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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an 18. 2023

전시장 속의 삶

전시, 오늘은 휴관합니다

우리는 전시장 속에 살고 있다.

모두가 스스로를 전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큼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전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생활을 세분화시켜 공유하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공유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자신의 소비를 전시하기도 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모습을 전시하기도 하는 등, 기록의 성격과 더불어 스스로를 아카이빙 한다고 볼 수 있다.



모두의 전시 공간, SNS

SNS는 스스로를 전시하기에 매우 적합한 공간이다. 특정 순간을 바로 공유할 수도 있고, 다양한 미디어와 연계해 일상을 좀 더 특별하게 보이도록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큰 의미가 있는 내용까진 아닐지라도, SNS 속에서는 흥미로운, 멋있는 일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SNS에는 날이면 날마다 무수히 많은 인증 게시물이 올라온다. 


앞에 #(해시태그)나 @(멘션)을 달고 올라오는 인증 게시물은 오운완, #OO챌린지, #갓생, @브랜드명(쇼핑 인증), @연예인(콘서트 인증)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타인의 인증을 통해 나는 그가 가진 취향부터 최근의 루틴까지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엿볼 수 있다.



점점 높아지는 눈, 코, 입

인증이라는 게시물 유형은 이전부터 꾸준히 존재하던 유형이지만, 최근의 인증은 약간의 특이점이 발견되고 있다. 인증으로 전시하는 것들의 ‘급’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최근 불어닥친 파인 다이닝 열풍부터, 오마카세, 명품 브랜드가 운영하는 카페 등 당장 입으로 즐기는 식문화의 ‘급’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바디 프로필에 수십만 원을 투자하기 시작했고, 옷 하나를 사더라도 보세 의류보다는 이름 있는 디자이너가 론칭한 브랜드의 의류를 구매해 해당 브랜드 계정을 멘션으로 언급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다.


물론 향유하는 문화와 소비가 질적으로 향상되는 것만으로 특이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가 누리는 것이 질적으로 향상된 것에 반해, 나의 벌이는 미미한 수준이라면 여기서 나타나는 괴리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비 행태라니, 최근 들어 ‘이런 분에 넘치는 고급 인증’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부추기는 사람들?

앞서 우리가 전시장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전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이 전시해 둔 것들을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꾸준히 지켜보게 된다. 전시의 주체와 대상이 수시로 뒤바뀌는 곳, SNS는 상대적인 전시장으로써 기능하고 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별생각이 없던 대상이라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SNS를 통해 수시로 타인의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증 릴레이를 통해 우리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관심이 없던, 혹은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다들 한 번쯤은 가본다는 오마카세, 헬스를 시작한다면 누구나 듣게 된다는 바디 프로필 권유, 요즘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디올의 카페 등등.. 다들 한 번쯤은 가본다는 생각은 점점 나도 해봐야 할 것 같은 반쯤 강제된 욕구로 연결된다. 주변 사람들이 하기에, 덩달아하게 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으로 게시물을 훑다 보면 요즘 뜨는 장소, 혹은 트렌드, 유머 등을 소개하는 계정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보면 “요즘 이렇다는데 우리도 가보자”, “이거 한번 해볼까?”, “이거 어때” 같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다들 이런 것을 하니 우리도 해보자는 말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은연중에 주체적인 경험보다는 주위의 흐름에 동조하는 것을 더 중시하게 되는 현 상황을 대변하는 말처럼 들렸다.

다들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입는 것 같고,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바디 프로필을 한 번은 찍는 것 같고, 조금 비싼 것 같지만 맛있는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투자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들.

다들 하는 것 같아서 나도 하게 되는 소비가 요즘 인증에서 발견되는 특이점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이런 건가 싶은

사실 다들 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에는 소비나 활동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도 포함되어 있다. 트렌드로 욜로가 뜨면 다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처럼 살았고, 워라밸이 MZ 세대의 키워드로 떠올랐을 때에는 직장과 삶의 완전한 균형을 꿈꾸며 칼퇴근과 저녁이 있는 삶에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 ‘갓생’이 키워드로 떠오른 지금은 또다시 욜로 이전으로 돌아가 열심히 노력하고, 일분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으며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하는 이들이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중이다.


‘대세’인 삶의 방식은 꾸준히 변화 중이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방향을 확고히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매번 미디어에서는 ‘지금 대세인 삶의 유형은 이것’이라고 말하며 다들 이렇게 사는 것처럼 다양한 키워드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렇게 전시된 ‘대세 라이프스타일’을 관람하며 나는 더더욱 혼란에 빠진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쓰는 나 흰뱀도 갓생의 굴레에 빠진 적이 있다.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주변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멋있는 사람들인 것은 맞다) 그들에게 열심히 산다며 박수를 쳐주는 동안, 속으로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정체되어 있는 것만 같고, 남들 하는 것처럼 살지 못해 혼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준비하던 일도 잘 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재미있다가도 불투명한 미래로 가는 지름길처럼 느껴져 이내 추욱 늘어지기를 반복했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것 같다가도, 그렇다고 나라는 사람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 수는 없는 노릇. 분수에 맞지 않는 것들을 원하게 된 사람처럼 나는 이상적(으로 보이는)인 삶의 모습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괴리를 느끼게 되었다.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였지만, 일단 내가 남들처럼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옳은 것 같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시, 오늘은 휴관합니다.

전시는 모든 것을 담지 않는다. 전시는 설정된 주제로만 구성되고, 부합하지 않는 요소들은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는 전시장 속의 삶을 관람하면서 정작 그 너머의 실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전시된 것으로 이미 대상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의 현실과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은 삶에서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집된 삶의 조각들을 그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관람객으로서 전시장에 머물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전시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가지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타인의 전시에 시선을 빼앗겨 정작 자신이 가진 빛나는 순간을 초라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꼈던 적이 있다면, 잠시 휴관을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그동안 너무 많은 ‘남의 것’을 마주쳤다. 누가 어딜 놀러 갈 것이고, 새로운 유행이 나타날 것이고, 누구는 매일같이 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관람하고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그렇게 하고 있다. 애초에 나와는 별개의 전시였으니까.


다들 하던 대로 말고, 내가 하던 대로 하면서 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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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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