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대신 살아내는 삶의 무게
"고졸과 문신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평생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유튜브 댓글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내 삶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상업고등학교, 흔히 '상고'라고 불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했다. 학창 시절엔 졸업 후 내가 받게 될 사회적 시선이나 인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고졸이면 공부를 못했겠지", "바로 취직한 걸 보니 집안 사정이 어려운가 보네"라는 식의 편견들은 여린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교회나 학원, 다양한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면 대화는 늘 비슷하게 흘러갔다.
"스물두 살, 직장인입니다."
"스물두 살인데… 직장인이세요?"
"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 순간 공기 속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이 두려워 급히 말을 덧붙였다.
"사회 경험을 빨리 하고 싶어서 선택한 거예요. 고등학교 다닐 때 자격증도 28개 취득했고, 내년엔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대학도 갈 계획이에요."
분명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답변이었지만, 말이 길어질수록 나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어느새 내 삶을 필사적으로 변호하고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비슷했다.
"근데 어떻게 대학에 오게 됐어? 일하면서 다니기 쉽지 않을 텐데."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직장 생활의 반복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
이처럼 나의 자기소개에는 늘 설명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날 "스물세 살 대학생입니다"라고 말했을 때는 아무도 "왜 대학생이 됐나요?"라고 묻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에는 해명이 필요 없었다.
그 차이를 깨닫고 나니 마음이 씁쓸했다.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도, 한쪽은 늘 변호가 필요하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고졸이라 해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고 출신"이라는 짧은 꼬리표는 너무 쉽게 사람의 가치를 규정해 버린다. 마치 문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처럼, 학력과 배경 역시 첫인상의 낙인으로 작동한다.
학교 커뮤니티에서도 가끔 아무렇지 않게 "고졸은 멍청하다"는 말이 던져진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지만, 그 말은 이상하리만큼 깊이 파고들었다. 가장 두려운 건, 그런 말이 외부의 시선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어느새 내 안에서도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역시 나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내가 감히 저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자기 검열이 무의식 중에 시작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날 경제학과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로스쿨 준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리트 시험 준비를 이야기했고, 나는 듣자마자 "아, 나는 절대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을 내뱉었다. 놀랍게도 그 말은 내 머릿속에서 조금의 고민도 거치지 않았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도전조차 해본 적 없는데, 나는 이미 스스로의 가능성에 선을 그어버리고 있었다.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의 편견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편견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 스스로를 한계 지어버리게 하는 것이 진짜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도해보지 않은 가능성은 닫힌 문일 뿐이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남들이 던진 말 몇 마디에, 아직 열어보지도 않은 문 앞에서 먼저 포기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었다. 그것이 편견이 남긴 가장 뼈아픈 흔적이었다.
돌아보면 정작 중요한 건 남들의 평가가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사람들의 시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시선을 의식하며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해명하고 축소하는 내 삶의 태도였다. 항상 누군가의 질문에 대비해 늘 설명문을 준비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덧붙여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국 나를 더 옭아 매매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는 순간, 내 삶은 한없이 비참해졌다.
더는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듯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과 선택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그 이야기를 살아내는 주체는 언제나 나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앞으로의 길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정해 놓은 잣대가 아니라, 내가 믿는 가치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써 내려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내 삶을 설명하기보단, 내 삶을 살아내는 것으로 답하겠다. 한 줄의 변명보다 한 걸음의 실천이 더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는 아직 시작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고작 스물네 살이고, 내가 쓸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은 여전히 수없이 많고, 그 빈 페이지는 앞으로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자조적인 해명 대신 삶의 궤적이 남아 있기를, 그리고 그 궤적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