 늘었다는 건 전세계 육식주의자들에게는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보다 더 큰 성과다.
‘삼겹살 콜?’을 묻는 메시지에 보낼 답이 정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