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근데 그러면 안돼
요즘은 '척'이 나날이 늘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쉽게 훌훌 털고 일어나는 척. 이런 '척의 가면'을 쓰다 보면 실제로도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이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슴 껍질과 심장 사이의 공간이 멀어 어떤 일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그런 무덤덤한 사람 말이다. 그러지 못한 나는 소심하게 '결국, 모두 잘 될 겁니다'라는 말을 마치 주문처럼 연신 되뇐다.
이런 '척'의 결과로 남들이 보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 간격은 엄지와 약지 사이의 한 뼘을 넘어 적어도 한국과 일본 사이의 거리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는 감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인데 반해 동료들은 내가 이성적이고 감정 컨트롤을 잘하는 편이라고 한다, 무던한 사람. 맡게 되는 책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행동과 말 하나에 신경이 쓰이게 되면서 나 자신을 꾸준히 변화시켜온 결과인가 보다.
사실, 냉정한 이성적 존재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내게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해결자적 역할을 하며 맡은 일에 기복이 없고 어떤 난관이 와도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고 일어나는, 일종의 슈퍼맨 같은 존재를. 20대의 나는 이런 상상에 대한 동경으로 '척'을 했다면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와 같은 스타트업 일상의 연속에서 내가 괜찮아야 남도 괜찮을 것이라는 강박이 생겼다. 내 에너지와 감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책임을 알고 있고 그들에게 긍정의 기운만을 주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힘들다, 근데 그러면 안돼'를 연신 속으로 외쳐된다. 사실, 나는 아주 예민해서 미세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를 스스로 외면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노력으로 얻은 이득들도 분명히 많다. 그럼에도, '척의 가면'이 버거워 벗어던지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 날들이 많아진다. 어느 날 훌쩍 혼자 떠나 버리고 싶기도, 낙담이 나를 이끌 때 시원하게 욕해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쉽게 훌훌 털고 일어나는 척. 오늘도 척의 무게는 늘어만 간다.
그래도 나이를 먹다 보니 예전보다는 많은 일들에 무덤덤해진 것 같다. 예민하지 않으려 억지로 내 마음을 부여잡은 노력의 결과일까. 예전에는 가슴 먹먹하고 철학적인 예술 영화들을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액션, 스릴러 장르를 찾게 된다. 모든 내 삶의 미묘한 순간들 하나하나가 맞춰지는 것이다. 오늘도 '척의 가면' 속에서 나는 진짜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