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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an 19. 2023

노란 딱지, NO라는 상처에 앉은

노키즈존에 관하여

[딱지]  

: 헌데나 상처에서 피, 고름, 진물 따위가 나와 말라붙어 생긴 껍질


어렸을 때 열심히 놀다가 넘어져서 상처가 나고 그 자리에 딱지가 앉은 적, 그리고 그 딱지 앉은 곳이 가려워서 딱지를 긁어 떼어 버리고, 떼다가 다시 피가 나고,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경험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도 보이지 않는 딱지가 있다. 딱지가 앉아 가려워 긁고 싶지만 긁으면 피가 날 수 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딱지. 오늘은 그런 딱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키즈존, 처음 뵙겠습니다만

얼마 전 과제를 하러 집 주변의 카페를 간 나는 '노키즈존'이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노키즈존 카페였다. 온라인에서 노키즈존 이슈를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한 적은 처음이었다. ‘노키즈존’이라는 문구를 가장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면 솔직히 ‘여기 노키즈존이었구나? 쾌적해서 좋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뛰고, 쏟고, 울고...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스쳐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노키즈존을 만든 이유에 은연중에 공감을 했었다. 노키즈존 가게를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간 가게가 노키즈존이라고 하면 ‘나쁘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는 그 정도. 어떻게 보면 노키즈존에 그렇게 관심을 두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아이 그러지 마세요

왜 노키즈존이 시작됐을까? 어느 사건 하나를 시작으로 등장했다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노키즈존하면 '된장 국물녀' 사건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인터넷 포털에 아들의 화상 사진과 함께 ‘국물을 쏟아 화상을 입히고 사라진 가해자를 찾아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여자는 된장국물녀, 화상테러범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은 아이가 식당을 뛰어다니다 여자를 들이받고 지나간 것이었다. (이외에 스타벅스 오줌컵 사건도 있다) 이때부터 개념 없는 부모를 일컫는 ‘맘충’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하며 노키즈존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현재 약 400여 개의 노키즈존 가게가 있고 표시되지 않은 노키즈존을 포함하면 더욱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당장 내가 우연히 들어간 집 주변의 카페도 노키즈존인 것처럼 말이다.



애들은 가

노키즈존이 급속히 많아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성인 10명 중 7명 이상이 ‘노키즈존' 운영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것. 흥미로운 점은 초등학생 이하 자녀가 있는 응답자 중 70%도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것이었다. [어린이를 위한 배려]보다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응답자가 많았으며,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노키즈존 지정 음식점 가겠다]에 응답한 사람도 전체의 48%에 달했다.

나는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노키즈존을 보고 '쾌적하겠다'라고 앞서 말하긴 했었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막는 게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다'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키즈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 생각했고 그게 어떻게 보면 ‘도덕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는 결국 노키즈존이 필요하다는 것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것임을 뜻하는 걸까?



예스키즈존, 온 세상 어린이 이리온

여론은 여전히 ‘노키즈존은 필요하다’라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키즈존 철폐에 대한 목소리가 계속 커지며, 이에 힘을 입어 노키즈존 대신 '예스키즈존'을 외치며 아이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 맥도날드(feat.레고랜드) / ‘예스키즈존 선언’

최근 맥도날드는 레고랜드와 손을 잡고 ‘온 세상 어린이 대환영’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예스키즈존 마케팅으로 큰 호응을 끌었다. 맥도날드의 유튜브 광고는 160만 조회수를 넘겼으며, 시민들은 맥도날드 광고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하며 “노키즈존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올바른 마케팅 방향”이라며 공감하기도 했다.


2) 패션브랜드 히로 / ‘예스키즈존 티셔츠’

패션계에서도 예스키즈존 마케팅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키즈브랜드 ‘히로(HIRO)’에서는 예스키즈존 티셔츠를 판매하며 노키즈존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실제 구매자들 또한 ‘옷도 옷이지만 예스키즈존 문구가 더 마음에 든다'는 리뷰를 남기는 등 예스키즈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3) *몬스터 키즈 / ‘예스키즈존 어플’

우리 동네의 유아시설, 놀이방, 놀이시설이 있는 식당, 카페 등을 알려주는 어플인 ‘몬스터키즈’. 할인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쿠폰 혜택 또한 함께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후기와 지역 커뮤니티로 예스키즈존 온라인 공유의 장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예스키즈존도 사실은

앞서 예스키즈존 사례들을 여럿 소개하긴 했지만 나에게 예스키즈존의 등장은 뭐랄까 응? 싶었다. ‘어린이가 출입할 수 있는 가게를 따로 이렇게 부른다고? 그리고 이게 마케팅으로 쓰이고 있다고?’ 노키즈존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예스키즈존 소식을 듣고 그제야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예스키즈존이 나와야 할 정도로 노키즈존이 많아지고 있구나',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구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엔 어린아이의 출입은 가능하지만 보호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는 '케어키즈존'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특정 세대를 사이에 두고 이들을 들여보내고 내보내고 하는 모습들에 조금은 어지러워졌다.

내가 어렸을 때 못 들어갔던 곳이 있었나? 140cm 키제한 때문에 못 들어갔던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말고는 없는 거 같은데 말이다.



취급주의 : 취급에 유의하세요

그래서 나는 노키즈존 / 예스키즈존 / 케어키즈존처럼 키즈존이 다양하게 분화되는 것이 ‘아, 사람들이 키즈존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구나’라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달갑지 않다. ‘키즈' 앞에 수식어가 하나 둘 붙을수록, 아이들은 NO / YES / CARE 취급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우리에게 인식된다. 

‘아이는 가면 안 되고 / 아이는 가도 되고 / 아이는 주의를 받아야 하고’ 결국 아이들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일 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노란 딱지

돌고 돌아 예스키즈존, 케어키즈존이 등장한 이유는 ‘노’ 키즈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즈존에 ‘노'라는 딱지가 붙기 시작하며 아이들은 거절당했고, 거부당해도 되는 존재가 되었다. 비단 키즈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노키즈존, 노틴에이저존, 노교수존, 노시니어존 … 이곳저곳에 붙여져 있는 노란 딱지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쉽게 쉽게 특정 집단 앞에 ‘NO’라는 단어를 붙이곤 한다. 이 단어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키즈 앞에 붙은 NO라는 단어는 '키즈'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물을 엎지르고, 세상 떠나가라 우는, 천방지축 못 말리는 아이들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원래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NO를 보는 순간 편견을 갖게 되고, 혐오가 생기게 된다. 서로 불편을 감수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아니라, ‘NO’라는 딱지를 붙여 간편하게 불편을 제거하는 사회. 참 간단하고 쉽다.



NO라는 상처에 앉은

그들에게 붙은 노란 딱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거절과 거부로 얼룩진 아이의 상처 위에 앉은 NO란 딱지는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어른의 거부로 켜켜이 쌓여만 간다. 그다음은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스스로 자책하거나 어른들의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딱지를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 긁어 떼어내게 되고 상처는 계속해서 아물지 못해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한창 커 가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은연중에 상처를 주고 그들 마음속에 딱지를 앉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공공 에티켓을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특정 세대를 막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 또한 이에 떳떳하지 못하다. 이제 아이라서 할 수 있는 것보다 아이라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아이들이 자라 몇 년 뒤 마주할 새로운 아이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지, 그것이 사랑과 포용일지, 편견과 차별일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 문장을 떠올려봐도 좋겠다.


우리도 한때 아이였음을, 좋은 어른들 덕에 무사히 어른이 됐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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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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