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까지 살았을까.
“어느 학과세요?”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나도 쉽게, 빈번히 들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 질문을 들을 때면 나는 마음 한편에 돌덩이가 툭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에브리타임을 불태우고 있는 ‘그’ 야간대 학과, 바로 우리 학과이기 때문이다.
“00 학과요.”
말을 꺼내고 나면 “아아~” 하는 생략된 뒷말에서 약간의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묻어난다. 나는 쓰게 웃으며 황급히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수업을 밤에 하고 있어서, 동아리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곧 익숙한 후속 질문이 이어진다.
“그럼 지금 직장도 다니고 계시는 거예요?”
“아아, 네. 낮에는 일하고 수업은 밤에 듣고 있어요.”
이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야간대라고 하면 괜히 나를 다르게 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말하지 않으면 내 상황을 숨기는 것 같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 사이에서 나는 늘 망설인다.
어떤 말도, 어떤 태도도 완전히 편하지 않은 상태로 대화를 이어간다. 점점 리액션은 과해지고, 상대방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칠 때마다 나도 속으로는 울상을 지으며, ‘이게 아닌데’ 하고 입술을 안으로 꼭 다문다.
그럼에도 처음 해보는 대학 생활은 온통 즐거운 것 투성이라 나는 자꾸만 낮의 학교로 나아갔다. 그러느라 상반기 연차 17일 중 16일을 소진했고, 하반기에는 아파도 회사에 가서 아파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1학년 1학기, 동아리 6개를 신청했고 18학점 중 A학점 1개를 제외하곤 전부 A+를 받았다. 회사에서는 1, 2분기 연속 우수 직원상을 받았다. 교회에서는 어와나, 초등부, 미디어팀, 양육팀, 셀장 모임까지 참여하며 주말 내내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학생회 활동이 해보고 싶어 과 학생회를 시작했다. 교회 사역들에 학생회까지 더해지니 회의가 끝나면 새로운 회의가 이어졌다. 비대면 줌 회의 문화가 정착된 건 정말 다행이었다. 1시간 단위로 3개 회의가 연달아 잡히던 날엔 다음 회의 준비에 진땀을 흘리기 일쑤였다.
1월에는 인도 선교를 다녀왔고,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 오사카로 벚꽃 효도 여행도 다녀왔다. 여름방학엔 교회 언니와 함께 후쿠오카 여행, 7월엔 어와나 고성 선교, 그리고 회사 동기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계절마다 여행이 있었고, 학기마다 사역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학교와 회사가 있었다.
누가 봐도 꽉 찬 일정이었고,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아려왔다.
칭찬이 점점 무겁게만 느껴졌다. 불편하고 어려웠다. 어떤 날은 칭찬을 들어도 멋쩍게 웃기만 하고, “대단하다”는 말에도 그냥 “운이 좋았어요”라며 넘겨버렸다. “피곤하지 않아요?” “지치지 않아요?”라고 걱정해 주는 물음에는 “안 힘들어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나 자신을 자랑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대신, 나 자신을 설명하거나 변명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아마도 이런 감정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어딘가 부족하다. 내가 하는 건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 나는 뒤처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직장과 학교, 교회, 봉사까지… 아무리 쌓아도 내 안의 공백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하루하루가 결국엔 비교의 렌즈로 나를 바라보게 만들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정말 나는 부족한 걸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 하루를 되짚어 보기로 했다.
출근길마다 유튜브로 회계 강의를 듣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회 사역을 위해 회계 영수증을 정리하던 밤들. 발표 준비를 위해 점심시간에 ppt를 만들고, 피곤한 눈으로 율동 연습을 하고, 아이들의 공과 질문을 걱정하며 준비하던 시간들.
그건 분명,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나의 속도로,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매일 한 걸음씩 걷고 있었던 거다.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조금 덜 증명하고, 조금 더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견뎌온 시간을 믿고, 내가 쌓아온 것들을 더는 깎아내리지 않기로.
그 다짐이 나를 지켜주는 언어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비슷한 마음을 지닌 누군가에게도 이 조용한 문장이 닿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사람도,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하루를 허락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