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기준을 찾는 시간

취향의 발견

by 다양

행복이란 지독히도 나다워지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친구와 카페에서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추천받은 향수 가게를 구경하러 가고 싶다는 말에 친구를 따라나섰다. 사실 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만든 석유 화합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강하고 독한 향수 특유의 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향긋한 것도 한순간뿐, 계속 맡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오는 향에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번 경험은 향수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계속 맡고 싶어지는 향수를 발견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연, 서순라길에 위치한 향수 공방에는 수백 개의 향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비유적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수백 개였다. 그 향기의 바닷속에서 수십 개의 병을 킁킁댄 끝에, 나의 마음을 확 잡아끈 향과 만날 수 있었다.


164번 '베를린의 소녀'라는 이름을 가진 이 향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살아남은 여성들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 향수는 이염될 정도로 새빨간 레드빛을 띤다는 설명을 들었다. 원료여서 투명한 향수를 바라보며 빨간 색도 향수와 참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단숨에 뇌신경 세포까지 다다르는 매혹적인 장미향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300개가 넘는 향수 가운데 좋은 향은 정말 많았지만, 또 맡고 싶어지는 건 이 향뿐이었다.


나는 향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 후 조용한 북카페에서 『중산층 연대기』라는 책을 읽으며 내가 찾고 있는 것에 대해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찾고 있는 건 뭘까?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것을 먹고, 달콤한 커피와 함께 독서하고 사색하는 여유를 종종 가지는 삶. 그것이면 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수세기에 걸쳐 중산층에 대해 묘사해 온 바에 따르면, 더 많은 돈, 더 높은 경제적 지위를 가지려 노력하는 것이 글로벌적으로 통일된 중산층의 습성이라고 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AI와 기후변화로 그 지위를 위협받는 지금에서는 고소득과 고성장에 대한 집착과 경쟁보다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삶에 여유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털린의 역설에 따르면 높은 소득이 국가적 행복에 비례하는 것은 일정 소득까지만 이고, 그 범위를 초과하게 되면 오히려 반감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한국을 비롯한 신규 중진국은 소득이 향상되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바탕으로 더 많은 노동시간에 소모되며, 정말 중요한 가족과 친밀한 사람들과 보낼 시간을 빼앗겨 왔다.


이제 AI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그만큼 확보된 시간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아갈 때다. 행복이란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오늘의 경험을 통해서 나의 '취향'을 발견하는 것 역시 큰 행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향수 공방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독특하게도 향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 역시 직장인이라 그 마음에 대해서는 조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일은 일로서 기능하는 것, 꼭 그 안에서 그 일을 좋아하고 즐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을 조금 버렸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사회에 나와서 느끼게 된 것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삶을 위해서, 생계를 위해서 적당한 직업을 가지고 그를 통해 창출되는 부가적인 가치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해서 반복된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때가 온다.


그때쯤 추천하는 책이 『왜 일하는가』다. 자신의 일을 '형벌'로서 여기지 말고, 어차피 40년간 일해야 한다면 그 일을 사랑하도록 노력하자는 저자의 말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고 반응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하는 일을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삶을 살아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짧은 식견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느끼는 게 있다면 삶은 어떻게 바라보느냐, 즉 내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다. 뇌에 자극이 전해지고 내 안의 신경계가 판단을 내리기까지 잠깐의 간극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이 자극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로 결단했다면, 그 판단에 맞춰 호르몬과 감정들이 생겨난다.


삶에서 주어지는 일을, 그리고 자극들을 되도록 긍정적인 쪽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며, 한 번뿐인 인생을 다양한 즐거운 경험들로 채워가길 소망한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 남들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베를린의 소녀라는 향을 만났던 그날처럼, 우리는 매일 조금씩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여정이다.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비교의 고속도로에서 내려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