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고속도로에서 내려오기

동생의 꿈과 나의 편견 사이에서 배운 것

by 다양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삶이 바쁜 것도 있었지만,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다짐과 달리 내 마음은 자꾸만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좀먹었고,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

조금은 마음이 안정된 지금, 그간 느꼈던 감정과 어떻게 극복했는지 뒤늦게 적어보고자 한다.


사건의 발단은 여동생에게 직업을 추천하면서 시작되었다. 동생이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변화하는 21세기에서 안정적인 공무원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직렬을 찾아보던 중 국회직 8급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이별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동생에게 "한국사 공부를 통해 실연의 상처를 잊어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의했다가 대차게 거절당했다.


점심시간, 이 일을 동기에게 상담하자 뜻밖의 말을 들었다.


"네가 걱정하는 건 동생의 미래가 아니라 너의 미래 아니야? 혹시 졸업 후에도 직업을 구하지 못해 부모님 집에 있게 될 때, 동생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동생이 원하지도 않는 직업을 강요한 거 아니야?"


순간 수치심이 몰려왔다. 동생이 국회직 8급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상상을 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꿈이 아니라 '8급 공무원을 동생으로 둔 언니'라는 나의 꿈에 취해 있었다. 내가 동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고시 공부라는 험난한 터널에 들어갈지 말지의 선택권은 오로지 동생에게 있음에도, 나의 욕심으로 은연중에 강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대학교 2, 3학년은 대외활동과 자격증을 취득하며 미래를 대비하잖아."


내 말에 동기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한 달 정도 서울 외의 다른 지방에 살아봐야 할 것 같아.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정말 극히 일부야. 대다수 사람들은 대학교 2학년까지도 그냥 놀고 천진난만하게 지내. 제주도에 가서 낚싯대를 드리운 아저씨와도 이야기해 보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봐."


이 말이 이제껏 들었던 그 어떤 조언보다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나는 나름대로 식견을 넓히려 해외여행도 다니고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생각의 폭은 내가 나고 자란 동네, 내 주변 친구들의 인생과 도전에 한정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자라면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성공 공식이 정해진 듯 느껴진다.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들어가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자녀를 잘 키우는 삶.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음에도,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직업'—사무실에서 일하고 안정적이며 월급 밀릴 걱정 없는 소수의 직업들만을 물망에 올려두고, 그런 직업을 위해 전혀 준비하지 않는 동생을 한심하게만 여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비교하지 않기로 해놓고서는, 한없이 작은 내 세상에 갇혀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정작 나였다.


비교는 마치 생각의 고속도로 같다. 이미 기존에 잘 닦인 직선형 도로가 있을 때, 그 위에 놓인 차는 다른 길로 꺾이지 않고 질주하듯,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비교로 다져진 나의 사고도 이미 고속도로가 잘 정비된 것이다. 그 위를 속절없이 내달리는 생각에 아, 지금 비교하고 있구나라고 스스로 인지할 틈도 없이, 어느새 비교의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그 생각의 과정을 멈추고자 한다. 그 시작으로 여동생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응원하고 지지해야겠다.


동생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동물 장례 지도사."

"그게... 자격증이 있어?"


생각지도 못한 꿈이 나와서 자동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동생이 되고 싶은 꿈이라면 응원해 주는 게 언니의 역할이겠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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