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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an 21. 2023

꺾이지 않는 마음의 모양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 연말, 카타르 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에 대해 떠올려 본다. 포르투갈전에서의 극적인 16강 진출, 이로 인해 경기와 선수들에게 쏟아진 수많은 관심. 역대급 팔로우 돌풍의 월드컵 스타 조규성이 배출된 것은 물론, 손흥민이 모델인 브랜드들과 심지어는 가나 초콜릿의 매출까지 상승하는 일명 ‘애국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헬조선 따위의 자조적인 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고 잠시 잊고 있던 애국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대미문의 겨울 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긴 많은 것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하나가 있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중꺾마일 테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16강 진출 후 태극기에 적히며 중꺾마 열풍을 일으킨 이 문구는 사실 2022 롤드컵에서 시작됐다. DRX 데프트 선수의 인터뷰가 기사로 축약되어 옮겨지는 과정에서 요약되어 적힌 문구라고. 정확히 누구의 말이라고 할 수 없이 출처가 불명확한 이 문장은, 그래서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문장으로 거듭났다. 스포츠의 힘이 여러 갈래로 파편화된 사회를 잠시나마 한 줄로 묶어낸 거다.



대쪽 같은 굴레의 문장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선비 같은 문장들이 유행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동안 ‘선비’, ‘오글거리다’, ‘진지충’ 등의 단어가 세상을 지배하며 수많은 감성들을 뭉뚱그려 왔던 것과는 반대의 모습이라 무척 반가웠다. 쿨함을 표방한 자조적인 표현들이 세대의 가치관처럼 자리 잡고, 진지하고 따뜻한 표현들은 감성 충만한 사람들의 간지러운 문장으로 취급되는 시대. 이러한 세태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진지한 문장이 유행어가 되다니,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죽으면 그만이야’, ‘응 아니야’처럼 말 하나로 모든 상황을 전면 부정하는 부정적 밈들이 있다. 얼굴 찌푸려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유행어가 결국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슬퍼진다. 막막히 침체된 시대 속에서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지는 것을 느낄 때, 갈기갈기 찢긴 사회 구조 속에서 상대의 모든 말이 궤변처럼만 느껴질 때. 이건 아니야! 하고 외치며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한편 ‘행복회로’나 ‘대가리 꽃밭’ 같이 묘하게 긍정의 틀을 규정짓는 단어들도 있다. 이는 행복한 사람들을 위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비하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데, ‘쟤 또 행복회로 돌린다.’ 라던지, ‘대가리가 꽃밭이라 그렇다.’ 같은 활용형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두 현실감 없이 긍정하는 태도를 꼬집는 데 사용되는 냉소적 표현이다. (솔직히 대가리 꽃밭이라는 말도 좀 웃겨. 아직 피지 않은 꽃까지 상상할 수 있는 통찰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긍정은 부정되고, 부정이 긍정된다. 경직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말랑말랑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고 싶어지곤 한다. 마음 아픈 희망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쉽고, 생존에도 유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메마른 감정으로 살아가는 것은 막막한 시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필연적 진화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출처 : 유튜브 채널 '침착맨'

‘오히려 좋아’라는 말은 판도를 조금 변화시켰다. 상황이 이미 좋지 않게 되어 무척 곤란한 현재에 놓여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나아가 [더 좋다]는 긍정적인 생각의 흐름이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고전적 구절을 현대식으로 풀어낸다면 ‘오히려 좋아’가 되지 않을까. 갓생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부터는 ‘가보자고’나 ‘내가 해냄’과 같이 목표 달성을 위한 자기 암시의 말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꺾마’와 ‘알빠임?’이라는 월드컵 유행어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했다. 사람들이 긍정적 밈을 찾게 된 원인이 단순히 극적인 월드컵 결과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조에는 한계가 있다. 미래의 나는 종종 타자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현재의 나의 연장선이다. 따라서 미래를 자조하고 부정하는 것은 현재까지도 암울하게 만든다. 이미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기를 갉아먹는 과정에 싫증을 느끼며 희망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따라서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의 의미는, 자기 암시 형태로 중얼거리던 긍정의 말들이 실제로 효과를 보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건이었다는 것에 있다. 내가 해낸다, 가보자, 오히려 좋아…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미래를 더듬으며 홀로 외치던 구절들이 힘을 발휘하는 현장을 우리 모두가 목격하게 된 것. 꺾이지 않는 말들은 비로소 결과가 되어 우리에게 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돌고 돌아 긍정을 찾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타인을 향한 멸시와 심지어는 자신을 향한 자조까지 가득한 세상에서도, 꺾이지 않고 긍정을 향해 돌아왔다는 것.


앞서 ‘감정의 사막화는 생존을 위한 진화’라는 말을 던져 보기도 했으나, 사실 그 진화의 과정에서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는 무엇이 달랐을까를 곱씹어 본다면 역시 ‘인간다움’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가 인간다움이라니 말장난 같지만 사실 우리 모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다. 사회성을 가지고, 연대감을 느끼며, 함께를 이야기하는 것. 나는 이것을 함께하는 미래를 긍정하는 힘으로 해석하고 싶다.

돌고 돌아 긍정으로 돌아오는 힘. 의도한 바 없이도 다시 관성처럼, 긍정으로 이끌리는 힘. 이것이 결국 ‘인간다움’이며, 중꺾마는 이를 증명하는 수단의 문장인 것이 아닐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사는 요즘의 청년 세대에게 ‘중꺾마’와 같은 희망적 메시지는 무척 유의미하다. 깜깜한 이 길에서도 인내와 노력을 감내하다 보면 결국 성공적인 결과를 마주할 것이라는 믿음. 저성장 시대에서 마치 평행선 같은 미래 그래프를 바라보는 청년들에게 새 활기를 주는 문장이다.


반면 많은 것을 놓아내지 못하고 처절히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포화된 경쟁 시대에서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어 심지어는 자신을 해하는 노력조차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들에게 중꺾마는 막연한 희망 고문이다. 뼈를 깎는 시간들을 견뎌야 하며 그조차도 꺾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경쟁을 부추기는 강요다. 인생이 1등부터 100등까지 순위를 매기는 달리기 경기라면, 모두가 꺾이지 않고 일직선으로 뛰어도 1등은 1등이고 100등은 100등이니까. 중꺾마가 만드는 이런 희망의 모순은 사실, 그 마음의 모양을 착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꺾이지 않는 마음의 모양이 실은 직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은 올곧고 바른 직선의 정신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구불구불한 곡선이다. 말하자면 부드러운 극대와 극소를 그리며 흔들리는 미분 가능한 함수의 모양새다. 진동의 일부가 되어 수많은 파동을 받아내더라도, 아찔한 극한 사이를 오가며 수없이 흔들리더라도, 그 어떤 순간에도 꺾이지 않을 것임을 약속해 주는 것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


올곧은 마음으로 지조를 지키며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은 외부의 힘에 의해 쉽게 꺾인다. 양 끝을 잡고 힘을 주면 툭 하고 부러지는 나뭇가지처럼, 직선은 필연적으로 꺾일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며, 속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마음이 직선이라는 믿음이다. 단순히 포기하지 않겠다는 일념이 아니라, 최단선으로만 가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다.


꺾이지 않으려면 유연해야 한다. 성공은 직선 경쟁의 끝에서 만나는 트로피가 아니라, 여행과 모험의 둘레길에서 만나는 길고양이 같은 존재니까. 점과 점 사이, 시작과 끝 사이, 목표와 결과 사이… 빠르고 효율적인 성취를 위해 직선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시련을 즐기며 곡선의 길을 걷겠다는 것. 길을 걷는 행위 자체를 즐기며 살아가겠다는 것. 명징하게 직조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탄성으로 둥글게 흐르는 것의 힘.

그리하여, 꺾이지 않는 마음의 모양은 곡선.


중꺾마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여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일념이 아니다. 비록 월드컵이라는 치열한 경쟁의 현장에서 완성된 문장이지만, 그 영향력이 또다시 경쟁 과열을 부추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오히려 직진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여유와 모험을 제안하는 문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곳을 향해 직진하는 것이 줏대를 가진 멋진 가치관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내비게이션에 최단 거리를 검색하는 것보다 모르는 골목길에 과감히 들어서 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과감히 나의 방향을 곡선 주행에 맡겨 보자. 꺾이지 않는 마음을 완성하는 용기란, 이토록 구불구불한 모양이니까.



평행선 아래 찰나의 점

“무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

2021년 누리호 발사 실패 현장을 담은 한 기사의 제목이다. 분명한 실패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더해 긍정의 메시지를 완성했다. 구구절절한 위로와 희망의 말들이 제대로 완결조차 되지 않은 짧은 문장으로 완벽하게 압축되었다. 무한 평행선 아래, 단지 찰나의 점일지라도…


2022년 6월 21일, 누리호는 결국 2차 발사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어진 2022 카타르 월드컵의 16강 진출. 대한민국의 상반기에 누리호가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월드컵이 있었다. 한 줄씩 말끔히 정리되는 성공의 문장들이, 심지어는 원체 한 몸이었던 듯 이어진다.


'무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똑바로 달려온 것 같아도 뒤돌아보면 굽어 있는 곡선의 기찻길처럼, 무한 우주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이 단지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감각뿐일지라도…


출처 : (좌) KBS1 다큐 3일 / (우) 연합뉴스


2021년, 실패가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찾아내고 - 무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

2022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꾸준히 쥐고 있을 것을 이야기했다면 -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3년, 더 나아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우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더 많은 희망의 문장들이 세상을 가득 채우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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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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