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속도로 가지 않아도

속도가 전부는 아니다

by 다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그래도 너는 먼저 취업해서 돈 버니까 좋겠다." 처음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스무 살에 매달 월급을 받으며, 친구들이 아직 학교에 있을 때 나는 이미 사회의 일원처럼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가 단순한 '시작 시점의 차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승진의 속도에서, 연봉 상승률의 곡선에서, 나와 대졸자 사이에는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있었다.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어느 시점이 되면 '학력'이라는 벽이 보였다.


처음엔 그게 억울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책임을 지는데 왜 나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이 쌓이면, 나 스스로도 ‘나는 원래 여기까지인 사람’이라고 마음에 선을 긋게 된다.


만약 다시 중학교 때로 돌아가 진로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상고를 고를 것이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중학생이 나에게 진로 상담을 요청한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말할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냉정하다.


상고·공고를 나왔다고 해서 다른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나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직장 사람들도 친절했고, 중학교 친구들도 여전히 스스럼없이 어울려줬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에브리타임에서 그런 시선을 너무 쉽게 목격하게 됐다.


상고 공고뿐만 아니라 일반고를 비하하거나, 특목고·자사고 출신임을 강조하며 '너희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스스로 'ㅈ반고' 출신이라고 부르며 인생 상담을 하는 글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ㅈ상고'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왜 자신이 성실하게 다닌 학교를 스스로 비하해야 할까.


누군가는 3수를 하고 "겨우 이런 대학교에 온 것이 현타가 온다"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로스쿨 입학을 위해 학부를 다시 시작하며 "31살에 로스쿨 가기에는 시간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40대도 청년으로 보는 세상에서 꼭 같은 속도로 칼 졸업, 칼 취업, 칼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실패가 있어야 잠시 멈춰 설 수 있고, 그 시간 속에서 삶을 성찰하는 지혜가 생긴다.


그저 주어진 과업을 해치우기만 하는 경주마처럼 달리다 보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시야는 좁아지고 앞만 보게 된다. 그러다 한 번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제야 '내가 어디로 온 거지' 하고 후회하게 된다.


나는 말해주고 싶다. 꼭 같은 속도로 가지 않아도, 같은 길로 가지 않아도, 저마다의 인생길이 기다리고 있다고.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의미 없다고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 실패가 있었기에 얻은 교훈이 있고, 설령 그 시간이 낭비로 느껴지더라도 삶 전체로 보면 꼭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 실패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요즘은 "이 길을 가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섣불리 발을 내딛기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정해진 길만이 답은 아니다.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 보고, 단돈 얼마라도 스스로 벌어보는 경험이 다음 걸음을 내딛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도가 다르다고 해서 길이 틀린 건 아니라는 걸 꼭 기억했으면 한다. 누군가는 조금 빠르게, 누군가는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그 길 위에 있는 순간들은 모두 의미가 있다. 언젠가 돌아보면, 조금 느렸던 그 걸음이 나를 가장 멀리 데려다주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될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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