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속 영감의 순간
비의 세상에 당신을 초대한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바닥의 소음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작업실 창가, 출근길, 인도, 차도, 학교, 회사, 정류장 그리고 특별한 하루를 보낼 당신에게. 살다보면 가끔 마음이 평온해질 때가 있다. 딱히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작업실 창밖 풍경을 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작게 흩날리던 물방울은 어느새 큰 물줄기가 되어 세상에 쏟아지고 있었다. 도시는 그렇게 비의 소리로 채워졌고, 나의 마음도 커피 잔도 어느덧 사색의 시간으로 물들어갔다.
우연한 계기로 미우라 시온 작가의 [배를 엮다]라는 소설을 알게 됐다. 2011년도에 출간된 소설로, 2016년도에는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이기도 하다. 사전을 제작하는 출판사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로, [대도해]의 간행 기획부터 출판까지 이어지는 열정과 고뇌의 시간을 담았다. 탄탄한 스토리도 일품이었지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 더해지면서, 주인공은 그냥 작품 속의 캐릭터가 아니라 일상 속의 누군가로 가깝게 다가왔다. 그만큼 스토리의 몰입력과 재미가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게 된 한 가지. 바로 ‘단어’다.
사실 카피라이터 작업을 하면서 단어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같은 의미의 단어라도 어감과 느낌에 따라 완전 다르게 전달된다는 것을. 하지만 어느새 잊고 있었나 보다. 그런 단어의 무게감에 대해서.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쓰며 일상을 보냈다. 신인 땐 스토리에 집중했었고, 연차가 쌓이면서 잠차 문장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난 단어에 꽤 집착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주 사용하지만 쉽게 잊히는 말들,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말들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처럼 생각을 스쳤다.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단어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창밖 빗소리는 더 거세게 바닥을 내리쳤다.
한 땐 비를 싫어했었다. 등굣길에 내렸던 비는 정말 최악이었다. 전학으로 인해 먼 거리를 통학했었던 나에게, 환경의 변화는 큰 이질감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턱에 수염이 지긋이 난 중년의 남자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비가 오늘따라 유독 잔잔한 감성으로 다가왔다. 마치 적을 용서한 용사처럼 그의 눈빛엔 여유가 배어 있다. 어쩌면 시간이란 천칭이 비와 중년의 남자를 같은 수치로 나란히 맞춘 건 아닐까. 그 말이 맞아야만, 내가 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설명이 될 거다. 이젠 비도 소중한 친구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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