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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Feb 11. 2023

진실 혹은 거짓

딥페이크 추모_떠난 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챙겨야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 일 거예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키가 아무리 커도 얼굴이 아무리 예뻐도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게 자연의 진리니까요.


하지만, 자연의 진리에 따라 죽게 된다는 것이 한 사람의 흔적까지 한 번에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떠난 사람의 흔적은 세상에 남아 남은 이들이 떠난 이를 더 그리워하게 만들기도 하죠. 이렇듯 남은 이들은 그들을 단숨에 잊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이미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면 남아있는 이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요.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남은 흔적들을 마음껏 눈에 담고, 품에도 안아보다가 “시간이 약”이라는 상투적인 말 하나만을 마음에 새긴 채 그렇게 무뎌지는 것뿐이죠. 


‘사진 하나, 영상 하나 더 찍어둘 걸’ 하는 후회의 말과 함께요.



또 한 건 해낸 기술

출처 : 야놀자

혹시 위처럼 후회의 말을 내뱉게 될까 두렵진 않으셨나요? 그렇다면 이번 아티클에 주목해 주세요. 이제는 기술이 발전하며 떠난 이의 모습으로 새로운 영상을 만들 수도 있고, 떠난 이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올여름,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주시다가 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송해’ 선생님의 ‘야 놀자’ 광고 영상이 바로 그 예시입니다. 예시 영상은 생전 고령이셨던 선생님의 상황 상 광고 영상을 찍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제작진이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되었는데요. 야 놀자 측에서는 마지막까지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선물하고 싶었다던 선생님의 마음과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선생님의 뜻을 담아 기술을 활용한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선생님의 유작으로 남은 이 영상에서는 선생님의 건강한 모습이 기억될 수 있게 되었어요.


송해 선생님 사례 외에도 상조 회사인 프리드 라이프가 지난 11월, ‘AI 추모 서비스’를 선보이며 AI를 통한 새로운 추모의 방식이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딥페이크 기술이 발전하고, 관련 서비스가 등장하며 유명인과 일반인에 관계없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영상에서만큼은 실현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들어주는 딥페이크, 이 기술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일까요?



가짜의 어려운 말

딥페이크란 인공지능 중 하나인 딥 러닝(deep learning)에 ‘가짜’를 뜻하는 영어 단어 페이크(fake)의 의미가 더해져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영상을 합성하는 것인데, 아마 많은 분들께서는 딥페이크를 부정적인 상황에서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딥페이크를 검색하면 관련 기사들로 대부분 범죄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기사들이 뜨는데, 지인의 얼굴을 합성하여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제공하는 범죄인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되는 기술로 유명한 것이 바로 딥페이크 기술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딥페이크는 단순 기술이 아니라 범죄에 악용되는 기술로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입니다.

출처 : SBS 뉴스

딥페이크가 악한 곳에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지만, 글의 서론에서 언급했듯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만들어주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도 합니다. 남은 이들에게 떠난 이의 새로운 모습을 영상으로 제공하며 새로운 방식의 추모를 가능하게 해주기도 하고, 실종 아동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실종 아동의 실종 당시 모습을 이용함으로써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의 모습을 딥페이크 기술로 추측하여 과거의 사진보다 조금 더 현재의 모습과 근접할지도 모르는 모습을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알고 싶다

이렇듯 때로는 악하고, 때로는 선하게 이용되기도 하는 딥페이크 기술. 다시 추모 관련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번 글을 쓰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을 해결해보고자 합니다. 글을 쓰는 내내 남겨진 사람들이 과연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떠난 이의 영상, 목소리 등 새로운 흔적을 얻고 싶어 할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해보았습니다.  


1. 딥페이크에 대해 알고 있나요?

2. 딥페이크 하면 어떤 점이 연상되나요? 혹은 평소 긍정, 부정의 이미지 중 어떤 이미지가 더 짙었나요?

3. 딥페이크를 통해 추모할 수 있다면 할 건가요? 본인의 답변에 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4. 본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누군가 딥페이크로 본인을 추모해 준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나요?


20대 초중반으로 이루어진 5명의 지인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5명 모두 딥페이크를 알고 있으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딥페이크 추모에 관해서는 “살짝 기괴하게 느껴질 것 같다.”,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전 모습을 추억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악용될 여지가 클 것 같다.” 등 부정적이고, 우려의 목소리가 컸으며 본인이 추모를 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딥페이크 추모보다는 기존의 추모 방식을 선택해 줬으면 하는 의견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의 멈춘 세상이 다시 굴러가는 기분이 든다.”라며 모두가 아는 유명인일 경우에 한정 지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도 있었으나, 답변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아직은 딥페이크 추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는 어디까지나 제 지인들의 답변에 한정된 것이고,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한 사람의 상황에 따라 혹은 나이에 따라 결과가 변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디 이 글이 추모 혹은 딥페이크 추모에 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어줄 수 있길 바라며 여러분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딥페이크 추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떠난 이들을 위한 글

여러분의 답변을 듣기 전에, 제가 이 주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 역시 5명의 답변자들과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저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추모’에 그리 긍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리워하는 마음과 떠난 이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보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럴 수 없어서 또 슬퍼할 수밖에 없는 마음. 이 모든 마음들은 감히 제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뭐라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남은 이들의 마음이고, 남은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든 어떤 마음을 갖든 그건 그들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남은 이들은 남아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떠난 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챙겨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이 기술이 상용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세상에 흔적을 남겨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어 하는지, 혹은 세상에 본인이 다녀갔단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고 싶어 하는지. 새로운 영상을 만들면서까지 기억되고 싶은지 등. 그리하여 저는 이 기술이 어쩌면 남은 이들만을 위한, 남은 이들만 원하는 기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면서까지 기억하고자 하는 건 어찌 보면 남은 이의 욕심에 불과할 수 있기에- 

죽은 이의 마음을 물을 수 없다면, 죽은 이가 남긴 것들로만 추억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만약에란 없지만 그래도 진짜 만약에

제가 만약 죽는다면, 저는 남은 사람들이 새로운 영상을 만들면서까지 제 모습을 그리워해주는 것을 원치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살아있을 때의 ‘진짜’ 제 모습만 저로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에요. ‘가짜’로 저의 ‘진짜’ 모습이 대체되고, 제 빈자리를 채우는 건 원치 않습니다.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아무리 힘들었던 기억도 나중엔 결국 추억이 되어 ‘그렇게 힘들었나?’ 하는 의문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렇듯 순수하게 실제로 떠난 이와 남은 이가 함께 했던 시절도 나중에는 결국 흐릿한 기억이 될 텐데, 딥페이크가 추억을 거짓되게 하는 또 다른 방안이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도 여전히 듭니다.



어쩌다 얻은 영감

그러나, 세상이 변하며 추모의 방식도 변하고 있기에 이 추모 방식이 정말 상용화될 여지가 있다면 떠난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는 숙제를 해결한 이후에 상용화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마련인데, 떠난 이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까. 개인적으로 고민해 보던 중, 최근 드라마에서 본 DNR(Do Not resuscitate; 소생술포기) 동의서가 떠올랐습니다.


DNR 동의서란 호전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가 인공호흡기나 독한 약물 등으로 억지로 생명을 유지 혹은 연장하지 않는 것에 동의하는 문서로, 이 문서에 동의를 하게 되면 그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을 때 심폐소생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동의서는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할 정도로 상황이 힘들어졌을 때의 상황을 담은 문서이기 때문에 죽기 전, 몸이 건강할 때에 미리 동의를 해두는 장기이식 동의서와 더 비슷한 맥락으로 딥페이크 추모도 생전에 미리 동의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떠난 이의 마음이 신경 쓰여 딥페이크 추모를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제가, 송해 선생님의 사례에서만큼은 추억을 남기는 새로운 도구로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단 한 가지. 딥페이크 기술로 건강한 모습을 담은 광고 영상을 만드는 것이 송해 선생님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딥페이크 추모는 이제 막 등장한 문화이지만, 이 문화를 아예 포기하기엔 남은이의 마음이, 마냥 이 문화를 옹호하며 상용화하자고 주장하기에는 떠난 이의 마음이 걱정되기 때문에, 이 두 마음의 절충안으로서 동의서가 제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제안해 보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사실, 우리는 모두 모르고 있지 않았어요.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던 사람은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긴 채 매 순간 최선을 다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도 팍팍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말만 해주고 싶었지만, 아낀다는 진심은 너무 힘든 현 상황에 가려져 마음껏 표현하고 남기지 못한 채 ‘후회’의 순간으로 남게 되었을 거예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도 다르지 않아요. 언젠가는 이 순간을 분명 후회하는 날이 올 텐데,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표현하기 부끄럽다는 마음 하나로 소중한 이들을 영상으로 담아두는 것을 미루고 있었으니까요. 이번 아티클을 쓰며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미 소중한 이가 떠나버린 뒤에 후회하는 마음보다 현재의 부끄러운 마음이 더 털어내기 쉬운 마음일 테니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글을 씀에 있어 중요시하는 것을 두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진솔함참신함을 꼽을 거예요. 어쩌면 둘의 조합이 참 안 어울린다 싶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 둘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글을 쓸 때 상투적이라고 느끼는 문장은 잘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상투적인 문장으로 인해 글이 뻔하게 느껴지는 걸 피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번 글은 쓰는 내내 참신함이나 글의 구성보다는 진솔하게 저의 생각을 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라는 착각에 빠져 ‘죽음’이라는 걸 생각해 보는 행위 자체를 미뤄왔던 저에게 생각해 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까요. 그 기회를 잘 활용해 보고 싶었고, 이번 기회는 저에게 뻔하다고 치부되던 말들의 위력을 실감해 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 주어진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리하여 제 글이 뻔하게 느껴지게 될지라도, 참신함을 잃어 좋은 글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될지라도 이번 주제에서만큼은 이 문장을 꼭 쓰면서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가끔은 뻔한 말이 답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우리 같이 노력해 봐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기를-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자연의 진리를 따라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은 모두 같기에 피할 수 없다면 소중한 이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진심을 담아 진실된 실제의 순간들을 영상으로 담아두고자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요? 


거짓은 늘 진실을 이길 수 없고, 우리에게는 아직 진실을 기록할 기회가 남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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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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