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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Jun 24. 2021

사내정치의 마법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니, 교만도 함께떨어져 나가더라

젊은 세대들에게 ‘정년퇴직’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요? 박물관에 소장 됨직한 골동품 같은 먼 옛날의 희귀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그들의 인생 설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치열하고 척박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요즘 젊은이들의 몸부림을 보면, 35년간의 저의 직장생활은 축복이었습니다.    


다섯 달 후면 그 축복의 무대를 갈무리하고 벅찬 무대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직장생활이 참 따분합니다. ‘뒷방 늙은이’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직장에 나와서 열심히 일하고 월급을 받아야 하는데, 요즈음은 단순히 내 시간과 월급을 맞교환하는 느낌이에요.     


젊은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전투하듯이 치열하지만 신바람 나게 일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하던 일이 머릿속에 맴돌아 새벽까지 뒤척이던 때가 많았습니다.


'가정주부'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진 저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노트북과 자료들을 한 가방 싸 가지고 사무실을 뛰쳐나왔습니다. 할 일이 태산이지만, 퇴근시간 이후 가정주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집으로 출근(?) 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출근시간은 어느 직장이든 엄수해야 하는 것이 기본 중 기본이니까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의 뒤치다꺼리까지 어느 정도 한 뒤에, 다시 사무실에서 싸 온 일을 하던 때가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초과근무 수당이라는 것이, 적어도 우리 직장에는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 일하니 초과근무수당의 대상도 아니었겠군요.


몇 날 며칠을 끙끙거릴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주변과 투닥거리기도 하고, 큰소리로 언쟁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좀 더 일을 확실하고 잘하기 위한 거였지요.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 일을 잘하자고 그런 것이었으니, 감정을 상할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언쟁의 대상이 윗분일 경우, 간혹 '권위' 같은 것을 내세우며 비합리적인 '소리'를 하는 이들에게는 상처를 받긴 했지만, 일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탈탈 털어버렸습니다.


저는 당시 항상 목소리가 ‘솔’ 정도의 높이였습니다. 남편이 '마누라'가 직장 나가는 것을 마뜩잖게 생각하여 갈등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저는 일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당시에는 회의 시간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는 사람들을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회의 때는 말하지 않고 회의가 끝난 뒤에 돌아서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은 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열심히 일하지 않고 딴짓하는 동료들을 한심한 사람들이라 생각했습니다. 특별한 일정 없이 그냥 집에서 쉬려고 연가를 낸다는 팀원에게 ‘그럼 사무실에 나와요’라고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심심하게 집에 있지 말라는 소리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제가 왜 '뒷방 늙은이'가 되었냐고요?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나게 일했지만 전  제대로 승진을 못했어요. 승진을 못했으니, 나이에 걸맞은 자리에 있지 못한 거죠. 그래서 목소리를 내며 일하지 못하고 그러니 신이 나지도 않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목소리 내고 일하려고 들면 진정한 꼰대가 되어버리지 않겠어요.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는 아마 다 그런 분이 한 두 분 계실 거예요? 승진 못하고 구석에 찌그러져 계시는 분, 그런 분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에요. 전 입사한 다음 해 바로 한 번 승진하고 그 이후 20년 가까이 한 번도 승진을 못했어요. 물론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 제가 승진할 수 있는 단계는 두 계단뿐이긴 해요. 경력직으로 현재 다니는 곳에 입사했거든요. 다니던 중에 육아 문제로 잠시 퇴직하고, 재입사하기도 했죠.      


사실 전 승진 같은 것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배들이 서서히 먼저 승진하기 시작하면서 신경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팀장일 때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후배들이 저보다 직급이 높거나 같은 직급이 되니, 불편한 일이 생기더라고요.


저도 그들에게, 그들도 저에게 본의 아닌 '실수'를 하는 거예요. 전 그들을 여전히 어린 후배로, 그들은 저를 같은 직급의 동료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동상이몽이라고 할까요, 이견이 있을 때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찝찝한 상황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급기야 내 처지를 돌아보게 된 거죠. '내가 왜 승진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게 말입니다.


여하튼 글쎄 제가 ‘마법에 걸려’ 있더라고요. 저보다 더 똑똑하지도 더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수없이 저를 넘어 승진하니까 그렇게 결론을 낼 수가 밖에 없었어요.  그런 결론에 다다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마법을 건 정체'도 알게 되었고요.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은 다 '사내정치'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저에게 마법을 건 작자들은 바로 사내정치에 통달한 몇몇의 '악마'들로, 똘똘 뭉쳐 있더라고요.


만약 제가 다니는 직장이 사기업이었다면, 그 악마들이 저를 이미 이 직장에서 내쫓았거나, 아니면 그들이 혼쭐이 났거나 둘 중 하나 사생결단이 났을 거예요. 한결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승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대단히 많은 권모술수를 부렸을 테니까요. 하하하     


인생이 참 교묘해요. 직장에서 승진을 못하고 찌그러져 사는 요 몇 년의 시간 동안 저는 인생에 의미를 깨달았다고 할까요? 살을 빼면 겸손이 함께 빠진다고 했나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니 교만도 함께 떨어져 나가더라고요.


회의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회의 종료 후에야 의견을 말하던 사람도 왜 그러는지 이해하게 되었어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던 동료들의 마음과 상황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어요. 연차를 내어 집에서 쉬어 보려 했던 후배의 마음이 이젠 제 마음이기도 해요.     


주위에 아직도 승승장구하는 교만한 동료나 후배들을 보면, ‘저 녀석도 인생의 나락에 떨어져 봐야 인간이 될 텐데’ 혼자 걱정해줍니다. 더 높이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짠하기도 합니다.     


비록 뒷방 늙은이로 찌그러져 있지만 퇴직하는 그날까지 스타일 안 구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후배들한테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고 할 일 없이 자리를 비우지도 않고요. 젊은 직원들 손 안 빌리려고 매뉴얼도 찾아봅니다. 후배들한테 점심 같이 먹자, 차 마시자는 소리도 먼저 안 합니다. 여전히 내 자리에서 ‘월급값’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월급값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거 같아 씁쓸하긴 합니다만 힘내려고요.      


한 후배가 ‘팀장님은 이미 오래전에 지금까지의 월급값을 다 하셨어요’라고 위로해주더군요. 그 후배가 이런 말도 했어요. 사주팔자를 보면 '남편과 아내의 출세운은 하나'라고요. 저의 출세운을 남편에게 몰아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고 뿌듯하네요.  

    

이러고 보니, 저에게 마법을 건 악마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거 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군요. 하지만 전 그 악마들의 장례식장에 꼭 가서 그들의 말년을 보려고요 해요. 하하하. 제가 그 악마들보다 적어도 하루는 더 살아야 하겠네요. 운동을 좀 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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