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MU 남매의 노래가 내게 남긴 것

by 애카이브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어릴 때 나는 오빠의 물건이라면 뭐든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는 동생이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우리는 눈만 마주쳐도 싸우는 사이가 됐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신기하게도, 그 거리 덕분에 관계는 오히려 나아졌다.


지금은 함께 여행을 갈 정도는 아니지만,

집 앞 편의점까지는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남매 사이가 유독 좋은 남매를 보며 묻는다.

“부모님이 어떻게 키우셨길래 저럴까?”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특히 같은 꿈을 꾸고, 함께 일을 하는 악뮤를 볼 때면 더 그렇다.

나에게 오빠와 같은 꿈을 꾸는 일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니까.


image - 2026-04-26T193003.715.png
“오빠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빈자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컸다. 제가 다 채울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었는데 도저히 반의 반도 채울 수가 없더라. 거기서 느껴지는 저에 대한 실망이 제일 컸다”

- 수현의 인터뷰 중

어릴 때 나는 늘 ‘오빠의 동생’으로 불렸다.

공부도 잘하고, 늘 모범적이었던 오빠의 동생.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나는 늘 비교의 기준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게 참 싫었다.


나는 나로 불리고 싶었는데,

언제나 오빠를 설명하는 문장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와 가까이 있을수록, 우리는 더 쉽게 비교하게 된다.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은 저만치 앞서 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게 된다.


image - 2026-04-26T193156.412.png
“순례길을 걸으면서 ‘나는 왜 항상 오빠랑 같이 걸을 수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앞서가는 오빠를 따라잡으려고도 노력해 봤지만, 내가 너무 막 부서질 것 같았다. 그렇게 나만의 템포대로 걸어서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니, 막상 우리는 ‘순례길을 다 걸은 순례자’로 함께 묶여 있더라. 따로 걷더라도 우리가 걸은 길은 똑같고, 늘 같은 저녁을 함께 먹었고, 함께 같은 곳에 도착했었구나.”

- 수현의 인터뷰 중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다.


늘 나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 같은 동기,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를 쉽게 해결해 버리는 친구.


우리는 함께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기준은, 종종 나를 작게 만든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누가 더 빨리 갔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같은 길 위에 있었다는 사실 아닐까.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은 고민을 지나,

각자의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다고.

지금의 속도도 충분하다고.


말에는 힘이 있어서,

반복하다 보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까.


문을 열면 햇빛이 들어오듯,


내가 나에게 건네는 한 마디가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

커비

작가의 이전글예민함의 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