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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Apr 08. 2021

삶이 헛헛한 나이, 육십

-육십의 고개를 넘고 있는 어느 하루

퇴직 아홉 달을 남긴 ‘말년병장’ 임에도 퇴근 무렵엔 피곤할 정도로 일이 끊이지 않은 날이다. 피곤함 때문인지 귀갓길 차 속에서 왠지 모를 헛헛함이 밀려온다. 이럴 때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마음이 풀릴 텐데, 대화 상대가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몰랐던 젊은 시절에는 상대가 누구든 개의치 않고 속마음을 편하게 이야기했는데, 이젠 조심스러워진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 동기생을 떠올린다.    


그 친구와는 대학 4년을 항상 붙어 다닌 단짝이었다. 20대 초반의 내 추억 한 페이지가 당시 그 친구 방에 나뒹굴고 있다. 밝고 긍정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친구다. 가끔 전화 통화를 통해 안부를 확인하는 그 친구는 사별한 남편 없이도 아들·딸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그 아이의 목소리는 하이톤이다. 인턴을 하고 있다는 딸아이와 외출하고 막 귀가하는 참이란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하다고 하니, 그럴 나이란다. 친구도 요즘 ‘삶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말에 꽂혀있다고 넋두리를 한다.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코로나가 종료되면 강원도에 가서 1박 2일 밤새도록 수다를 떨자며 통화를 마친다.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나의 헛헛함의 진원지를 깨닫는다. 낮에 머리를 식힐 겸 본 클럽하우스(음성 SNS)에 관한 정보와 신경숙 소설가의 컴백 소식이 그 진원지다. 나로선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의 벽을 느낀 게다.    


나는 평생 강렬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항상 ‘꼭 해야 할 것’이 있었고 그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서일까, 은퇴 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내야 하는 요즘이 참 곤혹스럽다. 소소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으면 관련 정보를 찾아본다. 그리고는 바로 포기하게 된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쏟아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미약하던 욕구조차 금세 사라져 버린다.      


퇴근길의 잡념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식사 준비라는 ‘꼭 해야 할 일’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딸이 아빠와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부녀가 같이 귀가하고 아들도 재택수업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4명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4인분의 식사 준비는 나에게는 아직 전투 모드로 변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네 식구가 둘러앉은 저녁 식탁의 화제를 주도하는 것은 항상 남편이다. 남편은 ‘인간이 가장 지속적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라며 평소 지론인 노동 예찬론을 펼친다. 아마도 오늘 남편의 부하 직원 중에 누군가가 일을 본인 성에 차지 않게 한 게다.  남편은 조그만 장비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대학 4학년인 아들의 졸업 후 진로로 화제가 넘어간다. 성격 급한 남편은 아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본인이 생각한 아들의 진로를 이야기한다. 딸은 ‘동생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으며 ‘아빠 생각보다 당사자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선을 긋는다. ‘이 순간의 정답’을 찾으려는 듯한 아들에게 보호막을 쳐줄 겸 나는 화제를 나에게로 돌린다. “난 평생 하고 싶은 것이 없었어...” 남편은 내 말을 받아 평소 본인의 생각들을 쏟아낸다. 아들은 눈치껏 자연스럽게 자리를 뜬다. 딸도 슬그머니 강아지 저녁을 줘야 한다며 식탁을 벗어난다. 저녁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남편의 이야기는 그 이후 식탁에서 30분가량 더 이어졌다. 남편의 많은 이야기 중 무릎을 치게 하는 깨달음이 있어서 나로선 괜찮은 시간이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새롭게 견지하게 되는 삶의 태도나 가치가 젊은 사람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편의 문제의식은 요즘 판치는 인생 지침서를 보면 나이 든 사람들이 본인의 시점에서 인생을 논하고 그것이 전 생애를 관통하는 진리인 양 젊은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데서 출발한 듯하다. 즉 세대별로 다양한 삶의 태도와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것이다.    


육십의 고개를 넘고 있는 이 시점에 내 삶의 가치관과 태도가 많이 변해 있음을 나 스스로 느끼고 있다. 퇴직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진 요즈음 지금의 잣대로 나의 젊은 시절을 종종 반추하곤 한다. 그것이 나도 모르게 나를 움츠리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과거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들이 주로 생각난다. 미래에 대해서는 간절한 기대와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다행인 것은 현재에 대해서는 많은 것들을 감사해하고 있다.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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